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7) 대구 대명9동 ‘12-키친&바’의 윤경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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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1-22   |  발행일 2013-11-22 제41면   |  수정 2013-11-22
한 달 건조숙성 후 구운 1㎏짜리 티본스테이크 “이탈리아 맛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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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키친&바’의 오너셰프 윤경수씨는 10여종의 허브를 직접 농장에서 재배할 정도로 힐링키친의 유전자가 강하다.
오너셰프에겐 ‘묘한’ 냄새가 풍긴다.

물론 먹음직스럽다. 이스트 발효의 접점을 찾은 갓 구워낸 식빵의 질감이다. 한눈에 ‘아, 이 사람은 운명적으로 셰프가 될 수밖에 없어’란 반응을 이끌어내는 셰프가 있다. 피곤할 텐데 한번씩 웃으면 그 피곤기가 증발해버리는. 그렇다면 그는 운명적으로 무당같은 셰프가 되어야 한다.

대구시 남구 대명9동 앞산네거리에서 카페거리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 사각지대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12-키친 & 바’가 보인다. 실내로 들어가면 조금은 뉴욕 키친의 색채가 짙다.

그 집의 오너셰프 윤경수씨(29)를 처음 봤을 때도 타고난 셰프란 직감이 작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열정적이다. 레시피와 조리라인은 오가닉(Organic)하고 친환경적이다. 전국을 통틀어 자신의 메뉴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자신이 직접 핸들링하는 셰프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伊 오너셰프의 요리철학까지 배워
식재료 본연의 맛 살리는 데 주력

지역선 드물게 저온진공 조리…
삼겹살 샐러드 부드러워

채소·허브는 고향 농장서 조달
복사시미 같은 수제햄도 제조


◆ 이탈리아에서 사부를 만나다

군위군 소보면 송원리에서 태어났다.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대학에 응시한다. 여의치 않았다. 곰곰히 생각한다. 뭘 먹고 살까.

어머니는 북구 검단동에서 손맛 있다는 소문을 듣는 한식당을 운영한다. 순간 자신이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걸 파악한다. 친구들에게 적잖게 요리를 대접했다. 다들 맛있다고 야단이었다. 그래, 요리 쪽으로 가자. 일단 시내 동성로 ‘리틀 이탈리아’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음식 마니아가 자신의 음식을 지적하며 이건 이탈리아 현지 버전과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고수의 한 마디가 그를 주눅들게, 그리고 철들게 한다. 이탈리아 현지를 모르고 오직 대구만 고집한다고 될까. 그건 딜레마였다. 이탈리아 요리를 하려면 이탈리아의 문화와 생활을 알아야 한다.

2010년 이탈리아로 갔다. 피렌체, 알프스 산맥 경계 지역 알토아디제에서 머물렀다. 일단 파르마에 있는 요리학교 ‘알마(Alma)’에 입학했다.

“모든 게 다 새로웠어요. 제가 머무른 식당은 미슐랭가이드 별 두 개짜리였죠. 피렌체의 ‘아르놀포’, 알토아디제의 ‘로자알피노’.”

아르놀포의 오너셰프인 자이타노는 그의 사부였다. 셰프의 철학과 느낌, 조리방법 등에 대해 배웠다.

“진정한 셰프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다치게 하지 않고 멋지게 살리는 사람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봐요. 그런데 우리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양념과 조미료, 육수와 소스 등이 다 죽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너무 덧칠하는 것 같아요. 음식이 너무 지쳐있다고나 할까요.”

그는 이탈리아에 있을 때 비둘기 요리를 한 게 가장 인상에 남는다.


◆ 수비드 조리법을 선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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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도 방식으로 숙성시킨 뒤 구워내 더 고급스러운 맛이 감도는 삼겹살 샐러드.
리틀 이탈리아에서 4년, 이탈리아에서 2년여 세월.

국내에서 알았던 이탈리아 요리 상식의 허와 실을 확인했다. 자신이 생겼다.

사부는 자기와 이탈리아에서 함께 일을 하자고 부탁했다. 하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귀국을 한다. 서울 이태원 오키친(오너셰프·스스무 요나구니)에서 메인요리와 에피타이저를 맡았다. 다들 만족해했다. 그의 호기심과 창작욕은 더 이상 남 밑에 있을 수준을 넘어선다.

지난 5월 대구로 온다. 선배인 김충현 셰프와 손을 잡는다.

“경상도 음식은 상당히 자극적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인상적인 맛이 따라오죠. 에스프레소와 달디단 디저트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탈리아에선 식재료 장만에서 요리까지 모두 자작입니다. 그게 부러웠어요.”

현재 업소 자리를 찜해 놓고 식기와 식재료 등을 구하기 위해 현지로 날아간다. 아이스크림 기계, 생면 뽑는 기계, 저울, 라비올리 만드는 소품 등 10여종을 사갖고 왔다. 일부 온라인 아마존을 통해 씨앗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의 셰프들이 거의 손대지 않고 있는 ‘수비드(Sous-vide)’조리법을 도입했다.

맛과 질감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영양소 파괴를 없애는 수비드 조리법은 71년 퀴진 솔루션(슬로푸드를 위한 수비드 조리법을 발명한 연구기관)의 수석 연구자 부르노 코소 박사가 탄생시킨다. 저온 진공 분자 조리법을 통해 영양소, 질감, 맛 등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혁신적인 조리법이다.

“서울의 웬만한 오너셰프는 다 이 조리법을 애용합니다. 일반적인 조리법으로 닭가슴을 요리하면 보통 퍽퍽한 상태가 되곤 하는데, 이 조리법을 통해 천천히 조리하면 열을 골고루 전달하고 수분 증발이 없어 쫄깃한 맛을 구현할 수 있어요.”

그가 창고에서 200여만원 하는 이탈리아제 수비드 기계를 보여준다.

일단 고기를 소금물에 염장한다. 1~3일간 묵혀둔다. 그다음 진공기 안에 들어가는데 1~2일간 50~ 90℃ 사이에서 숙성시킨다.

그가 수비드 조리법으로 만든 삼겹살 샐러드를 내온다. 수비드 숙성이 끝난 삼겹살은 불판에서 껍질 부분만 구워 낸다. 한 점 먹었다. 바비큐보다 더 부드러웠다. 마치 일본 고베 와규(和牛) 같다.


◆ 복사시미 같은 수제햄 직접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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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수 셰프가 직접 만들어 홀에 걸어놓은 하몽(상온에서 오래 건조시킨 돼지 햄). 푸른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갈무리하는 게 무척 어렵단다.

주방은 초밥집 다찌의 오픈 주방을 닮았다. 한 쪽에 돼지고기 몇 부위가 육포처럼 걸려 있다. 그가 직접 만들고 있는 수제햄이다. 그는 유럽의 하몽과 프로슈트에 관심이 있어 혼자 독학으로 햄에 관해 연구와 실험을 했다.

현재 돼지고기 5부위를 갖고 7종의 햄을 만든다. 처음에는 염장을 하고 그 다음에 14~16℃에서 2~4개월 숙성시킨다. 그걸 갖고 ‘모둠 햄 치즈 플레이트’(2만6천원)를 낸다. 식감을 위해 멜론 대신 사과와 올리브를 곁들인다. 미식가라면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삼겹살햄인 ‘판체따’, 등심햄인 ‘코파’, 볼살햄인 ‘관찰레’, 안심햄인 ‘론짜’ 등이 복사시미처럼 얇게 저며 나온다. 론짜는 우리의 육포 같은 질감.

주방 한 켠에 의성 마늘 한 축이 걸려 있다. 참 믿음이 간다. 그가 이 집의 명물인 1㎏짜리 티본스테이크를 내온다.

 

 

 

 


◆ 1㎏짜리 티본스테이크를 내다

여느 티본스테이크를 받아보면 식용본드로 접착한 게 많은데 그는 이탈리아 오리지널 스타일을 보여준다.

“피렌체에서 1㎏짜리 티본스테이크를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나 감동을 받았어요.”

고기는 서울 마장동에서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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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1㎏짜리 통 티본스테이크. 이탈리아 현지 수비도 방식으로 저온진공숙성시켰다.
저온 숙성고에서 한달간 ‘드라이에이징(Dryaging)’해서 낸다. 온도는 0~1℃. 그렇게 말리면 겉이 딱딱해지고 지방이 수축하면서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고기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2단계로 굽는다. 일차로 그릴 자극만 내서 손님에게 덩어리를 보여준다. 손님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2차 때는 굽기 정도를 알아 5~10분 굽는다.

“우리 집 티본스테이크 맛은 이탈리아 현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이 정도 크기라면 15만~18만원 합니다.”

스테이크 옆에는 농장 감자와 의성 통마늘, 홀그레인(겨자씨)을 담아낸다. 감자 구울 때 로즈마리 향이 스며들도록 한다. 향후 겨자씨를 구입해 홀그레인까지 직접 만들 예정이다.

티본스테이크 재료 손실률은 20~30%. 이문만 밝힌다면 시도하기 버겁다.


◆ 고향 군위에 허브 농장을 갖다

그는 자기가 사용하는 채소 및 허브를 직접 고향의 농장에서 조달한다.

현재 미니당근, 비트, 로즈마리, 로메인, 펜넬, 박하, 가지, 타임, 바질, 돼지감자, 고구마, 사과, 루콜라, 시금치, 세이지, 치커리, 마조람, 딜 등을 재배한다. 1주일에 한번 정도 가져온다. 식재료 구입비가 상당히 절약이 된다. 그래서 손님에게 음식을 더 싸게 줄 수 있다.


◆ TIP

그는 독신이다. 24시간 요리 생각뿐이다.

디저트는 세 종류가 나온다. 아몬드 크럼블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요거트 무스를 올리고 블루베리를 올린다. 그 옆에 새콤달콤한 블루베리 소스를 깐다. 판나코타(생크림과 우유가 베이스)와 바닐라아이스크림. 여기선 직접 바닐라 씨를 갈아 만들었다. 설탕도 가급적이면 자제한다.

이탈리아 탄산수도 2종류 있다. 산펠레그리노, 아란치아타. 모두 5천원.

파스타 면은 주문받은 뒤 7분 정도 삶아낸다. 1만2천~1만6천원선. 스테이크 코스는 4만1천원(1㎏ 티본스테이크는 9만1천원). 파스타 코스는 2만4천원. (053)652-8007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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