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두 의사의 채식 예찬

  • 입력 2011-09-16   |  발행일 2011-09-16 제37면   |  수정 2011-09-16
“고기 안 먹으면 힘 없다고요? 웃기는 소리예요, 당장 현미밥 드세요”
20110916
지역의 대표적 채식주의 의사인 황성수 대구의료원 제1신경외과장(오른쪽)과 임재양 외과원장이 이구동성으로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육식에서 벗어나 채식할 것을 당부한다.

 

“나는 채식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사들이 왜 동물성 식품을 거부할까?


잡식성인 우리 인간은 뭐든지 먹으면서 살아간다.

 

살기 좋아지면서 각국 식품의약품 당국은 식품의 범위를 정했다. 각종 화학적 식품첨가제의 허용범위도 제시해 관리한다. 그런데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너나없이 성인병의 주범으로 ‘육식’을 지목한다. 육식보다 채식에 후한 점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육식과 채식의 장단점을 놓고 관련 전문가들끼리 대립하고 있다. 아직 육식과 채식의 틈이 너무 넓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교를 만드는 이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난 5월21일 국내 식품의학사상 중대한 행사 하나가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채식하는 의사들로만 구성된 ‘베지닥터(www.vegedoctor.com)’ 창립총회가 그것이다. 그동안 소수 중의 소수였던 채식주의자들이 ‘채식공화국’을 위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이들은 ‘채식 권리장전’을 채택하면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채식 전문식당 활성화 및 채식주의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채식인프라 관련 법안 마련의 필요성도 외쳤다.

 

베지닥터(Vegedoctor) 창립총회를 위한 예비 간담회가 지난해 8월 대구의 한 채식전문 식당에서 열렸을 정도로 현재 대구는 채식문화운동 진원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20년째 채식을 실천해 해오고 있는 대구의료원 황성수 제1신경외과장. 그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에 걸린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현미채식 밥상을 갖고 식이요법을 시행해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채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서구 평리동 서부고를 대상으로 현미채식 실험도 했다.

 

현미채식 실험 책임자인 대구의료원 황성수 박사를 비롯, 서울대 보완대체의학연구소 강승완 교수, 경북대 예방의학교실 이덕희 교수, 경희대 의학영양학과 박유경 교수, 대구녹색소비자연대와 대구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손을 잡았다.

 

대구 서부고 학생 25명은 54일간(지난 5월12일~7월4일) 현미밥과 채소를 먹는 ‘두뇌음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고기는 물론 생선, 우유, 멸치 등 육식과 떡, 빵, 가공 음식을 일절 먹지 않았다. 덕분에 체중이 줄고, 여드름이 수그러드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베지닥터 총회에 모인 의사들은 우유, 계란, 유제품조차 먹지 않는 극단적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

 

채식주의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비건은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밖에 ‘세미 베지테리언(Semi-vegetarian)’은 붉은 살코기류를 먹지 않고,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은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지만 우유, 달걀, 생선, 닭고기까지는 먹는다. 그리고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먹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은 서양의 채식주의자에게 많다. 우유와 달걀, 생선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주로 채식을 즐기지만 공장에서 가공된 육류는 거부하고 자연의 상태에서 자란 육류를 가끔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ain)’ 등도 있다.

 

음식결정론은 ‘음식만 잘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주장. 하지만 ‘어떤 음식이냐’는 데서 논란이 있다. 특히 전문가가 특정 사안을 놓고 의견대립이 될 경우 일반 소비자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단 두 채식예찬론자의 메시지를 옮겨 본다.

 

요즘 채식을 실천하는 이가 많아졌다.

특히 의사를 중심으로 채식붐이 더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21일 국회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들의 모임체인 ‘베지닥터(Vegedoctor·www.vegedoctor.com) 창립총회가 열렸다.

기자도 채식에 관심이 무척 많다. 육식은 무조건 ‘NO’가 아니라 육식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한국인에게
딱 맞는 ‘22세기 맞춤형 채식밥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건강식에 대한 전문자들간 교집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채식이 왜 좋을까. 20년째 채식을 실천해오고 있는 ‘채식전도사’황성수 대구의료원 제1신경외과과장과 1년전부터 채식을 실천해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임재양 외과 원장을 시내 한 찻집에서 만나 두 사람의 ‘채식예찬론’을 들어봤다.


◇ 임재양 외과 원장의 채식 실천기 ‘1년전과 비교해보니…’

현미채식이 암에 효과
씹다보면 명상에 빠져
체중 20㎏이나 빠지고
혈당수치도 확 떨어져

1년 전부터 나는 현미 채식을 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주위에서 채식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동료 의사들이 있었다. 같이 동참할 것을 권유했지만 딱히 질병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흘려듣고 있었다. 시작은 유방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느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암환자들은 먹는 것에 아주 예민해져 있다. 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왜 유방암이 생겼는지, 그 이유를 적으라고 했더니 99%는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그럼 가장 조심할 부분은 뭐냐고 물었다. 99%는 ‘음식’이라고 대답했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면서 해결은 음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에 병을 낫게 해줄 음식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막상 필요한 정보를 주어도 그대로 실천하는 환자들은 드물었다. 그냥 누군가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는 품목으로 맹목적으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내가 공부한 바로는 암환자에게는 현미채식이 가장 효과가 있다.

그리고 유방암 환자들에게 현미채식을 권유했지만 너무 힘들어 했다.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 진짜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1년 전 나도 현미채식을 시작했다. 고기 뿐 아니라 생선, 유제품도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이었다.

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의식의 변화였다. 나는 밥을 아주 빨리 먹는다. 그건 내가 살아 온 삶의 궤적과 일치한다. 나는 평생을 점심 식사 후에는 낮잠 자는 습관을 가졌다.

전공의 시절, 종일 수술 방에 있으면 점심은 거의 김밥이다. 그러면 돌아가면서 한 명씩 김밥을 먹고 수술실로 다시 돌아온다. 전공의에게 할당한 시간은 10분. 나는 가능하면 빠른 시간에 허기를 채워야 했다. 대개 2~3분 안에 김밥을 다 먹어 치운다. 그리고 낮잠이다. 꿀맛이었고 오후를 버티는 힘이었다. 나에게 끼니란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고 나머지 시간은 낮잠, 다른 일들을 할 시간으로 쓰였다. 그 생활이 중년이 될 때까지 그대로 습관이 되어 버렸다.

채식의 기본은 현미밥을 먹는 것이다. 현미밥을 먹으니 빨리 먹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적게 씹어도 15분 이상은 걸렸다. 많이 씹을수록 현미의 고소한 맛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밥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끼가 아니란 인식이었다.

이제까지 나에게 밥 한끼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단순한 행위였다. 그런데 현미밥을 씹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밥 한끼 먹는 것도 명상의 일종이란 얘기에 공감이 갔다.

그 다음은 몸의 변화였다.

한창 때보다 거의 20㎏이 빠졌다. 허리둘레도 4인치나 줄었다. 혈중 콜레스테롤과 혈당 수치가 30~50 정도 떨어졌다. 몸의 군더더기가 모두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체중이 빠지고 고기를 안 먹으면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진료와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한번도 힘이 더 빠진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 영양의 불균형이 오지 않을까. 아니다. 추가되는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은 없지만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다. 나중에 내 몸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채식이 대안인 것 같다.


◇ 황성수 대구의료원 제1신경외과 과장의 ‘동물성 식품 유해론’

식물성 식품만 먹어도
단백질 충분히 섭취해
동물성엔 섬유질 없어
등푸른 생선도 금해야

‘동물성 식품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해롭다’는 말은 과연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을까.

사람에게는 단백질이 조금씩 필요하다. 조금씩이란 곡식·채소·과일만 먹어도 충족이 되는 정도의 양이다. 단백질은 성장에 가장 필요한 성분이다. 사람의 일생 중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시기는 태어나서 돌이 될 때까지 일 년 간. 대략 3㎏ 정도로 태어나서 9㎏ 정도로 자란다. 돌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는데 놀랍게도 그 모유에 단백질은 7% 밖에 없다. 이 수치는 육류, 생선을 비롯한 동물성 해산물, 계란,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의 평균 단백질 함유량 약 50%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단백질은 지방과 공존한다. 그래서 단백질을 많이 먹기 위해서는 지방도 함께 먹을 수밖에 없어 문제다.

또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서 흡수율이 높다는 점 때문에 동물성 단백질이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흡수율이 높다고 몸에 더 좋다는 증거는 없다. 식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흡수율 정도로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백미는 현미에 비해서 흡수율이 높은데, 그렇다고 백미가 현미보다 몸에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식물성 식품만 먹어도 단백질 섭취는 충분할까.

당연히 그렇다. 칼로리 비율로 현미에는 8.0%, 백미에는 7.6%, 보리쌀에는 12.1%, 통밀에는 13.7%, 조에는 11.4%, 수수에는 12.3%, 건조 옥수수에는 13.2%, 콩에는 40%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이중 어떤 것을 먹어도 1년에 자신의 몸을 3배로 키울 수 있는 단백질의 양 보다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

등푸른 생선이 좋다는 것도 헛소문이다.

등푸른 생선에는 기름이 많고 그 기름 중에서 일부가 불포화지방산이다. 이것은 혈액 응고를 억제해 줌으로써 혈관 내에서 혈액이 엉기는 혈전현상을 방지해서 뇌경색과 심근경색을 예방해준다. 이런 이유로 등푸른 생선을 먹으면 좋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푸른 생선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혈액을 맑게 유지하면 혈관 내에서 혈액이 응고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또 혈전 형성을 억제하는 오메가-3지방산은 몸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굳이 등푸른 생선에 들어 있는 기름을 먹을 필요가 없다. 현미를 먹게 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기름을 섭취하게 되고 이것이 원료가 되어 오메가-3 지방산이 몸에서 만들어진다. 등푸른 생선 기름만 따로 분리해서 먹을 수가 없고 생선 살을 함께 먹게 되는데 이 살에는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아 이롭지 않다.

동물성 식품에는 섬유질이 없다. 섬유질이 부족하면 비만, 변비, 대장암, 과콜레스테롤 혈증, 고혈압, 당뇨병 등의 질병이 잘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요한 섬유질이 동물성 식품에는 전혀 없다.

식물성 식품이란 모든 종류의 곡식, 콩류, 깨류, 견과류, 감자·고구마류, 채소류, 해조류, 과일 등을 포함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성분은 크게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미네랄(칼슘, 철 등), 섬유질 등 6가지. 식물성 식품만 먹으면 이 6가지 성분은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식물성 식품 중에서도 밥이 가장 중요하다. 밥은 반드시 현미밥이어야 한다. 현미 찹쌀과 멥쌀은 영양 성분이 같으므로 반씩 섞어서 밥을 하면 처음 먹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반찬은 채소로만 준비한다. 간식은 다양한 과일이면 족하다.

▨ 대담정리·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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