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시 황금동 ‘고래와 참치’ 이태명 오너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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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14   |  발행일 2015-08-14 제42면   |  수정 2015-08-14
“참치 眞味에 방해” 김 안 내놓아…머리는 살을 발라내면 위생상 즉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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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급 생참치의 대가리, 아가미와 등살의 4분의 1을 덜어내며 해체쇼를 진행 중인 이태명 셰프. 해체쇼는 불과 20여분 만에 끝나고 거기서 20여 부위를 썰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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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모듬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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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 등살, 가슴살 등 4부위로 이뤄진 고래 한 접시.

울릉도에서 태어나 포항 중앙고를 졸업했다. 더 이상 공부에 미련이 없었다. 일식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식당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 한 장에 매료된다. 원래 젊은 시절 폼나는 한 장면에 일생을 거는 것처럼. 대학교 대신 식당에 입학했다. 그렇게 내리 22년을 일식 조리사의 길을 걸었다.

포항 시그너스 호텔 조리부를 거쳐 당시 포항 북구에서는 유일한 일식당이던 ‘에도일식’, 포항시청 근처 ‘삼다도’에서 야생화와 조경 전문가이자 세계식품조각지도사협회 이사인 아내(박경순)를 만난다. 아내는 남편을 ‘실장’이라고 부른다. 대구로 와서는 들안길 ‘미도리’, 범어네거리 근처 ‘독도참치’ 등을 돌았다. 평균 한 업소당 3년 남짓 머물렀다. 특화된 일식당을 꿈꾼다. 처음에는 근사한 이자카야(居酒屋)를 차리려고 했다. 그의 친구들은 희한하게 경남권 일식당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다들 참치 전문점에 손을 댔다.

나이가 들수록 그는 고래처럼 몸집이 커졌다. 하지만 눈빛은 물살을 헤치고 잠영하는 참치 버전이다. 그는 마흔에 20여년 익힌 일식 노하우를 앞세워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복개도로변에 생참치 전문점 ‘고래와 참치’를 오픈한다. 그 몸집과 그 눈빛이 상호로 자릴 잡는다. 참치 해체쇼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경기권에서 참치왕으로 불리는 양승호씨를 만나러 상경했다. 지역에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참치 해체쇼를 접하기 어렵다. 일정한 단골층을 확보하지 않으면 재고 부담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

가게가 참 알맞게 작다. 너무 크면 손님의 기운을 한 곳으로 모으기 힘들다. 다치는 모두 7석, 방은 모두 4개. 홀보다 주방이 더 크다. 입구에 단골 중 한 명인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사인한 흰색 야구배트가 보인다. 김범일 전 대구시장도 다녀간 모양이다. 고래와 참치? 이 무슨 별스러운 궁합. 지난 11일 오후에 가게를 찾아갔다. 앉은 지 한 시간도 안 돼 예약이 완료. 몇 팀은 돌아갔다. 단골의 70%가 의사인데 특히 긴 수술 직후의 허탈감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주 달려온다. 이태명 오너셰프(42)가 디테일하게 해체쇼의 전 과정에 담긴 정보를 알려준다.

◆ 참치 해체쇼 지상중계

참치 대가리는 왼쪽, 꼬리는 오른쪽.

해체쇼는 칼의 물성을 정확이 알아야 깔끔해진다. 장자(莊子)에 등장하는 최고의 소 해체사인 ‘포정’의 경지에 들어야 뼈와 살의 틈을 바람처럼 지나갈 수 있다.

투박하게 생긴 무쇠칼로 대가리부터 잘라낸다. 일반 생선처럼 한일자로 자르면 안 잘린다. 사선으로 내려쳐야 한다. 대가리뼈가 화살촉처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용 칼처럼 생긴 셰프나이프를 이용해 가마(아가미)를 빼낸다. 이 부위만 해도 어른 머리보다 더 크다. 참치 해체 전용칼로 날 부분만 60㎝가 넘는 장검처럼 생긴 마구로키리를 사용해서 양쪽 몸통을 덜어낸다. 이때 지느러미 부분은 다 버린다. 여기는 일부 미식가가 즐긴다는 그 눈물주도 전량 폐기해버린다. 생선이 죽으면 눈과 내장이 가장 먼저 상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척추를 둘러싼 혈압육을 발라낸다. 이때 척추 뼈는 버린다. 이 부위만 100㎏당 5㎏ 정도 나온다. 갈비에 붙은 살점은 숟가락으로 긁어낸다. 여기까지 기본 작업을 ‘로인(Loin)작업’이라 한다.


100㎏짜리 참치 해체, 빠르면 20분이면 끝나
세밀하게 발라낼 경우 100개 부위도 가능해

해체날에는 가격할인, 3인 이상 1인당 8만원

날참치 이상적인 맛?…소금에 찍어 먹어야


로인작업이 끝나고 나면 보관하기 쉽게 ‘블록작업’에 들어간다. 등과 배 부위만 블록작업을 하는데, 상어 돔배기 정도의 크기로 잘라 래핑해서 숙성냉장고에 보관한다. 보통 1주일 안에 다 소진시킨다. 손님이 오면 그날 필요할 양만큼 잘게 썰어내기 좋게 ‘스틱작업’을 해서 숙성고에 넣어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걸 한입 양으로 썰어준다.

100㎏ 해체하는 데는 빠르면 20분 안에 끝난다. 참치 해체하는 날만 3인 이상 1인당 8만원 할인가에 준다. 그날만 여러 부위를 다 맛볼 수 있다. 해체한 날 이후에는 가격이 다시 원상으로 돌아간다. 전용 밴드에 공지하면 예약이 바로 들어온다. 선착순 보통 6~7개 팀만 받는다.

맨처음 붉은 속살인 아카미를 1㎝ 두께로 썰어 내온다. 다음에는 100㎏을 해체하면 고작 100g밖에 안 나오는 울대살을 낸다. 이어 전체 50%를 차지하는 등살, 아가미살, 불에 조금 구운 복막살, 입천장살, 턱살, 뽈살, 갈비살, 끝뱃살, 등지살(등지느러미살), 배꼽살(생선은 배꼽이 없다. 일명 부채 항문살로 불린다) 등에 이어 나중에는 알아맞히기 힘들어 퀴즈로 내미는 등지느러미와 등의 경계살까지 내준다.

◆ 김은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대가리에서 4개, 뱃살에서 4개, 가마에서 3개, 이밖에 등살, 속살, 갈비살 등 모두 15개 이상 부위를 선별한다. 더욱 세밀하게 해체하면 족히 100개 부위도 발라낼 수 있다. 음악에도 수많은 장르가 존재하듯 참치 해체 때 부위를 만들어 명명하고 그 맛을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무불통지의 와인 전문가 소믈리에처럼.

이 집은 다른 참치집에선 자주 눈에 띄는 게 안 보인다. 김과 장식용 참치 대가리다.

여느 집에서는 장식용으로 머리를 쟁반에 올려놓기도 하는데, 살을 발라내면 위생상 즉시 버린다. 김도 보이지 않는다. 마니아는 김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참치의 진미는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가능한 한 자극적인 향신료와 양념, 식재료를 섞지 않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맛은 날참치를 소금에만 찍어 먹는 것. 이게 너무 단조로울 수 있어 강판에 즉시 간 생와사비즙에 간장을 극미량 가미해 먹기도 한다. 참기름도 음미를 방해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단새우와 우니(성게알)를 내민다. 심해고동으로 포항식 물회를 작은 잔에 담아낸다. 인삼을 먼저 씹어먹으라고 내민다. 중간에 먹으면 식감 음미를 방해하지만 참치를 먹기 전 공복 상태에서 인삼을 먹으면 쌉쌀한 사포닌 성분이 미뢰(Taste bud)를 활성화시켜 더욱 풍미를 느낄 수 있단다.

그는 자기 맘대로 메뉴를 정할 수 있는 ‘오마카세’ 메뉴를 선호한다.

참복사시미, 다금바리 사시미, 민어곰탕, 쫄복탕, 초무침(스모노) 등은 물론 송이만으로 7~8가지 가이세키 메뉴를 만들 줄 안다.

◆ 700만원짜리 회칼…혼야키를 품다

일본은 칼의 나라다. 칼 명장이 전국 각처에 수두룩하다. 조리용 칼 종류만 해도 수백 종류가 넘는다. 일반 시장 좌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막칼인 데바부터 오로시, 버드나무 잎처럼 생긴 회칼인 야나기, 복어사시미 전용칼인 후쿠비키, 이 밖에 키리즈케, 타코비키, 장어 전용 칼인 사키, 채소 전용칼인 우스바, 일반 부엌칼인 산토쿠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셰프가 애지중지하는 칼이 있다. 다치 앞에서 스틱 상태의 참치를 썰 때 마사모토 가문에서 제작하는 혼야키(本燒)다. 갖고 있는 칼은 모두 20자루가 넘는다.

참치에 대해 다 알려고 하면 거의 10년 이상 한 곳만 뚫어야 한다. 참치 잡히는 원산지부터 유통, 가격, 냉동과 해동, 해체, 부위 감별 등 이 모든 걸 원스톱으로 챙기려면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낚시로 잡는 일본 북해산 500㎏급 매머드 혼마구로는 국내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일본에서만 억대로 유통된다.

하역 항구는 부산과 인천으로 국한된다. 부산은 냉동, 인천에는 생참치가 들어온다. 국내 유통량의 99%가 부산으로 들어온다.

생참치의 경우 스페인·멕시코·하와이·호주·인도양·대서양·남태평양산 등이 있다. 특히 인도양은 낚시로 잡는데 더운 데서 잡혀 감칠맛이 없다. 스페인·멕시코산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스페인산은 현재 ㎏당 평균 25만원, 멕시코산은 ㎏당 7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생참치전문점의 경우 30㎏대에서 100㎏까지 유통된다.

참치도 메이저와 마이너급이 있다. 메이저급은 혼마구로, 눈다랑어, 황새치 정도이고 황다랑어, 청새치, 흑새치 등은 무한리필집에서 취급되는 마이너급.

▨수성구 황금동 699-12 (053)763-3154 매주 월·목요일 오후 6시30분 참치 해체쇼. 3인 이상 단체 예약(1인분 8만원).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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