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착한 빵집을 찾아서 - (3) 대구 수성구 노변동 정환철 베이커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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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11   |  발행일 2015-12-11 제41면   |  수정 2015-12-11
천연효모 ‘르방’을 사용해 만든다…‘청담동 수준’ 빵에 ‘시골 버전’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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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 서울의 유명 빵집의 노하우를 흡수하며 자기만의 힐링표 베이커리 라인을 개척해온 정 파티시에. 그는 도예가인 누나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최근 대구에 입성해 착한 재료 착한 맛의 수제빵을 지역민에게 알려주고 있다.

밀가루 반죽과 20여년 싸움
성한 손톱 없는 손이 자부심
佛의 최고급 고메버터만 써
오븐기는 국내에 흔치 않은
4천만원짜리 독일제 윙클러
하루에 많이 만들어야 15종
빵 이름에는 스토리텔링 가미
남은 빵 모두 푸드뱅크 기부

 

열정이 있으면 착해질까? 착한 빵집을 수소문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착하다는 건 정직하다는 것이고 정직하다는 것은 자기애가 있다는 것이고 그건 꿈과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밖에 할 게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의 한계가 어딘지를 알기 위해 전력투구하게 된다. 대구 수성구 노변동. 수성IC권에 있으며 예전에는 경산 포도 벨트의 한 섹터였다. 그 언저리는 요즘 사월동과 함께 아파트촌에 잡아먹히고 있다.

최근 여기에 실력파 ‘파티시에(Patissier·제과제빵인)’ 한 명이 나타났다.서울 도심권에서 20여 년 잔뼈가 굵은 정환철 사장(42). 빵과 관련해 산전수전 다 겪은 몸. 겨울비가 내리던 날 정환철 베이커리를 노크했다. 상호 바로 아래에 ‘아뜰리에 & 베이커리’란 문구가 적혀 있다. 알고 보니 열 살 터울인 누나가 도예가였다. 베이커리를 오픈하기 전 이 공간은 누나의 작업실 겸 전시장이었다가 빵집으로 변신했다.

◆ 부모도 모르게 빵의 세계로 진입

그가 자신의 손을 보여준다. 얼마나 치열하게 밀가루 반죽과 싸웠던지 성한 손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기형적인 발톱이 떠올랐다. 그 손이 바로 자기 빵의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강북고 출신인 그는 1남3녀 집안의 독자. 그는 재수할 때부터 부모 몰래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24세 때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한 베이커리학원에서 1년간 기본기를 쌓는다. 지하철 홍제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홍제동의 대표 빵집 ‘주재근 베이커리’에 입성한다. 월급 42만원, 월 2일 휴무, 오전 5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막장광부’처럼 일했다. 잠은 근처 기숙사에서 잤다. 당시 빵집에는 가마(오븐)장, 주단(반죽)장, 주마리(성형)장 등 모두 13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리 해병대 훈련소만큼이나 군기가 셌다. 철저하게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했다. 오븐 시다로 1년 넘게 보낸다. 눌어붙은 철판을 말끔하게 닦아야 했다. 오븐이 뭔가를 배운 뒤 드디어 반죽팀으로 건너갔다. 5㎏, 10㎏ 등 중량별 반죽기가 6대 이상 종일 순차적으로 돌아갔다. 그는 제대로 반죽할 수 있게 반죽대를 잘 정리해두어야 했다. 학원에서 배운 지식은 현장에서는 무용지물.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빵 만들기 이전에 국내에 유통되는 밀가루 종류부터 알아야만 했다. 칼국수용과 빵집용 밀가루는 달랐다. 베이커리에는 강력·중력·박력분을 다 갖고 있어야 했다. 중국집과 국숫집은 중력분을 중점적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호주, 캐나다 등 수입 밀가루가 지천으로 깔렸다. 기능성 유기농 밀가루도 가세했다.

반죽을 1년 배운 뒤 과자와 쿠키, 롤케이크, 머핀 등을 배웠다. 이어 빵 성형 파트로 건너갔다. 주단팀과 주마리팀도 여러 단계가 있었다. 주단팀에서 2년 기술을 배우면 한 단계 위인 주마리팀 B급으로 인정받는다. 성형 파트에서는 반죽이 오면 단팥빵은 50g, 모닝빵은 30g, 식빵은 250~300g으로 분할할 줄 알아야 된다. 5명이 반죽을 자르고 밀대로 밀고 말았다. 그때 주력 메뉴는 단연 단팥빵과 소보루. 이어 일본 화과자의 상징인 ‘만주’까지 만들어야 한다.

6년 차가 되면 이제 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당시 근무여건은 너무나 열악했고 기술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툭하면 다른 빵집으로 이직해버렸다.

◆ 다람쥐 쳇바퀴 같던 수련기

그도 마찬가지였다. 1년6개월 후 쌍문동 ‘바게트플라자’로 가서 패스추리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어 마포경찰서 옆 ‘리치몬드’로 가서 명장 권상범 문하에 들어간다. 리치몬드는 송파구 ‘코른베르그’, 김용모 베이커리, 나기학 베이커리와 함께 국내 5대 빵집으로 분류됐다. 리치몬드에서 성형의 디테일한 기술, 케이크의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신당동의 ‘라띠에르’에서는 비로소 책임자가 될 수 있었고 거기서 기본기를 재검검한다. 다음에는 청담동 ‘아마폴라 델리’, 숙명여대 근처 ‘빵굼터’를 거쳐 서울에서의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불광동 ‘태극당’에 간다.

그가 한국의 제빵 시장이 유명 호텔빵, 공장빵, 프랜차이즈빵, 동네빵집 등을 거쳐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그 변천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구세대 빵문화의 마지막 증인이랄 수 있다. 그가 제빵업계에 입문했을 때는 호황기라서 호텔빵이 국내 빵시장의 중심이었다. 그게 20여 년 전부터 점차 붕괴된다.

1980년대까지 서울빵, 샤니, 기린 등 공장빵과 일방 윈도 베이커리, 호텔빵집이 함께 호황을 누린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호텔빵이 먼저 추락한다. 그 중반에 동네빵집까지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쌍두마차에 당한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그들을 위협하는 유학파들이 고급·좋은빵집의 신지평을 연다. 파리바게뜨가 초창기와 달리 후반기에 양질의 빵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앞서 무너진 공장빵 시대 공장장을 대거 스카우트해 연구실 등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파리바게뜨도 분화돼 더욱 고급스러운 수제빵은 ‘파리크라상’이란 브랜드로 수도권에서만 팔린다. 국내 입지가 좁아진 파리바게뜨는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방과 중국·뉴욕권으로 진출했다. 그 자리에 유학파 오너셰프 베이커리가 홍대 앞, 강남 가로수길, 이태원 등지에 생겨난다.

이제 한국도 세계 각국의 빵 기술을 거의 섭렵한 상태란다. 일반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는 정보 때문에 자꾸 체인점 빵을 멀리하고 하루 한정판만 구워내는 ‘유기농 수제시골빵 스타일’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2년 새 벌어진 현상이다. 이젠 커피숍 같은 빵집, 레스토랑 같은 빵집, 카페 같은 빵집, 서점 같은 빵집, 심지어 패션숍 같은 빵집 시대가 개막됐다. 색깔이 없으면 죽는다. 예전엔 빵만 고집해도 됐는데 이젠 스페셜티커피도 기본이란다.

◆ 내 빵 이야기

이젠 ‘경력파괴시절’. 그도 비전공 파티시에의 약진에 적이 당황하는 것이 사실. 그러나 지난 20년 경력을 굳이 앞세우지 않는다.

문 닫으면 지는 것. 역시 무서운 건 소비자다. 소비자가 변하니 주인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 하지만 “좋은 빵을 향한 그 열정만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일단 수돗물을 멀리한다. 고성능 정수기 물만 사용해 반죽한다. 견과류도 그냥 사용하지 않고 한 번 더 세척해서 사용한다. 르방(Levain·밀가루에 물을 섞어 오래 두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천연효모)을 사용해 빵을 만든다. 프랑스 최고급 ‘고메버터’만 사용하고 마가린은 안쓴다. 오븐기는 국내에 그렇게 흔치 않은 4천만원짜리 독일제 ‘윙클러’. 일단 너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빵은 멀리한다. 하루에 만드는 빵의 종류는 많아야 15종. 식빵류만 해도 용팔이, 에펠탑, 카푸치노, 빠삐코, 블루블루, 초콜릿스위스 등 10종류. 이들 단면 모양이 재밌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빵 이름도 밋밋하지 않다. 가능한 한 스토리텔링에 입각해 짓는다. 통헤이즐넛과 호박씨, 해바라기씨, 파인애플이 들어간 ‘완존영양빵’, 추억의 모카빵, 천연바닐라빈으로 만든 ‘슈크림’, 무항생제 계란과 유화제 없이 만든 ‘카스텔라’는 잘 숙성돼 계란 비린내가 풍기지 않는다. 주말에는 30여 종이 나온다. 빵이 남으면 푸드뱅크에 모두 기부해버린다.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아내, 세 살 된 딸, 도자기로 원격 지원하는 누나가 있어 다행이란다. 체험관광을 겸한 ‘농원형 시골빵집’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빵맛을 안 어느 커피숍에서 빵을 공급받고 싶다고 했지만 유통기한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아 본점만 고수하기로 했단다. 청담동 수준의 빵인데 가격은 시골 버전이라니…. 그게 솔직히 안쓰럽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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