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8) 대구시 중구 선어무침회 정식 전문 ‘약전’의 백설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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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13   |  발행일 2013-12-13 제41면   |  수정 2013-12-13
영양고추·간수 뺀 왕소금·엿질금 등으로 직접 만든 초장에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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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풍성한 툇마루에 앉아 나물을 다듬으며 풋살구 같은 미소를 짓 고 있는 약전 오너 셰프 백설희씨. 한학을 좋아하고 독서삼매경에 빠 지는 걸 좋아하지만 좋은 음식에 좋은 대화로 화답해주는 단골이 있 어 한식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의 운명이란다.

대구시 중구에 있는 옛 중앙시네마 서편 진골목 안.

아직 일제강점기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대구의 첫 양옥이었지만 지금은 폐업된 정필수 소아과 옆에 예스러운 ‘ㄷ자한옥’이 한 채 있다. 선어무침회 정식 전문식당 ‘약전’이다. 족히 80여년은 됐을 법한 적벽돌 담장이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한옥 툇마루에 겨울 햇살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고풍스러운 장지문 앞에 무말랭이가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아직 대구 도심 안에서 이런 향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무척 고맙다. 약전은 묘하게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신라의 여인 같은 자태의 오너셰프 백설희.

기질이 질그릇 같으면서도 내면은 십자수처럼 섬세하고 치밀하다. 그녀의 일상은 담담하면서도 해학적이며 파격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쪽찐머리였는데 갑자기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렸다.

집 입구 간판이 작품 같다. 일본 전통 가이세키 요리점처럼 자그마한데 주인의 안목이 담겨있다. 십여 개의 솟대가 해바라기처럼 손님을 맞는다. 마당은 각종 수목으로 빼곡하다. 대문을 휘감은 등나무, 14개의 옹기, 7개의 다듬잇돌 등이 단골에겐 잠시 ‘휴(休)테크’ 구실을 한다. 1970년대 톤의 손톱만한 타일도 인상적이다.



물엿·방부제 안 써 시중의 달고 텁텁한 초장과는 비교 안돼
무채처럼 썰어 나온 동치미는 깊은 울림 새콤달콤하지 않아
토장국 대신 추어탕…멍게비빔밥의 맛도 거제식과 사뭇 달라
간고등어는 제주産 마리당 5천원에 사 7일정도 염장·냉동


◆ 구색갖추기 반찬은 절대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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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전의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월동 최고의 반찬 중 하나인 무말랭이. 요즘 도심 식당에서는 여간해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뜨내기 손님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단골이다. 메뉴가 요란스럽지 않다. 전라도 한상차림 톤은 아니다. 심산유곡 용소의 시퍼런 계곡수처럼 메뉴 하나마다 진기가 가득하다. 다른 메뉴와 상생상극적 기운을 주고받고 있다. 마지못해 구색갖추기로 조리한 메뉴는 단 하나도 없다. 구석구석 죄다 젓가락이 스쳐지나간다.

그녀도 어찌어찌해서 오너셰프의 길로 들었다. 요리 사부는 어머니. 어머니는 딸의 운명을 미리 내다본 듯 혹시 어려운 시절을 만나 밥 굶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요리 테크닉과 안목을 어릴 때 전수했다. 그 콘텐츠를 요즘 요리학원에서 절대 배울 수 없다.

그녀는 한시에도 관심이 깊다. 상당히 긴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을 다 외워 단골을 놀라게 만든다. 요즘은 중국어와 기타까지 익히고 있다.

포항시 장성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대구로 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요리를 가까이 했다. 모친이 추어탕을 끓이기 위해 대바구니에 미꾸라지를 넣고 왕소금을 뿌려놓으면 세척은 그녀 담당. 모친은 추어탕과 콩국수를 정말 잘 만들었다. 콩국수도 요즘과 달리 아주 말갛다. 삶은 콩을 멧돌에 간 뒤 뻑뻑한 두유 같은 걸 체에 걸러 아주 맑게 만든다.

“요즘 콩국수는 너무 너무 뻑뻑해요. 지금도 콩국수를 주문만 받으면 정말 맛있게 요리할 수 있죠.”

모친은 대구 종로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꾸려갔다. ‘선어무침회 전문점’이었다. 빙어와 전어, 병어 등 잡어를 주로 취급했다. 활어보다 주로 선어였다. 집이 너무 좁아 모친이 벽에 우스갯소리를 적어놨다.

‘장소가 너무 협소하오니 회를 잡수신 후 여담은 다방에서!’

당시 포마이카 상이 3~4개 있었으며, 손님이 각자 알아서 펴고 접었다. 횟집이었지만 요즘 흔한 분말 고추냉이조차 없었다. 양념은 ‘초장’이었다. 갖은 채소를 채썰어 수북하게 내놓으면 손님은 알아서 앞접시에 가져가서 비벼 먹는다. 모친이 2000년까지 하다가 그만두자 그녀가 이어받았다. 시댁이 청도여서 처음엔 옥호가 ‘청도식당’이었다.

33세 때 약전골목 현재 청도보신탕 자리에서 ‘약전’으로 재출발했다.


◆ 약전의 요리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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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선어무침회와 멍게 비빔밥 정식으로 유명한 약전식당의 조촐하면서도 야무진 한상차림.

포항 죽도시장 등을 통해 전어, 밀치, 도다리, 광어, 우럭 등을 하루 전날 갈무리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모친은 딸에게 툭하면 ‘생물은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예약 들어온 만큼만 준비한다.

무침회의 승부처는 역시 초장이다. 우선 고추장을 잘 담가야 한다. 시장에서 사온 건 텁텁하고 너무 달아서 못 쓴다. 영양고추를 방앗간에서 아주 곱게 500근 정도 간다. 1년 먹을 것이다. 찹쌀가루, 메줏가루, 간수 뺀 왕소금, 엿질금 등이 섞여야 하는데 엿질금은 하룻밤 잘 삭혀야 된다. 엿질금 대신 물엿을 사용하면 질척거려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단다. 고춧가루 5근·엿질금 5되·왕소금 반되·메줏가루 반되를 혼합한다. 고추장은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키는데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계속 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꽃가지(곰팡이)’가 핀다. 그런데 방부제 탓인지 공장 고추장은 절대 꽃가지가 피지 않는다. 5개월 정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겨울에는 물미역, 깻잎, 양배추, 무, 쑥갓, 대파, 여름에는 미역 대신에 오이를 사용해 무쳐 먹을 채소류를 낸다.

4색나물(무,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은 연중무휴로 올라간다. 그 곁에 호박전과 생선(명태)전 두 가지를 올린다. 겨울에는 마재기 무침이 특별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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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방식으로 숙성시킨 동치미. 약전은 특이하게 동치미 무를 큼지 막하게 썰지 않고 무채처럼 가늘게 채썰어 내는 게 인상적이다.

동치미 맛도 의젓하다. 별 재료가 동원되지 않는다. 왕소금·동치미 무·배, 삭힌 고추·끓여 식힌 물이 주재료. 소금에 절인 무에 반드시 끓여 식힌 물을 한가득 붓고 서늘한 뒤란에서 보름 정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예전 반가음식에선 동치미 국물 맛을 보면 그 집 종부가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를 겨냥한 동치미는 너무 새콤달콤하다. 예전 어른들은 한 입도 먹을 수 없다. 여기 동치미는 석간수 같은 깊은 울림이 있다. 이래야만 동지 팥죽 옆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는 특이하게 무채처럼 동치미 무를 썰어 내온다. 약간 군둥네가 풍긴다. “피크를 며칠 넘긴 것 같다”고 하니 그녀가 시인을 한다. 된장이나 참기름에 밥 비벼 먹으면 입맛 찾는 데 일조할 것 같다.


◆ 별미로 인정받은 멍게비빔밥

지역에선 처음으로 ‘멍게비빔밥’을 냈다.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거제도발 멍게비빔밥과는 맛이 사뭇 다르다. 멍게비빔밥은 고향인 포항에서 자주 해먹었단다. 멍게를 잘게 썬 뒤 미역줄기에 김가루를 넣고, 참기름(진짜 국산 기름을 사용)으로 볶고 그 위에 돌솥밥(보리쌀, 흑미, 쌀)을 올려 비벼 먹는다.

간고등어도 경북 내륙 간고등어 대신 제주도산만 고집한다. 마리당 5천원선이다. 여느 식당에선 한 마리에 1천원 정도짜리를 사용한다. 그러니 맛은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제주서 공수받은 100마리를 염장해 냉동고에 보관한다. 7일 정도 지나면 맛이 들기 시작한다. 간고등어는 물에 씻지 않고 참기름을 양쪽 면에 발라 오븐에서 10분 정도 구워낸다.

토장국 대신 추어탕을 낸다. 하루 전날 미꾸라지를 사와서 해감시킨다. 이어 마른 토란을 삶고 우거지·배추 등에 으깬 미꾸라지 육즙을 된장과 함께 풀고 3시간 정도 끓이면 된다. 된장도 직접 만들지만 대다수 추어탕 용으로 사용한다.

김장은 200포기 정도 한다. 멸치젓갈과 육젓을 반반 정도 섞은 뒤 고추, 청각, 갓, 굴 등을 넣는 경상도식이다.

매일 새벽장을 찾아 필요한 걸 사온다. 전체 메뉴의 20%는 철마다 바뀐다.

상차림을 보면 뒷짐 지고 선비가 걸어가는 형용이지만 실제는 엄청난 고수가 아니면 일을 감당할 수 없다. 경험없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이런 메뉴를 관리하려고 하면 코피를 쏟으며 쓰러질 정도로 일 강도가 세다.

“제일 힘든 건 음식 장만하는 게 아닙니다. 손님 캐릭터가 워낙 다양해서 모두의 욕구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 제일 버겁지요. 가령 다른 집에서는 고스톱도 칠 수 있는데 여긴 왜 안되느냐는 질문을 해 올 때 참 난감합니다.”

단골 연령은 평균 50~70대. 한때 방 한편에 1천여권의 책을 진열해 뒀는데 장소가 협소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오후 4시쯤이면 벌써 햇살은 보이지 않는다. 월동 중인 시래기와 무말랭이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이날 오후 6시30분 단체 손님 25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제 노느냐고 하니, 경찰서가 놀 때 논단다. 헷갈린다. 연중무휴란 소리다. 그런데 점심과 저녁 사이 1~2시간 그녀는 ‘딱따구리 부리’처럼 부리나케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단다. 중구 남일동 132번지. (053)252-9684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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