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4)대구 두산동 ‘인사동’ 의 이경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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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0-11   |  발행일 2013-10-11 제41면   |  수정 2013-10-11
모든 음식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이 집엔 냉장 반찬통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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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나보는 그 시절 풋풋한 시골표 밥상차림. 삼색나물과 갈치구이가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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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손맛을 푸짐하게 빚고 있는 올해 예순을 맞는 이경애씨. 한 시절 대중식에만 올인해 온 내공이 물씬 풍기는 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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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손에서 빚어진 코다리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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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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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인기 디저트 연근찜. 오징어순대 같다.



도무지 개념이 없는 오너셰프가 있다.

가령 전북 전주의 전설의 콩나물국밥집 ‘삼백집’의 욕쟁이 할매 같은 경우다. 음식전문기자가 전화해도 절대 오지 말라 하고, 그렇다고 곰삭은 매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종일 음식 만드는 데만 최면이 걸려 있다. 좀 더 싸고 맛있고 푸짐하게 주고 싶어 한다. 이런 버전의 식당주는 중년의 여성셰프 가운데 많다, 무개념이지만 식단은 무한한 희망을 갖고 있다.

이번 주엔 우연찮게 발견한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트럼프월드 서편 모텔촌 중간에 있는 가정식백반 같은 한정식집 ‘인사동’의 여주인 이경애씨를 찾아갔다. 정말 퉁명스럽다. 왜 그렇게 퉁명스럽냐고 하니 꼭 취재를 해야 되냐고 되묻는다.

자기는 점심과 저녁 두 차례 음식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렇게 호사스럽게 인터뷰나 하고 있을 팔자가 못 된다나.

오후 5시 무조건 찾아갔다. 한 시간 뒤 들이닥칠 손님을 맞기 위해 주방은 벌써 야전사령부로 변해 있다. 그런데 여느 식당에서 잘 이용하는 냉장 반찬통이 여기에는 없다.

“주문과 동시에 10여가지 사이드 메뉴를 요리해서 냅니다. 편하자고 미리 만들어 놓을 것 같으면 식당 접어야지. 안 그래요?”

음식에 대해선 감히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주인이 편하자고  
미리 만들 것 같으면
식당 접어야지요”


  한정식 1만2천원대 
더덕무침·코다리찜
고사리들깨찜 등
  메뉴 10여가지 구성
 
  식재료 거의 ‘고급’
  돼지수육 질감 감탄
  디저트 연근찜 명물

◆ 김해의 유명한 정육점 여사장 출신

그녀는 경남 김해 출신이다. 어쩌다 보니 흘러흘러 대구로 와서 산다고 했다.

내림맛 전통 있는 집 여성은 요리학원 안 다녀도 요리를 기똥차게 잘 한다. 그녀의 외할머니와 친정엄마가 솜씨가 좋단다. 외할머니는 전남 영광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산 서면 부전시장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가진 ‘대구식육점’을 꾸려 갔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안지랑이 시장 근처로 시집을 온다. 부부가 함께 식육점을 경영한다. 소와 돼지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다. 주로 도매를 많이 했다. 오빠가 중매인이었다. 오누이가 잘 맞았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당시만 해도 개인 도축장에 도축비 주고 잡아서 팔고 했다. 10년간 돈을 적잖게 벌었다. 영천 완산동으로 가서 식육식당을 열었다. 한 등급 발전을 한다. 식육점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불판 갖다 놓고 숯불고기 장사를 한다. 예상외로 장사가 안 됐다고 한다. 식당이 처음인 탓이다. 주방장한테 휘둘렸다. 첫째도 경험 부족, 둘째도 경험 부족이다. 1년도 못 가서 접는다.

다시 김해로 간다. 삼보한우농장을 경영했다. 수백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고, 별채 격인 방갈로도 있었다. 모둠(등심 갈비살 치맛살 낙엽살 차돌박이 등)을 냈다. 장사가 제법 됐다.

“김해 쪽은 대구와 달리 숯불갈비집에 곁반찬이 엄청 많은 게 특징입니다. 이때 요리 솜씨가 많아 향상됐죠.”

10년 정도 하다가 10년 전 다시 대구로 온다. 남동생이 현재 자리 근처에서 주점을 했고, 그녀는 거기서 함바아줌마 역할을 해주었다. 현재 집도 동생 집이다. 고기 장사는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안 하고 밥맛 좋은 소박한 한정식을 꿈꾼다. 여러 집을 다니면서 가격을 분석했다. 메뉴도 분석했다. 처음에는 주방장을 데리고 해 봤다. 주방장이 맛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시작과 동시에 가격은 1만2천원으로 정했다.

“아직 서민에겐 1만원이 비싼 것과 싼 것의 경계 가격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로변도 아니고 골목 안이라서 싸고 푸짐하게 가고 싶었죠.”

먹어 보면 알겠지만 ‘남는 게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리 요리해 놓은 메뉴는 거의 없다. 요리를 아니깐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그녀는 계량컵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냥 식재료 양만 보면 어느 정도 간을 해야 하는지 단번에 감이 온단다. 타고난 감각이다.



◆ 음식 구성

열 가지 메뉴가 나온다. 순서도 없다. 마지막엔 갈치와 심심한 토장국, 검은찹쌀밥, 나물 세 가지로 식사를 한다.

가격 구성이 재미있다. 2명이 오면 1만2천원, 3명 이상이면 1만1천원이다. 1천원 차이를 낸 이유는 3~4명이 와야 서로 좋지만 2명 정도면 1천원 정도 손님이 양보해야 ‘인사동’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오전 5시30분 기상. 곧바로 칠성시장에 간다. 한 시간가량 돌아다니면서 내일 구매할 물량을 상인한테 알려준다. 채소·생선가게 등 모두 단골상인이다. 골목을 옮겨다니는 채소장수에게 매달리면 절대 이런 가격을 유지하지 못한단다.

봄이 되면 머위나 방풍나물을 비롯한 제철나물을 챙긴다. 하지만 요즘 나물은 겨울철도 없다. 온상재배 탓이다. 아무래도 맛이 연할 수밖에 없다. 머위도 온실에서 나온 건 줄기가 허연데 야생은 붉은기운이 감돈다.

이 집 명물은 디저트 구실을 하는 연근찜. 전국 최대산지인 동구 반야월 연근을 사용하는데, 사철 중 지금이 가장 맛이 있을 때란다. 8월 말~9월 초는 연근이 무르다. 봄이 되면 연근에 수분이 상당히 줄어든다. 그래서 하절기 한 달은 쉰다. 이때는 진이 없어지고 맛이 별로다. 3.75㎏에 2만원짜리도 있지만 여기선 3만5천원짜리를 고른다.


◆ 무조건 즉석요리

더덕무침·고사리들깨찜·참나물·코다리찜·잡채·돼지수육·고추전·호박전·오징어회무침·연근찜, 마지막엔 검정찹쌀로 만든 잡곡밥에 갈치가 붙는다.

“여기서 무슨 제주갈치 타령입니까. 이 가격엔 당연히 냉동이죠.”

칠성시장에서 냉동갈치를 한 박스 갖고 와서 알맞게 자르고, 소금물에 담가 세 시간 정도 해동한 뒤 잘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차릴 때마다 프라이팬에서 구워 낸다. 그런데 생갈치구이 같다.

더덕도 씻고 물을 완전히 빼야 한다. 안 그러면 물이 나와 맛이 없어진다. 좋은 더덕을 보면 단박에 안단다. 제주도 더덕은 물이 좀 많아서 강원도산을 사용한다.

고추장도 솔직히 담을 시간이 없다. 그런데 최고를 사용한다. 태양초 고추장 3㎏에 1만9천500원. 싼 건 9천원짜리도 있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물엿 등을 적당량 넣고 버무린 뒤 그 위에 더덕을 놓고 버무려야 제대로 양념이 묻는다. 더덕 위에 양념을 번갈아 넣고 버무리면 제대로 뭉쳐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짠지 아닌지 분간을 하기 힘들다. 한꺼번에 100인분 분량을 담는다. 더덕은 손님이 들어오면 그때 무친다. 안 그러면 물이 생긴다.

고사리들깨찜용 고사리는 북한산이다. 국내산은 1㎏에 1만원 선. 북한산 최고급은 7천원 정도. 들깨는 국산이다. 고사리는 30분 이상 삶는다. 물에 헹군 뒤 물기를 뺀다. 썰어서 용기에 담고, 들깨는 믹서에 갈아 체에 거른다. 안 그러면 껍질이 있어 식감을 해친다. 강불로 했다가 20분 이상 끓여야 된다. 중간에 한 번 교반해 줘야 화근내가 안 달라붙는다.

도토리묵채는 육수가 가장 중요하단다. 다시마와 새우, 북어대가리, 무, 양파, 파, 표고버섯 꼭지 등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인다. 매일 두 번 이렇게 끓여준다.

찜용 코다리는 칠성시장에서 사오는데 36마리에 5만5천원 선. 이 요리는 양념맛이다. 일단 튀김가루 묻혀서 튀긴다. 접시에 담아 양념을 올린다.

”쉽게 보여도 아무나 못하죠. 이미자 노래 아무나 못 배우는 것하고 같은 이치예요. 허허.”

잡채도 일단 당면부터 잘 불려야 한다. 저녁에 내일 낮에 사용할 걸 담가 놓는다. 밤새 1㎜ 이상으로 붇는다. 잡채는 정말 즉석에서 해야 된다. 일반 뷔페 등에서는 해 놓은 걸 다시 식용유로 덥혀주기 때문에 기름만 번지르르할 뿐 속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도토리묵도 7천원 선은 외면하고 1만원 선을 산다. 그래서 탱클탱글하고 전분도 덜 들어가 있다. 친구들도 맛있다면서 한 판씩 사 간다.

돼지수육도 그 질감이 장난이 아니다. 여느 집은 살점 부위가 꾸덕해지는데, 여긴 갓 쪄낸 찐빵 못지않다. 수육은 45분가량 끓여야 한다. 칼집을 넣어 봐서 붉은 기운이 없으면 들어낸다. 솔직히 그녀는 이미 고기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서 수육은 단연 주종목. 수육 옆에 오이고추를 된장에 무쳐 놓고 양파와 부추를 새콤달콤하게 무쳐 낸다. 호박전도 원재료 100%라서 밀가루 흔적을 찾기 힘들다.

고추장과 달리 된장은 직접 담근다. 지난해 4말을 담았다. 콩은 계약 재배한 국산을 산다. 된장은 탕국처럼 연하고 부드럽다. 호박, 양파, 청양고추, 파 정도만 넣는다.

“멀쩡한 것 같아도 속골병 다 들었어요. 그런데 외동아들이 도와줘서 그나마 숨통을 틔우죠. 자식이 이걸 받아 잘 할까요? 내 선에서 끝내고 싶죠. 음식장사, 저승사자도 겁나 도망갈 것 같습니다.”

밤 9시에 문을 닫는다.(053)761-201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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