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9) 들안길 설렁탕 전문점 ‘동이옥’ 김동진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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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2   |  발행일 2014-05-02 제41면   |  수정 2014-05-02
30대 오너셰프의 패기 “망하더라도 뼈든 고기든 100% 한우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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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갓 서른을 넘긴 김동진 사장이 1시간 마다 곰실에 들어가 바닥에 가라앉은 사골 등 각종 뼈를 뒤섞어준다. 그래야 잘 눋지 않는다. 고는 시간은 모두 12시간.

탕(湯)과 국(羹).

그 사이에 한식의 모든 스펙트럼이 다 펼쳐진다.

특히 설렁탕과 곰탕은 식품 사학자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 어원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작고한 칼럼니스트 이규태가 설렁탕 담론 공론화에 제일 적극적으로 나섰다. 설렁탕은 조선조 임금의 풍년 기원의식인 ‘선농제(先農祭)’에서 기원했다고 해석한다. 선농제는 후에 서울 동대문 밖 제기동과 전농동의 동명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봄엔 선농제, 입하 첫 해(亥)일엔 ‘중농제’, 입추 후 첫 해일엔 ‘후농제’를 지냈다. 동대문 밖에 전 서울대 사범대 구내에 ‘선농단’을 세우고 그곳에서 공식 의례를 봉행했다. 제사 때 희생될 소는 명륜동 전생서(典牲暑)의 백정이 잡았다. 성종실록엔 선농제 제례 절차까지 나와 있다.

‘임금님에게 술을 바치고 탕을 올린다. 희생된 소를 탕으로 빚어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 만복이 고루 펼쳐진다.’

‘선농단에서 먹었던 탕’이란 의미로 설렁탕의 어원을 정리했다. 요즘 일반 식당에서도 이 대목을 인쇄해 많이 붙여놓는다.

푸드채널에선 언뜻 구별이 잘 안 되는 설렁탕과 곰탕을 비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를 물어보면 얼른 답하기 쉽지 않다. 한국 음식문화사의 태두격인 고 이성우 교수는 18세기 외국어 학습서를 인용, 중국어나 몽골어에서 고기 삶은 국물을 의미하는 말 ‘공탕(空湯)’을 곰탕의 어원으로 봤다. 또 공탕의 몽골어 말소리인 ‘슈루’가 설렁탕의 어원일 것으로 추정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소설이나 잡지, 조리서에는 설렁탕에 대한 언급이 많다. 1924년에 나온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도 나온다. 곰국(탕)과 설렁탕을 구별해 따로 언급한 조리서는 40년에 나온 손정규의 ‘조선요리’가 처음이다.

곰국은 ‘사태, 쇠꼬리, 허파, 양, 곱창을 덩이째로 삶아 반숙되었을 때, 무와 파를 넣고 간장을 조금 넣어 다시 삶는다. 무르도록 익으면 고기나 무를 꺼내어 잘게 썰어 열즙(熱汁)에 넣고 호초(胡椒)와 파를 넣는다’고 하였다. 설렁탕은 ‘우육(牛肉)의 잡육, 내장 등 소의 모든 부분의 잔부(殘部)를 뼈가 붙어 있는 그대로 하루쯤 곤다. 경성지방의 일품요리로서 값싸고 자양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쉽게 구별하면 사골 등 각종 뼈를 갖고 국물을 만들면 설렁탕, 소와 양 등 살점을 축으로 국물을 내면 곰탕으로 보면 된다. 설렁탕은 곰탕보다 더 뽀얗다.

서울경기권에서는 설렁탕이 강세지만 대구권은 따로국밥 등 대구식 육개장이 더 강세다. 대구의 설렁탕 명가로는 종로초등학교 뒷문 근처에 있는 부산설렁탕, 경상감영공원 곁에 있는 마산설렁탕 등이 거론된다.

곰탕은 현풍의 박소선 원조 곰탕과 달성공원 근처에 있는 한우곰탕 등이 선두 그룹이다. 그런데 갈수록 곰탕과 설렁탕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소머리곰탕이 이 두 스타일을 합친 것 같은데 의성의 ‘남선옥’, 청도 풍각시장의 ‘수구레국밥’ 등이 유명하다. 경산시 하양읍 하양시장 문패 없는 할매 소머리국밥집을 지키고 있는 욕쟁이 김순남 할매를 본 지도 거의 8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계신지 조만간 나들이를 해봐야겠다.


‘음식값은 내리지 않으며
대신 음식맛은 올리겠다’
식당 캐치프레이즈 눈길
고기와 국물 밀당하듯
농밀하고도 심플한 맛
식자재 실명제도 신뢰감


◆ 30대 설렁탕집 주인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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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옥의 대표주자 메뉴인 설렁탕. 100% 한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지만 국물맛 등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설렁탕 약세인 대구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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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고서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푸드스토리텔링 가득한 동이옥 메뉴판.

최근 들안길에 다크호스 설렁탕집이 하나 태어났다.

설렁탕 전문점 ‘동이옥’이다. 김동진 사장(31)은 영남대 언론정보학과를 나오고 ROTC46기로 임관했다. 한때 보광훼미리마트(현 CU)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하지만 모두 자기 길이 아니었다. 부친은 대구에선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삼계탕집 사장이다. 그 집의 맛을 간직한 할머니가 너무 연로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탕이 뭔지를 4년간 배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숱한 음식이 들끓는다는 들안길, 눈을 닦고 찾아봐도 설렁탕 전문점은 없었다. ‘그래, 내가 설렁탕집을 차려보자’고 결심한다.

그는 동이옥을 띄우기 위해선 맛과 마케팅을 동시에 성공시켜야 된다고 믿었다.

메인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 100% 한우, 식자재 실명제, 그리고 감동적인 헤드카피를 만들었다.

‘이만한 보약이 없다’와 ‘음식값은 내리지 않습니다. 음식맛을 올리겠습니다.’

분위기에 맞게 매머드 간판을 제작했다. 세로 6m, 가로 15m 크기였다. 내부 인테리어와 홍보물 제작 등은 김시훈씨와 맥디자인의 류언주씨가 맡았다.

좋은 한우를 잡아라. 수소문 끝에 고령의 고령축산 8번 경매인인 23년 경력의 황상훈씨, 와우축산의 김영창씨와 의기투합했다. 설렁탕용 깍두기에 들어갈 고추는 경찰특공대 출신으로 2002년 영양 수비로 들어가 고추농사를 짓는 아버지 후배를 잡았다. 쌀은 서문시장에서 35년째 경북상회를 꾸려가는 권오종 사장의 현풍 이방쌀, 전복은 완도산만 파는 전복마을의 서준수 사장, 이 밖에 냉동상사의 허한식 사장, LG 에어콘의 안용생 사장, 극동주방스텐의 권순삼 사장, 식기세척제는 한국주방기기의 심상성 사장이 책임진다. 식자재 공급 업체 사장의 실명을 고서처럼 생긴 84쪽 한지 메뉴판에 붓글씨로 전부 공개했다.


◆ 나만의 뼈 우려내기

상당수 업소는 가격 때문에 뼈를 한우로 사용하면 고기는 수입품, 고기를 한우로 사용하면 뼈는 수입품으로 변칙 운용했다. 망하더라도 정말 100% 한우만 사용하자고 다짐한다. 김 사장의 좌우명은 ‘기왕이면 정직하자. 노력은 절대 배반 안 한다’이다.

오후 2시에 고기와 뼈가 들어온다.

주방 옆에 250인분 곰용 가마솥 4대가 구비돼 있다. 뼈도 사골만 사용해선 맛이 나지 않는다. 사골과 우족, 잡뼈를 2대 1대 1 비율로 섞는다. 일단 핏물을 잡아야 하는데 끓는 물에 15~20분 데쳐 낸다. 이어 물을 90%가량 채운다.

“뼈를 고아내는 방법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뼈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분홍빛이 감도는 흰색, 그러면서도 골분이 살아 있어야 제대로 된 국물을 만들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온갖 비법이 다 나와 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교과서적으로는 5~7시간 초·재탕한 국물을 섞어 사용하는데 실제 해보니 국물이 싱겁고 겉돌았다. 레드와인으로 말하자면 보디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래선 제값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일단 초·재탕 시스템을 버리고 초탕 한 번으로 끝내고 싶었다. 7시간, 7시간30분, 8시간…. 30분 틈을 두면서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설정했다. 어느 날 12시간이 가장 적당하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강불에 끓여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1시간마다 긴 나무주걱으로 긁어주듯 밑바닥에 가라앉은 뼈를 뒤집어줘야 화근내가 나지 않는다. 모두 12번 그 작업을 해야 된다. 죽을 지경이다.”

이 집은 하루에 두 번(오전 11시와 밤 11시) 완전하게 고아낸 국물을 퍼내 식간통으로 이동시킨다. 배달용은 영하 40℃로 급랭시켜 보관한다. 한쪽 벽면에 육수 체크리스트가 부착돼 있다. “처음에는 가장 완벽한 국물맛이 어떤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다. 적당한 점성이다. 저급한 설렁탕 국물에는 점성이 없다. 국물을 입술에 묻혀도 잘 들러붙지 않는다. 그럼 제대로 고아내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기 걸 먹어보면 입에 쩍쩍 들러붙는다.”

요즘도 그는 하루 한 그릇은 테스트 삼아 시식한다. 너무 진해도 너무 연해도, 너무 가벼워도 너무 무거워도 안 된다. 또한 한우 특유의 향미를 위해 잡내를 잡는 소주를 제외하곤 파뿌리, 생강 등을 일절 넣지 않는다.

뼈를 고아내는 건 어쩌면 쉬울지 모른다. 설렁탕용 고기를 잘 삶는 건 정말 힘들었다.

“설렁탕용 고기는 사태보다는 양지머리가 좋다. 사태는 힘줄이 있고 질기고 잘못 삶기면 푸석푸석 살점이 부서진다. 사태살은 육개장과 수육용으로 사용해야 된다. 10㎏ 양지를 잘 삶아 모양 좋게 썰어내려면 일단 삶기 전에 잘 해체해야 된다. ㎏당 2만5천원선.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도편수는 나무의 결을 정복해야 하듯 설렁탕 주인도 고기 특유의 결을 잘 역이용해야 성공한다. 주방에서 3개월 용맹정진하듯 고기 납품업자와 경매인에게 매달려 고기 삶는 법을 배웠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TIP

사전취재를 위해 몇몇 미식가에게 국물맛을 보게 했다.

다들 ‘원더풀’을 외쳤다. 기자도 최근에 먹어본 설렁탕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농밀하면서도 심플했다. 서울 최고의 설렁탕집인 이문설렁탕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100% 한우 설렁탕을 9천원에 주면 사실 남는 게 거의 없다. 1만7천원짜리 도가니탕은 ‘한약’ 같았다. 고기와 국물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향긋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당수 식당은 국물과 고기가 따로 논다. 여긴 일심동체다. 30대 주인이 이런 국물맛을 내고 있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았다. 혹시 ‘작전세력’이 투입된 게 아닐까 살펴봤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이 국물맛을 유지하지 못하면 추천 오너셰프 식당을 취소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취재에 들어갔다.

동이옥은 화학조미료통을 식탁 한편에 자신있게 비치했다. 용감한 결단이다. 요리할 때 절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입구에 휴대폰 충전기 12대를 비치했다. 화장실도 장애인 혼자 사용할 수 있게 자동문을 달아주었다. 식탁 아래에 별도의 수저보관 서랍도 만들었다. 20주 이상 된 임신부는 1천500원, 장애인은 전 메뉴 1천500원, 3명 이상 경차를 타고 오면 3천원을 할인해주고, 65세 어르신 3명 이상 차를 타고 오지 않으면 전 메뉴 20% 할인. 설렁탕 한 그릇 9천원. 24시간 영업. (053)762-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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