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모두가 조선음식을 말할 때 신라음식에 몰입하다, 차은정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장

  • 이춘호
  • |
  • 입력 2013-12-27   |  발행일 2013-12-27 제41면   |  수정 2013-12-27
“조상들이 고등어 밑에 왜 무를 깔았을까요?…그게 바로 약선입니다”
20131227
라선재에서 개발한 신라골동반
20131227

아직 한국전통음식의 콘텐츠는 거의 조선궁중요리에서 발원한다. 조선궁중요리는 인간문화재가 된 황혜성과 그의 딸 한복녀에게 이어진다. 그 손맛은 조선궁중요리 전문 한식당인 ‘지화자’에서 갈무리되고 있다. 이곳의 매뉴얼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국 각처의 풀코스 한정식 메뉴라인에 큰 기여를 했다. 전채 흑임자죽을 비롯해 삼색전과 표고탕수, 두부선, 구절판, 탕평채 등 평소 여느 한식당에서 자주 만났던 메뉴라인은 거의 황혜성 문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면 틀림이 없다.

이 흐름에 도전장을 낸 전통요리연구가가 있다. 바로 윤숙자 전통요리연구소장이다. 윤 소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정상회담밥상을 주도했으며, 이때 그녀가 선택한 강원도 횡성한우는 국내 최고의 한우로 등극했다.

이 와중에 색다른 길을 간 요리 연구가가 있다. 바로 경주 보문단지 육부촌 옆에 자리한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차은정 교장(47·사진)이다. 차 교장은 조선음식에서 벗어나 신라음식에 심취했다. 서울로 갔으면 출세가 더욱 빨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대장금이 되려면 역시 경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약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동서양 음식학에 정통해야만 된다고 믿었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단체급식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동아대 식품영양학과에서 조리학 박사가 된 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약선을 개척하기 위해 달렸다. 바로 동아대 한의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으며, 곧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해는 한국예술문화 명인(신라전통음식 부문), 경북도문화재자료 제256호 신라임금제례진설위원에 선정된다. 현재는 신라음식 체험장 구실을 하는 ‘라선재(羅膳齋)’, 음식학교 졸업생이 만든 ‘신라음식포럼’을 이끌고 있다.

20131227
신라궁중에서 즐겼던 상화병

식물성-동물성 식품을 조화시키고
몸에 이롭도록 궁합 맞추는 게 중요
요즘 한방약선에 너무 매몰된 느낌

신라왕족 제상엔 닭·쇠고기 안 올려
라선재 오면 신라약선 맛볼 수 있어
골동반·이사금밥상 등 개발해 선봬


- 차 교장이 생각하는 약선이란 뭔가.

“‘약식동원(藥食同原·약과 음식은 한 뿌리)’이라는 한의학적 기본 이론을 바탕으로 음식 속에는 약의 기능과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좀 더 상세히 표현하자면 약은 식물이요, 선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즉,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을 조화롭게 궁합을 맞춰 몸을 이롭게 하는 음식을 약선이라 정의한다.”

-요즘 약선을 너무 형식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영양학 등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한 가운데 약선만 강조하는 것 같은데.

“대학에서 조리학(발효식품)과 한의학을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약선학적 의미를 다각도로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고등어는 영양학적으로는 DPA 와 EHA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필수지방산이 있어서 뇌를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이나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특히 좋다. 혈압강하나 치매예방 등에 아주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비늘이 없는 고등어와 같은 생선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이는 비늘이 없는 생선은 대부분 비린내가 심하고, 비린내는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식중독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도 고등어를 쌀뜨물에 담가 해독하고 소화제 역할을 하는 무를 고등어 밑에 깔아 된장 푼 물을 끼얹어 중화를 시켰다. 결국 약선이란 우리가 살아오면서 생활 속에 자리 잡았던 문화의 힘이라 생각한다.”

-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와 일반 요리학원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2009년 경주 교육청으로부터 평생교육원으로 인가를 받은 뒤 출발했다. 그동안 20기를 운영했으며, 900여명이 졸업했다. 들어오면 약선학개론, 방제(처방), 사상체질과 인체생리, 신라학, 약선조리학, 명상 등을 2년 정도 배운다. 내년부터는 약선음식, 김치, 발효음식 등 교육부로부터 학점으로 인정받게 되는 정식교육기관이 된다.”

-라선재는 어떤 공간이죠.

“사람들이 자꾸 신라약선요리가 어떤 건지 궁금해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래서 직접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그게 ‘라선재’다. 일종의 ‘신라전통음식관’이라 보면 된다. 그동안 3만명이 넘는 관광객 중에는 UNWTO 대표단, APEC 장관, 아시아소사이어티 글로벌 집행 이사단, 주한 대사 등을 위한 오·만찬을 주관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프랑스 알자스주 주지사인데 그는 식사 중에 일절 비즈니스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직 음식에만 집중했다. ‘보통 한국 된장은 냄새가 지독한데 라선재 된장은 냄새도 별로 없고 맛도 아주 순하다. 그 레시피가 뭔가’, 뭐 대충 그런 질문이 이어졌다. 국내 VIP는 아직 식사를 하면서 음식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라골동반도 개발했다고 하더라.

“일단 보리·멥쌀·찹쌀·율무·조를 약초물에 담근 뒤 오곡밥을 만들고, 그 옆에 쑥국에 찹쌀과 된장을 푼 쑥애탕, 그 밖에 감자김치와 갖은 약재가 들어간 약고추장 등을 축으로 개발해 본 것이다. 새로운 사료가 나오면 계속 변형시켜나갈 것이다.”

- 신라약선요리 전문가라고 하면 관련 자료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처음 경주에 왔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자료가 너무 없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 나타난 단편적 사료를 연결해 원형을 복원해나갔다. 알에서 태어난 김수로왕은 황후 허황옥에게 결혼 예물로 대추와 복숭아를 줬고, 선덕여왕은 산수유를 즐겼으며 사모하던 청년이 죽자 팥죽을 문가에 뿌렸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덕분에 경주 엑스포 때 꿩요리, 보리빵, 무궁화 국과 전, 쇠비름 물김치, 양고기, 술찌끼로 만든 김치, 당귀 정과, 약밥 등을 축으로 신라이사금밥상을 선보일 수 있었다.”

- 그 이후 고조리서도 좀 확보했는가.

“1100년대에 출간된 ‘제민요술’을 비롯해 ‘식료찬요’, 일본 나라시 박물관에 소장된 ‘경창원문서’, 또한 신라사 연구를 하는 학예연구사를 통해 우리 민요에 숨겨진 신라음식의 단서, 각 문중에 전승되는 가가례 통과의례식도 좋은 공부거리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라 왕족의 제사상에는 닭고기와 쇠고기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 극성스러운 제자들도 많을 것 같다.

“단기과정과 정규과정(약선대학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이 전국으로 분포되어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졸업생들의 재개발 차원에서 ‘신라약선포럼’을 발족했다. 지난 4월 ‘제1회 신라음식문화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식품영양, 조리, 한의학계는 물론 관광, 여행, 문화재 , 인문학 관련 전문인이 400여명 모이는 성과를 거뒀다.”

- 이제 약선의 전체 윤곽이 조금씩 보일 것도 같은데 약선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든 정말로 한 방에 모든 걸 끝내려고 한다. 약선을 알려고 하면 최소 10년은 죽었다 하고 영양학, 조리학, 한의학, 동서양 음식문화사, 고조리서 등을 파고들어야 한다. 모두 마음이 급하다 보니, 뭐가 몸에 좋다고 하면 이 재료와 저 재료의 궁합의 이론에 대해서는 탐구하지 않고 그냥 형식적으로 ‘이것 먹으면 몸에 좋다’는 수준으로 떠들고 있다. 또 너무 한방약재에 치우친 한방약선에만 매몰되고 있다. 음식문화를 알고 음식을 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중국의 병원에선 약선전문가들이 환자의 식사를 도와주고 있는데 우린 영양사의 몫으로 돼 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식품 전문가들이 너무 분열돼 있는 것도 문제다. 향후에 일반 의사와 한의사, 영양사, 임상영양사, 약선전문가, 대체의학전문가, 자연치유전문가, 약초연구가, 제철 식재료 유통전문가, 유기농 전문가 등이 학제 간 연구를 통해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경주시 신평동 375-3. (054)771-6040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한국 약선의 역사

약선(藥膳)은 영어로 ‘Medicine Cuisino’.

80년대만 해도 국내에 약선이란 용어는 없었다. 맨 먼저 약선문화에 불을 댕긴 건 한의사인 안문생씨. 91년 5월 일본 어혈학회 오사카학회에서 약선을 처음 접하고 같은 해 12월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94년에 1개월씩 세 차례에 걸쳐 촬영 팀과 함께 양쯔강 유역, 황허강 유역,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가면서 각 지역 약선문화를 방송용 카메라에 담아 SBS를 통해 1년간 방영했다. 그해 5월 무주리조트에서 제1회 국제양생학회가 열린다. 그 자리에 참석한 양생학자들에게 ‘한국형 약선 요리’를 선보인다. 안씨는 2005년 9월부터 명지대 산업대학원에 약선학 석사과정을 도입한다.

이에 앞서 98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홍룡사 아랫마을에 ‘죽림산방’이란 약선 전문 식당이 생긴다. 2004년 영산대에 약선학과가 신설됐다. 차 교장도 그 학과장을 역임한다. 국내 첫 대학 내 약선학과다. 학과가 생긴 그해 11월 부산 해운대 벡스코 3층에서 아주 흥미로운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바로 국내 첫 약선 관련 학술 심포지엄이었다. 영산대 약선학과장 자리에서 나온 차 교장은 경주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