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0) 대구 남구 대명6동 ‘솔내음’의 박진숙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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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07   |  발행일 2013-06-07 제42면   |  수정 2013-06-07
전라도와 경상도의 식재료·조리법 혼합…대구식 남도한정식 탄생
대소쿠리의 7곡밥 압권
미·시각 모두 충족시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0) 대구 남구 대명6동 ‘솔내음’의 박진숙
보리쌀·수수·율무·검정찹쌀·팥·조·멥쌀로 빚은 7곡밥.

대소쿠리와 삼베보자기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대구시 남구 대명6동 ‘솔내음’의 박진숙 오너셰프(59).

남도한정식을 대구스타일로 변주한다. 거의 모든 메뉴에 박 셰프의 손길이 머무른다. 너무 정성스럽고 보기도 좋고 간도 맞아 ‘이게 과연 대구 한정식 맞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 남도 육자배기가 생각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말끝마다 잘 삭힌 젓갈 냄새가 풍긴다. 단골을 대하는 자태가 혈족을 대하듯 한다. 그녀는 우선 보기 좋아야 하고, 그 다음이 맛이라고 했다. 훗날 주차하기 좋은 교외 한옥으로 옮겨 음식과 음악이 있는 풍류가 흐르는 한정식을 만들기 위해 요즘 소리를 배우고 있다. 경기민요를 다 뗀 뒤 판소리 흥부가를 배우고 있단다.


대소쿠리의 7곡밥 압권

미·시각 모두 충족시켜


간장닭다리찜 감미롭고

수입 갈비와 매치시킨

퓨전 전복찜은‘독창적’

서해안 ‘장대’도 눈길


손님 식탁에 충실하려고

무조건 3인 이상 예약제

◆3만원짜리 상을 받아 보니

앉으면 수프 같은 계절탕국이 나온다.

이날은 들깨탕이다. 겨울에는 매생이국, 또 고디탕, 옹심이 등도 낸다. 홍어삼합도 비록 칠레산이지만 목포에서 올라온 1급. 분홍색 살점은 치밀하고 지린내도 그렇게 독하지 않다. 2년 된 묵은지에 돼지수육이 한 조를 이룬다.

닭다리 부위만 떼어 내 간장마늘소스를 갖고 만든 간장찜닭은 안동찜닭보다는 더 감미로우면서도 살점이 푸석하지 않고 쫄깃하다. 큼지막한 피꼬막이 나온다. 전남 보성 벌교에서 갖고 온다. 전남에선 핏물이 감도는 피꼬막을 즐기는데 대구에선 푹 삶아 양념해서 줘야 먹는다.

퓨전전복찜은 특히 이 집만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메뉴. 특이하게 수입 갈비와 매치시켰다. 전복만으론 단조로워 갈비를 넣었다. 사실 이 단품 메뉴 하나만 3만원 이상이 될 것 같다. 간장찜닭과 같은 항렬인 오징어간장찜도 자체 응용한 것.

참나물 겉절이에는 작은 새우가 고명으로 세팅돼 있다. 10월 이후가 되면 굴을 곁들인다.

홍어무침이 나왔다. 문제는 초장인데 여기선 어떻게 만들까. 고추장, 마늘, 생강, 식초, 설탕, 와사비 등으로 만든다.

전남의 서대나 군평서니를 연상케 하는 서해안 장대는 지금이 철이라서 낸다. 철 따라 병어도 낸다.

장아찌는 어떤 걸까.

이날은 가죽나물과 표고장아찌인데 철 따라 두릅, 부추, 콜라비 등을 갖고 만든다. 장아찌용 간장물에선 비린내가 안 난다. 간장 1·설탕 1·생수 3 비율로 섞은 뒤 펄펄 끓여서 그런 모양이다. 한 번 끓여 재료에 넣었다가 그 물을 다시 달여서 또 넣는다. 3일 만이면 먹는다.

부침개는 명태포, 마늘쫑, 송이버섯, 호박, 고추 등으로 만든다.

고등어는 안동간고등어가 아니고 목포에서 올라오는 고등어. 조기 대신 영광굴비를 낸다. 굴비는 조기와 달리 머리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선명하고 살이 풍성하고 부드럽다. 조기는 머리도 단단해 씹을 수 없고 살도 야물다.

김치 사랑도 유별나다.

김치용 젓갈은 멸치와 왕새우로 만든 건데 목포에서 항상 갖고 온다. 쉬 무를 수 있어 통배추 안에 속을 넣지 않는다. 지난겨울엔 200포기를 장만했다. 갓김치의 경우 여수에서 공급받는다. 된장은 경북 청도에 사는 시어머니가 책임지고 있다.

위생에도 철저하다. 유독 농약을 많이 친 깻잎은 흐르는 물에 한 장씩 씻는다. 간장게장은 광주 등지에서 갖고 온다. 간장게장은 오래 묵히면 자연히 염도가 높아져서 짜지게 돼 그날 온 손님상에 낼 만큼만 만든다. 지하에 신안군 천일염이 20포대 정도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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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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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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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탁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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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0) 대구 남구 대명6동 ‘솔내음’의 박진숙
‘솔내음’의 오너셰프 박진숙씨.

◆나만의 요리비법 공개

전라도 살다가 남편 만나 경상도로 시집왔다.

마흔 살에 청도읍에서 식당을 시작한다. 10년 정도 했다. 쉰 살 되어서 경산 윤영조 시장 옛 자택에서 ‘명지고을’이란 상호로 현재 버전의 풀코스 한정식을 시작한다. 그녀는 요리학원에 가지 않고 모두 자기 안목으로 응용해서 요리를 한다. 발품을 많이 팔았다. 전라도 순천 목포 광주 등으로 가서 굴비와 장아찌 갈무리하는 방법도 공부했다. 전라도는 해물 종류가 너무 많아서 대구에선 응용을 하기 힘들고 재료도 구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오리지널 전라도식은 곤란하다 싶었다.

“전라도 음식은 젓갈과 장아찌 등과 해물이 강하다. 간도 경상도보다 더 세다. 삭힌 음식이기 때문이다. 너무 쿰쿰한 기운은 싫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음식 위주로 한상차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철마다 음식 배우러 예전에는 전라도에 갔는데 이제는 강원도 쪽을 찾고 싶다.”

그녀는 물김치에 강하다.

특이하게 양배추로 담근 물김치를 엿보자. 일단 맵쌀풀을 끓인다. 맵쌀가루풀을 끓여 식힌다. 양배추를 굵은 소금에 절여 놓는다. 숨 죽으면 거기에 양파와 대파, 생강과 마늘 약간을 자루에 넣어 묶고 풀물을 그 위에 붓는다. 자루에 넣어 풀물과 분리해야 국물이 지저분하지 않다. 풀물의 비율이 궁금하다. 쌀가루가 한 컵이라면 물은 10컵 정도. 펄펄 끓기 시작하면 끄고 식힌다.

동치미는 소금에 무를 절여야 한다. 3~4일 절이고, 다음은 물을 팔팔 끓여 식혀서 무가 둥둥 뜰 때까지 붓는다. 이어 소금간을 하면 된다. 한 달 이상 되어야 제맛이 난다. 사이다 맛이 나야 오리지널이지만 사이다와 식초, 설탕을 넣으면 제맛이 절대 안 난다.



◆먹기 아깝도록 예쁜 7곡밥 대소쿠리

메인이 끝나고 밥을 낼 때쯤 대소쿠리를 들고 인사를 하러 그녀가 소리꾼처럼 등장한다.

“흰 쌀밥만 단골에게 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곱 가지 곡물을 어떻게 갈무리하는가. 보리쌀, 수수, 율무, 검정 찹쌀, 팥 등은 물에 불리고 조와 멥쌀은 따로 불려서 밥을 안친다. 가스솥에서 어느 정도 익으면 전기밥솥으로 옮겨야 더 고슬고슬해진다. 잘못하면 너무 질거나 고두밥처럼 된다. 7곡밥은 쌀밥보다 10배도 더 힘들단다.

기자는 국내에서 여러 한정식집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맛있고 보기 좋은 밥은 처음이다.

8년 전 경산에서 여기로 이전해 왔다. 평소엔 주인과 매니저 둘이서 모든 음식을 갈무리한다.

“20여년간 단 한 차례도 음식 갖고 꾀를 부린 적이 없다. 우리 가족, 아니 내가 먹는다는 마음을 갖고 요리하면 눈이 열린다. 오직 돈만을 위해 음식을 조립하듯이 꾀로 만들면 그 음식은 결국 손님한테 외면당한다. 내 인품을 음식에 넣고 싶다.”

지역 각급 기관장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앞으로 대구에선 먹기 힘든 짱뚱어탕, 연호탕, 갈낙탕 등도 선보이려고 한다.

여긴 무조건 3명 이상 예약해야 된다. 식재료도 아끼고, 단골한테 충실하기 위해서다.

왠지 대구 한정식의 자존심으로 진화할 것 같은 예감이 쬐끔 든다. (053)655-1511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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