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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발사믹 식초는 덜 띄우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조금 넉넉하게."
이 말 뜻이 뭔가를 알면 그는 양식에 좀 조예가 있고, 모르면 기초반 강의를 들어야 될 것 같네요. 위의 말은 입맛 돌게하는 빵 전용 믹싱 소스의 농도를 좀 부드럽게 해달라는 주문입니다. 통상 식초와 오일을 1대 1 비율로 섞어 소스를 만듭니다.
"손님, 고기는 어떻게 구워드릴까요?"
"그냥, 알아서."
그럼 주문받는 웨이터도 맥이 빠집니다. 외국인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고기 굽는 정도가 있습니다. 레어( Rare)~미디엄 레어(Medium rare)~미디엄(Medium)~미디엄 웰(Medium well)~웰던(Welldone), 이런 순으로 전개됩니다. 레어는 핏물이 도는 거의 생고기 수준, 웰던은 바싹 익힌 겁니다. 경상도는 거의 '웰던식'입니다. 조리사들은 분홍빛이 감도는 미디엄 웰을 잘 추천합니다. 식도락가급은 미디엄~레어를 좋아하죠. 신입생들은 웰던에서 시작, 점차 미디엄군으로 진입합니다. 대중음악을 하다가 점차 재즈로 진입하는 식이죠.
레스토랑의 주방장(Chef).
꼭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식탁은 객석, 손님은 관객 쯤 되겠죠. 조리사와 손님은 음식을 둘러싸고 늘 신경전을 벌여야 합니다. 그래야 둘 다 성숙합니다. 유럽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따로 놉니다. 주방과 객석이 구분돼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홀과 주방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단골은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조리사는 그걸 만들어야 될 의무가 있죠. 좋은 관객은 좋은 공연을 위해 애써 박수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린 거의 반응을 안합니다. 반응하는 걸 조리사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봅니다.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반응을 하세요. 그래야 더 좋은 공연(음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발 비싼 것만 찾지마세요
2011년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 우리 지역의 메뉴 라인을 총점검해야 할 때 입니다.
몇몇 조리사들은 조금씩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지역의 손님은 아직 아닙니다. '아무꺼나' 메뉴가 득세하고 "제일 비싼 요리가 뭐냐"고 묻길 좋아합니다. 레스토랑에 와선 의무적으로 고가의 풀코스를 먹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유럽에선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거의 풀코스를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경상도에선 죽기살기로 풀코스를 잡습니다. 레스토랑 와서 단품 요리 주문하면 욕 얻어먹는 줄 압니다. 그건 시대착오적인 마인드입니다. 이젠 양식도 '주문 식단 시대'로 가야 합니다. 조리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바로 "가장 맛있는 메뉴" "가장 비싼 메뉴" 등입니다. 그런 말이 나오면 조리사들은 속으로 "이 손님, 1학년1반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경상도 손님, 본식보다 반찬에 혹합니다.
양식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채와 후식에 대해선 자잘한 반응을 하는데 메인 음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적을 안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음식이 맛있는 지 맛없는 지 잘 몰라서, 또 말하고 싶은 데 조리사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무는 겁니다.
#조리사를 자꾸 불러봐요
소스와 향신료가 과다하게 소고기 육즙의 향미를 지우는 것 같으면 망설이지 말고 조리사를 부르세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면 양식있는 조리사는 자기 요리라인에 대해 얘기해줍니다.
물론 연 1회 레스토랑 나들이로는 곤란하겠죠. 유럽에선 외식이 평균 월 2회. 비용에 신경쓰지 않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습니다. 조리사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죠. 프랑스에선 최고의 식당엔 늘 1900년에 태어난 '미슐랭(Guide Michelin) 스타'가 따라 다닙니다. 별 3개면 지존의 경지, 더 이상의 별은 없습니다. 별 한 개도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습니다. 봐주는 것도 없습니다. 평가단은 신분을 숨기고 돈내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다음주에는 서울 레스토랑의 현주소를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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