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구 의과대학 강의실도 조용히 멈췄다. 책상 위엔 책과 필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고, 뒤편에는 착용되지 못한 의사 가운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학생이 떠난 자리엔 침묵만 남았다. <영남일보 DB>

'의대생 증원' 의정 갈등 주요 일지.<연합뉴스>
1년 넘게 기능이 마비된 대구 상급종합병원들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정부가 사직 전공의들의 5월 복귀를 허용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하면서, 병원 정상화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병상은 있지만 의사가 없고, 수술실은 있으나 불이 꺼진 병원들. 전공의 복귀가 의료사태 해결의 사실상 '마지막 단추'가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정례브리핑에서 "전공의 5월 복귀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며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부족 사태 이후 복귀 통로를 열어줄 가능성을 정부가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계 단체들과의 공식 자문회의 직후 복귀 방안을 다시 구체화하겠다고 밝힌 건 최근 분위기 전환과 맞물리며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공의 복귀 논의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3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전공의 수련 환경 자문회의'가 비공개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5월 한시적 추가 모집을 통해 사직 전공의 수련 복귀를 허용하는 방안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전공의 모집은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진행된다. 하지만 수련 마지막 해인 레지던트 3·4년차는 내년 2월 전문의 시험 에 응시하려면 늦어도 이달 말까진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현행 수련규정상 공백이 3개월을 초과하면 시험 응시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의료계 안팎에선 현재 최소 전공의 200~300명이 즉시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복귀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신중론도 여전하다.
전공의 복귀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인력 수급 문제가 아니어서다. 병원 시스템 전체가 멈춰선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는 진료 재개 및 병원 가동의 출발점이 된다. 실제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들은 전공의 이탈 이후 병상 가동률이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경북대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1년 전 72.6%에서 지난 3월 기준 46.9%까지 급추락했다. 본원은 44.7%, 칠곡병원은 49.0%로다. 사실상 병상의 절반 이상을 놀리고 있는 상태다. 같은 기간 수술 건수는 전년 대비 46% 줄었고, 외래 환자도 27% 감소했다. 영남대병원·동산병원·대구가톨릭병원 등 다른 주요 상급병원들도 병상 가동률이 40~60%대에 머물러 있다. 사실상 진료 기능이 붕괴된 상태다.
문제는 상급병원의 진료 공백이 고스란히 지역 중소병원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증환자 진료는 물론, 입원과 응급의료 기능까지 중소병원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병상은 늘릴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3기 병상 수급관리계획'을 발표하고 대구 동북권(중구·동구·북구·수성구·군위군)과 서남권(서구·남구·달서구·달성군)을 '병상 과잉 진료권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선 이달(5월)부터 기존 병상 수(2023년 7월 기준)를 초과한 병상 증설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응급, 중환자, 분만 등 필수 분야에 한해 예외를 둘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는 빠져 있다. 사실상 전면적으로 병상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대구 한 종합병원장은 "환자는 계속 밀려들고 있는데 병상도 인력도 늘릴 수 없는 이중고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