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사람&사람] 철길 옆에서 8년째 혼자 사는 영주 문수면 권재익 할아버지

  • 입력 2008-02-01   |  발행일 2008-02-01 제38면   |  수정 2008-02-01
[人터뷰-사람&사람] 철길 옆에서 8년째 혼자 사는 영주 문수면 권재익 할아버지
기차길 옆에서 8년째 생활하고 있는 권재익 할아버지, 권할아버지가 '철도별장'이라고 이름 붙인 집이 뒤로 보인다.





굳이 초점두지 않고 무심히 둘러봐도 마냥 불편한 집이다. 영주시 문수면 월호3리 485번지. 말 그대로 기찻길옆 오막살이집이다. 대문밖에는 실핏줄처럼 선명한 실가지들이 순서없이 엉켜있을 뿐, 인적도 없고 차도 없다. 텃밭에는 말라 비틀어진 고추줄기가 숨을 다한 듯 머리를 처박고 있고, 삐죽삐죽 올라있는 잡풀은 살짝만 건드려도 이내 부서질 듯 먹빛이다. 겨울의 격한 숨소리조차도 30분 간격으로 요동치는 기차소리에 곧장 묻히고 만다.

권재익 할아버지(80)가 후미진 이곳에, 그것도 기찻 길을 지척에 마주하고 돌부처처럼 박힌 건 8년전의 일이다.

"주위사람들에게 누가 되는 게 싫었어"

팔순의 노인은 수년전 아내와 사별했다. 그때부터 자신의 불편한 삶을, 좀 더 불편한 쪽으로 옮기고 싶었다. 혼자된 이후 주위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노인에게 오히려 부담이었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처음엔 아주 외딴 산골에 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섣불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곳에 터를 잡았다. 폐가나 다름없는 곳, 노인의 선택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것이 세상에 대한 자신이 갖춰어야 할 마지막 예의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방어본능이기도 했다. 인간의 냄새가 지워진, 미지의 세계에 줄쳐진 주석 같은, 그런 외딴 곳을 원했던 그로선, 불청의 객들조차도 반갑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엔 솔직히 무섭고 괴로웠어"

쇳소리 요란한 기차가 인내심 없이 노인의 말을 끊었다. 팔순의 노인이 밥 먹듯 겪었을 불안과 고독을 떠올린 건 그때였다. 처음 노인에게 기차는 이빨 드러낸 사나운 산짐승 같은 존재였다. 쉴새없이 울어대는 쇳덩이의 비명은 소름끼치는 절망과도 같았다. 불면의 밤은 내내 이어졌다. 솜으로, 귀마개로, 아무리 귀를 틀어 막아도 소용 없었다. 수취인 불명의 주소지로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3개월쯤 지나니깐 면역력이 생겼어. 그런 노래도 있잖아.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차소리가 이젠 자장가처럼 들려. 흐흐"

납덩이처럼 무거운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이야기속에는 한치의 과장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노인과 기차의 관계를 말하기 위한 예열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것이 가파른 길을 내딛다 문득 마주치는 거대한 절벽일지라도, 한 사람을 잠시동안 절망케 한 시련일지라도, 그것은 노인이 8년전 지불해야할 '통행료'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생의 감옥살이가 될 수도 있을 법 한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팔순의 노인은 별로 불평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굉음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기차가 또 한번 노인의 말을 끊었다. '철도별장'이라고 쓰여진 파란색 아크릴판 문패가 불안해 보인다.

"이 집이 왜 철도별장인지 알아?"

노인은 문득 파란색 아크릴판 문패를 가리키며 질문을 던진다.

"돈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적한 곳에 별장을 짓잖아. 그리고 저기 보이는 건물이 승문역이고…"

노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남루한' 폐역 하나가 보인다. 철도별장과는 10m 거리. 열차가 서지 않은 지 30여년이 지난 폐역은, 지금은 노인의 '땔감 창고'로 재활용 되고 있다. 페인트 칠 벗겨져 목숨 다해 보이는 폐역이지만 아직도 그곳엔 전성기시대의 자취들이 무심하게 남아있다. 나무판자를 잇대어 만든 매표소가 그랬고, 대기실 벤치의 흔적이 그랬다.

별장과 간이역. 노인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 두 가지의 존재를 한데 묶어 철도별장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었다. 그제서야 한없이 평화로운 어느 동심의 목가가 보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또 한번 기차소리가 귓속을 때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인의 말을 끊지 못했다.

"봄이면 여기가 꽃대궐이야"

8년전 노인은 폐허나 마찬가지였던 철도별장을 순전히 혼자 힘으로 새롭게 올렸다. 대문앞에는 버려진 폐선을 모아 장미터널을 만들고, 이쪽에는 대추나무를, 저쪽에는 산수유 나무를, 그리고 두릅과 복분자와 작약을 촘촘히 심었다. 버려진 흑백TV와 항아리를 모아 마당 한켠에 예술작품인양 전시한 것도 노인이었다. 숨어있던 까치집이 검은 해오름처럼 불쑥 솟아오른 풍경도 보인다. 길 아래쪽에서 집까지 오르는 계단을 손수 만들고 국기게양대와 새마을기를 나란히 내걸었다. 남은 한곳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딸을 생각하며 성조기를 달았다. 그리고 기찻길옆에 작은벤치 하나를 옮겨왔다. 그곳에서 노인은 뉘엿뉘엿 노을을 반사시키는 서천을 바라본다. 그리고 돌탑. 외갓집처럼 아련한 기억을 붙들고 있는 집, 아니 기억마저 사라진 자리에, 늙은 돌들이 시간을 움켜쥐고 있다.

온몸을 누르며 또 기차가 달려온다. 쩌렁쩌렁 산을 뒤흔든다. 하지만 발바닥으로 타고 뇌로 올라오는 울림이 처음과는 다르다.

'벌써 노인처럼 면역력이 생긴걸까?' 잠시 침묵하는 사이 노인이 말을 이었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참 많이 찾아와"

'봄이면 꽃대궐이 된다'는 철도별장에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손끝만 대어도 허물어질 것처럼 기력이 쇠해 보였던 집을 노인이 하나 둘 올리고 쌓고 가꾼 이후부터였다. 전국의 사진 동호회에서는 '단골코스'로 지정해 놓고 해가 바뀔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가족나들이객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을 거쳐가기도 하고, 철로변 인부들에게는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가 바로 철도별장이다.

이곳을 둘러보고 갔던 한 동호회에서는 노인에게 '승문역 지킴이'라는 별칭도 지어주었다. 노인은 그들을 위해 기차 장난감을 마당 한켠에 마련해두었다. 미국에 있는 딸에게 갔을 때 생각이나서 사온 거란다.

"사진 찍어 이것도. 그런데 지금은 배터리가 없어서 가지는 않아."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를 흥얼거리며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는 노인의 입술이 어린아이마냥 들떠있다. 갈짓자로 걸으며 개구쟁이처럼 춤까지 춘다.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안동에서 청량리로 가는 기차야. 지금 4시쯤됐지"

또 기차소리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8년은 새로운 기억회로를 노인에게 주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30여대의 기차 행선지를 노인은 대합실 철도시간표 보다 더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처음엔 노인에게도 기차가 날선 두려움이었고 불면의 괴로움이었지만, 세월은, 시간은, 노인과 기차의 기막힌 동거를 허락하고 말았다. 철로주변의 칼칼한 자갈도, 흙돌도, 노인에게는 이제 친구같은 존재다.

노인이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불빛 한자락이, 얼굴 가득 반가움을 길어 올리는 한 팔순의 노인을 비춘다. 웅크린 나무의 메마른 줄기마냥 입술은 바싹 마르고 주름은 가파르게 쑥 들어갔지만 눈매는 맑고 표정은 평화롭다.

"여기가 내 인생의 종착역이지"

영주시 문수면 월호3리 485번지 기찻길옆 오막살이집. 그곳에는 평화로움과 무욕과 느림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팔순의 노인이 산다.

[人터뷰-사람&사람] 철길 옆에서 8년째 혼자 사는 영주 문수면 권재익 할아버지
기찻길 옆에서 8년째 생활하고 있는 권재익 할아버지. 권 할아버지가 '철도별장'이라고 이름 붙인 집이 뒤로 보인다.
[人터뷰-사람&사람] 철길 옆에서 8년째 혼자 사는 영주 문수면 권재익 할아버지
권 할아버지가 달아놓은 파란색 아크릴판 문패(위)와 마당 한켠에 전시해 놓은 낡은 항아리와 흑백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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