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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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23   |  발행일 2015-10-23 제42면   |  수정 2015-10-23
40일 숙성 안심, 으깬 감자 위에 겨자씨피클 매칭…심플한 스테이크 一味
요리에 일가견 있는 일신학원 김 이사장과 윤 셰프 ‘환상의 콜라보마케팅’
유기농식단 추구…직접 허브 30여종 재배하고 200여 식재료도 챙겨
정교하면서 재료의 맛에 충실하고 디저트 라인까지 열정…유행하는 것은 피해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김상환 대표(오른쪽)·윤경수 오너셰프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통나무 위에 올려진 세상에서 가장 단순해 보이는 40일 숙성된 안심스테이크. 캐비어처럼 보이는 겨자씨피클과 으깬감자만으로 가니시를 형성한 게 특징이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오렌지폼이 곁들어진 훈제연어구이.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전채를 위한 식전 메뉴인 아뮤즈부쉬로 연어타르타르·무화과·홍시단감곶감을 합쳐놓은 삼색 편과를 몽돌 위에 깜찍스럽게 올려놓았다.


요즘은 서로의 장점이 협업으로 매칭된 ‘콜라보마케팅’이 대세.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도 그렇다. 최근 의기투합한 일신학원 이사장인 김상환 대표(61)와 윤경수 오너셰프(31)도 ‘환상의 복식조’.

김 대표는 지난 10년간 매월 최소 2~3개 팀을 집으로 초대해 풀코스 이탈리아 음식을 대접해 프로추어 셰프로 소문이 났다. 이탈리아 음식 쿠킹클래스는 물론 중국요리에까지 도전했다. 그의 음식을 접한 사람들은 늘 ‘교육보다 요리 쪽이 더 잘 어울리겠다’면서 레스토랑 운영을 강력히 추천했다. 그런 그의 눈에 윤 셰프가 포착됐다. 윤 셰프는 남구 대명9동 카페거리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 Bar’를 경영 중이었다. 30여 종의 허브를 직접 밭에서 재배하는 것을 유심히 본 김 대표가 그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깐깐한 입맛의 김 대표와 윤 셰프, ‘수제본능’이 출중한 두 사람이 최근 레스토랑을 열어 찾아가봤다.

◆ H602 스토리

김 대표는 폭탄주 위주의 우리의 음식문화가 늘 못마땅했다.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던 중 이탈리아 음식을 접하게 된다. 2000년대 초 수성구 카페골목에 위치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나폴리’의 쿠킹클래스에 들어간다. 그의 생애 첫 요리본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발휘된다. 교과서에 소개된 된장찌개를 응용해 고추장을 넣은 찌개를 만들었다.

나폴리 오너셰프 조르지오 스코파에게 기초·중급·고급까지 60여 개의 레시피를 배운다. 이탈리아 요리용어는 물론 성악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그의 표정이 더없이 환해진다. 배운 요리는 지인을 초대해 대접한다. 그게 그의 낙이었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 2천800여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 친구가 그의 홈레스토랑 이름을 ‘H602’로 지어주었다. 그는 효성타운 602호에 살았다. 가장 긴장했고 오랜 시간 준비한 풀코스요리는 바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세계육상연맹 집행위원 부인 초청 오찬이었다.

행사 8개월 전에 그가 참여하고 있는 ‘와인 & 피플’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을 초대해 타당성 검토를 위한 1차 리허설을 했다. 행사 1주일 전에는 실제 오찬 당일과 똑같은 음식과 이벤트로 아내의 친구 등 여성만 초대해서 두 번째 리허설을 했다. 10개월을 준비했는데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전기과부하 때문에 승압공사를 하였다. 핑거푸드 크기를 토핑이 흘러내리지 않게 한입 크기로 수정했다. 프로슈토와 멜론, 브루스케타 등 핑거푸드 위주의 메뉴와 메인에는 스테이크 샐러드 등 9가지 메뉴에 3가지 와인을 매치시켰다. 프라이즈 공연도 마련했다. 테너 최덕술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도르마’를 불렀다.

공로가 인정돼 대통령 표창도 받는다. 지난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지휘자인 바르바치니 내외도 초대에 응했다. 부인의 고향인 시칠리아의 대표 음식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준비했다.

◆ 행복을 나누는 레스토랑 만들기

김 대표는 본인이 직접 요리하는 레스토랑은 좀 무리다 싶었다.

1년 전 지인의 소개로 윤 셰프의 수준급 음식솜씨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윤 셰프의 공간은 너무 협소했다. 더 넓은 공간에서 요리경력을 쌓아가려는 그와 좋은 메뉴를 갈구하는 관계자의 권유에 힘입어 식당을 오픈한다.

깐깐하게 색을 골랐다. 레스토랑의 주조색은 화이트, 하지만 동쪽 포인트 벽 컬러는 오렌지색으로 정했다. 원하는 게 없어 아파트에서 바라본 여명과 같게 조색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오렌지빛이 식감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공용 타월에 물기를 닦는다는 게 뭔가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1인용 손수건 같은 타월을 별도 비치해두었다.

윤 셰프는 말이 별로 없다. 요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메뉴라인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국민은행 옆 골목에 있는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 스타일. 일종의 ‘분자요리’ 기법이다. 정교하면서도 심플하고 그러면서도 재료의 맛에 충실하다. 유행하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군위 출신인 윤 셰프는 체육교사의 꿈을 접고 셰프의 길을 선택했다. 2010년 이탈리아로 갔다. 피렌체, 알프스 산맥 경계 지역 알토아디제에서 머물렀다. 일단 파르마에 있는 요리학교 ‘알마(Alma)’에 입학했다. 그가 머문 식당은 피렌체의 ‘아르놀포’, 알토아디제의 ‘로자알피노’ 등 미슐랭가이드 별 두 개짜리였다. 아르놀포의 오너셰프인 자이타노가 그의 사부. 사부가 붙잡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식당을 그린다. 아이스크림 기계, 생면 뽑는 기계, 저울, 라비올리 만드는 소품 등 10여 종을 이탈리아에서 사 갖고 왔다. 서울 이태원 오키친에서 메인요리와 애피타이저를 맡았다. 그의 호기심과 창작욕은 남 밑에 있을 수준을 넘어선다.

윤 셰프는 유기농 식단을 추구한다. 허브도 직접 컨트롤하기 위해 텃밭에 심어 30여 종을 관리한다. 현재 200여 종의 식재료를 직접 챙겨 40여 종의 메뉴를 만들고 있다.

두 사람은 스테이크에 엄청 민감하다.

윤 셰프는 지역의 셰프들이 거의 손대지 않고 있는 차세대 첨단 조리법 중 하나인 ‘수비드(Sous-vide)’조리법을 많이 알렸다. 저온 진공 분자 조리법인 수비드는 71년 퀴진 솔루션의 수석 연구자 부르노 코소 박사가 탄생시킨다.

김 대표는 쇠고기카르파초를 즐겨 요리하는데, 특히 레어급 스테이크를 즐기는 그는 안심·등심 대신 주먹시 등을 잘 사용한다. 또한 스테이크스시, 40여 일 숙성시킨 T본스테이크도 단골 메뉴.

◆ 접시 대신 수제 플레이트

현재 이 집에서는 고기를 40~60일 건식과 습식으로 숙성시켜 사용한다. 수비드 방식은 좀 더 보강한 뒤 내려고 보류한 상태다.

윤 셰프는 음식을 담는 기물에 무척 신경을 쓴다. 접시 대신 직접 짠 수저통만 한 나무갑에 유리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올린다. 사실 메인요리보다 전채요리 직전에 나오는 입을 즐겁게 만드는 ‘아뮤즈부시(Amuse Bouche)’가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식전빵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데 보통은 그 레스토랑에 온 손님에게 ‘우리 레스토랑의 콘셉트나 맛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날 아뮤즈부시는 바닷가 몽돌 위에 세 가지 음식을 앙증맞게 올렸다. 연어타르타르와 프로슈토, 리코타치즈에 올린 무화과, 홍시·단감·곶감을 편육처럼 합쳐 냈다.

스테이크는 정말 덧칠이 없어 심플해 보였다. 40일 숙성시킨 안심, 으깬 감자 위에 뭉친 캐비어 같은 겨자씨피클을 매칭시켰다.

현재 8종류의 파스타를 갖고 있는데 이날 스파게티니를 사용해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참고로 스파게티의 명칭은 굵기에 따라 달라진다. 2㎜ 조금 넘는 것을 ‘스파게토니(Spaghettoni)’, 1.6㎜ 전후인 것을 ‘스파게티니(Spaghettini)’, 1.3~1.5㎜는 ‘페델리니(Fedelini)’, 1.2㎜ 미만은 ‘베르미첼리(Vermicelli)’라 한다.

모둠 디저트 라인도 열정이 실려있다. 마카롱은 물론 화이트초콜릿, 비트·치즈·유자·허브크림을 점점이 찍어놓았다. 다음 달 세계3대 진미로 불리는 생 트러플(송로버섯)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다.

오는 30일에는 영남대 음악대학장인 테너 이현 교수와 이탈리아 공식 소믈리에인 김미경 대표가 ‘가을에 기대어 음악에 물들다’란 주제로 디너 토크 살롱음악회를 갖는다.

주차문제만 잘 해결되면 미식가를 기분 좋게 만들 것 같은 예감. (053)652-8007, 수성구 무학로 11길 1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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