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문천지

  • 입력 2012-02-27   |  발행일 2012-02-27 제31면   |  수정 2012-02-27
[자유성] 문천지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 앞에 펼쳐진 문천지(文川池)는 대구 인근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못 둘레 6.5㎞, 만수면적 131㏊, 저수량 466만t에 이른다. 1955~59년 사이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다. 글 읽는 선비가 많다는 의미의 다문(多文)리, 큰 내가 마을 앞을 흐른다 해서 장칭이(長川)마을로 불린 지역이 저수지에 포함돼, 이들 자연부락의 이름을 따서 문천지라 지었다.

주변의 야트막한 산들이 못 안으로 밀고 들어온 탓에 어느 곳에서도 문천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는 없다. 경부고속도로가 못 뒤쪽을 자르기 전까지 이곳은 아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백조가 날아드는 고즈넉한 곳이었다. 못 주변은 조개와 다슬기, 고둥이 몰려 빈한한 농가의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나무로 짜 맞춘 조각배를 타고 붕어·잉어를 잡거나 수초를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도 있었다. 문천지에는 인근 주민들의 고된 노고와 애환이 서려있다. 수백m에 이르는 못 둑 축조가 지금은 몇달새 끝낼 정도의 간단한 공사지만, 당시로선 엄청난 난공사였다. 남자들은 지게로 일일이 흙을 퍼 날랐고, 여자들은 못 둑을 걸으며 흙을 다졌다. 5년에 걸친 공사가 끝나고도 물이 새 범람할 위기를 수없이 겪었다.

“금박산 정기서린 이 문천의 푸른 물결 / 저 들판에 치릉치릉 쌀 보고(寶庫) 이룩하니 / 갸륵한 지당(止塘) 홍공이 그 못 따라 빛나리라”(‘문천지 축조 유공비’ 중에서). 문천지가 생기고서 인근 금호평야와 논밭이 물 걱정을 덜었다. 경산이 사과를 비롯한 과수농사의 중심지였고, 묘목의 원산지가 된 것도 문천지라는 풍부한 수자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몽리면적이 거의 1천㏊에 달한다.

이런 문천지의 수질이 30여년 전부터 악화되기 시작해 지금은 5급수 신세다. 폐수를 쏟아내는 시설이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문천지가 2015년 지역에서 열리는 ‘세계물포럼’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친수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동북아 물교육센터를 이곳에 유치한다는 것이다. 흐지부지했던 어떤 문천지 개발계획보다도 반갑다.

박경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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