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냉면 IN & OUT (하) 전국 유명 냉면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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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13   |  발행일 2014-06-13 제41면   |  수정 201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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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막국수는 북한의 냉면 문화와 강원도 음식문화가 충돌돼 형성됐다. 육수는 춘천, 봉평, 원주, 양양 등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춘천막국수는 면을 만들 때 메밀가루 70%에 고구마전분을 30% 섞는 게 특징이고 일부 전분을 사용하지 않고 100% 순메밀로만 면을 뽑는 곳도 적잖게 포진해 있다.

◆ 남한으로 스며든 북한 냉면 전통

현재 대한민국 국수의 비밀에 대해 밀착취재를 한 음식칼럼니스트는 경남 남해 출신으로 최근 ‘음식강산’(한길사 간)을 펴낸 박정배씨다.

그의 대한민국 국수탐색기는 식도락가라면 한 번 정독할 필요가 있다.

강원도 막국수를 공부하기 전에 일차적으로 남한으로 스며든 북한 냉면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될 것 같다.


다양한 강원도 막국수
영동지방선 동치미 국물
춘천 등은 사골 육수로
평창은 과일로 국물 내

북한 냉면 ABC
냉면은 북한 것밖에 없다?
남한에도 ‘진주냉면’ 전통
함흥냉면·평양냉면 구분
남한 냉면업자의 ‘장삿속’

진주냉면은
원래 상류층 양반의 음식
멸치·새우 등 해산물 육수
쇠고기 육전 고명으로 써


‘냉면은 북한밖에 없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남한에도 냉면 전통이 있다. 바로 경남 ‘진주냉면’이다. 냉면을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으로 가른 건 남한의 냉면업자이다. 많이 팔려고 그렇게 분류했다.

북한에선 겨울에 냉면을 즐긴다. 육수도 평양냉면의 경우 동치미국물이다. 나중엔 꿩육수를 사용한다. 남으로 내려오면서 사골육수가 틈입한다.

북한에는 함흥냉면이란 단어가 없다. 대신 ‘농마면’ ‘회국수’라 한다. 북한은 비빔냉면에도 육수가 있다. 현재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함흥의 냉면집인 ‘신흥관’에서는 함흥식 냉면을 ‘농마국수’라 한다. 농마는 ‘녹말’의 함흥도 사투리. 가자미 같은 수산물을 얹으면 ‘회국수’, 고기를 얹으면 ‘육국수’로 분류된다.

함경도 사람들은 피란 내려와 서울 중구 오장동 부근에 자리 잡았다. 1953년에 ‘오장동함흥냉면’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이 언저리가 서울의 함흥냉면 본거지가 된다. 전성기 때는 오장동에만 20여개의 함흥냉면집이 있었는데 이젠 함흥곰보냉면과 오장동함흥냉면 정도만 남았다.

인천·백령도 인천에도 북한 냉면의 전통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육수에 까나리 액젓을 넣어 진한 단맛이 난다. 부평막국수, 변가네 옹진냉면, 사곶냉면 등이 알려져 있다.

경기도 양평균 옥천면에도 황해도식·해주식 냉면 문화가 꽃피운다. 52년 황해도 출신의 이건협씨가 옥천면에서 ‘황해냉면’을 론칭한다. 면발이 굵고 돼지고기 육수에 간장이나 설탕으로 간을 해서 단맛이 강하다. 옥천냉면(옛 황해냉면)과 옥천 고읍냉면이 이름이 나 있다.

충남 대전의 평양냉면 전통은 숯골원냉면 본점에 남아 있는데, 닭육수와 동치미를 섞은 육수를 사용한다.

경기도 의정부·동두천 일대에는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한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 53년에 창업한 동두천 ‘평남면옥’은 평양 장터의 냉면을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의정부평양면옥은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란 온 홍진권씨가 70년 경기도 전곡에서 냉면집을 창업했다가 87년 의정부로 옮겨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서울의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이 홍씨의 딸들이 운영하는 집들이다. 양지머리를 삶아 기름을 걷어낸 후 차게 숙성시킨 육수에 약간의 동치미 국물을 더하고 고명으로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이 의정부 평양면옥 계열 냉면집들의 공통된 특징.

경기도 평택도 전쟁이 끝나고 평안도·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평양식 냉면이 자리 잡는다. 평남 강서에서 냉면가게를 운영하던 실향민이 53년 ‘강서면옥’을 시작한다. 강서면옥은 58년 서울로 이전한다. 30년대 평안북도 강계에서 ‘중앙면옥’을 운영하던 고학성씨의 아들이 74년 ‘고박사냉면’을 개업한다. 강서면옥과 고박사냉면은 모두 양지머리와 사태살을 삶아낸 육수를 기름을 제거해 맑게 한 후 동치미 국물을 섞고 간장을 살짝 쳐 엷은 갈색이 도는 육수를 만든다.

영주시 풍기면은 경북도에서 실향민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다. 견직물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덩달아 평양식 냉면집들도 장사가 잘됐다. 70년대 이후 견직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냉면집들도 된서리를 맞는다. 지금 풍기를 대표하는 ‘서부냉면’은 평북 운산 출신의 창업주가 73년에 문을 연 집이다.

강원도 속초는 함경도 출신 피란민이 많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던 청호동과, 건너편인 중앙동·금호동에 피란민들이 둥지를 틀었다. 현재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함흥냉면집으로 알려진 함흥 출신이 세운 ‘함흥냉면옥’은 51년 중앙동에 자리를 잡는다. 함흥냉면옥은 ‘속초식 함흥냉면’을 만들어냈다. 감자 전분이 고구마 전분으로 변했고, 냉면의 성격을 결정하는 꾸미가 가자미회에서 명태회로 바뀌었다. 양반댁, 단천식당, 대포함흥면옥 등도 이름값을 한다.


◆ 진주냉면

진주냉면은 평양과 달리 상층부 양반의 전유물이었다.

진주냉면의 명맥은 현재 진주시 봉곡동 서부시장 내 장운서·하연옥 부부, 하거홍·황덕이 노부부로부터 냉면 노하우를 전수해 이어간다.

원래 중앙시장에선 부산식육식당으로 있다가 이어 부산냉면, 나중에 진주냉면으로 명칭이 바뀐다. 이 과정에 전통음식연구가 김영복씨가 진주냉면의 존재를 이들에게 알려준다. 진주냉면의 육수는 다른 냉면과 달리 멸치, 새우, 홍합, 바지락, 표고버섯, 다시마, 문어, 황태 등 각종 해산물로 뽑는다. 이 중 멸치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 흥미로운 건 육수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달궈진 무쇠를 집어넣고 15일간의 숙성절차를 거친다는 것이다. 이때 곰탕 육수처럼 노란 막이 생기는데, 엄청 비려서 걷어내야 제맛이 난다. 석이버섯, 실고추, 오이, 배, 계란, 김치, 황백지단, 그리고 마지막에 진주냉면 고명 중 가장 이색적인 ‘쇠고기 육전’을 올린다. 진주냉면의 면에는 산청산 ‘장밀’이 들어가는 게 흥미롭다. 하지만 진주냉면도 대구냉면과 비슷한 식감을 보여 아쉽다.


◆ 강원도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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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막국수의 모든 걸 알려주고 체험할 수 있는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전경.

북한식 냉면이 강원도 국수문화와 부딪히면서 생긴 게 ‘막국수’이다.

막국수는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춘천과 인근의 홍천·양구에서는 막국수라 한다. 양양 등 영동지방에서는 ‘메밀국수’로 부른다. 원래는 막국수였는데 2000년 오인택 양양군수가 막국수라고 하면 춘천이 떠오르니 앞으로 메밀국수로 부르자 해서 메밀국수가 태어난다.

막국수란 ‘금방, 바로 뽑은 국수’라는 뜻이다. 또 막국수 하면 으레 춘천이 떠오른다.

오리지널 막국수는 비빔장 양념에 비비고 육수를 부어 먹는 춘천식과는 다르다. 육수 대신 동치미에 말아 먹는다. 양양·속초·고성 등지에선 동치미 맛으로 먹는 막국수가 흔하다. 이곳은 6·25전쟁 이전에 38선 이북 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피란민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하다 보니 여전히 오리지널이 강세다. 특히 양양의 경우 산간은 동치미막국수, 해변 쪽은 간장막국수가 유행한다.

속초 공항을 지나 진전사 방면으로 4㎞ 남짓 들어가면 보이는 ‘영광정 메밀국수’가 강원도 동해안권 막국수의 전형이다. 3대째 막국수를 내는 집이다. 영광정은 막국수의 핵심은 메밀국수가 아니라 동치미라 본다. 김장철인 11월에 동치미를 담근다. 무를 깨끗이 씻은 후 소금물에 담그고, 마늘·생강·양파를 넣는다. 배는 넣지 않고, 잡내를 잡기 위해 제피나무(초피나무)를 넣는 게 전부다. 더우면 군내가 나고 추우면 무가 얼어서 물러지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항상 5℃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춘천 막국수는 동치미보다 사골을 곤 육수가 섞인다. 춘천 남부 막국수는 돼지 뼈를 우려낸 육수를 쓴다. 춘천 막국수 1번지로 불리는 40여년 역사의 ‘샘밭 막국수’는 사골을 12시간가량 고아 사용한다. 메밀의 고장, 평창 막국수는 과일로 국물을 만든다. 봉평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막국수’. 사과와 배·양파 등을 갈아 즙을 내 5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원주는 특이하게 메밀을 거피하지 않고 통으로 사용해 면발이 유달리 검은 게 특색이다.

춘천에는 대룡산막국수, 유포리막국수, 장평리막국수, 홍천에는 장원막국수, 인제는 남포면옥과 서호순모밀국수, 속초는 삼대막국수, 고성은 백촌막국수와 핑크빛이 감도는 산북막국수, 양양은 실로암메밀막국수, 송전메밀국수, 문어를 꾸미로 올리는 송월막국수, 주문진의 신리면옥, 강릉의 삼교리동치미막국수, 원주의 황둔막국수, 남경막국수 등을 찾으면 강원도 막국수의 진미를 개괄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콩국수 전문점에 웬 ‘소바’ 간판?

◆ 이색 냉면

전북 전주에 가면 희한하게 콩국수 전문점인데도 소바라는 일본식 메밀면의 이름을 단 가게가 많다. 대표주자는 금암동 ‘금암소바’. 전주시 전주천변 남부시장에 있는 ‘진미집’도 소바콩국수의 원조이다. 음식평론가 박정배씨는 이걸 ‘한국식 국물문화와 일본식 츠유문화의 결합’이라고 분석한다. 경남 의령도 ‘의령소바’로 몸값을 올리고 있다.

밀면은 ‘밀가루냉면’의 준말. 부산밀면도 북한 냉면의 특별한 변신. 다시 말해 북한 피란민이 귀해진 메밀 대신 밀가루를 사용해 밀면을 만든 것이다. 원조는 우암동 ‘내호냉면’. 부산 밀면 대중화의 주역은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밀면’. 최근에는 부산진구 개금동의 ‘개금냉면’도 세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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