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문경 로컬푸드 마케팅 스토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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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06   |  발행일 2014-06-06 제41면   |  수정 2014-06-06
고추장 대신 ‘지렁’으로 간한 ‘문경 산채비빔밥’ 전국구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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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나무식판에 종가 제사음식처럼 정갈하게 담긴 문경산채비빔밥. 여느 비빔밥과 달리 여기 비빔밥은 말린 나물류를 갖고 만들기 때문에 고추장 대신 지렁(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유기는 문경 출신 방짜유기 인간문화재 이봉주씨가 만든 것이다. 오미자막걸리, 문경사과, 오미자차를 무료로 낸다.

한 농촌 친구가 도시 친구한테 갓 수확한 배추를 수북하게 보냈다.

별다른 인사가 없었다. 농촌 친구는 내내 섭섭했다. 그 다음해는 그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보냈다. 그제서야 도시 친구로부터 “정말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다. 이젠 농작물만으로는 1% 부족하다. 농산물을 식품·음식으로 특화시키면 부가가치도 몇 배 더 증폭한다.

예전에는 농산물 가공은 도시의 몫이었다. 이젠 도시가 아니라 ‘농촌의 몫’이 되고 있다. 농작물을 수확한 즉석에서 가공해 더욱 비싸게 판다. 그 전략을 주도하는 곳은 어딜까? 바로 농업기술센터이다. 센터 부속 향토음식학교와 우리음식연구반의 지원사격을 받은 ‘농가맛집’이 태어난다. 농가맛집은 한국 농촌경제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촌에 놀러가도 먹을 게 없다’는 도시 관광객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중이다.

농가맛집은 도시의 일반 식당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농가맛집은 ‘퓨전농업의 꽃’이다. 도시의 식당은 식당주가 배타적 이익을 누리지만 농가맛집은 식당주는 물론 거기에 식재료를 대는 농가가 동시에 혜택을 입는다. 현재 경북에만 20여개가 성업 중이다.

이제 농부는 일반 농작물만 맹목적으로 팔아선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이 대목에서 ‘6차 농업’을 주시해야 된다. 1차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만 생산하는 것, 2차 농업은 조리가공만 하고, 3차 농업은 농촌체험·농촌관광·농산물유통을 원스톱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 모든 고리가 하나로 돌아가게 만드는 게 바로 6차 농업이다. 농촌 스스로 로컬푸드의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이다. 영국의 슬로푸드운동, 미국의 딜리셔스 레볼루션(Delicious revolution),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 프랑스의 미각살리기운동, 미셀 오바마의 텃밭운동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문경사과 팩에 담은 즙 판매…잼·칩·식초로도
오미자로 막걸리·와인·초콜릿·젤리 등 만들어


◆ 경북은 6차 농업 프런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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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농업기술센터 농산물가공담당 김미자 계장이 문경 사과의 위상을 전국적으로 높여준 사과즙인 ‘백설공주가 사랑한 문경사과’를 보여주며 이제 농촌도 농작물 생산에서부터 가공과 식당화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져야 된다고 강조한다.

경북은 ‘대한민국 농업 1번지’.

특히 사과, 복숭아, 오미자, 감, 포도, 자두, 대추, 참외, 수박, 포도, 마 등 대다수 과일류는 경북이 최고의 산지로 각광받는다. 도내 23개 시·군 중 문경의 연이은 로컬푸드 마케팅 성공사례는 후발주자에게 배울거리를 제공한다.

점촌을 품은 문경시.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탄광도시였다. 38개에 육박했던 탄광이 다 죽는다. 1994년 은성탄광 하나 만 남는다. 문경 지역경제의 절체절명의 순간. 문경 살리기에 나섰다. 관광거리가 될 만한 것을 뒤졌다. 문경새재와 문경찻사발 정도가 고작이었다. 96년쯤 돌풍을 일으킨 문경새재 KBS 대하사극 왕건 세트장으로 관광상품화에 나선 문경새재는 단번에 전국적 문화관광상품으로 떠오른다. 그때 제1관문 식당가의 터줏대감인 ‘소문난 식당’의 새재묵조밥은 예천의 ‘전국을 달리는 청포묵’과 함께 전국적 청포묵 전문 식당으로 주목받느다. 연이어 석탄박물관, 철로자전거 등이 1급 관광상품으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항상 볼거리에 비해 먹을거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하지? ‘없으면 만들면 되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96년 당시 전국 최고의 오미지 산지로 군림했던 전북 장수로부터 오미자를 수입, 동로면 생달1리 생달마을에 보급한다. 처음에는 200여 농가였는데 이젠 1천여 농가로 급증했다. 전국 생산량의 45%를 점하고 있다. 2003년에는 매출액이 고작 50여억원, 지난해는 1천50억원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예전에 오미자는 단순한 한약재였다. 갈수록 생산량은 많고 소비가 늘지 않았다. 죽도록 생산하는데 돈이 안됐다. 한때 문경 오미자 산업이 위기를 맞는다.


◆ 문경 최대 효자농작물 오미자

2003년 농업기술센터가 ‘해결사’로 긴급 투입된다. 센터 내에 ‘문경향토음식학교’를 세운다. 거기서 5가지 대박 콘텐츠를 만든다. 문경약돌샤브전문점, 농가맛집 새재오는 길, 문경산채비빔밥 전문점, 청운주막, 경북전통음식체험교육관인 모심정 등이다. 청운주막은 박정희 대통령의 옛 하숙집인 문경읍내 청운각 앞에 있는데 박 대통령이 평소 즐기던 소고기국밥과 막걸리 등을 판다. 시는 독창성을 지키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문경보통학교(현 문경초등)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던 해인 1937년을 강조해 ‘청운각 1937’이라는 상표를 출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막걸리는 청운각이라는 상표로 출시했다.

2006년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센터 내에 ‘농산물가공담당’이란 부서를 신설한다. 특히 책임자인 김미자 계장은 그때부터 ‘오미자 전도사’로 문경시의원 등을 설득하면서 오미자 식품화 사업에 전력투구한다. 그래서 태어난 게 ‘문경 오미자건강클러스트 구축사업’이다. 덕분에 오미자청, 오미자막걸리, 오미자와인, 오미자초콜릿, 오미자빵 등을 개발했다. 이뿐만 아니라 오미자로 퓌레, 요거트, 젤리, 화채, 백김치, 초고추장, 수제비, 불고기, 칵테일, 차 등을 만드는 레시피를 팸플릿으로 만들어 관광객에게 나눠주고 있다. 문경 식당에 오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식전에 오미자청을 물로 희석해 생수처럼 내놓는다. 반주는 묻지마 오미자막걸리 아니면 오미자와인이었다. 많이 팔리면 그만큼 문경 경제가 살찔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일석이조 로컬푸드 마케팅’이다.

매년 9월20일쯤 수확되는 문경 오미자.

이종기 와인마스터가 이걸 갖고 영농조합법인 오미나라의 대표 브랜드‘오미로제’를 만든다. 이게 2011년 11월 프랑스로 처음 수출된 국내산 와인 1호가 된다.

2009년 센터는 오미자에 이어 문경사과 특화에 나선다.

‘백설공주가 사랑한 문경사과’란 이름을 달고 팩에 담긴 즙을 팔았다. 잼도 만들고 칩, 식초까지 개발했다. APC(사과품질관리 거점 유통센터)에서 사과의 당도와 색도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당도가 13 브릭스 이하면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현재 50여 농가가 이 브랜드를 사용한다.

현재 센터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 문경산채비빔밥, 동화원, 마당바위 등 3개 ‘웰스푼(Well spoon)’업소를 중심으로 ‘힐링푸드밸리조성사업’을 벌이고 내아들밥상, 겨우살이삼계탕 등 군내 20개 업소를 축으로 ‘양백(소백산과 태백산)지간 푸드테라피활성화사업’을 진행 중이다. 문경시 모전동에 있는 겨우살이삼계탕은 특이하게 한약재로 유명한 겨우살이를 주재료로 삼계탕을 요리한다.


◆문경산채비빔밥

2008년 태어난 문경산채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익산황등비빔밥·진주비빔밥·달성군사찰비빔밥·거제멍게비빔밥과 함께 국내 대표 비빔밥으로 등극했다.

일단 메뉴라인을 정하기까지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쳤다. 일단 ‘보기 좋아야 먹기 좋다’고 판단했다. 문경새재호텔 근처 사계절 썰매장 바로 옆에 에 있는 식당은 인테리어에 부쩍 신경을 썼다. 우중충한 관광식당풍에서 벗어났다.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았다. 문경 가은읍에 살고 있는 방짜유기 인간문화재 이봉주씨, 문경 갈평요의 신석용 장인의 도움을 받아 비빔밥은 유기에 담아내고, 곁반찬은 문경산 도자기에 담아냈다. 화가 박한씨는 맛에 반해 직접 ‘문경산채비빔밥’이란 시까지 액자로 만들어 증정했다.

8가지 나물 중 야생 다래순은 문경시 전역에서 채집, 급랭해 1년간 사용한다. 나물값만 1년에 4천만원. 사용되는 나물은 곰취, 도라지, 산나물, 고사리, 다래순, 곤드레, 참나물, 취나물 등이다. 유광희 사장(58)은 “콩나물과 채소류를 축으로 한 일반 비빔밥은 고추장을 넣어도 되지만 묵나물(말린 나물) 비빔밥은 고추장 대신 ‘지렁’(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야 제맛을 느낀다”고 손님한테 설명해준다. 특히 지렁을 담는 에스프레소 잔 크기만 한 도자기 종지는 기자도 10년 이상 전국을 돌면서 처음 봤다. 배즙, 쇠고기, 오미자청 등으로 만든 약고추장도 인상적. 곁반찬은 서리태조림, 돼지감자장아찌, 오미자물김치, 3색전 등이다. 이곳 상은 모두 1인용 나무식판. 오미자막걸리·문경사과·오미자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비빔밥은 9천원·1만5천원· 2만5천원 세 종류가 있다. 지난해 정산결과 3만원 흑자를 냈다. 남는 게 없다. ‘땀’으로 빚은 음식이란 점을 알고 먹어야 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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