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포차의 전설’ 대구 계산동 ‘프리타임(그날 포장마차)’ 8년 장수 비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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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13   |  발행일 2013-09-13 제41면   |  수정 2013-09-13
소주 2병·안주 30가지 ‘한상차림’에 21,000원…이게 됩니까? 마음 비우면 됩니다!
사장인 남편은 머리띠…아내는 교복차림…
질 좋은 추억의 불량식품 등에 ‘하하호호’
펀·퍼주기 마케팅 ‘주효’ 초저녁에 북적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포차의 전설’ 대구 계산동 ‘프리타임(그날 포장마차)’ 8년 장수 비결
무려 30가지에 육박하는 대구시 중구의 포차 '프리타임’ 곁반찬.

남도한정식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푸짐한 차림새다.

다들 이렇게 주고도 남는지 궁금해한다.

아날로그 시절 추억의 술판은 ‘포장마차’, 디지털 시대 추억의 술판은 ‘포차’가 주인공.

옥외형인 포장마차에선 ‘묻지마 메뉴’였다. 소주·석쇠돼지불고기와 곁들여 먹던 가락우동·곰장어·멍게·해삼류가 대세였다.

하지만 요즘 포차는 많이 다르다. 실내형이고 메뉴도 쫀드기·라면땅 등 추억의 불량식품에서 샐러드바·1.2m꼬치·라면 등을 ‘DIY(Do it yourself) Food’처럼 직접 요리해 먹도록 한 게 특징. 또한 주류도 와인·맥주·막걸리포차 등으로 분류된다. 한마디로 복고에서 뉴모드까지 모두 끌어안는 퓨전주점 스타일.

◆포차의 족보를 찾아서

포차의 원류는 뭘까. 멀게는 ‘학사주점’과 ‘민속주점’, 가깝게는 IMF 외환위기 직후 전국을 강타한 ‘속에 천불 정구지찌짐 막걸리’도 한 맥을 이어준다. 이게 찌짐집 붐의 원동력이 된다.

대구의 경우 수성구 김대건성당 근처의 ‘찌짐집’이 유명한데, 사장 유진혁씨는 대구 MBC FM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 DJ였다. 찌짐집 붐은 팔도 막걸리만 파는 막걸리 전문 카페 붐으로도 연결된다.

4년 전 수성구 중동교 근처에서 태어난 ‘3천냥대포’도 일조한다. 3천냥대포는 몇 년 사이 다양한 버전으로 발전해 나갔다. 거짓말 조금 보태 한 집 건너 하나가 3천냥대포였다. 올해 들면서 지역의 3천냥대포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그 이전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 등과 같은 예전 극장간판을 내건 추억의 대폿집도 인기를 얻었다.

또 별스러운 주점이 둘 있다. 바로 80년대 인천에서 생겨난 어묵과 각종 꼬치를 전면에 앞세운 고급스러운 실내 포장마차 체인점이었던 ‘투다리’, 일찍 귀가 못 하는 중년을 겨냥한 포차형 호프집이었던 ‘간이역’ 등이 득세했다. 하지만 다들 유행주기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또한 세계 각국의 맥주를 맘껏 맛보게 했던 수입맥주전문점 ‘와바(WABA)’ 붐도 이젠 좀 주춤해졌다. 인기주점의 라이프사이클은 채 2년을 못 넘어서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포차의 전설’ 대구 계산동 ‘프리타임(그날 포장마차)’ 8년 장수 비결
지역에서 처음으로 포차시대를 연 대구시 중구 계산동의 ‘프리타임’ 전경(위)과 전설의 포차 아저씨인 황수열 ‘프리타임’ 사장.


◆ 포차 ‘프리타임’의 1급 영업비밀은…

주당들 사이에선 ‘전국 포차의 왕초’가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있다고 한다.

인쇄골목 한복판에 있는 ‘프리타임(포차 그날)’이다.

한 집인데 상호는 일부러 두 개. 이것도 ‘펀 마케팅’의 일환이다. 오후 7시에 가게를 찾았다. 손님으로 들끓는다. 소문에는 ‘이 집에 오면 친구 둘이서 2만1천원 내고 소주 두 병 먹고 무려 30여가지의 각종 반찬을 안주처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정말일까? 확인하고 싶었다.

잉꼬부부 사장인 황수열(45)·박지선씨(49)가 “정말이다”면서 부리나케 한 상을 차려준다.

즉석 오징어튀김, 샐러드, 똥집장조림, 옛날소시지, 꼬막, 삶은감자, 김밥, 옛날잡채, 닭조림, 맛살꼬치, 납작만두, 부추전, 라면땅튀김, 쥐포튀김, 오징어깐풍기, 삶은계란, 옛날꿀호떡, 삶은땅콩, 완두콩, 고디, 번데기, 떡볶이, 쫀드기, 눈깔사탕, 콘칩, 줄줄이비엔나조림, 염통꼬치, 어묵조림, 동그랑땡, 풋고추무침, 오이, 도토리묵, 마른멸치, 떡국, 두부구이, 김가루무침, 계절과일, 사과맛아이스크림, 추억의 쭈쭈바, 아폴로, 뽀빠이, 별사탕.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메뉴가 이어져 나왔다. 너무 많아 세 차례로 나눠 낸다. 놓을 자리가 없어 접시 위로 접시가 올라간다. 처음 온 사람은 여느 집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추억의 불량식품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당연히 다음에 나오는 질문, “아저씨, 이렇게 퍼주고도 남아요?”

“포차는 마음 비워야 성공한다. 기본 안주 이렇게 주고 남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손님은 그걸 두 배로 더 잘 안다. 불경기가 절정이다. 그래서 퍼주기 마케팅을 시도했다.”


◆ “재미있고 푸짐하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

솔직히 기자가 둘러본 이런저런 포차의 메뉴 수준은 이 집 포차보다 맛과 정성이 좀 떨어진다.

부부는 “싼 게 절대 비지떡이 되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좋은 식재료를 찾아 서문·칠성시장을 매일 2~3시간 뒤진다.

주방 안으로 들어가봤다. 남편은 소매 없는 러닝셔츠를 입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맸다. 얼굴에서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에게 손님은 친척이다.

“우리 집에서는 절대 한숨이 없다. 우는 얼굴이라도 갈 때는 웃는 얼굴이어야 한다면서 힘든 사람 보면 서비스 소주를 몰래 내민다.”

전국을 떠돌다가 8년 전 포차 오픈식 날 하루 매상이 막걸리 판 돈 2천원뿐이었다. 부부는 장사의 생리를 안다. 한 사람이 대박을 몰고오는 ‘강남제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과 이미지 사진을 찍는 걸 즐기는 아내는 교복차림을 즐긴다.

고령읍 출신인 남편은 스무 살 때 대구로 와서 서구 비산동 비산네거리에서 ‘구루마’ 포장마차를 했다.

단속을 피해 비산동네거리에서 삼익뉴타운 정문 앞, 감삼네거리 등지로 옮겨다닌다. 그러다 서울로 간다. 이주일씨가 회장으로 있던 서울 ‘무랑루즈’ 본점에서 주방보조로 있었다. 과일 파트 및 양식·중식·일식을 다 경험한다.

그 후 고향으로 내려와 호프집을 낸다. 고령읍에서는 최초였다. 호프집에 포장마차 버전을 결합시켰다. 다시 경기도 수원 근처 병점으로 가서 지금 형태의 실내포장마차를 연다. 인근 삼성본사 직원들도 많이 찾았다.

8년 전에 대구로 온다. 자본금 50만원, 테이블 세 개로 시작한다. 이젠 20대부터 70대까지 찾는다. 단골이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부부 사진도 찍어준다.

“포차는 폼을 잡으면 안 된다. 시설은 후미지고 허름해도 분위기가 재미있고 푸짐하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지금보다 반찬이 적었다. 15가지 정도만 깔았다. 역반응이 왔다. 몇몇 손님은 “추억의 과자를 왜 주냐. 먹지도 않는데”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건 제 것 아니고 손님 것이니 집에 가져가서 아이한테 주면 된다”고 응수했다. 결국 주인이 이긴다.

부부는 평생 포차인생이 될 것 같단다. 체인점은 절대 안 내겠다고 약속한다. 대를 잇는 포차가 됐으면 싶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 53-3. (053)253-0983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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