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5) 대구 달서구 상인동 ‘소담이야기’의 윤희숙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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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0-18   |  발행일 2013-10-18 제41면   |  수정 2013-10-22
건강염려세상 겨냥한 ‘톳 + 쌀 + 홍합 + 당근’의 톳밥 대구에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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톳밥 한 상 차림. 특이하게 톳과 홍합을 사용해 영양 가득한 톳밥이 웰빙메뉴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곁반찬에는 반드시 계절 식재료가 포함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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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부침가루 대신 우리 밀가루를 사용해 식감이 좋은 톳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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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채소를 먹지 않아도 되는 톳불고기.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리학원보다 독학으로 터득한 요리술이 한 수 위다.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톳밥 전문점 ‘소담이야기’. 어둑한 골목 안에서 4년여를 보냈다. 그런데 근처 보훈병원은 물론 달서구청, 인근 의원의 의사들까지 집밥처럼 애용하는 숨은 명소가 됐다. 식당은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몸소 증명해 보였다. 톳밥은 대구에선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홍합밥을 한 단계 버전업시켰다.

오너셰프 윤희숙씨(57)는 돈과 상관없이 정말 자기밖에 다루지 못하는 음식을 팔고 싶었다. 식당은 자기만의 ‘놀이터’다. 남편 몰래 식당 오픈 준비를 했다.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놓고 두달간 인테리어를 했다. 개업 하루 전에 남편한테 얘기했다. 화가 난 남편이 개업날은 물론 보름 동안 말을 안 했다. 남편 지인들한테 알려도 가게가 충분히 돌아갈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친정 엄마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호박볶음을 특히 잘했다. 이 메뉴는 불조절을 잘 해야 된다. 대체로 너무 푹 익혀서 죽처럼 물러진다. 센불에서 시작해 중불에서 불을 끄면 아삭한 느낌이 그대로 살고,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넣어야 고소한 맛이 더 난다.

충북 옥천이 고향. 친정집에서는 제사가 아주 많았다. 요리할 때 딸을 불러 시범을 보여주었다. 단무지도 직접 숙성시켜 사용했다. 새우젓 독에 쌀겨를 넣고 그 속에 단무지 무를 박아 사용한다. 공장용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약간 노른 빛깔이 감도는데 그 맛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초등 5년 때 서울로 간다. 대학을 졸업한 뒤 경상도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1980년 대구로 온다. 24세였다.

“경상도 음식은 충청도 음식과 너무 달랐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종업원의 불친절함이었어요. 또한 간이 너무 자극적이고 강했어요. 짜고 맵고….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동인동 찜갈비도 마늘과 고춧가루 범벅이 돼 위가 화끈거려 냉수를 엄청 마셔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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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로부터 음식에 관련된 모든 걸 배운 윤희숙 셰프. 그녀는 인공 조미료를 배제한 톳밥-톳전-톳불고기-녹차홍합밥-표고버섯밥 등으로 웰빙비빔밥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100% 몽고 양조간장에

직접 짠 참기름 사용한

양념장이 톳밥 맛 ‘결정’

톳숭늉엔 갯내음 물씬

밑반찬도 3일마다 변신

톳전은 부침가루 대신

순수 우리 밀가루 사용…

채소 함께 안 먹어도 될

톳불고기 발상 돋보여

연평도産 게장 입소문


음식 담는 식기 안쪽에

손가락 집어넣지 않도록

서빙 종업원 철저 교육

◆ 주부에서 오너셰프로 변신

평소 자신이 즐기는 충북의 음식을 대구 사람들에게 한번 선보이고 싶었다.

남편 회사 직원들이 집들이를 오면 충청도 요리를 선보였다. 가지무침에 입을 많이 댔다.

“충북은 가지를 채반에서 쪄서 칼로 썰지 않고 식은 다음 손으로 째고 식초와 조선간장, 파와 마늘을 다져 넣고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버무립니다.”

처음에는 ‘충북식 잔치국수’를 생각했다.

“잔치국수도 대구 버전은 너무 간단했어요. 부추 넣고 휙 끓여주는 식이었습니다. 충북에서는 일단 육수부터 짙게 뺍니다.”

명태대가리, 디포리, 멸치, 대파, 무, 다시마 등을 넣고 만든다. 곰탕 같은 육수다. 거기에 고명으로 애호박볶음, 황백지단, 김가루, 쇠고기볶음 등을 얹는다. 그녀는 아직 자기 스타일의 잔치국수를 대구에서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버전의 잔치국수점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일본 여행을 갔다가 생각이 달라진다. 일본에서 톳요리 전문점을 만난다. ‘건강염려세상’에 톳밥이 딱이라고 믿는다.

그때만 해도 해초 지식이 별로였다. 매생이는 알아도 톳은 몰랐다. 그 뒤로 톳을 파고들었다.

“톳과 마재기는 다르죠. 같은 과인데 동그란 공기 주머니가 있으면 마재기이고, 길쭉한 모양의 공기주머니가 있으면 톳입니다.”

전남 해남에서 많이 나오는데 매년 2~4월이 제철이다.

“안 좋은 톳은 톳이 거칠고 아주 큽니다. 좋은 톳은 미역 색깔이 나죠. 또한 모양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좋은 것은 1㎏에 1만5천원 선, 안 좋은 건 3천원 선에 팔려요. 안 좋은 걸 넣어 톳밥을 하면 밥 따로 톳 따로 놀아 제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 톳요리 엿보기

일단 염장한 톳을 갖고 와서 물에 담근다.

먹어봐서 안 짤 때까지 헹궈야 한다. 데치지는 않고 불린 쌀과 4㎝ 길이로 자른 톳을 1대 1 비율로 솥에 앉친다. 자연산 울릉도 홍합은 구하기 어려워 일반 냉동 홍합을 갈무리해서 사용한다. 당근 채를 썰어넣고 밥을 하면 된다.

그런데 압력솥에 하면 밥이 말이 아니다. 떡처럼 변해 잘 비벼지지가 않는다. 초창기엔 압력솥에도 해봤는데 결국 실패했다. 가장 맛있는 건 솥밥이다. 물은 일반 밥을 할 때보다 약간 덜 붓는다. 강불에 6분, 나머지는 불조절해서 1~2분 뜸을 들인 뒤 퍼낸다.

사람이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한다. 밥물이 올라오면 톳 국물을 갈무리하기 위해 불을 줄여준다.

왜 당근만 사용할까?

무는 콩나물밥에 어울렸다. 처음에는 쇠고기도 갈아서 넣었다. 콩나물과 버섯 등도 넣어봤다. 맛이 서로 따로 놀았다. 시행착오 끝에 당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톳밥의 맛은 양념장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데, 그중에서 왜간장이 중요하다. 100% 몽고 양조간장을 사용한다. 수입간장을 빼고는 가장 비싸다. 3.8ℓ에 2만5천원선. 가장 싼 게 가장 비싼 꼴이 된다. 자칫 비싼 톳밥을 다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양념장은 간장, 고춧가루, 다진마늘, 청양고추, 참기름, 깨소금 등으로 만든다. 참기름도 직접 짜 갖고 온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했을 때 비로소 최고의 음식’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밥을 하고 나면 누룽지가 남는다. 거기에 물을 조금 넣고 톳숭늉을 끓여 낸다. 톳이 씹혀 갯내음이 물씬 풍겨나온다.

밑반찬은 참나물, 방풍나물, 호박볶음, 다시마와 연근 장아찌, 울릉도 고비나물, 가자미, 오이무침 등이다. 3일마다 반찬이 바뀐다.

일단 집에 가면 내일 나갈 반찬부터 정리하고 집안일을 한다.

“사실 저는 식당주가 될 사람이 못 됩니다. 나 따라 하면 다 망하게 될 겁니다. 식당주는 분명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라고 뭐랄 것입니다. 절정의 음식에 관심 있지, 이것 팔면 얼마 남는지엔 솔직히 별로 맘이 안 갑니다.”

톳전 만들 때도 부침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부침가루를 사용하면 좀 부풀어 올라 질척거리고, 마치 호떡 먹는 질감이다. 그래서 순수 우리 밀가루를 사용한다. 거기에 톳, 홍합, 당근, 청양고추, 소금을 섞어 구워낸다. 톳 양도 잘 조절해야 하는데, 부칠 때 중불에 노릇하게 부쳐낸다.

톳불고기도 개발했다.

고기를 채소에 싸서 먹는 이도 있는데 그녀는 톳을 넣어서 굳이 채소를 먹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꼭 ‘힐링불고기’같다.

녹차홍합밥은 새작 잎을 쌀과 함께 적당히 섞는다. 요리과정은 톳밥 때와 같다. 표고버섯밥도 똑같다.

된장에는 극미량의 화학조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된장 육수의 경우 멸치·명태대가리·게딱지 등을 30분 정도 삶으면 완성인데 워낙 맛이 강해 굳이 화학조미료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식당이 아니라 쉼터에 온 것 같다

그녀는 참 푸근하다.

종부 같은 넉넉한 웃음. 손님을 황제처럼 모시겠다는 서비스 정신. 토란잎에 물방울같이 정갈하고 맑은 음식. 음식 재활용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단다.

무심결에 손가락이 안쪽으로 들어간 채 식기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땐 서빙 이모에게 엄청 화를 낸다. 손가락 지문이 식기에 그대로 남는데 이건 ‘손님에 대한 테러’라고 믿는다. 반드시 양손으로 가장자리를 감싸서 조용하게 놓으라고 가르친다. 식기도 절대 소리 나게 밀지 않는다. 항상 손님의 눈과 입을 주시한다. 손님이 뭘 갖다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챙긴다.

식사가 끝나면 반드시 오늘 맛있게 드셨는지 묻는다. 밥을 남겼을 경우는 왜 그런지 확인한다.

“제가 너무 친절하니깐 일부 손님은 그게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고 해요. 대구에선 친절한 식당주도 찾기 어렵고, 그걸 곰삭게 받아주는 손님도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돈에 목숨을 안 걸기 때문에 매주 토·일요일은 쉰다. 이때 현풍·영천장 등에서 식재료 현장 탐색을 한다. 주변에는 게장 잘 담그는 집으로도 통한다. 연평도 게를 주문해 사용한다. 주문판매를 한다. 톳밥은 주문받은 뒤부터 요리한다.

소담이야기는 정말 약삭빠른 식당과는 거리가 멀다. 음식의 생기와 영양을 생각한다. 7천원짜리 톳밥이지만 나올 때는 7만원짜리 포만감을 갖고 간다. 상인동 1572-4 (011-825-2050)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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