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1) 팔공산 ‘고향차밭골’의 김도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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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8-09   |  발행일 2013-08-09 제41면   |  수정 2013-08-09
5년 이상 된 채소효소와 삼색나물 결합시킨 ‘효소비빔밥’ 개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1) 팔공산 ‘고향차밭골’의 김도윤


팔공산 자락엔 입소문이 난 식당이 여럿 있다. 그런데 다들 오리·닭 타령이라서 1만원 남짓한 백반집 같은 밥상은 별로 없다. 널리 알려진 곳은 파계사 초입 주차장 근처에 있는 고향차밭골. 최근 힐링푸드 붐을 제대로 갈무리하기 위해서 아주 특별한 ‘효소비빔밥’도 개발했단다. 김도윤 오너셰프는 영천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종가라서 음식의 품격이 뭔가를 어릴 때부터 배울 수 있었다. 중학생 때 대구로 온다. 결혼해 첫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식당 사장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둘째를 낳은 뒤부터 병명도 모르고 앓았다. 약을 멀리하고, 음식으로 ‘식치(食治)’를 했다. 돌미나리를 생즙으로 짜 먹었다. 그때부터 신토불이 제철 식재료에 관심을 가진다. 5년 만에 완치된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의 묘리를 깨닫는다. 전통음식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모친에게 요리비법을 배웠다. 요리에도 ‘행간(行間)’이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20년 전 그렇게 그녀는 요리사의 길로 접어든다. 그녀는 요리 못지않게 예술적 감각도 겸비했다. 매듭과 수예 등에도 안목이 있다. 20년 전부터는 차 공부도 했다. 지정다례원 오극자 원장이 그의 사부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1) 팔공산 ‘고향차밭골’의 김도윤
고향차밭골 김도윤 사장(오른쪽)이 가업을 잇기 시작한 장남과 놋그릇을 함께 들면서 착한밥상 만들기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 차밭골 한정식 반찬 비법 공개

15년 전 대구국제공항 앞에서 한식 전문 고향차밭골을 차렸다. 차림은 수수했다. 식당 옆에는 ‘끽다(喫茶)’할 수 있는 도윤다례원을 연다.

차밭골정식은 전라도밥상처럼 풀코스가 아니라 한상차림이다. 지금까지 시래기된장·청방배추김치·고등어찌개·우엉잎쌈·우엉조림 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시래기된장용 육수는 멸치를 사용한다. 어른 검지손가락 굵기인 거제도산 청어멸치인데 연중 몇 달만 나오는 것이라서 많이 비싸다. 이 집은 멸치똥까지 사용해서 다시를 낸다. 파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살짝 구워 단맛을 보강해서 넣는다. 껍질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말아서 석쇠에 넣어 살짝 구우면 대파 특유의 향기가 더해진다.

“사람들한테 가장 인기 좋은 메뉴 중 하나가 시래기된장입니다. 원래 무청 말린 걸 시래기라고 하는데 고향에선 생배추 잎을 우거지라고 하고, 말리면 ‘시래기’라고 부릅니다.”

하절기 우거지용 배추는 도착하는 즉시 바로바로 삶아야 한다. 삶은 것도 하루 정도 물에 우려낸다. 그래야 배추 풋내를 잡을 수 있다. 된장 비율을 잘못 조정하면 약간 쌉쌀하다. 우거지는 17분 정도 삶아야 한다. 덜 삶으면 배추 자체에서 질긴 맛이 난다.

◆ 오감만족 효소육성실

10년 전에 파계사 쪽으로 이전한다.

그때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다. 접근성이 낮다면서 모두 반대했다. 전원에서의 삶을 위해 고생할 각오를 하고 들어와 집을 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식재료 확보가 승부처라고 믿는다. 그래서 주위 농부의 농산물을 매입하면서 윈윈전략을 수립했다.

식당은 지하 한 개 층을 포함해 4층. 전통차실도 있고 골동품 전시공간도 있다. 밥만 먹지 말고 맘 편히 쉬다 가라는 배려였다. 궤짝, 찬장, 옹기, 반닫이, 나비장, 옹기류, 노리개, 자수용품, 베갯모, 전통식초항아리, 뒤주, 전통 바구니 등이 보인다.

파계사 아래로 오면서 몇 가지 밑반찬이 달라진다.

명태조림, 우엉조림, 깨순멸치조림, 고구마줄기조림, 꽁잎김치 등을 축으로 차밭골정식(1만3천원)을 짰다. 빡빡장 옆에 찐 우엉·호박·양배추 잎까지 낸다. 50대 이상은 밥상 차림만 보고 군침을 흘린다. 그만큼 토속적이다.

5년 전부터 효소를 공부하면서 자기만의 힐링·슬로푸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지하 1층 공간을 직접 디자인했다. 전국에서 수집한 옹기를 위해 전시장도 짰다. 돌로 국그릇을 만들었다. 봉화의 김선희 명장이 만든 유기세트를 식기로 사용한다. 놋그릇을 반들거리게 닦는 주방 식구에게 그릇 한 개당 수고비 조로 천 원을 준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란다. 그래도 그녀는 웃는다.

효소육성실에는 전국에서 수집한 새우 담는 옹기, 초두루미(식초 담는 병) 등이 놓여 있다. 주방 입구에 각종 효소액 담은 용기가 실험실 비커처럼 앉아 있다. 여느 식당풍이 아니다.

◆ 효소비빔밥을 개발하다

이번 취재 때 가장 관심이 갔던 메뉴는 단연 효소비빔밥.

갓 퇴원한 환자, 채식주의자, 미식가 등이 많이 찾는다. 가격은 1만5천원. 가격만큼 조리법도 까다롭다. 효소액은 양파효소발효액과 집간장·된장을 섞어 만든다. 발효액은 껍질 안 깐 4등분된 양파에 백설탕을 7 대 3 비율로 넣고 간수 뺀 소금을 적당량 넣어 45일간 숙성시켜 낸다.

울릉도 부지깽이나물, 현미찹쌀과 멥쌀, 호박, 박나물, 표고버섯이 한 무리를 이룬다. 소스는 양파효소 등을 주로 사용한다. 효소비빔밥 요리 중 가장 힘든 대목은 밥 안치기. 압력밥솥에 10분 정도 불려 놓은 쌀을 깔고 그 위에 나물을 다져서 넣고 그 위에 또 쌀을 올린다. 밥이 다 되면 놋그릇에 담고 그 위에 삼색나물을 고명으로 올린다.

삼색을 안배한 이유가 있다. 시행착오도 겪었다. 고명으로 오색나물을 넣었는데 부지깽이나물 특유의 향기가 사라져버렸다. 몸도 부담이 됐다. 삼색이 가장 무난했다. 약선원리상 여름의 경우 호박이 좋다. 도라지와 표고버섯은 모든 체질에 맞다. 가을의 경우에는 박나물이 도라지 대신 들어간다. 겨울에는 가지를 말려서 볶은 뒤 올린다. 효소비빔밥에는 여느 비빔밥과 달리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꼭 안동 헛제사밥처럼 ‘지렁’(집간장)을 사용한다.

곁반찬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돌용기에 담긴 오징어탕국물은 기제사 때 먹는 탕국 같았다.

오징어는 참기름을 넣고 조선간장에 볶는다. 이때 필히 집간장을 사용해야 오징어향과 소스가 어우러진다. 박나물과 두부는 그대로 넣으면 안 된다. 수분이 들어가면 퍼져서 재료가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부는 노릇하게 구워 넣고 마지막에 소금간을 한다.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넣으면 오징어향이 죽어버린다.

그녀는 힐링·슬로·사찰·약선요리에 강하다.

20여년 전 국내 사찰요리의 리더격인 선재스님과 인연이 있었다. 약선은 대구한의대 한방식품조리영양학부 김미림 교수한테 배운다. 주변 모든 식재료가 다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초창기에는 양념 재료가 된장과 간장 수준을 못 벗어났는데 이젠 나물과 채소를 갖고 효소를 만들고, 그걸 천연양념으로 활용할 줄 안다.

“일반인은 효소에 대해 너무 안이한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탕을 넣고 1년쯤 묵히면 그게 모두 효소인 줄 아는데 그건 발효액으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효소가 되려면 최소 5년 정도 세월이 흘러야 됩니다.”

현재 5년 이상 된 냉이·민들레·복분자·더덕·도라지 등을 갖고 있다. 효소를 위해 70여 가지 재료를 확보해 놓았다. 여기선 발효항아리를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

장아찌에 대한 노하우도 공개했다.

간장장아찌는 조선간장과 물을 동량으로 넣고 달인다. 1시간20분 정도 중불에서 달여야 한다. 정종을 조금 넣거나 3일씩 세 번 같은 시간 달이면 곰팡이가 피지 않는단다.

◆ 가업을 잇는 장남 내외

요즘 난맥상을 보이는 약선요리를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요리를 모르는 약선전문가가 음식을 만들면 식감이 확 죽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약선요리 입문자라면 약선의 이론은 물론 요리과학까지 동시에 익히면 더 좋겠죠.”

가끔 자신이 죽으면 누가 차밭골의 요리술을 이어받을까 걱정이 된다. 그걸 눈치챘는지 지난 3월 장남(권기남)과 며느리(심미경)가 “기꺼이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한다. 그래도 그녀는 반신반의다.

“가업을 잇는 게 한갓 취미 수준의 취향이어선 절대 성공을 못합니다. 청소와 설거지, 음식쓰레기 분류, 식재료 재고 관리 등이 요리와 영업마케팅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접한 장남은 범절이 깍듯하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대구를 방문하는 VIP에게 ‘바로 저 집 음식이 대구 대표음식’이란 평가를 받는 명품식당을 아내와 함께 만들고 싶단다. 아내는 간호학을 전공한 뒤 경대병원에서 근무를 했는데 식당을 배우기 위해 사표를 냈다.

김도윤 셰프는 가지를 너무 많이 뻗으면 음식이 죽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차밭골 2호점도 단호히 거부한다.

인터뷰 말미 그녀가 밝힌 요리철학 중 한 대목에 밑줄을 긋는다.

“식재료의 향기로 그대로 전해져야지 양념과 향신료가 식재료의 향을 막아버리면 그건 음식이 아니고 무식(無識)이겠죠.”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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