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냉면 IN & OUT (상) 쫄면같은 냉면 유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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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30   |  발행일 2014-05-30 제41면   |  수정 2014-05-30
고무줄처럼 질기고 질긴…대구의 냉면이 부끄럽습니다
20140530
대구의 냉면집 대부분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면을 똑같은 걸 쓴다. 동일한 면을 물에 넣으면 물냉면, 고추장 소스를 넣고 비비면 비빔냉면이라고 해선 안된다. 물냉면의 면은 본디 툭툭 잘 끊어져야 제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대구의 물냉면은 쫄면처럼 질긴 면이 대부분이다.

‘대구냉면’에 대해 쓴소리를 해봐야겠다.

서울·강원도권은 조금 낫지만 경상도, 특히 대구는 지금 원형에서 너무나 멀어진 ‘죽은 냉면’을 먹고 있다. 그냥 최면에 걸려 ‘냉면은 원래 이런 맛’이라면서 조건반사적으로 먹고 있다. 대구에선 메밀로 냉면을 만드는지, 전분으로 냉면을 만드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대구냉면은 냉면 마니아로부터 ‘기본에서 너무 멀어졌다’란 지적을 받는다.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해보자.

언젠가부터 대구냉면은 고무줄만큼 질겨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식초도 너무 짙다. 수제와 달리 공장표 냉면은 더욱 질기게 하기 위해 소다까지 집어넣는다. 이런 냉면을 먹으려면 가위를 동원해야 된다. 가위도 왜 하나같이 ‘공업용’인지 모르겠다.


◆ 대구사람…냉면을 쫄면으로 착각

대구는 솔직히 냉면을 쫄면으로 착각한 것 같다.

인천에서 태어난 쫄면이 대구에도 상륙해 70~80년대 엄청난 붐을 일으킨다. 젊은이에게 폭발적이었던 쫄면문화를 대구냉면이 벤치마킹을 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쫄면같이 질긴 대구냉면이 더욱 강세를 보인 것 같다.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은 대구의 물냉면과 비빔냉면에 사용되는 생면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건 냉면문화를 절벽으로 내모는 처사. 물냉면과 비빔냉면은 비슷한 메뉴가 아니다. 그런데 그걸 동일하게 취급하는 주인이 의외로 많다. 탄생 배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냉면의 메카 평양 인근은 메밀이 흔했고 척박한 함경도 함흥에는 감자와 고구마가 흔했다. 고구마는 1768년 일본에서, 감자는 1824년 만주로부터 전해진다.


대구 냉면은
비빔냉면에 넣는 면을
물냉면에도 쓰는 오류
쫄면처럼 질겨 제맛 못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공장에서 만든 면 곤란
메밀 비율 대폭 늘려야
물냉면 질기지도 않고
특유의 메밀향도 가득
자체 온육수·면수 확보도


물·비빔냉면은 물성이 각기 다르다. 자연히 육수와 소스, 고명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면을 물에 넣으면 물냉면, 고추장 소스를 넣고 비비면 비빔냉면이라고 해선 안 된다. 그건 밀로 만든 소면을 먹을 때 적용하는 게 더 낫다.

물냉면의 육수가 차가운 만큼 면은 식감적으로 볼 때 채썬 묵사발처럼 툭툭 잘 끊어져야 제맛이다. 그런 질감을 느끼기 위해선 반드시 메밀가루를 70% 이상(강원대학교가 메밀 70%에 밀가루나 고구마 전분 30%를 섞을 때 사람들 입맛에 맞다는 용역보고서를 낸 바 있다) 사용하는 게 좋단다.

비빔냉면은 비벼 먹어야 하니 면이 쫄깃해야 한다. 그 쫄깃한 식감을 더욱 풍성하고 오래 즐길 수 있도록 가자미·명태식해, 아니면 진주냉면처럼 육전 등을 올려야 한다. 당연히 비빔냉면에선 메밀이 아니라 전분(감자가 고구마보다 조금 더 비쌈. 북한에선 감자전분, 남한에선 고구마전분이 더 대중적)을 주재료로 올려야 한다.

이제 단골 식당에 가서 과연 그런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게 잃어버린 ‘냉면 주권’을 되찾는 길이다. 상당수 유명 식당주는 단골은 항상 오는 것, 그러니 자기는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그러니 요리를 작품처럼 대하는 일본의 수백년 된 소바집 주인을 따라갈 수 없다.


◆ 그럼 정통 냉면집은 어때야 하지

향후 대구냉면은 이렇게 변해야 된다.

냉면 전문점이라면 일단 면을 다른 업자한테 납품받아선 절대 안 된다. 대다수 번거롭고 가격이 비싸질 것 같아 면을 제면공장, 식자재상회 등으로부터 받아서 사용한다. 여기서부터 불합격이다. 냉면전문가라고 하면 직접 자기만의 메밀·전분 혼합비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철학이 없으면 그 비율을 못 찾는다. 그냥 누가 하는 대로 카피한다. 물론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맘으론 절대 명품 냉면이 탄생할 수 없다.

전문점은 일정한 단골, 일정한 물량, 일정한 레시피 라인을 형성해야 된다. 그런 곳은 가격은 비싸다. 비싸야 맛있는 걸 너머 제대로 된 명품 냉면을 먹을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냉면집은 서울 강남 서초동 1333 토아텔 1층에 있는 벽제갈비 직영 ‘봉피양(‘평양 본가’란 북한 사투리)’인데 메밀 100% 순면 1인분에 1만6천원. 전분이 30% 섞인 건 1만2천원이다. 서울 평양냉면의 지존인 우래옥에선 100% 순메밀 냉면을 1인분 1만3천원에 판다. 물론 제대로 된 것이니 건강에도 좋다. 그런데 대구는 자꾸 맛만 고집하면서도 가격은 싼 걸 원하니 업자도 살아남기 위해 ‘죽은 재료’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안이 있다.

국내산 메밀로 만든 냉면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수요공급상 국내산 메밀은 가격이 초고가라서 웬만해선 선택할 수 없다. 물량도 한정돼 있다. 강원도 춘천막국수 영농조합법인도, 서울 봉피양도 수입산이다. 국내산 메밀을 대중화시키는 길은 소비자가 지갑을 더 풍족하게 열어주는 것이다. 지갑을 덜 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한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고려청자처럼 빚은 보석 같은 냉면이라면 기자는 1인분 10만원이라도 먹고 싶다. 일본 교토의 명품 소바집에서 5명이 정통소바를 튀김류와 곁들여 먹으려면 1인분 최소 5만원 이상은 각오해야 한다.

물냉면은 절대 질겨선 안 된다.

상대적으로 비빔냉면은 질겨도 된다. 이제부터 대구에서 이런 원칙이라도 준수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물냉면용 메밀 비율을 팍 올려야 한다. 예전에는 기술이 안 좋아 메밀 100%로 반죽을 하면 잘 끊어져 면을 잘 만들 수가 없었다. 응집력을 위해 전분을 접착제처럼 일정량 섞었다. 그런데 이젠 익반죽 기술이 좋아 잘 끊어지지 않는다. 춘천의 일반 막국수 집에선 8천원짜리 100% 메밀 냉면도 판다.

참고로 일본에선 ‘니하치소바(二八蕎麥)’라 해서 메밀과 밀가루를 8대 2 비율로 섞은 걸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한다. 100% 메밀가루만 사용하면 ‘나마코우치소바’, 혹은 ‘주와루소바(十割蕎麥)’라 한다.

둘째는 ‘온육수’와 ‘면수’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그건 냉면집 주인의 자존심이다. 아니, 문패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다수 식자재상에서 산 육수와 소스로 냉면을 치장하니….

온육수는 쇠고기 각종 부위를 삶은 뜨거운 육수, 면수는 메밀 생면을 삶은 물이다. 일본에선 가츠오부시를 주재료로 만든 조금 짠맛이 감도는 ‘츠유(소바용 조리간장)’는 자작이 의무이다. 일본에서는 메밀 함유량이 30%를 넘지 않으면 소바란 말도 사용할 수 없다. 소바를 츠유에 3분의 1쯤 담가 먹은 뒤 남은 츠유에 면수를 넣어 희석해 디저트처럼 먹는데 이 희석수를 일명 ‘소바유’라고 한다. 일반 일본 간장은 ‘쇼유’라 한다. 츠유와 소바유가 양축에서 소바의 맛을 더욱 깊고 오묘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막국수의 본가 춘천의 ‘샘밭막국수’에 가면 주전자에 동치미국물까지 주전자에 담아 식탁에 놔둔다. 서울 명동 초입 한국 3대 곰탕집 중 한 곳인 하동관의 경우 깍두기국물 담은 주전자를 식초처럼 비치해놓고 있다. ‘평양식 동치미 냉면’만 고집하는 서울 무교동 ‘남포면옥’ 초입에는 20개의 동치미 항아리가 빛을 발한다. 명가란 바로 이런 곳이다.

메밀향이 뭔가를 보여줘야 된다. 좋은 국내산 메밀묵에선 특유의 찬 향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대구 물냉면은 도무지 향을 맡을 수가 없다. 거피한 메밀을 롤러로 갈 때, 롤러에서 발생한 열이 메밀향을 또 죽여버린다. 공장 면의 경우 전분을 과도하게 첨가해 또 한번 메밀향을 지운다. 특히 요리할 때 과도한 식초와 겨자를 넣고, 그것도 모자라 깨소금에 참기름, 묵은지 등을 듬뿍 올린다. 물냉면은 그야말로 당면·쫄면으로 전사하고 만다.

다음 편에선 전국 냉면 명가의 비밀 이야기를 담아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대구 냉면’에 실망했다면…여기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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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식 통메밀로 만든 대구시 달서구 대구수목원 근처 풍성메밀의 물막국수. 물막국수는 따뜻한 메밀 칼국수보다 다소 식감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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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권의 대표적 전통음식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의령소바’ 달서구 상인점의 메밀냉소바. 일본식 소바를 베이스로 강원도 봉평막국수와 평양냉면, 진주냉면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대구식 고무줄 냉면과 달리 잔치국수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대구냉면에 실망한 기자는 요즘 일반 냉면집을 멀리한다. 냉면의 비밀을 잘 몰랐던 예전에는 자주 들락거렸지만.

대신 진주냉면과 함께 ‘경남식 냉면’의 선두주자인 ‘의령 소바’의 대구 달서구 상인점의 냉소바, 강원도 원주에서 재배한 메밀을 사용하는 대구수목원 근처 ‘풍성메밀’의 메밀칼국수,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문을 연 ‘니하치’의 일본 본토형 소바로부터 다소 위안을 받고 있다. 물론 이것 또한 기자의 주관적인 취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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