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발해를 꿈꾸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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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25   |  발행일 2012-07-25 제30면   |  수정 2012-07-25
중국이 최근 주장하는 이만리장성은 실제 고구려 천리장성 일부
고대북방민족의 역사를 우리 관점에서 번역하자
20120725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초기 발해의 중심지다. 돈화시에는 발해 건국지인 동모산과 오동성, 대조영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육정산 등이 있다.

이곳 말고도 연변의 수부(首部)인 연길과 도문에도 성자산성을 비롯해 크고 작은 발해의 성들이 즐비하다. 고구려가 서북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흥성했다면 발해는 백두산과 연변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역과 동북쪽 흑룡강성, 러시아 연해주 일대까지 세력을 더 뻗쳤다. 만약 연변이 주(州)로 격하되지 않고 구(區)로 유지됐다면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현, 즉 발해의 상경용천부까지 연변에 포함됐을 터이다.

얼마 전 중국이 만리장성의 길이가 2만리가 된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했다. 이번에 포함된 2만리장성 중 연변지구장성은 기자가 이미 중국동포 역사전문가와 답사했던 곳이다. 이 장성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이며 발해와 금나라, 동하국의 성으로 이어졌다는 게 사학계의 통설이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사학자는 만주지역 유적조사 때 항상 북한이나 중국동포 사학자를 대동했다. 발굴 후에도 자문을 통해 고구려 것인지, 발해 유물인지 확인 작업을 일일이 거쳤다. 하지만 중국이 굴기하면서부터 이런 절차는 무시되고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중원을 정복한 뒤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명나라 때까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중국정부는 2007년 고구려 박작성을 호산성으로 둔갑시켜 만리장성의 길이를 엿가락처럼 늘이더니 올해는 흑룡강성 목단강시에까지 이르렀다. 중화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소수민족의 역사를 송두리째 뺏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만리장성늘리기공정’의 궁극적 목적은 따로 있는 듯하다. 지난해 말 중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때 대조영이 당나라사신에게 무릎을 꿇으며 책봉을 받는 장면을 중국CC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방영함으로써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이번 공정은 발해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집안이나 환인의 고구려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켜 톡톡히 돈을 챙긴 중국이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피켓을 들고 중국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우리가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서 피켓을 드는 것도 울분을 달래는 한 방법이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다만 몇가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국가가 나서 중국 25사(史)를 비롯해 요사, 금사 등 고대북방민족의 역사를 우리의 관점에서 직접 번역하자. 둘째, 조선족을 조선족동포 혹은 중국동포라고 부르자. 셋째, 말과 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중국동포학교나 한글단체에 후원을 하자.

통일신라와 발해의 유학생들은 당나라 빈공과를 싹쓸이할 정도로 우수했다. 하지만 대학자였던 신라의 최치원조차 발해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발해인을 떼강도라 하며 천대했다. 발해 역시 해동성국이라 불렸으나 신라를 무시하거나 홀대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우리의 중·고교 국사교과서에는 통일신라를 남국, 발해를 북국이라 하여 이 시기를 같은 민족이 건국한 남·북국시대로 가르치고 있다. 서로 으르렁대던 두 나라는 그렇게 200여년을 더 버티다 멸망했다. 그 결과 우리민족은 만주를 잃어버렸다. 현재의 남과 북 역시 1천여년 전처럼 으르렁대고 있다. 차이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고, 했을 뿐이다.

박진관 주말섹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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