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한식 첫 미슐랭 스타’ 후니 킴은 어떻게 죽장연에 매료됐을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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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27   |  발행일 2013-09-27 제41면   |  수정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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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이 성형된 죽장연 메주에 짚끈을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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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연 측의 끈질긴 설득으로 거래를 하게 된 미국 뉴욕의 일급 셰프 후니 킴씨가 죽장연을 방문해 자기 된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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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 킴이 자신이 사용할 된장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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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천여개의 된장이 숨쉬고 있는 포항시 ‘죽장연’의 보물인 장원의 전경.



최근 기자는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한식 최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오너셰프’로 유명해진 1.5세대 한국인 후니 킴(한국명 김훈)이었다.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 산속에 깊게 자리 잡은 재래식 빈티지 장류 제조업체인 ‘죽장연(竹長然)’을 방문해 현지 장류 상태 점검 및 음식이라는 주제로 기자와 식사를 겸한 대화의 자리를 갖고 싶다는 취지였다.

그는 현재 뉴욕 맨해튼에 ‘단지’와 ‘한잔’이라는 한식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으며, 자기 식당을 찾는 뉴요커에게 퀴퀴한 냄새가 나는 한국 된장의 실체를 알리면서 해물된장찌개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뉴욕의 된장전도사’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매달 수입해 사용할 간장·된장·고추장 각 150~200㎏도 죽장연 제품이며, 실제 가게 메뉴판에도 죽장연 된장을 명기했다는 것이다. 죽장연 장원(醬園)에는 후니 킴 전용 옹기도 있다.

세계적 셰프를 어떻게 한국에 올 수 있게 한 걸까. 죽장연이 로비를 한 걸까.

산파역은 해외유학파이자 ‘블루오션 마케팅’에 능한 정연태 죽장연 사장이었다. 직접 후니 킴이 미슐랭이 인정한 스타셰프가 됐다는 관련 신문기사를 읽고 죽장연 제품을 사용해 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후니 킴 e메일로 보내며 된장도 우송했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후니 킴이 돌연 지난해 포항 현지를 찾아왔고, 올해 두 번째 방문한 것이다.

솔직히 죽장연 장류가 다른 곳보다 더 맛있다는 스토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죽장연의 치밀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세련된 마케팅 전략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장류업체로선 애숭이급인 죽장연. 이들의 남다른 마케팅전략을 엿봤다.


◆ 오지마을 주민과 윈윈전략

죽장면은 포항시의 오지 중 오지다.

포항에 이런 심산유곡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포항시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 옻재를 넘어가야만 도착한다. 백두대간 끝자락 해발 450m에 있다. 동에서 서쪽으로 난 골짜기는 기온차가 크고 구룡포발 해풍이 사철 흘러든다. 깊은 산골이지만 종일 햇볕이 든다.

죽장연으로 가려면 다리 3개를 건너야 된다. 상사1교와 상사2교, 마지막은 죽장연교다. 상사교가 아니고 왜 죽장연교일까. 원래는 ‘상사6교’였다. 교량 이름 속에 미담이 숨어 있다.

작정하고 공장부터 지은 게 아니다. 힘만 믿고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였다면 주민으로부터 온갖 민원이 제기됐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순리대로 갔다.

죽장연의 모기업은 영일기업. 포스코의 구내 운송을 담당하는 포항지역의 중소기업이다. 99년 ‘1사1촌 운동’의 일환으로 정봉화 회장은 포항에서 최고 오지 중의 오지인 죽장면 상사리와 자매결연을 했다. 이후 이 마을에 ‘정(情)’을 많이 준다. 농기계 무상수리와 태풍피해 복구, 미용봉사, 농산물 팔아주기 등등.

주민의 마음도 움직었다. 죽장에서 생산된 콩으로 담근 된장과 고추장은 물론, 죽장특산물인 고로쇠수액 등으로 보답했다. 매년 겨울엔 직원과 주민이 김치잔치도 벌였다. 그중 손맛이 남다른 여덟 집에서 해마다 장을 담가 영일기업의 직원들이 먹을 1년 양식으로 제공했다.

급기야 2009년 명품빈티지 장류회사가 상사리에 자연스럽게 설립될 수 있었다.

매년 10월 말~이듬해 4월 ‘장번기(농번기)’에는 상사리 주민 총동원령이 내려진다. 죽장면은 물론 기계면의 콩까지 평균 500원 더 주고 매입한다. 50여명의 주민은 돌연 비정규직 직원이 된다. 마을 주민 남녀 한 명씩 뽑아 작업반장을 시켰다. 주민들 솜씨도 숙성과 물 관리, 소금간, 세척, 성형 등으로 전문화시켰다.

‘우리 죽장연이 잘 되고 전통장이 잘 익어야 우리가 산다’.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훈훈한 흐름을 지켜본 포항 북구청이 마을 주민의 뜻을 담아 2010년 죽장연교를 만든다.


된장·간장에 와이너리 같은 빈티지 개념 도입

생산연도 외에 원료의 산지·건조·발효·항아리숙성 등

그해 특징 기록

3천개의 옹기와 70㎏들이의16개 가마솥‘장관’

현지 주민들이 직접 제조 참여




◆ 2단계 전통맛과 현대맛의 조화

죽장연 명물은 단연 장원이다.

전국 옹기는 여기로 다 몰려온 것 같다. 무려 3천개의 옹기가 모여 있다. 향후 5천개로 늘릴 계획이다. 전국 최대 규모가 된다. 그것 자체가 관광상품이다.

장 담그는 과정은 공업용 바늘 움직이듯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전 공정을 매뉴얼화하고 표준화해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했다. 다시 말해 전통만 강조한 게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는 현대적 공정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장 만드는 방식은 ‘전통적’, 그 장의 관리는 ‘현대적’이었다.

사진작가가 군침을 흘리는 공간이 죽장연에 숨어 있다. 콩을 삶는 70㎏들이 가마솥 16개의 범상치 않은 진용이다. 콩을 삶을 때 허연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면 장관이 연출된다. 가스불이 아니고 참나무 장작불이다. 콩 삶는 작업이 정말 중요하다. 이게 잘못되면 한 해 농사도 끝이다.

연신 가마솥 표면에 찬물을 붓는다.

넘치는 콩물은 젖은 수건으로 닦아 낸다. 자칫 콩물이 흘러 눌어붙으면 탄내가 콩에 밴다. 콩 ‘화근내’는 치명적이다. 삶는 시간은 모두 5시간. 40분쯤 삶고 나머지 4시간은 뜸을 들인다. 그래야 콩이 누렇게 잘 뜨고, 물렁물렁 잘 물러진다.

불 조절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콩 삶을 때는 센 불을 쓴다. 너무 세면 콩이 탄다. 뜸 들이기를 시작할 때는 센 불은 다 빼고 가는 나뭇가지로 화력을 갈무리한다. 너무 세면 눋고, 약하면 덜 삶긴다. 이 대목은 자동화가 어려울 듯싶다.

여느 장류 공장과 달리 품질관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매일 체크해서 기록해 둔다. 매뉴얼해서 다른 사람이 와도 핸들링할 수 있게 했다. 들쭉날쭉한 손맛을 일정하게 다림질한 것이다. 그게 회사 자산이다.

메주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1·14·11㎝. 말리는 데 30~40일. 구룡포 과메기 실내 덕장처럼 날씨를 보면서 창문을 여닫는다. 온도는 5~10℃, 습도는 30~40%가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란다. 메주의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말랑한 상태가 가장 좋단다. 단단한 부분을 2㎝ 정도로 유지한다.

메주가 굳으면 황토발열실로 옮겨 3~4단으로 쌓는다. 발효실 온도는 25℃, 습도는 60%. 3일마다 메주 위치를 바꾼다. 15~20일 지나면 하얀 곰팡이가 핀다. 잘 갈무리된 메주는 소금물을 만나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된다. 이 대목에서도 고수의 손길이 필요하다.

죽장연 나름의 ‘권장 염도’가 있다. 평균 18보메(Baume)로 맞춘다. 1보메는 소금이 1%라는 의미. 전통 된장은 18~25보메. 더 춥고 덜 춥고에 따라 염도도 달라져야 한다. 이게 감인데 초보자는 잘 맞출 수가 없다.

남북권 기온에 따라 보메도 달라진다. 기온이 높지 않은 북쪽 지방일수록 염도가 낮고, 남쪽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경남지역은 25보메, 강원도는 18보메, 비교적 고지대인 죽장연은 강원도권에 맞춘다.

50~60일 지나면 된장을 푼다. 된장을 독에서 퍼내면 간장이 남게 된다. 옹기에 담긴 된장은 이제 ‘세월’이란 발효제를 먹고 자란다. 장마가 지나가면 뚜껑을 열어 제습한다. 2~3년 지나야 제맛이라지만 젊은 층은 6개월~1년 된 된장을 선호한다.

◆ 장류에 빈티지 개념 도입

와이너리처럼 된장과 간장에 ‘빈티지(vintage)’ 개념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게 죽장연의 남다른 ‘스토리텔링마케팅 감각’이다.

빈티지란 ‘생산 연도’라는 뜻. 여느 공장에선 2년산·3년산이라지만 여기선 2009년산·2010년산으로 표기한다. 국제시장을 겨냥하려면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 빈티지 기준일은 ‘정월 장 담그는 날’.

와인과 된장의 대비가 흥미롭다.

포도즙 내기 vs 콩 삶아 메주 만들기, 숨 쉬는 오크통 vs 숨 쉬는 항아리.

1년 이상 숙성 후 병입되어 제품이 나온다. 죽장연은 원료의 산지, 수확과정, 그리고 건조·발효·항아리숙성과정을 전부 기록하여 매년 그 특징을 잡아내 ‘명품 빈티지 된장’을 낸다.

프랑스 와이너리처럼 갓 출시된 햇된장을 ‘죽장연 보졸레누보 된장’으로 론칭해도 먹힐 것 같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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