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5) 대구 달서구 두류동 ‘조선육개장’ 부부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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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14   |  발행일 2014-03-14 제41면   |  수정 2014-03-14
강렬한 ‘붉은 기운’ 뒤엔 푹 곤 사골육수와 알싸한 고춧가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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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솥에서 나와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사태살. 주인은 이걸 일일이 찢어 낸다.

지난해 4월1일 대구 육개장 업계에 도전장을 낸 업소가 있다.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육개장 전문점인 ‘조선육개장’을 찾았다. 상호가 자못 진지하고 도발적이다. 한반도 바탕에 깔아놓은 ‘조선 38 육개장’이란 빨간색 상호가 금세 침샘을 자극한다. 예전 같았으면 ‘조선’이란 단어 때문에 모르긴 해도 정보기관의 사찰을 받았을 것이다. 오너셰프 부부의 첫인상이 조금은 애처러워 보인다. 하지만 ‘악발이 정신’으로 진군한다. 가게는 북향. 그래서 점심 무렵인데도 어둑하다. 하지만 가게 안은 다른 세상이다. 정남향 분위기다.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이마에 돋아난 구슬땀을 연신 훔쳐내며 내국인보다 더 맛있게 먹고 있다. 국제적 맛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희한하게 나이 든 손님보다 젊은 층이 더 강세를 보인다. 쇠고깃국이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란 통념이 여기선 적용되지 않는다.

점심을 조금 넘긴 시각.

홀 한편에선 새색시처럼 생긴 박혜진 사장이 방금 푹 삶겨 나와 김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사태살을 결대로 찢어내고 있다. 여느 국집에선 자주 목격하기 힘든 광경이다.

한사코 지면에 소개되길 거북해하는 남편. 그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비장했다. 뭐랄까, 전장으로 나가는 장수한테서나 느껴지는 그런 비장감이다. 그는 육개장을 만나기 전 지인한테 큰 ‘봉변’을 당했다.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자살 직전까지 갔다. 벼랑 끝에서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를 보는 순간 ‘살아남아야 된다’고 자기를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팔도의 유명 육개장 섭렵
고진감래끝 명품육수 창조
사태살 결대로 찢어 끓여
곰탕·쇠고기국·육개장
섞어놓은 듯한 감칠맛 자랑


◆ 조선육개장 맛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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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유명 쇠고기국밥과 육개장류를 사전 점검한 뒤 자신만의 사골 육수 빼기 비법으로 탄생시킨‘ 조선육개장’.

조선 육개장 만들기 프로젝트의 1단계는 친정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림 육개장 레시피를 전수받는 것.

일단 국일따로, 진골목식당, 옛집육개장, 벙글벙글, 온천골 등 대구의 육개장 관련 명가를 모두 방문해 맛과 식재료 분석에 들어간다. 그런데 자신들이 생각하던 그 맛이 아니었다. 다들 쇠고기국밥 스타일에 머물고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이 찾는 그 육개장 맛을 위해 시식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렇게 해서 문배동 육칼국수(서울), 소담골(인천), 조선의 육개장(서울) 등을 비롯해 부산, 전라도 순천, 경남 울산시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업소를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정확한 레시피를 전수할 식당주는 없었다. 그냥 방문 업소의 인테리어, 메뉴구성, 레시피와 맛의 상관관계 등을 육안으로 체크한다.

거의 1년간 혀가 얼얼할 정도로 팔도의 명품 육개장을 체험했다. 뭔가 감이 왔다.

2단계는 사골로 육수 추출하기.

사골 육수 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실제 끓여 보니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불관리를 잘못해서 뼈와 고기가 탔다. 물이 너무 많아 맹탕으로 추락하기 일쑤였다.

사골에 포함된 골수 성분을 효율적으로 뽑기 위해선 가열 방식을 새롭게 조정해야만 했다. 일단 초벌로 5시간 정도 끓였다. 초탕용 사골에 물을 붓고 다시 3~4시간 중탕해서 육수를 뽑는다. 그 뼈에 다시 물을 붓고 3시간 끓여 3차 육수를 낸다. 농도가 각기 다른 육수를 같은 비율로 혼합한다.

“초탕 육수는 너무 진해 먹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두세 번째 육수는 초탕에 비해 맛이 옅어 초탕과 섞어야 제맛이 납니다. 그런데 혼합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육수 혼합비율의 정답을 알아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산고(産苦)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끓기 전까지는 강불로 가고,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간다. 최소 2시간 이상 끓여야 비로소 육수가 진회색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10인분 솥을 갖고 실험을 했다. 자신들이 생각한 그 맛에 도달하지 않으면 계속 실험을 한다.

사골만 뺀다고 일이 다 되는 게 아니다. 그 육수를 갖고 국을 끓여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은 전쟁이다. 파, 토란 등 각종 식재료를 알맞게 삶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왜 육개장 제대로 끓이기가 어려운지를 알 것 같았다. 한우 사골값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잡뼈를 섞어 끓여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맛이 형편없었다.

“통상 곰탕 육수는 누른색이고, 설렁탕은 뼈를 위주로 끓여서 하얀색이고, 사골만 갖고 끓이면 절대 우유처럼 뽀얀 빛이 될 수 없습니다. 회백색에서 멈추고 맙니다.”


◆ 시행착오 거듭한 국 끓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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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진 남편이 회심의 일작으로 만들기 시작한 육개장의 메인 재료인 사태살을 실올처럼 결대로 찢어내고 있는 아내.

천신만고 끝에 사골육수가 태어났다.

그 육수에 어떤 재료를 넣어 국을 끓일 것인가가 난관이었다. 메인 부재료는 대파·토란줄기·고사리. 거기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대령했다.

“대구식 육개장에는 무가 인기 재료인데 저희집에선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렁한 무의 식감이 고밀도 육수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고춧가루도 정말 중요하다. 중국산을 사용하면 금세 가루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마늘도 한꺼번에 많이 구입해 냉동실에 보관해 사용하면 마늘 특유의 향이 거의 소멸된다. 비싼 국내산 마늘을 당일 국을 끓일 때 전격적으로 투입한다. 대파는 역시 동절기용이 제격. 손님이 뜸한 오후에 대구시 북구 매천시장으로 가서 40~50단 사 갖고 온다. 파뿌리는 육수 뺄 때 넣는다. 그럼 기름기의 텁텁함과 느끼함이 상당히 상쇄된다. 처음에는 안 넣다가 나중에 시행착오 끝에 넣게 됐다.

토란대 갈무리도 난관 중의 난관. 씹는 느낌이 좋지만 너무 많이 삶으면 물컹해지고 덜 삶으면 질겨진다. 이 감각이 하루 아침에 터득된 게 아니다. 1시간 정도 끓여 찬물에 헹구고, 적당량 썰어둔다. 특히 중국산 토란대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 여느 식당에서 선호하는데, 껍질을 제대로 벗겨 독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을 먹으면 너무 아려 식도가 마비될 수도 있다.

사태살은 고령에서 들어온다. 삶은 뒤 매일 오후 2시쯤 아내가 일일이 찢어놓는다.

“지역의 육개장은 식칼로 고기를 썰어 끓이는데, 역시 전통 육개장은 개장처럼 고기를 결대로 찢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다른 메뉴가 별로 없고 육개장 하나에 매달리니 일일이 수작업으로 고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대구의 가정식 쇠고기국밥에 애용되는 숙주나물도 식감이 고사리만 못해 뺐다. 서울에서 많이 사용하는 당면과 계란 등은 국물을 텁텁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양념도 진국처럼 뺐다. 10여 가지 약재에 고춧가루 등을 넣고 빚었는데 개업 후 4~5개월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손님들은 덜 짜게, 덜 맵게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 기준이 제각각 달라 망연자실했다.

“주인은 남의 지적에 민감하면서도 부화뇌동하면 안됩니다. 줏대를 가져야 합니다.”

국은 백철솥에서 매일 200인분 끓인다. 육수에 마늘만 빼고 부재료를 한꺼번에 넣는다. 물, 불, 사골, 식재료, 양념 등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염도는 9%로 정했다. 매운맛도 두 종류(보통맛과 매운맛)로 차별화했다. 손님의 스타일에 맞도록 배려한 것. 손님이 많을 때에 대비해 한꺼번에 400인분도 끓였는데 맛이 급감했다. 그래서 한때 단골을 많이 잃기도 했다. 초심과 기본을 지키는 게 맛의 원천이란 걸 알았다.

이 집 육개장 표면엔 벌건 기름이 강하게 형성된다. “기름 맛도 좋아야 되죠. 사골기름과 고춧가루가 연출한 붉은 기운이니 몸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상당수 식당에서는 단가만 생각해 공장에서 나온 저렴한 짝퉁 고추기름을 사용한다. 기름이 육개장 진미를 가릴 수밖에 없다.


◆ 고진감래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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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건 기름이 식감을 돋우는 ‘조선육개장’.

일단 부부의 열정에 한 표 던진다. 곰탕과 쇠고깃국과 육개장을 섞어 놓은 듯한 아주 육중한 육개장.

자기만의 조선육개장 레시피 매뉴얼이 완성되던 밤. 부부는 부둥켜 안았단다. ‘고진감래(苦盡甘來)’였을 것이다. 이들은 지인에게 오픈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승부는 불특정다수를 향해야 빨리 난다고 믿었다. 맞는 말이다. 특별한 맛 때문에 이런저런 데서 체인점을 내달라고 하지만 부부는 거부했다. 현재는 이 집 하나만 지키자고 다짐했다. ‘주인이 먹지 않는 육개장, 결국 남도 등을 돌린다’고 생각해 하루 한 끼는 반드시 자기 육개장을 먹는다. 당연히 그래야 된다. 여기 단골층은 10~70대. 나이 제한이 없다. 한 그릇 6천500원. 연중무휴.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다. 부디, 초심(初心)이 영원하길…. 대구 달서구 두류동 470-16. (053)295-331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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