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3) 대구 달성군 가창면 ‘돈마을’ 조동범·윤영숙 부부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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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28   |  발행일 2014-02-28 제41면   |  수정 2014-02-28
솔잎돼지갈비·솔잎조림닭…향긋한 내음 솔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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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뒤 제2의 인생을 식당으로 시작한 조동범·윤영숙 부부. 이들은 부산에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로 거처를 옮겨 솔잎돼지갈비 돌풍을 일으킨데 이어 최근 솔잎조림닭으로 더없이 쾌청한 식락세상(食樂世上)을 반죽하고 있다.

이 집 여사장(윤영숙) 웃음소리는 정평이 나있다. 반면 남편은 항상 새색시처럼 발그레하게 미소짓는다. 정전이 되었을 때 촛불이 없더라도 부부의 미소로 홀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백조라도 수면 아래에선 쉴 틈 없이 물갈퀴질을 해야 하듯 그들이 지나온 삶은 녹록지 않았다. 살림살이가 팍팍했지만 부부애로 밀고 나갔다.

IMF 외환위기 때 직격탄을 맞아 사업을 접은 남편 조동범씨(59). 사업지였던 부산에 도저히 머무를 수가 없었다. 1998년 사업을 접고 가족과 함께 청도로 놀러왔다. 만추였다. 부부는 팔조령 아랫마을 남지장사 가는 길 양 옆 은행나무의 자태에 매료된다. 아내는 이렇게 예쁜 은행잎이 있는 동네에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덜컥 남지장사 근처 최정산 해발 550m 고지 계곡 자락에 눌러앉아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식당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전원에서 재기의 날만 키워나갔다. 어느 날 남편이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아내에게 “우리 식당하자”라고 말했다. 평소 미식가였던 남편. 집에서 즐겨 해먹던 돼지고기 메뉴가 몇 가지 있었다. 그 메뉴로 가보자고 했다. 결국 말이 씨가 되었다.


IMF 외환위기때 직격탄
우연히 가족과 놀러 온
남지장사 부근 마을 매료
“우리 식당이나 해볼까”
남편 제안으로 덜컥 시작
약용으로 먹던 솔잎식초
특별한 소스 곁들여
돼지갈비요리에 접목
솔잎향의 밥도 입맛 자극


그런데 고기는 누가 굽지? 남편이 자기가 굽는다고 했다. 자연스레 아내는 나머지를 책임졌다. 그날로 작전에 돌입했다.

상호는 ‘돈마을’로 했다. ‘돌고 도는 돼지 같은 돈 인생, 고기 먹고 행복하자 잘살자’란 의미다. 둘은 정말 왕초보였다. 식당의 ‘식’자도 몰랐다. 테이블 20여개, 그럼 방석이 80개, 한꺼번에 다 씻으려면 여벌로 80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모두 160개를 구매할 정도로 요령이 없었다.

미래는 극도로 불투명했다. 항상 1년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업종으로 갈 요량이었다. 1년 하니 조금 더 견디면 될 것도 같아 3년을 더 했다. 완전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간 꼴이다. 하지만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지치지 않는 아내의 옹달샘표 미소와 수더분함이었다. 그녀에겐 천적이 없었다. 아무리 까다로운 손님도 다 살갑게 대했다. 돼지갈비가 덜 굽혀 핏물이 돌아도 여 사장의 애교에 모두 다 쓰러졌다.

처음 있던 백록 마을은 6개월은 봄·여름이고, 나머지는 거의 겨울이다. 식당 장소로는 상당히 열악했다. 힘이 들 때면 남편이 기운을 돋운다. “무슨 일이라도 적어도 10년은 해야 뭔가가 이루어진다.”


◆ 히든카드 메뉴는 솔잎돼지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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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마을의 오늘을 있게 한 솔잎돼지갈비.

수호천사 메뉴는 역시 솔잎돼지갈비였다. 솔잎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는 늘 혈압이 좋지 않았다. 남편은 항상 자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미안했다. 그래서 혈압에 좋다는 솔잎효소식초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다. 다행히 근처에 조선솔이 널려 있었다. 아는 손님이 소개를 해줘서 봉화 청량사에서 솔바람차 담그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걸 응용해서 솔잎식초를 약으로 먹다가 음식과 접목시켰다. 처음에는 솔잎이 등장하지 않았다. 참숯통돼지갈비를 냈다. 그러다가 솔잎돼지갈비로 갈아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닭도 등장시키고 잉어찜에도 도전했다. 잉어는 근처 연못에서 키운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촌극이 있다.

개업을 하니 지인들이 꽤 모였다. 다음날 손님 100여명이 밀어닥칠 줄 알았다. 세상 물정에 달통한 이웃이 와서 “당신들 내일 할 일 없을 거니까 우리 집에 와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속으로 무슨 소금 뿌리는 소린가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웃의 예상이 적중했다. 정말 한 명도 안 왔다. 아차 싶어 동동주와 ‘찌짐’을 가지고 이웃을 방문했다. 그 이웃이 지금까지 부부를 도와주고 있다. 부부의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을 넘겼다. 나름의 메뉴라인도 형성되었다. 단골이 찾아오기에 너무 먼 곳에 있어 현재 자리로 이사를 한다. 2010년이었다. 잉어찜 대신 솔잎조림닭이 들어왔다.


◆ 방 안에 우물이 들어온 사연

돈마을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어도 좋을 우물이 있다. 그것도 홀 안에 있다. 설계 과정에서 우물을 살린 것이다. 지금 이 물은 육수를 끓일 때나 허드렛일에 사용할 물 등으로 두루 활용한다. 남편은 서각에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집 안팎에 10여점을 걸어두었다. 돈마을은 각종 효소통이 한가득이다. 집 안팎에 100여개가 놓여 있다. 모두 솔잎과 매실 효소를 담갔다. 채소는 웬만한 건 근처 텃밭에서 키워서 쓴다. 배추도 일부는 재배한다. 현재 부부가 전체 일의 90%를 직접 해결한다. 그래서 사생활은 모두 반납했다고 보면 된다. 1년 중 명절 포함 나흘 논다.

식당하려는 사람에게 한마디 한다.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남들이 한다고 덩달아 하면 망한다. 처음부터 잘되는 일은 없다. 한 번은 절벽에 직면한다. 이때가 기회인 것 같다. 일을 시작하면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코피도 나고 목 디스크도 오고 앉으면 잠이 쏟아진다. 이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근육도 다 길들여져 편해진다.”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남편은 냉장고 체크리스트부터 식재료 재고 상황 및 김장하는 날과 장 담는 날까지 일기처럼 적어둔다. 그게 돈마을의 사초(史草)다.

정말 부부애가 중요하단다. 마치면 반주도 한 잔 하고 덕담도 한다. 남편은 15년간 영화를 단 한 편도 못 봤는데 최근 아내와 ‘변호인’을 봤단다. 집에 오니 새벽 두 시.

지난 26일부터 홀 분위기와 메뉴가 겨울을 벗고 봄으로 갈아입었다. 남편은 염도계를 갖고 모든 메뉴의 염도를 살핀다.


◆‘돈마을’ 메뉴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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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닭과 솔잎이 특제소스와 궁합이 잘 맞는 솔잎조림닭.

솔잎이 곳곳에 포진한다. 솔잎돼지갈비는 출시 당시 삼겹살이 득세하는 대구에서는 절대 성공 못한다고 했는데 특제 소스와 냄새 제거 노하우 때문인지 성공했다. 차돌도 쇠불판 위에 깔아 식탁에 낼 때 먹기 좋게 낸다.

솔잎조림닭은 전통 간장조림닭의 변형인 것 같다. 매일 밤에 다음날 사용할 닭을 주문한다. 오전 5시에 물건이 온다. 토종닭 육질은 다 비슷하지만 여기 소스는 남다르다. 너무 달지도 않고 적당하게 청양고추의 기운이 들어 있다. 마늘, 양파, 생강, 열두 가지 한약재 등을 넣고 4시간 우려내고 거기에 특제간장소스와 솔잎식초를 적당량 넣고 이틀간 숙성한다. 이 레시피를 완성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부부의 입맛에 맞추었다. 아니다 싶어졌을 때 아직 원형의 입맛을 가지고 있던 자식 혀의 도움을 받았다. 식재료는 물론 재료 간 비율도 수십 번 바뀌었다. 아이는 부모 때문에 하루 세 끼를 돼지갈비로 해결할 때가 많았다. 처음에 들어갔던 키위와 파인애플, 너무 강한 향을 가진 청궁과 당귀는 미량으로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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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물러질까 우려해 젓갈을 넣지 않고 담근 잘 숙성된 통배추김치.

이 집 김치는 반가의 백김치 같다. 젓갈도 뺐다. 김치를 쉬 무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약 2천포기를 담갔다.

해물파전도 여느 집과 구별된다. 보통은 밀가루 냄새가 나고 식용유 냄새가 입맛을 흐리게 만든다. 중력분을 한번 볶아 밀가루 풋내를 날린 후 사용한다. 반죽할 때 표고버섯 꼭지가 들어간 천연 육수를 넣어 깊은 맛을 더했다.

무척 많은 장아찌를 만들어봤지만 결국 살아남은 건 깻잎·우엉·고추·무장아찌뿐이다. 장아찌는 매력 있어 보이지만 어떤 메뉴와 만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깻잎장아찌의 경우 생것으로 만들면 향은 진한데 식감이 별로다. 고민한 끝에 3개월 정도 삭혔다. 끓인 장물도 원래 식혀 붓는데, 처음엔 막바로 붓고 다음부터 식혀 부었다.

밥도 인상적이다. 솔잎향이 감돈다. 여느 밥보다 훨씬 쫀득하고 점착력이 남달랐다.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항상 햅쌀만 구입하고 밥도 한꺼번에 많이 짓지 않고 자주 한다. 그래야 누룽지가 풍부해지고 구수한 숭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휴무는 명절 전날과 당일. 오픈은 오전 11시30분, 닫는 시각은 밤 9시. (053)767-1889.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915번지.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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