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외식상권 이야기 - (5) 남구 대명동 맛둘레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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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4   |  발행일 2015-12-04 제41면   |  수정 2015-12-04
주택가·카페 어우러진 ‘북촌 스타일’…이탈리아 캐릭터 거리 조성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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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구역으로 짜인 앞산맛둘레길의 한 코스인 대명9동 카페거리. 대구 첫 오드리 헵번 재단이 간여하는 ‘헵번 커피숍’, 일본 덮밥인 돈부리 전문 ‘키햐아’, 2000년 생긴 카페거리 터줏대감 격인 ‘다이닝유(이전에는 튜즈데이모닝)’, 아기자기한 조각품과 다기세트가 인상적인 ‘빨간우체통’, 카페거리를 ‘이탈리안 캐릭터거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국수의 구자덕 오너셰프(위쪽부터)

주택가와 카페. 아무 상관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울 북촌 한옥마을은 차세대 카페 창업지망생의 러브콜 1순위 동네로 급부상한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란 의미를 갖고 있다. 가회동, 안국동, 삼청동, 사간동, 계동, 고격동, 재동 등이 맞물려 있다. 1930년대부터 근대화된 기와집이 들어선다. 한국일보 앞 안국역 2번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프로방스풍에서 일본 젠스타일까지 별의별 한옥카페, 한옥레스토랑, 한옥아트숍, 한옥박물관과 갤러리가 행인의 이목을 잡아끈다. 경복궁과 창경궁, 비원까지 옆구리에 차고 있어 ‘거리박물관’으로 불리고 정보센터와 해설사까지 생겨났다. 이 흐름을 비교적 잘 흡수한 곳이 바로 대구 ‘앞산맛둘레길’이다. 맛둘레길은 크게 대명9동을 축으로 한 ‘카페거리’, 앞산순환도로변에 있는 맛집, 안지랑시장 옆 안지랑양념곱창골목 등 3개 섹터가 합쳐져 있다. 현재 맛둘레길에는 안지랑곱창집을 포함해 100여 업소가 포진해 있다.

◆ 카페로 변신한 대명9동 주택가

대구시 남구 대명9동.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의 부자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저택을 많이 지어 한때 ‘부자동네’로 불렸다. 하지만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경일원, 녹원맨션, 신포빌라 등 수성구에 고급 빌라·아파트·맨션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부자들이 대거 수성구로 빠져나간다. 대명9동은 IMF외환위기 직후 대저택은 하나둘 원룸에 잡아먹히며 슬럼화되고 있었다. 그 흐름을 예의주시한 사람 중 한 명이 대구의 1세대 패션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변상일씨. 그는 75년 9월15일 동성로3가 현재 유니클로 앞에서 창업했다. 패션쇼를 50여차례 했고 삼익뉴타운점을 오픈했을 때 하루 2천500만원어치도 팔았다. 84년 대구백화점에 캐주얼숍을 처음 입점한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레스토랑 창업 컨설턴트 겸 카페 오픈 전문가로 변신한다. 2000년 겨울, 패션과 레스토랑을 매칭한 ‘F & P’를 남구 대명동 남명삼거리 동쪽 도로변에 오픈했다. 지역 ‘패션카페’의 신호탄이었다. 그게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그 구역이 전국 처음 주택가를 축으로 한 ‘명품거리’로 발돋움한다.


대명9동 축으로 한 카페거리
앞산순환도로변의 맛집
안지랑양념곱창골목 등
3개 섹터에 100여 업소 포진

디자이너 변상일씨 패션카페
폭발적 인기 누리면서
주택가의 명품거리로 발돋움

이탈리안 레스토랑 ‘국수’
오너 셰프 구자덕씨
이색거리 만들기에 열정 쏟아


동성로에서 이전한 금은방 미성당, 패션숍 I’M HONG , 퀼트박물관, 뮤직홀 같았던 강민구 원장의 KMG내과 등이 들어선다. 당시 식당이라고 해봐야 한때 대구미문화원장 저택이었던 자리에 들어온 흑태찜 원조 ‘일송명가’, 대명9동 주민센터 근처에서 80년대 중반부터 세코시 전문 횟집 시대를 연 ‘정이품’과 복어 전문점 ‘용궁복어’ 정도였다. 그런데 F&P가 매각돼 아메리칸 스타일 레스토랑 ‘튜즈데이 모닝’으로 거듭난다. 튜즈데이 모닝은 990㎡(300평) 규모로 지역에선 괜찮은 인테리어와 큰 규모로 주목을 받았고 빠르게 정착했다. 묵직한 미국식 스테이크를 냈던 튜즈데이 모닝은 ‘다이닝 유(Dining you)’로 상호를 바꿔 리모델링된 뒤 현재 서울의 <주>토러스 F&C가 임차해 필라프·전복 특선 등을 선보이고 있다.

연이어 대구발 프랜차이즈커피숍인 ‘시애틀의잠못이루는밤’, 브런치카페인 ‘빈스마켓’이 들어섰다. 변상일씨의 아들 창민씨는 카페거리 서쪽 끝에서 ‘파스타민’이란 파스타 전문점을 연다. 그곳은 한때 양념이 짙은 대구식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인기몰이했다.

2010년 6월 미성당 자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국수’가 들어온다. 서울발 디저트카페 체인점인 투썸플레이스에 밀려났지만 도로 건너편으로 이전해 보란 듯이 자리를 잡는다. 낙천적 성격, 진취적 아이디어, ‘수제요리철학’으로 무장된 국수 오너셰프 구자덕씨는 시내 동성로에서 리틀이탈리아와 지오네 등 두 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구자태 사장의 친형이다. 형제는 지역에서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 열정파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 특히 동생 구자덕씨는 420g에 4만5천원인 육즙이 고급스럽게 형성되는 ‘티본 스테이크’를 이 거리의 명물로 만든다. 노모가 지키고 있는 고향 의성의 각종 허브, 채식 등을 적극 활용한다. 그는 이 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명 체인커피숍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아트숍, 공연장, 식당, 주점 등이 절실한데 다들 도로변만 노려 지가와 임차료가 폭증해 자칫 공멸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카페거리란 평범한 이름 대신 ‘이탈리아거리’(가칭)로 정해 골목 하나하나를 이탈리아 관련 캐릭터로 치장해 나가면 분명 캐릭터거리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 오드리헵번 카페도 등장

아무튼 거리에 손님이 몰리자 다빈치와 카페베네, 더 브릿지, 스타벅스, 하바나, 파스쿠찌, 드롭탑 등 대구·서울발 유명 커피체인점이 들어선다. 최근에는 2013년 오드리 헵번 공식 재단과 론칭계약을 맺은 오드리헵번 카페 대구점이 18세기 파리의 커피하우스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쿠바의 ‘크리스탈마운틴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이 커피는 ‘노인과 바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한 헤밍웨이와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도 즐겨 마셨다고 한다.

대명9동 카페거리는 다이닝 유를 중심으로 T자형을 이루고 있다.

현재 짬뽕카페 ‘블랙스완’, 일본 라멘 전문점인 ‘토로루’, 티하우스인 ‘코코로’, 아메리칸 다이닝이란 기치를 내건 ‘33스테이크 하우스’등이 서쪽 라인을 지키고 있다. 33스테이크 하우스는 대구에서 가장 푸짐한 스테이크라인을 자랑한다. 블루베리소스를 스테이크 위에 뿌렸고 곁에 구운 파인애플, 양파, 버섯류를 함께 올려준다. 1인분씩 대신 2명 이상이 한꺼번에 잘라 먹도록 했다.

또한 어머니와 오누이가 합심해 카페에서 가정식 돼지갈비찜을 내는 레스토랑이 있다. 바로 ‘엄마의 부엌(LA CUISINE DE MAMAN)’이다. 그 엄마는 합천 해인사 아래서 20년간 산채정식집을 꾸려온 대단한 손맛의 소유자. 쉬고 싶지만 자식의 성공을 위해 맘을 냈다.

얼굴에 작은 점이 있어 여배우 전지현을 연상시키는 이세희씨가 독학으로 터득한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대명9동 치안센터 바로 옆 ‘로지로키로드’도 케이크 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다. 그 옆에 후발주자로 등장한 ‘앞산옛날통닭’이 있다. 튀긴 통닭 한 마리에 6천원, 두 마리 1만원. 생맥주도 500㏄ 3천원. 가격 대비 푸짐함을 느낄 수 있어 하절기에 가게 앞은 프라이드치킨족으로 장사진을 친다. 7분 전에 전화를 하면 포장을 다 해놓는다.

일본식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토로루와 키햐아. 키햐아는 돈부리(덮밥) 전문점이다.

대명중 북쪽 담 바로 옆에 있는 ‘어반 페어(URBAN FARE)’는 7세 미만은 출입금지. 여기는 입구 벽에 스테이크 고기굽기 정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레어는 10~20%, 미디엄레어는 20~30%, 미디엄은 50%, 미디엄웰던은 60~70% 익힌 것이라는 걸 적어뒀다. 일반 소고기 대신 일본의 명품 쇠고기인 와규(和牛) 스테이크를 판다. 와규는 일본 고베의 최고급 와규를 호주 앵커스 품종과 교배해 호주에서 청정하게 키운 것이다. 비싼 와규는 마리당 1억원선.

◆ 앞산순환도로변 맛집

대명중학교 정문에서 조금 남쪽으로 가면 앞산순환 구길과 만난다. 그곳에 지역 첫 김치 전문점이 있다. ‘김치단지’인데 특히 김치찜과 시래기비빔밥(6천원)이 입소문이 많이 나있다. 그 건물 아래 콩국수와 닭국수 전문점인 콩닭콩닭이 있다.

대덕식당쪽으로 걸어가면 82년 대구에서 맨처음 전라도의 곱돌로 만든 돌솥밥 전문점을 차린 ‘돌솥식당’이 나온다. 김상두씨(77)로부터 둘째 아들 도균씨로 가업이 전승됐다. 기계가 아니라 오직 손으로 직접 15분 정도 돌솥으로 지은 밥을 내고 갈치를 1인당 두 마리씩 낸다. 고급 냉동갈치를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연탄불로 갈치를 굽다가 이제는 가스를 사용한다. 한 음식으로 33년간 한 자리에서 롱런한다는 건 대구 실정에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대순진리회 대구교당 바로 옆 골목 아래로 내려가면 1만원을 내고 이렇게 푸짐한 전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전라도밥상’이 있다. 앉으면 홍어 한 점과 직접 담근 갓김치, 수수부꾸미와 부추전, 가자미전이 세트로 나온다.

한강 이남 최고의 선지해장국 전문점 대덕식당도 이 거리의 터줏대감. 원래 그 자리는 ‘맹산옻닭집’이었다. 그 닭집 때문에 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 첫 닭백숙 거리였다. ‘설록정’은 아직도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옻닭 전문점.

모르긴 해도 대구에서 가장 졸깃하고 만족도가 높은 민물장어를 먹으려면 온천골 국밥집 바로 옆 ‘대덕골민물장어’로 가라.

메밀 전문 업소가 3곳 붙어 있다. ‘오월의 메밀’은 메밀로 묵사발, 만두, 비빔밥, 칼국수, 수제비, 막국수, 전 등을 만든다. 그 옆에 ‘앞산손메밀묵집’과 ‘풍성손메밀묵집’이 있다. 수제메밀의 진수를 보여준다. ‘빨간우체통’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버전’이다. 입구에 아프리카풍의 조각품을 전시해 놓았다. 1만원대의 곤드레밥 정식을 먹으려면 역시 ‘백복 수반’이 딱이다. 빨래터 삼거리 근처는 한때 칼국수거리였는데 요즘은 지형도가 확 바뀌었다. 가족은 물론 연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두 셰프의 돈가스 & 마루’는 치즈퐁듀돈가스, 마약우동, 눈꽃볶음우동 등 메뉴 이름에 대한 상당한 감각을 갖고 있다. 근처에 ‘이박사 벌교꼬막정식’과 ‘뽕잎짬뽕 전문점’이 진을 쳤다. 밤에는 ‘영순이 육회집’이 불야성을 이룬다. 고압선 도로로 내려가면 국내 첫 산낙지 전문점이란 현수막을 건 ‘봉수낙지’가 왼쪽에 보인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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