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레스토랑 인테리어 디자인 독보적 영역 개척 이병재씨 어번디자인연구소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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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17   |  발행일 2014-01-17 제41면   |  수정 2014-01-17
자연같은 인공…나만의 디자인으로 ‘발효’하니 ‘맛있는 건물’이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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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파계사 초입에 있는 커피명가 ‘휴’의 홀 전경. S자 스틸 코일 커튼이 우아하면서도 농염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다. <어번디자인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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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올해의 굿 레스토랑 실내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은 대구 수성구 두산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벨라쿠치나’의 전경. 녹슨 철판과 노출 콘크리트가 극단적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어번디자인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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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모던함과 고품격 격조를 더한 ‘더 파리스’의 메인 다이닝 홀. <어번디자인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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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대흥동에 있는 피규어 전문 박물관인 ‘CW 갤러리’. <어번디자인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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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쿠치나
중세풍 철문·벨벳 소파
영화제 리셉션장 온 듯

더 파리스
해질녘 서쪽 통유리창
낙조의 운치 완벽 감상


평화롭고 목가적인 내부
S자 스틸 코일커튼 압권

CW 갤러리
남천 강줄기 강조 위해
한쪽면만 강쪽으로 개방



맛있는 건물(Delicious building)?

음식은 맛있는 것에서 ‘멋있는 것’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반면 건물의 경우 되레 멋있는 것에서 맛있는 버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역발상적 미학’은 분명 시대의 요청이다. 두 맛의 접점에서 맛있는 건물이 탄생할 것 같다.

가끔 식당 건물도 음식이란 생각이다. 곰탕집도 곱창집도 분식집에도 디자인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음식, 따지고 보면 모두 엇비슷하다. 성공한 식당은 음식 말고 ‘플러스 알파’가 있다. 예전에는 음식 하나로 승부가 가능했는데 이젠 아니다. 음식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이젠 음식 외적 경쟁요소가 승부처. 그래서 디자인 마케팅과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란 개념이 도출됐다.

손맛 이전에 주인의 ‘가슴 맛’에 밑줄을 긋고 싶다. 성실함, 그리고 친절함, 다음은 깨끗함, 마지막엔 신비로움까지 덧칠할 줄 알아야 된다. 그냥 영수증 같은 표정으로 커피만 극장 매표소 직원처럼 내주는 로드카페와 체 게바라 캐릭터에 라틴 댄스뮤직에 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손님을 맞는 로드카페, 당신은 어느 곳의 커피를 선택할 건가.

맛있는 건물은 모르긴 해도 거기에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묻어 있고, 또 재밌어야 한다. 조금은 환상적인 구석, 그리고 놀라움이 건물 곳곳에 박혀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 명의 건축 디자이너를 불러내보자.

이병재 어번디자인연구소장(57). 두툼한 뿔테, 조금은 대리석 같은 차가움, 거기에 햇살이 조금 얼비친다. 냉정함과 살가움이 적당히 균형을 이룬 것이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 주택가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주차 공간 확보하기가 너무 힘든 주택가에 숨어 있었다. 입구는 평범하고 무뚝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설정’이었다. 사무실 내부는 미국 맨해튼 소호 지역 뮤지션의 작업실 같다.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았다. 그가 촛불을 들국화 톤으로 피워낸다. 낡은 LP음반 위에 카트리지를 살포시 올린다. 이 우중충하고 푸석한 골목에서 만난 느닷없는 낯섦, ‘객수감(客愁感)’이 밀려온다. 책장에는 메이저급 인테리어 디자인 관련 잡지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묽은 아메리카노를 드립해 왔다. 아날로그 사운드의 향기와 커피향이 진하게 원무를 춘다. 금세 아프리카 사파리에 혼자 서 있는 나무가 된 기분이다. 그가 클래식·재즈·블루스 곡을 번갈아 들려준다. ‘월면(月面)’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기분이랄까.

그는 섬뜩한 감각을 가진 건축가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대구 수성구 두산오거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벨라쿠치나’, TBC 옆 프렌치 레스토랑 ‘더 파리스’, 팔공산 파계사 초입 커피숍인 커피명가 ‘휴(休)’, 들안길 일식집 ‘센도리’, 대구와 경산 경계인 경산시 대평동 국내 첫 피규어 전문 박물관인 ‘CW 갤러리’ 등 100여 채의 건물을 디자인했다. 그의 디자인 모토는 자연 같은 인공, 인공 같은 자연이다. 자연의 기운을 가장 심도있게 노출콘트리트 벽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면서도 미학적 내구성은 빼어나다. 20년이 지나도 처음 지은 느낌이 들도록 야물게 짓고 아름다움도 동시에 추구한다. 그는 ‘붕어빵 디자인’은 딱 질색이다. 유행하는 시공방식을 철저히 배격한다는 뜻이다.

2006년 당시 국내 레스토랑 인테리어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라벨라쿠치나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기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르긴 해도 서울에 가도 그렇게 극단적 색채감과 놀라운 소재선택 안목이 돋보이는 레스토랑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덕분에 그는 그해 4월 디자인 잡지 ‘인테리어’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반으로 자른 통바위 카운터, 특수제작한 중세풍 빨간 철문, 벨벳 소파, 화산석, 고벽돌, 광섬유 조명, 블랙과 레드가 육감적 균형을 이룬 와인바, 갤러리 같은 오각형 화장실의 전실(前室), LED 장식벽, 반오픈원형룸 소파, 빨간 세면대, 하늘이 보이는 실내 테라스…. 대다수 소재는 지역에서 처음 선보인 것. 손님 스스로 ‘난 영화제 리셉션에 초대받은 명사’란 기분이 들도록 섹시하면서도 모던한 친환경 소재를 매칭시켰다. 상당수 디자이너가 이 스타일을 베껴갔다.

더 파리스에서는 라벨라쿠치나에 고품격 절조를 삽입했다. 하절기 해질녘 서쪽 통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낙조는 그 자체가 완벽한 레드 와인이다. 음식이 맛이 아니라 멋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디자인이 ‘발효제’ 구실을 했다.

파계사 휴를 훑어봤다.

홀은 너무 평화롭고 목가적이고 전원적이다. 그러면서 디럭스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여타 소재는 거의 배제시켰다. 눈높이 초장방형 통유리창을 통해 통제된 자연을 사진처럼 감상토록 배려했다. 압권은 홀 중심부를 태극 문양처럼 가로지른 25m S자 스틸 코일커튼. 커튼을 통해 보이는 다른 좌석의 실루엣, 그리고 드문드문 놓여 있는 격자형 원색 소파가 갓 돋아난 죽순 같다.

CW갤러리 2층은 레스토랑인데, 근처 남천의 강줄기만 강조하기 위해 3면은 모두 차단하고 한쪽 면만 강쪽으로 틔워놨다. 건물을 둘러싼 자연의 특징, 건물주의 캐릭터, 공간의 사용목적에 대한 교집합을 모르고선 저런 색과 소재의 배치가 어려울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 초저녁에 시작해서 밥도 건너뛰면서 자정 어름까지 지속됐다. 그는 “평론가는 밑줄에 목숨을 걸지만 진정한 작가는 밑줄이 하나도 없다. 그냥 느낀다. 지식이 나타나면 평론가”라고 말했다. 그에게 무뚝뚝한 경상도 기질을 22세기 버전으로 리모델링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053)473-4200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이병재標 건축’을 듣다

-10년 이상 음식 관련 기사를 적어왔는데 갈수록 맛있는 건물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다.

“푸드 코너에 건축 디자이너를 초대하는 것도 참 맛있는 발상인 것 같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건물이 재밌어진다. 돈만 퍼붓는다고 멋진 건물이 탄생하는 건 아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감각과 안목이 합쳐졌을 때 최고의 작품이 태어난다.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난 디자이너, 좋은 디자이너를 만난 클라이언트도 축복이다. 내 돈 갖고 내 건물을 짓는 게 아니고 남의 돈을 갖고 그 집 주인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꿈의 건물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건축 디자이너의 의무이자 권리다. 그럼 한 도시의 아우라가 변한다.”



-자기가 무슨 집을 짓고 싶은지 모르고 무턱대고 최고의 집을 지어달라고 하면 참 답답하겠다.

“내 경우는 운이 좋아서 그런지 자기 검열이 확실한 감각파 클라이언트가 찾아온다. 믿고 완전히 맡겨주고 심지어 잘해 달라고 응원까지 해준다. 처음에 어떤 집을 지어달라고 하는 대로 지어주지 않는다. 그대로 지어주면 반드시 나중에 싫어할 확률이 높다. 클라이언트도 정확하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떤 기분에 의해, 어떤 권유에 의해 휘둘린 상태일 수도 있다. 처음엔 이런 생각을 해도 나와 계속 치열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생각이 내 감각을 이해하는 쪽으로 건너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를 압도한 것 같다.

“예전에는 디자이너가 갑이었고 지금은 클라이언트가 갑이다. 시장이 달라진 것이다. 가능하면 디자이너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요즘 뉴욕 맨해튼의 신감각 실내 인테리어를 보면 ‘이거 누가 디자인했지’란 생각이 안 나게 디자이너를 뒤로 빠지게 하는 게 트렌드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엄청난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겠다.

“정확하게 봤다. 기본기와 역량이 높을수록 상대가 가진 욕망과 욕심, 야심과 야망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그래야 그를 설득할 수 있다.”



-건물이 완성되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도 끝이 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자기가 디자인한 건물이 망하면 내 디자인도 망한 거라고 본다. 이젠 집 따로 음식 따로가 아니다. 같이 가야 한다. 그럼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그냥 메뉴에 맞는 인테리어를 디자인해야 성공한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가 치열하게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디자이너는 자기가 지은 건물의 경영과 마케팅에도 개입할 수밖에 없다. 건물만 알아선 이 바닥에서 성공 못한다. 나중에는 심리학은 물론 경영학까지, 궁극적으로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야 제대로 된 디자인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니 무슨 답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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