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0)대구 중구 전동에 새롭게 둥지 튼 ‘대구회관’ 김종은·김수연 부녀 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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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24   |  발행일 2014-01-24 제41면   |  수정 2014-01-24
옛날 동백 골목, 칭기즈칸 전골의 대구회관이 아직 살아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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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째 대구회관 칭기즈칸을 고수하고 있는 김종은 2대 사장이 딸과 함께 예전 동아백화점 옆 대구회관 입구 맞은편 벽에 걸려 있던 상호 액자를 뿌듯한 표정으로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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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내열 뚝배기 형태로 나온 미래 대구회관의 칭기즈칸.

가장 대구의 맛을 가진 음식은 뭘까.

상당수 어르신은 대구 중구 동아백화점 바로 동쪽에 있었던 대구회관의 인기 메뉴 ‘칭기즈칸’을 꼽는다. 그런데 그 누구도 칭기즈칸 음식이 정확하게 어떤 건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칭기즈칸은 몽골의 영웅이었기에 몽골 전통음식인 것 같기도 하고, 샤브샤브와 철판요리와 비슷해 일본 음식 같기도 하고, 국수가 들어가니 중국과 연관이 되는 것도 같고.



◆알쏭달쏭 칭기즈칸 요리

한국은 일본과 달리 몽골 전통음식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몽골이 고려 원종 15년(1274~75) 일본 원정을 준비할 때 경남 마산시 추산동에 ‘몽고정’을 파고 베이스 캠프를 잡는다. 한국형 육식문화가 본격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몽골 전투식은 몽골 전통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몽골엔 칭기즈칸이란 요리 이름이 없다. 고작 양고기 끓인 물에 국수를 넣은 ‘고릴태슐’, 양·감자·당근·통마늘·양파·소금에다 달군 돌을 함께 넣고 만든 ‘허러헉’, 양 내장 안에다 불에 달군 돌을 집어 넣고 요리한 ‘설루’, 양고기 육수에 빵을 찍어먹는 ‘너거태슐’ 등이 ‘유사 칭기즈칸군’에 속한다.

향토 출신 한국 최고 음식문화사가 고(故) 이성우 교수에 따르면 몽골인은 불의 신이 노한다고 해서 고기를 직접 굽지 않았다고 한다. 불에 굽는 요리는 만주식인데, 만주사변 때 그곳에 진주했던 일본 군인들이 몽골계 요리로 착각해 ‘칭기즈칸’이라 명명한다. 다시 말해 칭기즈칸은 특정 요리명이 아니라 ‘중원 음식의 통칭’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중국에도 칭기즈칸 요리는 없다. 단지 19세기쯤 생겨난 베이징·쓰촨·허베이 등지에 ‘훠궈즈(火鍋子)’란 우리의 신선로와 비슷한 용기가 있는데, 이 용기로 해먹는 요리가 현재 일본의 샤브샤브 스타일이다. 한국 전통요리로 분류되고 있는 신선로(일명 悅口資湯)도 1827년 ‘진작의궤(進爵儀軌)’란 요리서에 처음 등장한다. 이 요리는 한국 전통음식은 아니다. 중국 원나라~명나라 사신에 의해 국내로 유입돼 궁중 수라상에 오르고 일제 때는 갑종 요정의 메인 안주로도 각광받는다.

그럼 칭기즈칸과 샤브샤브의 연관성은 뭘까.

일본 교토, 오사카, 오키나와 등지로 간 화교들이 훠궈즈를 퍼뜨렸고, 그것을 토대로 일본 조리사들이 샤브샤브를 개발했던 것이다. 샤브샤브란 일본말로 쟈부쟈부로, ‘철벅철벅’이란 뜻의 의성어.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둬야 될 흐름이 있다. 샤브샤브는 일본, 칭기즈칸은 한국에서 각각 개발됐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칭기즈칸 요리를 선보인 서울 논현동 ‘한우리’, 명동 ‘신정’의 요리사들에 따르면 샤브샤브는 일본에서 온 것이지만 칭기즈칸 요리는 일본보다 먼저 한국에서 개발됐다는 것이다. 90년 대구 첫 샤브샤브 전문점 ‘한국시대’ 측도 그런 주장을 했다. 칭기즈칸은 샤브샤브와 조리법이 다르다. 두부, 만두, 채소, 쇠고기, 사골, 양지머리로 만든 육수, 각종 버섯, 땅콩가루, 땅콩버터에 우동용 국수를 함께 넣고 전골처럼 부글부글 끓여 먹었다. 이때 소스는 샤브샤브만큼 다양하지 못하고 채소 소스 하나만 있었다. 서울에서 대히트를 친 칭기즈칸은 한강 이남으로도 번져간다. 국내의 경우 칭기즈칸이 가장 히트친 곳은 대구다.

칭기즈칸은 일명 ‘소고기 등심 전골’이다. 전골은 국과 찜 사이에 있는 찌개의 일종. 전골류는 조선조에 들어 양반의 술 안주로 사랑을 받게 된다. 실제로 안동권씨 가문엔 신선로의 발전된 형태인 전골냄비가 가보로 내려온다. 또 온양민속박물관에도 조선후기 곱돌로 만든 ‘벙거지골’이란 전골 냄비가 소장돼 있다.



◆대구의 첫 칭기즈칸 전문점

많은 사람은 대구 칭기즈칸 요리 전문점인 대구회관이 사라진 줄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중구 문화동 동아백화점 옆에 있다가 97년 4월 지하철 공사 때문에 차량진입이 어려워 동아백화점 근처를 버리고 수성구 아리아나호텔 맞은편 세진컴퓨터랜드 바로 옆에서 재오픈한다. 대구회관의 이전 역사는 다음과 같다. 99년 12월31일 폐업을 하고 그랜드호텔 옆으로 이전 개업을 한 건 2007년 9월. 그후 2012년 6월13일 중구 전동 옛 아시아극장 옆 골목 중간으로 이전한다. 옛 대구회관 근처로 돌아온 것이다. 우여곡절의 나날이었다.

어둑해서 거길 찾았다. 그런데 상호는 대구회관이 아니라 ‘미래(味來)’였다. ‘옛 칭기즈칸 맛이 찾아오다’라는 의미다. 김종은 사장의 딸이 그 상호를 원했다. 그런데 단골이 대구회관에 너무 집착해서 이젠 미래와 대구회관을 병기한다. 김수연씨(44)는 기질이 다부지고 야물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온 후 영국 남서부 엑서터대에서 치료요법을 배우고 97년 대구에 와 이것 저것 자격증 따는 걸 좋아하다가 결국 가업에 매진한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가운 액자가 보인다. 왼쪽 벽에 붓글씨로 적어놓은 빛바랜 대구회관 액자였다. 옛 대구회관 정문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던 걸 지금까지 보관했다.

‘아, 저 액자 아직까지 붙어 있네…’

어르신 단골은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예전 대구회관 로고가 찍힌 1~4인용 접시와 전골냄비도 진열돼 있다. 예전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 ‘철수와 영희’ 편 그림을 그린 권일순의 미인도, 이강소의 80년 작품, 정치환, 문곤, 신지식, 박기태 등 향토화백의 명작도 방마다 걸려 있다. 이 집만의 전통이다.

대구회관은 대구예식장과 연관이 많다.

대구회관은 김 사장의 장인인 권두현씨가 운영했다. 대구회관 자리는 OB맥주 대구·경북대리점 사장이던 권두현씨 소유의 맥주 창고. 대구회관은 1952년 오픈한 대구예식장(후에 호텔로 변했다가 현재는 카리스 조명)의 피로연 장소로도 어필됐다. 권씨는 맥주 소비 다양화를 위해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2층에는 비어홀, 1층에 전골·샤브샤브·로스구이·함박스테이크를 파는 한식형 레스토랑(회관)을 운영했다. 몇몇 관계자들이 관여하다가 70년 사위 김종은 사장이 본격적으로 칭기즈칸 명가 대구회관 시대를 개막한다. 김종은 사장은 대구회관을 맡기 전에 대구역전에는 코끼리표 시멘트 대리점, 나중엔 북구 팔달시장에서 OB식품을 운영한 바 있다.



◆칭기즈칸 맛의 해부

대구회관 칭기즈칸은 대구 스타일에 맞게 개조됐다. 물론 서울보다 더 얼큰했다.

참맛을 내려고 기술을 가진 조리사를 서울에서 데려오기 위해 70년대 초 당시 쌀 50가마를 주었다. 육수가 특히 진했다. 대구라서 그랬다. 육수를 뽑기 위해 사태고기 국물을 뽑고, 사골을 고아 내고, 고추장 육수를 풀 때 한꺼번에 1대 1 정도로 배합한다. 고기를 삶으면 평균 38%가량 양이 줄어든다. 전골 냄비에 육수를 붓고, 거기에 파·양배추·양파·당근·피망·깨·물엿·소금·설탕은 물론 땅콩버터까지 넣었다. 육수로 고추장을 빚고, 숙성된 고추장을 육수에 배합해 얼큰하게 만든다. 등심·양지머리는 물론 소양·곱창까지 넣었다. 이렇게 해서 얼큰하면서도 감칠맛나는 대구형 칭기즈칸이 태어나게 된다. 굵은 우동사리(대구 중앙우동)도 맛의 원천. 이게 육수를 많이 흡수한다. 그래서 오래 끓일수록 국물은 더 걸쭉하다. 본식을 다 먹은 뒤 김, 김치, 파 등을 넣고 밥을 볶아 먹거나 국물에 밥을 비벼먹기도 한다. 대구회관 명맥은 중부경찰서 옆 ‘세운’, 봉산파출소 근처 ‘한일’, 대구백화점 남문 근처 ‘신일’, 들안길 ‘고래성’ 등이 이어받는다. 하지만 모두 사라졌다.

예전에는 전골냄비에서 각자 떠먹었는데 이젠 위생을 생각해 1인용 내열 뚝배기를 사용한다. 매일 아침 디저트용 아이스크림도 직접 만든다. 다른 곳과 달리 계란과 크림파우더만 사용한다. 초창기 스타일 그대로다. 100년 뒤에도 이 메뉴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053)753-529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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