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2)대구 동구 중대동 레스토랑 ‘나무@906’의 박윤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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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14   |  발행일 2014-02-14 제41면   |  수정 2014-02-14
먼길 온 이에게 진심을 담아 착한 밥상을 대접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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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옆에 무말랭이와 해바라기 씨앗이 토핑된 주먹밥이 ‘엄마손’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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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906’의 대표적 디저트인 와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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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에서 오너셰프로 변신한 뒤 매일매일이 첫사랑의 날 같다는 박윤옥 셰프가 의자에 앉아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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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풍의 전등이 이색적인 레스토랑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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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꼭 담배창고처럼 생긴 동구 중대동 팔공산 파계사 입구 레스토랑 ‘나무@906’ 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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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옥 셰프는 ‘남들과 같은 양식을 내지는 말자’고 늘 다짐하고 있다.


“음식으로 세상과 소통”
안정적인 藥師 길 접고
전원생활→오너 셰프
가장 정직한 식재료로
소박한 엄마 손길 같은
떡갈비·스테이크·와플
차별화된 메뉴 ‘입소문’


매년 4월 하순쯤.

그 레스토랑은 벚꽃바다를 항해하는 ‘화선(花船)’ 같다.

그 레스토랑은 ‘작명 마케팅’이 남달랐다.

‘나무@906’. ‘내가 살고 있는 번지(906번지)에는 내(나)가 없다(무)’란 뜻, 그래서 ‘우리 공화국’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오너셰프 닉네임도 아주 트렌디했다. ‘푸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Food Communication Designer)’. 표정의 4분의 3이 웃음과 미소인 50대의 이 여성 오너셰프는 음식을 갖고 세상과 소통해보겠다는 심산이다.

대구 동구 중대동 906번지가 그의 꿈터. 첫눈에 포스가 느껴지는 남편 임승엽씨와 밤송이처럼 부둥켜안고 알콩달콩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인연이 포도송이처럼 매달린다. 천성적으로 얘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팔공산 파계사 가는 길 초입에 보일듯 말듯 숨어있는 이 레스토랑은 멀리서 보면 꼭 ‘담배창고’ 같다. 형식은 시골풍이지만 내면의 실내는 맨해튼풍이다. 한동안 지역 실내인테리어 업자의 벤치마킹 1순위 공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에서 가장 고집스럽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집을 짓는 건축가 박재봉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박윤옥 셰프. 그녀가 저어가는 나무 레스토랑의 뒤안길을 따라 걷고 왔다.



◆고생 모르던 계집애가 고생의 길로 걸어갔다

‘서울 가시내’였다.

어머니가 요리본능을 키운 것 같다. 여느 집에서 만들어 먹기 어려운 메뉴를 골라 다 챙겨주셨다.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도 가르쳐준다.

숙명여대 약대생으로 고만고만한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고교 때 아버지 사업이 완전 거덜났다. 아버지 곁에 모이고 흩어졌던 인생군상의 생리를 목격한다. 어려워져야 인간성이 드러난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돈에 우선가치를 주지 않는 길을 간다.

1984년 약사가 된다. 남편 사업 때문에 대구 반야월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거기서 수도약국을 연다.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약국을 꾸려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덜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정말 제 청춘이 쇼윈도 안에서 끝날 것 같았습니다.”

약사가 싫었다. 아는 사람들을 집으로 마구 불러들여 음식을 해먹였다. 요리의 완성도보다 사람들을 불러 먹인다는 게 더 큰 즐거움이었다. 90년대 초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90년대 후반까지 서울 분당에 살았다. 부부는 전원의 꿈을 꾼다. 적당한 땅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유람한다. 경주에 있는 설치미술가인 김영진씨에게 좀 신세를 진다. 식재료는 주변에서 구해와 외식 없이 세 끼를 직접 해 먹었다. 천상 ‘밥 퍼주는 여자’였다. 하지만 경주도 시골스럽지 않았다. 좀 더 깊은 시골을 찾았다. 어느 날 합천 해인사 근처 대밭골(죽전)이란 곳에 황토집을 지었다. 해발 690m고지였다. 농사는 정말 ‘젬병’이었다. 모종을 사다 심어도 재료값이 안 나왔다. 무농약, 유기농 운운하면서도 결국 ‘방치농’이었다. 4년 정도 그렇게 흙빛으로 살았다. 거기에 문화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려고 하자 친구들이 제발 가까운 곳에 아지트를 지으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공부방이 필요했다

꿈 같은 집을 짓고 싶었다.

옛 흙담집 같게 보이도록 ‘담틀공법’으로 벽을 치장했다. 돌담도 비뚤비뚤 직접 쌓았다. 친환경 도료를 사용했다. 남의 손을 빌렸지만 결국 자신들이 지은 ‘홈메이드 하우스’였다. 계단 앞 흙받이 매트도 작은 자갈로 만들었다. 계단 아래 빈 공간에는 촛농이 석순처럼 자라고 있다.

이 집을 유지하려면 약간의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기가 잘하는 음식을 팔자고 했다. 영업이 뭔지를 알아야 했다. 주변의 고수한테 한 수를 배우러 다녔다. 장사 모토는 ‘건강하게 돈을 벌자’였다. 한 고수가 그녀에게 귀중한 정보를 알려줬다. ‘은퇴자들의 전원 레스토랑이 대다수 망한 이유는 풍광이 좋은 2층은 자기가 소유하고 1층을 영업공간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님에게 가장 좋은 전망과 시설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꿈만 믿고 2007년 1월 대망의 오픈을 한다.



◆나무의 메뉴 구성은

사실 그녀는 요리를 배우면서 메뉴를 짰다.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남들과 같은 양식을 내지 말자. 그리고 정말 착한 밥상, 소박하지만 엄마의 손길 같은 메뉴를 만들자고 다짐한다. 물론 화학조미료도 버렸다.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인 게 지름길이라고 믿었다. 머리굴리는 스태프도 멀리했다. 다들 그녀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로 조리팀을 짰다. 맨 처음 친정에서 해먹었던 떡갈비를 양식풍으로 편집했다. 설탕 대신 꿀과 매실청 등만 넣고 양파 등 채소도 넣지 않고 오직 등심만으로 만든 햄버거스테이크 같은 ‘떡갈비’를 론칭했다.

“제가 음식을 판 것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손님을 초대했고, 손님은 우리한테 대접을 받고 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진정성이 단골에게 각인됐다.

어떻게 보면 가장 엉성한 조리팀이었지만 문 열고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싸이월드와 블로그를 통해 널리 알려진다. 광고를 일절 안했는 데도 온라인 상에서 먼저 어필된다.

이윽고 나무 3인방 메뉴가 태어난다.

떡갈비·스테이크·와플이다.

처음에는 스테이크가 메뉴에 없었다. 워낙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서 배우기 시작한다. 서울을 거쳐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에 있는 요리학교 아르마(ALMA)에 입학한다. 적잖은 시간 손때가 묻은 음식책이 300여권. 그게 홀 주변에 돌담처럼 놓여 있다.

“역시 스테이크의 승부처는 굽기 테크닉이라고 봅니다. 이탈리아 속담에 ‘요리는 배워서 하는 것이고 굽기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녀가 굽기정도를 쉽게 판별하는 법을 알려준다. “엄지와 검지를 마주 붙인 뒤 엄지 아래 근육을 눌러보세요. 좀 말랑 하죠. 그게 ‘레어(Rare)’입니다. 다시 중간지와 엄지를 세게 맞붙인뒤 엄지 아래 근육을 눌러보면 더 딱딱해지는데 그게 ‘미디엄(Medium)’, 마지막 무명지와 맞붙인 뒤 엄지 근육을 누르면 더더욱 딱딱해지는데 그게 경상도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웰던(Well done)’입니다. 하지만 워낙 변수가 많아 말로도, 책으로도 굽기 정도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없어요. 오직 많이 구워보고 감을 익히는 수밖에 없어요. 똑같은 미디엄도 오븐에서 몇 개의 스테이크를 굽느냐에 따라 맛도 엄청 달라집니다.”

저급한 조리사는 바쁠 때 일을 ‘대충 쳐낸다’고 한다. 그녀는 ‘쳐낸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날 기자의 스테이크에는 여느 집과 달리 저며낸 가지가 멜빵처럼 둘러져 있었다. 또한 빵과 감자 대신에 무말랭이와 해바라기 씨앗이 토핑된 주먹밥이 나왔다. 동절기 포항 지역 시금치인 포항초에 버섯과 크랜베리를 치즈와 섞은 그라탱도 계절감이 특출났다. 어디 가도 비슷한 메뉴라인이 아니었다.

특히 와플 마니아는 그녀가 ‘모유’처럼 반죽해 만든, 아이스크림과 각종 과일·메이플시럽이 호위하는 와플세트(1만3천원)를 맛보기 바란다. 와플 책을 6권 정도 보고 고민고민해서 만든 거란다. 조만간 2층 나무 테라스에 자작할 수 있는 허브 전용 텃밭도 만들고 싶단다. 가게를 나온 뒤에도 박 셰프의 웃음이 그림자처럼 따라 오는 것 같았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나무@906’의 ‘One table’ 시스템

돈을 덜 벌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녀는 월~목요일 딱 한 팀만 예약받는 ‘원 테이블(One table)’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녀가 알아서 작품 같은 테이블을 만들겠단다. 오직 한 팀만을 위해서다. 그녀는 셰프의 몸이 편해야 음식도 평화로워진다고 믿는다. 이때 2층 홀은 세미나실·토론장·영화관·전시실·공연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금~일요일은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정상 영업이다. 풀코스 안심스테이크는 3만7천원인데 8천원을 더 내면 빵과 안심, 애피타이저, 핸드메이드 디저트가 더해진다. 와플세트는 1만3천원. 떡갈비는 2만원. ▨예약= (053)981-9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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