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국내상륙 15년…발기부전치료제 ‘明과 暗’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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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0-18   |  발행일 2013-10-18 제35면   |  수정 2013-10-18
이젠 뱀·개·녹용 대신 그것만 찾는 한국男…정력제로 인식 ‘오·남용’
비아그라 국내상륙 15년…발기부전치료제 ‘明과 暗’

1997년 늦가을, IMF로 한국경제가 거덜났을 때 대다수 대한민국 남성들은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해 전 세계 의료역사상 혁명과 같은 약이 개발됐다. 이 약은 이듬해 3월 미국 FDA승인을 거쳐 20세기 마지막 가을, 인천상륙작전 같이 인천공항에 도달했다. 바로 ‘비아그라’다.

‘남자의 계절 가을’은 비아그라의 한국 상륙과 때를 같이한다. 비아그라는 한국경제가 서서히 회복되는 시점에 시판되기 시작해 ‘고개 숙인’ 한국남성을 ‘고개 들게’ 한 ‘해피드럭(Happy Drug)’이었다.

비아그라는 폐고혈압 환자를 치료하다 우연히 개발한 발기부전치료제다. 판매초기 비아그라 한 알 가격은 1만2천~1만8천원, 독점 판매한 한국화이자는 이 땅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어 2003년 영국에서 개발한 시알리스가 국내에 시판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국내제약회사들도 사활을 걸고 자이데나, 제피드 등을 개발해 외국제약회사에 맞섰다. 한국 남성들의 성생활 관심도는 전 세계 1위인 반면, 성(性)적인 문제로 병원에 가길 꺼리는 비율 또한 세계 1위란 것이 밝혀진 것도 이때쯤이었다.

비아그라가 본격 판매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남성은 뱀·녹용·개고기 등 임상에서 검증된 방법이 아닌, 다양한 정력제나 보양식품을 이용했다. 하지만 발기부전치료제가 나온 이후 알약 하나로 거시기(?)가 해결됐다. 의약업계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70~80년대 의대생들 사이에 상종가를 치던 비뇨기과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건강보조식품과 기능성의약품으로 고전하던 한의원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비아그라 국내상륙 15년…발기부전치료제 ‘明과 暗’
다양한 제형의 발기부전치료약.

38개 제약사 41개 제품이 생산 허가받아

알약·가루·껌 형태…값 3천원대로 하락

입에 녹여 먹는 필름형 세계 최초로 개발

비뇨기과·한의원 직격탄 맞아 수입 급감

공중화장실 등 밀수 중국산 가짜 판매도


◆비아그라 이후

지난해 5월17일, 비아그라의 국내물질 특허가 만료되고 30일에는 특허소송에서 패소함에 따라 수많은 복제약이 쏟아져 나왔다.

헤라그라정·누리그라정·맥시그라정·바로그라정·해피그라정·팔팔정·프리야정·불티스·실데나필정·실비에정·유니그라정·세리비아세립·헤카테정·네오비아세립·비아신세립·포르테라·그날엔 포르테·비아신 등 이름만 들어도 성기능 개선제임을 알 수 있는 제품이 우후죽순 출시됐다. 2011년에는 세계 최초로 입에서 녹는 필름형태의 치료제가 한국에서 개발돼 종이처럼 얇아 지갑 속에 휴대가 가능해졌다. 은밀하게 먹고 싶은데, 알약이라는 제형의 특성상 휴대가 불편하고 복용할 때 물이 필요한 것을 극복한 것이다.

이영진 코넬비뇨기과 원장은 “현재까지 38개 제약사에서 41개 제품이 생산허가 된 상태”라며 “약의 형태, 즉 제형도 알약(정제), 가루약(산제), 입에 녹여먹는 약(구강붕해제), 씹는 약(추잉제) 등 4종이나 된다”고 했다.

가격도 1만원대에서 3천~4천원대로 떨어졌다. 담뱃값 수준은 물론, 1천원 이하대로 떨어질 날도 머지않았다.

이 원장은 “지난해 이후 전국비뇨기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감했다”며 “최근 한 의협사이트게시판에 ‘비뇨기과를 선택하면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한 글은 비뇨기과의 현실이 얼마만큼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발기부전치료제 문제점

중국 등 열악한 환경에서 제조된 가짜 발기부전치료약과 밀수 약이 판을 치고 있으며,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10년 12월, 식약청에 따르면 가짜발기부전치료제의 밀수가 2007년에 비해 13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과거에는 여행객이 소량 휴대해서 밀반입했으나 컨테이너 속에 넣어 대량으로 밀수하는 등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으로 들어 온 밀수 약은 공중화장실이나 성인용품점, 인터넷 등을 통해 ‘비아00’ ‘씨알00’ ‘일나00’ 등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가짜발기부전치료제의 유통은 점조직의 형태로 이뤄져 단속도 어려운 실정이다.

과대광고와 불법광고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제약회사는 개원의원과 약국을 상대로 저가로 마케팅을 하는 등 과열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영진 원장은 “발기부전치료제는 비뇨기과 전문의약품임에도 치료제가 아니라 정력제로 오인 받고 있다”며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에서도 처방이 가능해 비뇨기과전문의의 진찰권과 처방권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또 “환자 본인이 특정 발기부전치료제 처방을 요구한 경우 1회 내원이 91%가 넘고, 2회 내원은 겨우 2%에 불과했다”며 “임의복용은 약물의존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건강 악화와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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