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냉면의 변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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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8-23   |  발행일 2013-08-23 제41면   |  수정 2013-08-23
평양냉면이 강원도 가서 막국수 되고
다시 부산으로 가서 퓨전형 밀면 됐다
20130823
대동면옥 물냉면

‘냉면, 막국수, 밀면.’

한 가족 음식이다. 모두 메밀이 원재료다. 많은 사람들은 냉면은 ‘북한음식’이라고 믿는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남한에도 북한 평양냉면과 쌍벽을 이룰 만한 냉면이 있다. 바로 ‘진주냉면’이다. 진주냉면은 사골육수가 아니라 해물육수를 사용하고 육전을 꾸미로 올리는 게 특징이다.

함흥냉면을 비빔냉면의 메카로 만든 건 남한 냉면업자들. 냉면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냉면을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양분시킨 것이다. 북한의 조선음식사전에는 함흥냉면이란 말이 없다. 비엔나에 비엔나커피가 없듯 함흥에 가면 함흥냉면이 없다. 거기서는 함흥냉면 대신 ‘농마면·회국수’로 부른다. 농마는 ‘녹말’의 북한말이다.

상당수의 냉면 전문업소에서는 물냉면과 비빔냉면에 넣는 면의 재료가 같다. 이건 냉면에 대한 모욕이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면의 재료는 완전히 다르고 실제로 달라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우린 육수가 들어가면 물냉면이고 물이 없으면 비빔냉면인 줄 잘못 알고 있다. 북한 냉면의 면은 메밀 100%로 만든다. 육수는 나중에는 꿩육수가 되지만 초창기엔 동치미 육수가 주로 사용됐다. 동치미국수가 평양 물냉면의 원형인 셈.


■냉면의 변신 

北에 평양냉면 있다면
남한엔 진주냉면 있어
함흥엔 함흥냉면 없다


지역별 메밀비율 달라
밀면은 “밀가루 냉면”


물냉과 비냉의 면 재료
완전히 달라야 하는데…
대구 물냉면 ‘고무줄’
너무 질겨 식감 떨어져


상당수 식당 봉지육수…
직접 내는 곳을 찾아야

◆ 숨겨진 메밀의 족보

메밀의 어원은 뭘까.

나그네 식객인 박정배씨가 펴낸 ‘음식강산’(한길사)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메밀의 어원을 언어학자들은 뫼와 밀의 합성어로, ‘산에서 나는 밀’이란 의미로 해석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모밀 대신 메밀이 더 많이 사용됐다. 일본에서는 메밀을 ‘소바’라 부른다. 메밀로 만든 면도 소바라 부르는데 100% 메밀가루만으로 만드는 메밀국수를 ‘나마코우치소바’ 또는 ‘주와루소바’(十割蕎麥)라 한다.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스타일인 ‘니하치소바’(二八蕎麥)는 메밀가루 80%에 밀가루를 20% 섞는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가장 짧다. 약 2개월이다. 구황작물로는 더없이 좋다. 밀과 달리 메밀가루는 너무 푸석하다. 물로 반죽해도 잘 엉겨붙지 않는다. 메밀묵은 괜찮은데 메밀면은 다른 전분을 넣지 않으면 젓가락질을 하기 힘들 정도로 툭툭 잘 끊어진다. 그래서 잘 뭉치도록 전분을 섞는다.

메밀 열매도 볍씨처럼 속껍질과 겉껍질이 있다. 겉껍질을 벗겨내고 가루를 낼 때와 겉껍질까지 모두 갈 때 국수 색이 달라진다. 속껍질만으로 가루를 내면 흰색 계열이 되고 강원도 원주처럼 겉껍질을 다 넣으면 흑갈색을 띤다.

북한 냉면이 강원도로 오면 ‘막국수’로 변한다. 아직도 냉면과 막국수를 다른 음식으로 보는 이가 있다.

북한 냉면과 강원도 막국수의 차이점을 굳이 들라고 하면 막국수 면에는 북한보다 전분이 조금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 북한에서는 평양냉면을 만들 때 가급적 메밀만으로 만들려고 한다. 함흥의 회국수에서는 감자전분 100%로 면을 뽑아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다. 그런데 아직 대구는 비빔냉면과 달리 물냉면까지 가위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질긴 ‘고무줄면’을 낸다. 식감을 줄이는 주범이다.

막국수의 천국인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신촌리에 가면 춘천향토막국수협의회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이 법인은 막국수 가게 주인들이 세운 것으로, 막국수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메밀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근처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에서 체험용으로 사용되는 메밀가루도 여기서 제공된다. 이 공장에서 나오는 메밀가루를 사용하는 회원 업소는 30여곳이다. 춘천 막국수는 거의 메밀가루 70%에 전분가루를 30%를 섞는다.

강원도 막국수 명가는 춘천의 샘밭, 유포리, 부안, 별당 등이고 홍천으로 가면 장원, 횡성은 삼군리, 인제는 남북과 서호순모밀국수, 고성은 백촌과 산북, 속초는 삼대, 강릉은 삼교리동치미막국수, 원주는 남경과 황둔, 봉평은 현대와 장평이 유명하다. 하지만 맛은 다른 지역보다 한 수 위인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냉면과 강원도 막국수 전통을 퓨전으로 이어받은 건 부산의 ‘밀면’.

밀면은 ‘밀가루 냉면’의 준말. 부산 우암동 내호냉면이 1호점이다. 부산 피란민들은 갈수록 품귀현상을 보이는 메밀로 냉면을 만들기 힘들어졌다. 1956년 미국의 PL480 규정에 의거, 밀가루 11만4천t이 수입된다. 졸지에 밀가루 세상이 된다. 내호냉면은 메밀가루 대신에 밀가루 냉면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새로운 면발을 고안해 낸다. 육수는 춘천막국수처럼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했다. 강원도 양양은 특이하게 간장육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동치미 육수에 사골육수를 섞어 육수를 빚는다. 이런 스타일이 대구에 한 군데가 있다. 바로 대동강(남구 봉덕동 948-13)이다.


◆ 진짜 메밀맛을 느끼게 하는 식당은

아쉽게도 우린 원형의 메밀국수의 맛을 이젠 볼 수 없다.

원형의 냉면·막국수 맛을 보려면 화전민촌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화전민은 정부 정책에 의해 73년 일제히 퇴거명령을 받는다. 지금은 메밀향이 죽어버렸다. 메밀가루를 낼 때 디딜방아나 멧돌을 이용해야 제대로 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공장의 롤러에 들어간 메밀은 롤러의 열기에 향을 거의 뺏기고 만다. 차선의 맛이라도 보려면 몇 가지 물어봐야 한다. 면과 온육수(뜨거운 사골육수)를 직접 내는지를 물어보라. 없다고 하면 사정없이 돌아서라. 상당수 식당이 식재료 상에서 구입한 봉지냉면 육수를 사용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대구에선 냉면 양대 산맥인 대동면옥(중구 계산동 13번지)과 부산안면옥(중구 공평동 94-5번지)이 면도 직접 뽑고 온육수까지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강원도 명가의 분청사기 같은 걸쭉한 메밀의 맛은 아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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