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세계 음식을 찾아서(5) 일본1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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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13   |  발행일 2015-03-13 제41면   |  수정 2015-03-13
가이세키는 일본 정통 풀코스 요리…젠사이(식사전 식욕 돋우는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10여 가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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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코스식 정통요리 가이세키는 자리에 앉으면 먼저 메뉴판격인 ‘곤다데(위)’를 나눠준다. 이어 3종 모듬 생선회인 츠쿠리, 맑은 국인 스이모노, 튀김요리인 아부라모노 등이 순서대로 나온다. 샘플로 내놓은 일본 규슈 벳푸 간나와 온천 한 료칸의 가이세키 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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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요리에도 ‘흠’이 있을까. 국내 미식가의 일본요리 찬사가 도가 지나쳐 그 흠을 좀처럼 간파하기 힘들다. 일본은 좀처럼 속에 숨어 있는 내밀한 비밀을 수면 위로 터트리지 않는다. 이면의 마음, ‘혼네(本音)’ 때문이다. 혼네는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속마음(建前)’쯤 되고 이와 대척점에는 ‘겉치레’로 풀이되는 ‘다테마에’가 있다. 일본 가서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가 없다. 가령 일본 요리 장인은 모두 수제 식재료를 사용할 것 같은데 주방에 가면 상당수 타업체(물론 명성이 있는 회사겠지만) 제품 양념류가 즐비하다. 하지만 가업을 잇는 정신과 친절정신에는 도무지 흠을 잡을 수가 없다. 그들도 사람인데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일본에는 수많은 ‘시니세(老鋪)’가 있다. 100년 이상된 오래된 업체를 말한다. 일본 기업전문 조사기관인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일본에서만 약 2만개에 이르는 시니세가 활동 중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장수기업은 일본이 3천113개로 가장 많고 독일(1천563개), 프랑스(331개) 등이 그 뒤를 잇는다. 반면 국내의 경우 근대적 기업 역사가 짧다 보니 100년 이상 된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등 7개사에 불과하고 60년 이상 법인 기업도 180여개에 불과하다. 일단 일본 요리의 정수를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일본 정통 풀코스 요리인 ‘가이세키(會席)’부터 해부해 봐야 될 것 같다.

 

최고급 식당은 료칸 가이세키

본요리로 생선회·구운 생선

요리가 끝나면 된장국과 밥

요즘 뜨는 일식당은 오마카세

주인이 꾸려주는 가정식 요리

 


◆ 8단계 요리사 등급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이세키 전문점은 어딜까. 1576년 교토에서 문을 연 ‘헤이하치자야’이다. 히라마쓰 요이치가 지은 ‘일본 최고의 가게는 다르다’(랜덤하우스중앙)는 엄격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 조리사의 계층을 잘 설명해주는데, 이를 통해 일본 조리사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일단 조리사는 대체로 8계층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도마 앞에서 일할 수 있는 ‘이타마에’ 단계에 오르려면 적어도 ‘무코이타’ 이상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이하의 계층은 요리사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맨 아래 단계는 ‘오이마와시’인데, 물품구매 등 잡일을 담당한다. 오이마와시는 적어도 2~3년 이상 경험해야 한다. 고교를 졸업하고 요정에 취업한다면 스무살 정도까지는 오이마와시로 일하게 된다. 그 윗단계인 ‘핫슨바’는 이타마에가 접시에 요리를 올린 모양을 참고하면서 그릇에 요리를 담는 일을 한다. 그다음 단계인 ‘와키이타’는 생선의 내장과 비늘 등을 제거하며 다듬는 작업 등을 하게 된다.

5년 세월이 지나면 요리의 본질을 접하게 되는 이타마에 코스에 온다. 광복 직후 일식당 출신 조리사를 ‘이다바’로 낮춰부르기도 했는데 일반인은 이다바가 이타마에란 사실을 잘 모른다. 무코이타는 간단하게 생선회를 뜰 수 있고 음식을 조리하는 일을 맡는다. 그다음은 와키나베, 아게카타·아키카타, 나카타에 이르고 마지막 단계는 ‘요리의 신’으로 불리는 ‘하나이타’에 등극한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받으려면 오래된 온천형 여관인 ‘료칸’에 투숙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전통요리 가이세키와 숙박, 온천은 물론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의 일본 전통악기 사미센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선 매니저급 여종업원인 ‘나카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나카이는 훗날 한국의 홍등가 ‘삐끼 아줌마’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헤이하치자야 나카이는 기모노는 물론 일본식 버선인 다비와 기모노용 신발인 게다를 신어야 한다. 이곳에서 나카이 교육 때 가장 애를 먹는 대목은 꿇어앉아 장지문을 조용히 여닫으며 손님을 공손히 맞이하는 예법이다.

◆ 가이세키 요리 순서

일본 요리의 형식은 크게 혼센요리, 가이세키요리, 쇼진요리, 후차요리, 싯포쿠 요리 등으로 분류된다.

혼센요리는 우리의 궁중 요리처럼 의식용이다. 가이세키요리는 가장 대중적인 정식코스로 두 종류가 있는데 차도의 작법과 형식에 따르는 가이세키요리, 혼센요리를 토대로 연회용으로 특화된 가이세키요리로 나눠진다. 우리의 사찰요리처럼 동물성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쇼진요리, 후차·싯포쿠 요리는 중국 등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형태다. 통상 료칸의 일본 코스식 요리라고 하면 바로 가이세키요리를 말한다.

보통 1즙3채, 1즙5채, 2즙5채를 이용한다. 즙은 ‘국’, 채는 ‘반찬’을 이르는 말이다.

가이세키에 등장하는 주요 요리는 젠사이(식사전에 식욕을 돋우려고 먹는 요리, 주로 채소 요리가 많음), 코바치(작은 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일본 요리), 츠쿠리(보기 좋고 먹기 좋게 꾸며 둔 생선회로 보통 생선별로 3조각씩 접시에 담는다), 스이모노(일본의 국요리, 맑은 국과 된장국이 있으며 주로 해산물을 이용하여 맛을 낸 요리가 많다), 니모노(일본의 조림요리), 무시모노(삶은 요리), 야키모노(생선·육류 등을 불에 가볍게 구워낸 요리), 잇핑(일품요리로 료칸을 대표하는 요리가 나온다), 아부라모노(튀김요리), 스노모노(생선, 조개, 채소, 바닷말 등을 식초로 조미한 요리), 오카시(과자 혹은 과일), 디저트 등이다.

일단 식당에 좌정하면 메뉴표·식단인 ‘오곤다데’를 한 장씩 나눠준다.

식전에 나오는 음식으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요리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예쁘게 멋을 내었으며 보통 3가지에서 5가지 요리가 선보인다. 매실주와 같은 가벼운 술과 함께 먹는 게 ‘사키즈케’라고 한다. 다음은 ‘완모노(생선회를 먹기전 속을 데우고 입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나오는 요리)’로 대표적인 메뉴가 스이모노다.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으로 생선회가 나오며 흰살 생선을 먼저 먹고 붉은 살 생선을 나중에 먹는데 이때 나오는 게 ‘무코우즈케’라 하고 대표적인 게 츠쿠리와 사시미다. 이어 주로 제철 생선을 구운 요리가 나온다. 지역에 따라 지역 특산요리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걸 ‘하키자카나’라 하고 야키모노와 아부라모노 등이 나온다. 요리가 모두 끝나고 된장 국과 함께 갓 지은 밥이 나오는데 이걸 ‘쇼쿠지’라고 한다. 식사를 마무리하는 디저트, 일본 과자나 아이스크림, 푸딩, 과일 등 간단한 요리가 나오는 데 이걸 ‘마즈가시’라고 한다.

국내의 경우 가이세키 요리에선 보통 7~8개 코스 요리가 중식처럼 나눠져 나온다.

처음엔 해삼과 간 마를 섞어 낸다. 찬요리가 먼저 나온다. 다음은 소라, 새우, 문어, 게, 전복, 오이, 당근, 양파, 간파를 삼바이스(설탕, 진간장, 식초, 레몬즙을 배합) 소스에 섞은 스노모노 그리고 사시미, 메로 구이의 일종인 ‘다케다시’, 일본식 매운탕의 일종인 ‘스이몽’, 계란 노른자에 당근, 파, 소라, 소고기 다진 것 등을 넣고 지진 계란찜의 일종인 ‘자왕무시’, 입맛을 깔끔하게 해주기 위해 단무지, 생강, 나나스케(오이 장아찌) 등이 나온다.

◆ 오마카세를 노려라

일본 식당은 최고급 료칸 가이세키 요리집이 있고 그보다 조금 급이 낮으면서도 실용적인 갓포 요리집이 있다. 일본식당을 보통 와쇼쿠라고 하는데 갓포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밖에 술집이면서 가볍게 식사를 곁들일 수 있는 이자카야 등이 있다.

요즘 떠오르는 일식당은 ‘오마카세’.

‘주인의 뜻에 맡기다’란 일본말로 메뉴판없이 주인이 일정하게 꾸려준 가격대별 가져다 준 음식물을 즐기면 되는 가정식 일본요리다. 가정식 오마카세 코스 스시를 즐기려면 저녁의 경우 최소 1인분에 10만원 이상 줘야 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릉공원 뒷골목에 자리잡은 ‘오젠’도 칼솜씨 있는 오마카세로 주목받고 있다. 오젠의 김도영 셰프는 경영학도로 일본에 안 가고 독학으로 일본요리를 터득해 10년째 내공을 축적하고 있다.

경주대 외식조리학과 김현룡 교수도 국내에선 가이세키에 상당한 조예를 가진 조리사 출신 학자다. 대구의 경우 KBS방송총국 근처 국수사, 마이도이야, 들안길 민수사, 범어네거리 근처 아오야마 등이 괜찮은 초밥집으로 순항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이세키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도 생겼다.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의 한강 변에 위치한 ‘소라(宙)’다. 소라는 오사카에서 한식당 ‘아리랑’을 운영하는 안경자 대표와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등급인 별 3개를 받은 오사카의 가이세키 요리전문점 ‘코류’의 오너셰프인 마츠오 신타로의 공동 작품.

하지만 광복 직후 국내 정통 일본요리의 첫단추는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코리아나호텔 3층 일식당 ‘사카에(榮)’로 보는 게 무난하다. 영(榮) 자는 조선일보 방일영 전 회장의 이름 끝자이다. 포항 출신의 강도용 대표는 온갖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40년 이상 사카에를 지키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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