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먹거리 X파일’ 이영돈 PD의 낙마를 보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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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0   |  발행일 2015-04-10 제41면   |  수정 2015-04-10
불량식품에 포위된 우리 사회…‘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영돈 PD. ‘대한민국 불량식품의 철퇴’로 불렸다. 그런 이 PD가 부적절한 광고 모델 행위 때문에 되레 철퇴를 맞고 말았다. 그는 지난달 15일·22일 두 차례 종합채널 JTBC ‘이영돈 피디가 간다’ 프로그램을 통해 그리스식 발효유 ‘그릭 요거트’를 다뤘다. 그는 방송에서 직접 그릭 요거트를 하루 두 차례씩 2주 동안 섭취한 뒤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또 국내에서 판매되는 그릭 요거트 제품들을 테스트한 뒤 “국내에는 제대로 된 그릭 요거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 지난달 25일 그가 파스퇴르가 새로 출시한 발효유 ‘베네콜’의 TV 광고 모델로 출연한다. 다들 제품 홍보를 하려고 방송을 한 것이냐, 이러려고 다른 업체 제품을 비판한 것이냐 등의 비판을 제기한다. 논란이 커지자 JTBC는 다음날 “탐사 프로그램의 특성상 연출자이자 진행자인 이 PD가 특정 제품 홍보에 나서는 것이 부적절하다”면서 일요일 오후 8시30분 방송되는 ‘이영돈PD가 간다’와 목요일 밤 9시40분에 방송되는 ‘에브리바디’의 방영 중단을 선언했다.


20150410

JTBC 측은 “JTBC는 탐사 프로그램의 특성상 연출자이자 진행자인 이영돈 PD가 특정 제품 홍보에 나서는 것이 부적절하며 탐사 보도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의 광고 모델로 나선 것은 공정한 탐사 보도를 원하는 시청자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로서는 퇴출을 당한 셈.


불량식품계의 저승사자
광고출연으로 방송 하차

한계 가진 고발 프로지만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선
이영돈 PD도 책임

카메라가 사라지는 순간
‘착한’식당도 ‘악마’전락 가능
감동적 고발 프로 나와야


지금까지 그는 두 가지 액션을 취했다.

‘방송에서 다룬 그릭 요거트와 광고 모델 제품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릭 요거트 아이템은 지난해부터 검토하던 것이었다. 제품 출시 시기는 광고주가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먹히지 않자 그는 재차 “전후사정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은 내 불찰이다. 회사 결정이 나오면 거취를 신중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광고출연료로 받은 1억원도 기부하겠다고 했다. 대중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그는 지금 추가 해명 없이 근신하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 불량식품과의 전면전은 계속해야

2년전 기자는 ‘먹거리 X파일’로 부정식품과의 전면전을 펼치고 있던 당시 종합편성채널A의 진행자였던 그를 인터뷰(영남일보 주말섹션 2013년 2월12일자 게재)했다.

그는 부산 출신이다. 좋아하는 음식은 고추장에 찍어먹는 마른멸치. 복숭아는 알레르기가 있어 먹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때 기자에게 특별히 두 가지 사실을 밝혔다. “나를 음식전문가로 오해하고 있다.나는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은 단지 어떤 현상과 신드롬, 트렌드의 이면을 파헤치는 ‘탐사보도 전문가’라고 했다.

기자도 그때 그에게 “향후 광고 출연 문제가 당신의 발목을 잡는 핫이슈가 될 것”이라면서 그의 입장을 물었다. 그는 “불량식품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관련 방송을 하는 동안, 절대 광고모델로 출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목돈이라도 필요했던 것일까. 그는 광고에 출연했다.

기자가 만난 그는 일에서는 ‘맹수’ 같지만 일상에선 ‘양’ 같았다.

그 때문에 사업을 망친 사람이 속출했다. 황토팩 사업을 하던 탤런트 김모씨도 사업을 접었다. 그는 ‘화학조미료의 대명사 MSG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이라야 착하다’고 고집했다. 일부에선 ‘전세계적으로 안전성이 보장된 MSG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나쁜식당으로 몰고가는 건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수입품이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현장, 반찬 재사용 업소의 실상 등 충격적 내용을 연이어 터트렸다. 그 프로를 보면 대한민국에 먹을 만한 음식은 없어보였다.

덕분에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그는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81년 KBS PD 9기로 입사한다. 5년후 호주로 이민을 간다. 호주연방정부방송국 직원이 된다. 시드니공대에서 필름 앤 비디오 프로덕션을 전공한다. 91년 SBS로 들어가 ‘주병진쇼’ 등을 연출하다가 95년 KBS로 돌아온다. 96년 ‘생로병사의 비밀’, 99년 1월 ‘술 담배 스트레스에 대한 첨단보고서’를 통해 간접흡연의 위험을 고발했고, 덕분에 ‘실내금연법’이 제정된다. 2007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비자고발’을 론칭한다. PD 이름을 건 국내 첫 다큐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 구설수에 오른다. ‘소비자 고발 PD란 직위를 이용해 공짜술을 얻어먹었다’는 소문이다. ‘내가 직접 술값을 지불했으며 업자가 아니라 스태프 등과의 쫑파티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KBS를 떠난다. 이후 채널A ‘먹거리X파일’로 권토중래한다. 더 승승장구했다. ‘불량식품계의 저승사자’로 군림했다.

◆ 그의 입장을 곱씹어봤다

아직 우린 불량식품에 포위돼 있다.

제2, 제3의 이영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이 아닌 한 PD가 어떻게 착한식품과 나쁜식품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카메라가 사라지는 순간 착한식당이 악마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음식 관련 프로는 특성상 전수검증이 불가능하다. 결국 방송 취지에 맞게 팩트만 편집할 수밖에 없다. 이게 치명적 한계. 고발은 시원해도 그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이영돈도 피해 최소화에 책임이 있다. 우린 탐사보도 프로를 ‘진실’로 믿어선 안된다. 어떤 관점의 ‘사실’로 봐야 한다. 특히 특정 음식이 건강에 좋고 안 좋고는 실험실에서 절대 밝힐 수 없다. 이것이 세계 식품의학자의 일치된 의견이다. 하지만 우린 불량식품을 품고 얼마나 만병통치약 같은 건강 프로그램를 갈구하는가.

이영돈은 복귀할 수 있을까? 복귀한다면 자꾸 고발에만 연연하지 않았으면 싶다. 제작자만 신나는 방송은 멀리 못 간다. 식품 관계자를 모두 ‘제2의 이영돈’으로 개조할 수 있는 감동적 고발프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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