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 흙이 되어서도 歸鄕만 기다리는 1만여 유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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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07   |  발행일 2015-09-07 제5면   |  수정 2015-09-07 07:29

“떠나온 고향이여, 돌아갈 수 없던 조국이여/ 그리움은 흘러 몇 구비 흐르는 것이 어찌 강물뿐이더냐/ 잊지 않고 간직했던 고향 주소여…// 고난을 넘어 왕생한 길 생명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다, 이제 여기 묻히니/ 부디, 잊지 말라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지에 있는 ‘사할린 강제징용 희생자 추모비’에 적힌 글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귀향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이들은 가슴 깊이 간직해온 고향 주소를 차가운 비석에 남긴 채 죽어 이곳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나마 후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고국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을 그리며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까지 쓸쓸하다.

눈을 감을 당시엔 그나마 지인들이 있어 추석이 되면 꽃도 가져다 놓고 했지만, 묘를 돌봐주던 이들마저 나이가 들어 하나둘 세상을 버리면서 이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남사할린 공동묘지에 묻혀 귀향길을 기다리는 한인 유해는 1만여기. 이 가운데 국내로 봉환된 유골은 19위에 그친다.

먼 이국으로 끌려갔던 날, 광복이 되었으나 돌아오지 못했던 날, 결국 죽어 한줌 흙으로 남은 지금까지, 그들의 소원은 오직 하나 ‘집에 가는 것’이었다.

김홍지 사할린한인노인회 회장은 “몇십 년만 일찍 이들의 묘를 발굴했더라면 고향이나 한국의 친지들에게 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묘를 기억하는 이가 없어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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