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6)대구 앞산 고산골 초입 ‘안동묵촌’의 권경희씨 부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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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1-01   |  발행일 2013-11-01 제41면   |  수정 2013-11-01
‘진품 메밀묵’ 위해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 밀려와도 수작업 고집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6)대구 앞산 고산골 초입 ‘안동묵촌’의 권경희씨 부부
직접 국내산 통메밀을 사 갖고 와 직접 제분기로 갈아서 수작업으로 묵을 만드는 남구 봉덕동 고산골 초입의 안동묵촌. 여기서는 안동식혜는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전골 같은 태평초, 메밀묵밥 등을 천연버전으로 먹을 수 있다. 단골은 대다수 입맛 까다로운 어르신이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6)대구 앞산 고산골 초입 ‘안동묵촌’의 권경희씨 부부
국내산 통메밀.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6)대구 앞산 고산골 초입 ‘안동묵촌’의 권경희씨 부부
완성된 모메밀묵. 메밀향이 살아 있고 내던져도 갈라지지 않을 정도로 점도가 높다.


요리 테크닉보다 좋은 식재료가 한 수 위다. 좋은 물은 그 자체로 완벽한 음식이다. 양념이나 별도의 조리과정도 필요 없다. 그래서 무미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의 반열에 든다.

묵도 그렇다. 묵은 ‘단순무미(單純無味)’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너무나 힘겹다. 예전에 며느리들이 시집살이가 고추보다 더 맵다고 한 것은 바로 묵 쑤는 게 힘들기 때문에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시중의 묵은 무늬만 전통묵일 뿐, 대다수가 초점을 잃은 그야말로 ‘짝퉁’이다. 일단 국내산 통메밀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또한 직접 묵을 만들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다들 다른 곳에서 묵을 받아서 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계산이다. 지역에도 몇몇 묵 명가가 있다.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할매묵집’,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원조할매메밀묵’과 옥분리의 ‘묵 처묵고 가는 집’, 달서구 도원동 대구수목원 근처 ‘풍성메밀묵집’, 남구 앞산 고산골 등산로 초입에 있는 ‘안동묵촌’ 등이다.

이번주엔 ‘안동묵촌’을 찾았다. 주인 내외는 물론, 장남까지 묵에 매달리고 있다. 요즘 잘나가는 식당에 비하면 그야말로 볼품없는 공간이다. 솔직히 길 가는 젊은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특별한 인테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점입가경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은 특출하다. 직접 국내산 통메밀을 갖고 와 수작업으로 메밀묵도 만들고, 모묵만 별도로 팔기도 한다. 요즘 대구 도심에서는 거의 맛보기 힘든 안동식혜와 태평초까지도 먹을 수 있다. 태평초는 지역에서는 맛보기 어렵다. 다들 이 음식이 있는 줄 알지도 못한다. 강원도 봉평에선 태평초를 자기 고장 음식인 줄 안다. 실은 안동과 예천, 영주, 영양 등 경북 북부의 대표적 향토음식 중 하나인데 강원도권으로 흘러들었다.



영주·봉화서 재배한 통메밀 사용

맛·향기 위해 껍질은 벗기지 않아

앙금추출은 엄청난 노동력 필요

끓일 때도 200번 정도는 저어야

제대로 완성된 건 물기 없고 단단


대구 도심서는 거의 맛보기 힘든

안동식혜·태평초 등도 직접 요리


◆ 모든 식재료 직접 챙긴다

안동 출신 여주인 권경희씨(64)는 안동 반가의 제대로 된 손맛을 보유하고 있다.

안동시 북후면 도계촌에서 태어났다. 거기는 안동권씨 복야공파 집성촌이다.

권씨는 요리를 모친으로부터 배웠다. 모친은 안동 내앞마을 학봉(김성일) 집안이다. 그래서 안동국시는 물론, 각종 제사음식에 안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영주에 있는 야성송씨 집안에 시집을 갔다가 영주 시내로 살림 나온다. 부군 송승익씨는 <주>범양식품에 다녔다.

1980년 수성구 만촌동으로 이사를 온다. 부군 근무처가 대구로 바뀐 것이다. 15년 전 현재 자리에서 묵 전문집을 오픈했다.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메밀 묵조밥과 쟁반묵(골패묵), 안동식혜, 감주 등을 팔았다.

◆ 메밀묵이 탄생하기까지

국내산 통메밀은 돈 있다고 맘대로 사지 못한다. 가격도 수입품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통메밀은 영주나 봉화 등지서 갖고 온다. 올해는 봉화군 소천면 임기리에 한 메밀작목반에 미리 연락을 해 뒀다. 오는 10일쯤 수확된 것을 1t가량 매입할 예정이다. 지난해는 영주시내 남영상회(우리농산물 전문점)에 부탁해 1t 정도 확보했다. 비쌀 경우 1㎏에 7천원 정도인데, 작년에는 6천원 선에 샀다.

중국산은 알이 굵고 아주 거칠다. 색깔도 흑갈색에 가깝다. 국내산은 갈색이며 대체적으로 자잘하다. 보통 거피를 해서 사용하는데, 여기는 거피를 하지 않는다.

“메밀 껍질을 벗기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벗기면 묵이 맛이 없어지고 메밀 향도 덜해지며 진기까지 없어지죠.”

메밀이 오면 잘 세척해야 된다. 보기보다 이물질이 많이 들어가 있다. 돌을 선별한 뒤 뜨거운 물에 데쳐야 한다. 물이 펄펄 끓을 때 한 말 정도를 넣는다. 찬물에 담가 놓으면 일이 안 된다. 펄펄 끓는 물에 5~6시간 넣어 둔다. 독소도 빠지면서 붇기 때문이다. 이후 찬물에 4~5번 씻은 뒤 제분기에 넣고 간다.

“예전처럼 디딜방아로 빻으면 좋겠지만, 이젠 그렇게 해선 일을 다 쳐 낼 수가 없어요.”

모두 두 번 빻는다. 첫 번째는 10여분, 두 번째는 30여분이 걸린다. 그 가루를 코에 대 봤다. 특유의 차가운 메밀냄새가 풍긴다. 양질의 석간수 냄새가 연상된다.

빻은 걸 천에 넣고 앙금을 추출해 내야 한다. 이때부터 전신 근육이 다 동원된다. 힘센 장정들도 너무 고생스러운 나머지 퍽퍽 나가떨어진다. 이때 사용하는 피륙은 간극이 성근 삼베천은 안 된다. 예전에는 눈이 가는 체에 넣고 전분을 빼냈는데, 요즘은 두 종류의 천을 사용해 전분을 추출한다. 찌꺼기는 다 버린다.

1시간 이상 일해야만 회색 앙금이 거의 추출된다. 3년 전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는 바람에 가업을 잇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장남 송정택씨(36)가 일을 거든다.

“보기는 너무 쉬운데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힘이 들더라고요. 묵은 먹기는 정말 쉬운데 작업 과정은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한 시간 만에 추출하지 못합니다. 거의 3시간 이상 걸려요.”

이제 앙금을 솥에 넣고 끓인다. 자동기계로 할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팔로 직접 젓는다. 처음에는 강한 불에서 시작한다.

이때부터 불과 인내의 싸움이 지속된다. 걸쭉하게 되고, 김이 나고 기포가 생겨나는 그 형태를 보면서 얼마만 한 물을 추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에 따라 묵의 강도와 부드럽기가 결정된다. 습기가 너무 증발해 버리면 묵이 마른 건빵처럼 푸석해지고, 습기가 너무 많으면 물러진다.

2~3시간 끓이고, 물은 2~3번 정도 추간한다. 3분의 1 바가지 정도의 물을 넣어야 묵이 매끄러워진다. 주걱을 보통 세워서 완성 여부를 판단한다. 권씨 남편은 “젓다 보면 되고 걸쭉하다가 어느 순간 부드러워지면 다 된 것”이라고 말한다. 쉬운 것처럼 보여도 그 타이밍은 혼자 터득해야지 알려줘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의미다. 뜸은 20~30분 들인다. 조금만 눌어도 화근내가 나서 못 먹게 된다.

여름의 경우 묵은 정말 잘 간수해야 된다. 밖에 두고 잠시 한눈을 팔면 금세 맛이 간다. 식힌 즉시 냉장고에 보관한다. 묵 요리는 운명적으로 남편이 도와줘야 한다. 현재 묵 만드는 과정은 남편이 주도한다. 남편은 장남에게 항상 “200번 저어라”고 당부한다.

완성된 묵을 보여준다.

덜 익은 묵에서는 갱물이 흘러나오는데, 잘 되면 식혀도 절대 물기가 생기지 않는다. 갓난아이 엉덩이 살처럼 탱글탱글거린다. 실패도 많았다. 칼로 메밀묵을 썰 때 메밀 입자가 묻어나야만 진짜다.

좋은 묵은 던져도 부서지지 않는다. 정말 단단하다. 너무 회백색으로 가는 것보다 연갈색이 감돌고 먼지 같은 메밀 입자가 보여야 좋다.

◆ 안동식혜

한국 음청료의 대명사 격이다.

안동반가 양반들의 식후 디저트로 마시던 숭늉 같다.

찹쌀을 5시간 정도 불린다. 쪄낸 뜨거운 찹쌀을 채썬 무 위에 그대로 들이붓는다. 엿기름을 찬물에 짜서 앉히고, 밑물은 버리고 상층부에 형성되는 맑은 물만 끓여서 붓는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영주산)를 간 생강과 함께 망에 넣고 즙을 빼낸다. 그다음 큰 스테인리스스틸 통에 붓고 방에 이불을 덮고 10~15시간 발효를 하면 숙성이 끝난다.

나중에 설탕을 조금 가미한다. 보관은 김치냉장고에 한다. 잣과 밤 등이 들어가면 더 풍성해질 것 같은데 실은 맛이 텁텁해지고 빛깔도 변해 버려 맑은 동치미처럼 다른 식재료를 첨가하지 않는 게 정석이다.

이 집에선 단맛이 감도는 국물을 별도로 보관하고, 건더기를 덜어 낼 때 그 국물에 섞어 각자 기호에 맞는 새콤달콤한 맛을 찾아가게 한다.

여름에는 무 맛이 별로이고 겨울로 들면서 제맛이 나기 때문에 안동식혜도 겨울이 제철이다. 참고로 감주(단술)는 끓이고 안동식혜는 삭히는 게 특징이다. 안동식혜의 무채는 집집마다 모양이 다르다. 어떤 집에선 무를 꽃모양으로 찍어 내기도 한다.

◆태평초

일명 ‘돼지묵전골’로 불린다.

다시마와 디포리(밴댕이), 일반 멸치, 북어대가리, 마른새우, 대파, 무, 우엉, 양파 등을 넣고 1시간 정도 끓인다.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멸치는 약불에 30분 볶는다. 다시마도 물에 헹군 뒤 사용한다. 이 밖에 묵은지, 파, 버섯, 묵채 등을 신선로처럼 보글보글 끓여 먹는다. 이 음식은 영주 시댁에서 자주 해 먹었다. 물론 안동식혜와 함께 동절기에 한 맛이 더 풍긴다.

◆ 기타 식재료 이야기

김치용 멸치젓갈도 직접 담근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 수산시장에서 생멸치를 갖고 와서 소금을 넣고 5월 초순에 담근다. 5~6개월 숙성시켜 액을 추출한다. 김치 할 때는 찹쌀풀을 사용하는데, 멸치 다시에 찹쌀죽을 끓여 거기에 갖은 양념을 넣고 김치를 버무린다.

통배추를 소금에 절여 씻은 뒤 생강, 양파, 마늘 등을 물과 함께 옹기에 넣고 공기와 접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춧잎을 위에 5㎝ 이상 덮어 3개월 이상 숙성시키면 백김치가 완성된다.

가게 입구에 메밀묵 작업장이 있다. 이곳에서 엿기름과 기장쌀, 통메밀, 모묵, 식혜, 감주 등도 판다. 일반 김치와 백김치 맛이 예사롭지 않다. 어르신이 좋아할 버전임에 틀림없다. 묵채조밥 가격은 6천원. (053)472-2326 대구시 남구 봉덕2동 1222-1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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