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산공원 '親日 혹' 떨어졌다...박중양 부모 묘 改葬

    • 입력 2004-04-09   |  발행일 2004-04-09 제1면   |  수정 2004-04-09
    대구시 북구 침산공원내 오봉산에 있던 박중양의 부모 합장묘(왼쪽)와 개장 이후의 묘터. 대표적 친일파 자식을 둔 탓에 사후에도 편하지 못한 듯하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침산공원

    대구 침산공원에 위치한 대표적 친일파 박중양의 부모 합장묘가 최근 개장(改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대구 침산동 일대에 남아있던 박중양의 친일 잔재물이 모두 철거돼 100년에 걸친 박중양의 영욕(榮辱)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박중양은 3·1 운동 진압을 직접 지휘했다.

    (3월9일자 7면에 관련기사 게재)

    대구 북구청에 따르면 박중양의 종손(71·서울 강남구 도곡동)이 "서울에 거주하는 바람에 묘지를 돌볼 수 없어 화장하겠다"며 지난달 23일 개장을 신청, 침산공원내 오봉산 산 16의 28에 위치한 증조부모 합장묘를 지난달 30일 개장했다는 것.

    또한 이날 합장묘 앞에 '아들 중양이 울면서 세웠다(子重陽泣建)'는 문구와 고(故)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인 소화(昭和)가 새겨진 비문도 철거됐다는 것.

    이 합장묘는 박중양이 1943년 8월 고향인 경기도 양주의 선영에서 이곳으로 이장해 온 것으로 90년대 중반 북구청에서 오봉산 등산로를 만들 때 개장을 권유했으나 후손들이 거부, 옆으로 등산로가 나기도 했다. 이 묘는 오봉산 다섯 봉우리 중 1봉과 2봉 사이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왼쪽편 100m 정도 지점에 있었다.

    이에 앞서 박중양이 43년 자신의 친일행각을 미화하기 위해 세웠던 일소대(一笑臺)는 96년 10월 당시 시민단체들의 거친 철거운동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자진철거하는 등 광복 이후 박중양의 친일 잔재물이 차츰 사라져 왔다.

    최현복 대구흥사단 사무처장은 "박중양은 1906년 대구군수와 경북관찰사 서리를 지내며 지금의 동성로·북성로·서성로를 잇는 대구성(大邱城)을 허문 친일파의 거두"라며 "이번 기회에 그의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침산공원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대구의 명물로 단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봉산을 포함한 대구침산공원 8만8천여평 가운데 2만여평은 여전히 박중양의 문중 소유로 돼 있다.

    침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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