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종가 음식' 대중화 어디까지 왔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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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7-05   |  발행일 2013-07-05 제42면   |  수정 2013-07-05
안동 종가음식 첫 브랜드‘예미정’ 론칭…연내 7개식당서 맛보일 예정
(禮味亭·유교문화에 기초한 예의바른 음식)
20130705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안동장씨 경당(장흥효)종택의 내림음식 한상차림. 놋고봉밥 옆에 한없이 단아해 보이는 안동 건진국수가 자리하고 있다. <경북여성정책개발연구원 제공>


종부(宗婦).

종가지킴이인 그녀의 손맛도 당연히 ‘인간문화재’. 그런데 우린 종부를 좀 곡해하기도 한다. 자기식으로 해석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종부의 심정을 헤아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종부가 사는 종가는 체통과 격조를 위해 더더욱 베일 속에 감춰진다. 한동안 지자체, 연구단체, 언론에서도 여러번 노크를 했지만 종가에선 그런 제스처를 ‘수작(酬酌)’ 쯤으로 치부해버렸다. 안동식으로 말하자면 ‘본배없는 작자’로 깎아내린 것이다. 기자도 오래 경상도 종가음식의 실체를 궁금해 했다. 안동 지례예술촌 김원길 촌장을 통해 종부의 DNA를 조금 맛보긴 해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오래된 한옥도 두 종류가 있다. 종택(종가)과 고택이다. 종택은 주종손이 사는 고택. 물론 종택이 아파트에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종택이 무조건 고택은 아니다. 문화재청은 150년 이상 된 한옥을 고택으로 본다. 경북은 고택의 보고다. 전국 고택의 60%가 집중돼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도내 종가만 해도 120여곳에 달한다. 그 종가의 반 이상이 안동에 집중돼 있다.

한식의 보고는 종가의 접빈객·봉제사 음식(내림음식)이다. 하지만 연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종가음식은 철저히 문중 안에서만 갈무리되고 바깥에는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내림음식을 갖고 식당을 차린다는 생각을 종부들은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북 종가음식은 일반인에겐 ‘그림속의 떡’이었다.


안동종가음식산업사업단 발족…경북 12개 종가음식 요리법 책으로 소개

하회류씨 건진국수·안동권씨 비빔밥·안동장씨 7첩반상 등 레시피 현대화

개별적으로 창업컨설팅 뛰어들거나 서울서 강좌…고택스테이 통해 선봬

◆ 경북 종가음식 세상 밖으로

국내 종가음식을 입체적으로 들여다 본 전통문화연구가가 있다.

바로 <사>한배달 우리차문화원장 겸 <사>고택문화보존회 이사인 이연자씨. 그녀는 요리 전문 월간지 ‘쿠켄’을 통해 ‘국내 명문종가의 맛을 찾아서’를 연재하고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종가시리즈’를 펴낸다.

2000년 들어 종가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고택마케팅’은 물론 ‘고택스토리텔링’ 붐이 일어난다. 템플·팜스테이와 함께 ‘고택스테이’가 국내 대표적 웰빙관광상품으로 인기를 얻는다. 물론 안동이 중심이었다. 특히 경북은 ‘국내 3대 식경(食經)’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조리서로 불리는 ‘수운잡방’(1540년 탁청정 김유가 집필), 최초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1670년 정부인 안동장씨가 집필), 반가 전통주 연구의 결정적 자료인 ‘온주법’이다. 별다른 고조리서를 갖고 있지 못한 전라도 향토요리연구가들도 이를 무척 부러워한다.

경북도가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도움을 받아 종가돕기에 나선다.

2009년 3월 도내 일부 종가의 종부를 초청해서 ‘경북종가포럼’을 개최한다. 종가문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장이 마련된다. 무려 125개 도내 종가를 대상으로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우편조사도 벌였다. 석계종택(영양 재령이씨)의 음식디미방 재현음식·설월당종택(안동 광산김씨)의 수운잡방 재현음식·춘우재종택(예천 안동권씨)의 맛질방문 재현음식·충재종택(봉화 안동권씨)의 내림음식 레시피까지 보였다.

그 결과가 최근 ‘경북종가 문을 열다’와 ‘종가의 깊은 맛 문 밖을 나서다’란 책으로 묶였다. 특히 안동장씨 경당종택, 경주최씨 백불고택, 월성손씨 서백당, 재령이씨 석계종택, 광산김씨 설월당, 진성이씨 수졸당, 풍산류씨 양진당, 성산이씨 응와종택, 의성김씨 지촌종택, 풍산류씨 충효당, 의성김씨 학봉종택, 광산김씨 후조당 등 도내 12곳 종가음식 요리법까지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종가음식 일자리 창출 사업

경북여성정책개발원과 대경연구원은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역인재육성사업 일환인 ‘종가음식 일자리 창출’ 공모사업도 추진한다. 종가음식문화 스토리텔러 양성·종가음식문화기행 코스 개발·종가음식 홍보책자 발간 사업을 펼친다. 3년간 250명의 종가음식 전문인력도 배출한다.

특히 안동시 온혜리 노송정(퇴계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이 1545년에 지은 종택) 18대 종부 최정숙씨는 종가음식 창업컨설팅 과정을 수료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중소기업청의 예비기술창업자 양성 공모사업에도 나서 2011년부터 노송정에서 종가음식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재령이씨 집성촌인 두들마을 석계종택 조귀분 종부는 강남구청 및 전국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일반인 대상 음식디미방 강좌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영양 두들마을에는 음식디미방전수관과 음식연구회, 2009년 1월에는 안동시 법상동에 수운잡방연구회가 각각 결성돼 옛 음식 복원에 나선다.

2011년에는 안동의 김광림 의원에 의해 2011년 ‘지트코리아(GITE KOREA)’ 사업이 발족된다. 지트는 ‘프랑스형 농촌민박제도’로 프랑스 정부가 2차 세계대전으로 쑥대밭이 된 농촌을 살리려고 했던 정책이다. 이농현상을 막고 농촌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국가주도의 지역발전정책으로, 지트코리아는 안동의 고택을 새로운 민박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사업이다.

이에 앞서 2002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농암(이현보)종택이 안동에선 선두로 고택스테이 공간으로 외부에 공개된다. 현재 한끼 7천원에 열여섯 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특이하게 안동의 대표적 종가음식인 ‘명태보푸름’이 나온다.

신토불이·슬로푸드 붐은 자연스럽게 종가음식과 맞물려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안동에서 제대로 된 종가음식을 먹는다는 건 무척 어렵다. 안동을 찾은 관광객이 맛볼 수 있는 안동음식은 간고등어, 식혜, 헛제사밥, 찜닭, 버버리떡 정도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은 그게 안동의 종가음식인 것으로 착각한다.

안동식혜는 실은 안동의 종가음식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60여년 전 안동에서 등장한 일반인을 위한 음청류라는 전언이다. 안동간고등어조차 종가음식 범주에 넣기 곤란하단다. 안동 종가음식의 유래에 대한 학자들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20여명의 안동 내 명문가 종부가 모여 ‘정미회’, 경북의 60여명 종부가 모여 ‘경부회’를 결성했다. 각기 다른 종가음식을 상호비교하면서 종가문화의 정체성을 활성화해보려는 자구책의 일환이었다.

◆ 안동 종가음식 예미정으로 부활하다

지난해 안동종가음식산업사업단(단장 우정구)이 발족했다. 사업단은 국내 최초로 안동 종가음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예미정(禮味亭·유교문화에 기초한 특색 있는 음식산업 방향을 잡고, 예의바른 음식)’이란 종가음식 상표를 제시했다.

또한 안동 풍천면 하회류씨 안동건진국수를 시작으로 안동권씨 비빔밥과 안동장씨 7첩 반상차림 등 세 가지의 종가음식에 대해 전통음식 연구가인 박미숙 한국전통음식체험교육원장(경주 수리뫼 대표)을 초청,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레시피 개발을 위해 현장조사 활동을 벌였다.

안동건진국수는 풍천면 광덕리 박재숙씨(69) 농가에서 밀가루에 20%의 콩가루를 섞은 반죽을 홍두깨를 이용해 얇게 펴서 면발을 만드는 전통 칼국수 방식이 시연됐으며, 하회류씨 안동건진국수는 삶은 국수를 건져내 오방색 고명을 얹고 멸치 대신 말린 은어로 만든 육수에 말아내 맛이 담백한 게 특징이다.

삶은 나물로 비빔밥을 만드는 안동권씨 집안의 독특한 비빔밥은 안동 와룡면 조선행씨(51·향토음식연구가) 집에서 시연됐다. 말린 가지나물과 도라지, 토란대, 고사리, 콩나물, 무는 묵나물로, 시금치는 풋나물로 한 솥에 같이 삶아낸 다음 싱겁게 간을 하고 멸장과 꿩장에 비벼먹는 이 비빔밥은 나물을 기름에 볶지 않아 칼로리가 적고 소화가 잘 되며 느끼하지 않아 산업화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정부인장씨의 친정인 경당종택에서는 안동지방 양반가의 7첩반상 상차림이 종부 권순씨(73)에 의해 예전 법식대로 차려졌다. 특히 경당종택에서는 건진국수 옆에 고봉밥을 함께 놓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참고로 안동의 건진국수는 귀한 손님이 올 때 내놨고, 솜씨 좋은 종부는 바늘만큼 가는 면발을 뽑을 줄 알았다. 건진국수는 종부 손맛의 시험대였다. 강력 제분기가 나오기 전에는 수작업을 통해 고운 면을 얻었다.

디딜방아 등으로 성글게 간 밀가루를 부채로 날리면 고운 가루가 한지벽 아래로 안개처럼 내려앉는데 그걸 모아 면을 만들었다. 당연히 천상의 국수맛이다. 하지만 이젠 맛볼 수 없고 그렇게 할 종부도 없다. 안동에서는 홍두깨로 민 칼국수를 늘린국수란 의미로 ‘느림국수’라 했다. 이를 일명 제자리에서 한꺼번에 끓인 국수라 해서 ‘제물국수’라고도 했다. 또 홍두깨로 눌러 국수를 만들었다고 해서 ‘누름국수’라고도 한다.

안동 시내에 있는 예미정 메뉴협력식당인 솔밭식당·청록·풍전한정식·까치구멍집·골목안손국수·박재숙농가민박·하회솥밭식당은 연내 대중화된 종가음식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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