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수성구 범물동, 조상기 ‘민물박사’ 대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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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25   |  발행일 2015-12-25 제42면   |  수정 2015-12-25
“고추장·된장 조화가 포인트…진정한 매운탕은 식어도 비린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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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이상 민물 잡어와 함께 동고동락을 해온 조상기 사장. 물의 빛깔만 봐도 어디에 고기가 있는 지를 감지한다는 미스터 강태공. 그는 요즘 논메기매운탕 세상이지만 그래도 추억이 마니아를 위해 1980년대까지 매운탕집의 명물 메뉴였던 붕어찜과 도리뱅뱅이를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바다고기와 민물고기. 하나는 ‘생선’, 다른 하나는 ‘잡어’로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회로도 변주되지만 해물탕과 매운탕으로 연주될 때 ‘진국’이다. 강촌에는 어김없이 다양한 천렵문화 인프라가 깔렸다. 남정네들은 천렵을 통해 잡은 각종 잡어로 어탕국수, 어죽 등을 끓여먹었다. 청도군 중심부를 흐르는 동창천변 주민들은 미꾸라지 대신 잡어를 갈아 추어탕을 끓여먹는다. 국내는 저수지의 천국. 특히 저수지에서는 참붕어와 가물치가 보물로 취급받는다. 가물치보다 더 귀한 몸은 상류 1급수에서만 잡히는 ‘쏘가리’. 논두렁 옆 도랑에서는 미꾸라지, 메기 등이 많이 잡히고 실개천에는 피라미가 지천이다. 잡어의 세계를 제대로 알려면 강태공이 되는 수밖에.

현재 대구의 매운탕 시장은 논메기매운탕 천국이다.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양식어종은 볼 수 없었다. 거의 자연산이었다. 대구는 신천·금호강·낙동강에 둘러싸여 정말 유명한 매운탕촌이 즐비했다. 하양·청천·동촌·강창·강정·화원유원지, 옥포 용연사 등이 지역 대표 매운탕촌으로 한시절을 풍미한다. 90년대초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에 등장한 손중헌논메기매운탕과 서재할매메기매운탕의 대박행진으로 인해 지역 매운탕 문화는 기존 잉어·붕어시대에서 논메기시대로 이동한다. 하지만 상당수 마니아는 역시 매운탕의 대표주자는 ‘잡어탕’이라고 믿는다.

현재 들안길 ‘민물박사’, 내당네거리 ‘금강’, 복현동과 범어동의 ‘강나루’, 28년 역사의 수성구 수성4가동 ‘석순이네민물매운탕’(옛 반도매운탕), 후발주자인 북구 읍내동 ‘청룡매운탕’ 등이 잡어매운탕 명가로 손꼽힌다.

◆ 조상기는 민물고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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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고기 낚시광 아버지에게
탕 끓이고 회 뜨는 방법 등 배워
강의 고기 이동도 단번에 감별
‘걸어다니는 어군탐지기’

인기메뉴 쏘가리와 잡어매운탕
잡어탕은
물성과 비린내·살점 여물기 등
감안해 여러 고기 혼합해 끓여
좋은 재료와 맹물만 사용해야
끓일 때는 반드시 뚜껑 열어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에서 태어난 조상기 민물박사 사장.

다들 조 사장을 ‘민물박사’로 부른다. 강변에서 강물의 흐름새, 물 빛깔, 수면으로 떠오르는 물방울 상태 등을 보면 고기가 어디로 몰려다니는지 단번에 감별한다. 걸어다니는 ‘어군탐지기’인 셈. 그게 하루아침에 터득된 안목은 아니다.

아버지(조성규)는 못 말리는 강태공이었다. 집에서 잠을 자는 날보다 강과 저수지 옆에서 산 날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에 나가면 얼음이 얼 정도가 되어야 가족에게 빼꼼 얼굴을 내비쳤다. 어머니(정봉준)는 무늬만인 남편을 고기에게 뺏겨버렸다고 푸념했다. 아버지는 고기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구미시 옥성면 대원저수지 곁의 한 허름한 집을 매입한다. 꿈에도 그리던 강태공이 된 것이다. 즉시 ‘산정횟집’이란 간판을 걸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고기가 저수지에서 잡힌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가물치, 잉어, 붕어, 메기, 장어, 참게, 논고둥, 민물새우…. 잉어와 붕어찜이 주력 메뉴였다. 특히 아버지는 가물치회를 잘 장만했다. 특유의 졸깃한 맛과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회를 치기 전 껍질 벗긴 가물치를 막걸리로 치대 빨았다. 잉어·붕어까지 회로 냈다. 저수지는 정말 광활했다. 가장 먼 곳은 건너편까지가 무려 2㎞. 대구·경북권 낚시꾼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저수지였다. 주말 많을 때는 500~600명이 장사진을 쳤다. 그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배를 타고 건너편 낚시꾼에게 차린 식사를 갖다주었다. 잡은 고기로 탕도 끓여주었다. 요리학원에 가서 달리 배울 필요가 없었다. 현장에서 모든 노하우를 다 익힐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배를 타고 100m 길이의 줄낚시에 1m 간격으로 피라미를 꿰달아놓았다. ‘저수지의 폭군’ 가물치를 낚기 위해서다. 그는 그 저수지에서 비상한 가물치의 꾀를 목격할 수 있었다. 가물치는 봄에 산란할 때 수초 위에 산란용 집을 짓는다. 가운데 알을 쏟아내곤 그걸 지키기 위해 수초 밑에서 종일 경비를 선다. 만약 개구리가 알을 먹기 위해 접근하면 수면 위로 올라와 개구리를 급습한다. 그는 그 생리를 역이용했다. 대나무 장대 끝에 바늘을 끼워 알 옆에 대고 수초를 아래로 눌렀다 뗐다를 반복하면 성난 가물치가 장대 끝을 문다. 마치 봄날 울릉도 어부가 뱃전에 수초를 깔고 알을 낳으려고 수초 위로 올라오는 꽁치를 맨손으로 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재치있는 고기잡이 방식이다. 가물치는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물리면 자칫 손가락을 잃을 수 있어 항상 긴장해야 된다. 가물치는 회로도 활용되지만 무엇보다 가마솥에서 푹 고아 기름만 됫병에 담아 파는데, 산모에게 많이 팔았다.

한겨울에도 고기잡이는 계속된다. 얼음이 30㎝ 이상 꽝꽝 얼면 얼음낚시를 했다.

78년 비로소 모친과 부친은 의기투합을 한다. 모친도 아버지를 도와 매운탕을 끓였다.

대구로 왔다. 동구 청구고 옆에 ‘장안매운탕’을 차린다. 거기서 3년 있다가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4년간 ‘소양강매운탕’을 꾸려간다. 다시 수성구 범물동 두성아파트 상가에서 지금의 ‘민물박사’란 상호를 사용한다. 거기서 12년 있다가 황금동에서 5년, 두산동에서 12년 있다가 2년전 현재 들안길 본점으로 옮겨온다. 현재 막내동생 조창기씨가 북구 읍내동에서 직영점을 운영한다.

◆ 나의 감각적 매운탕 레시피

현재 이 집의 최고 인기 메뉴는 쏘가리와 잡어매운탕.

식용유의 비등점과 온도관리를 잘해 졸깃하면서도 파삭거리는 도리뱅뱅이(피라미튀김), 어탕국수와 어탕수제비, 어탕해장국 등도 ‘역시 민물박사표’란 믿음을 준다. 수족관에는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꺽지, 뿌구리(동사리), 메기, 모래무지, 잉어, 장어 등이 있다.

잡어를 끓일 때 여러 고기를 믹싱해서 끓인다. 어종마다 맛을 내는 방식과 울림이 다르다. 어종별 물성과 비린내, 살점의 여물기를 감안해서 혼합한다.

그가 빠가사리·꺽지·뿌구리·모래무지·피라미 맛의 특징을 설명한다.

“빠가사리, 뿌구리 등은 육질이 아주 졸깃하다. 국물맛을 내는 데는 역시 빠가사리가 제일이다.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건 뿌구리, 담백함을 만드는 건 역시 모래무지다. 피라미는 감초처럼 다른 어종의 장점과 단점을 조화롭게 해준다.”

현재 잡어 중 빠가사리, 잉어, 메기 등은 양식이 되고 쏘가리는 잡어매운탕집의 최고급 어종으로 양식이 안된다. 쏘가리도 가물치처럼 산 고기를 먹고 자라는데 섬진강, 경호강, 덕천강, 낙동강 상주보 상류 등 1급수에서 잡힌다.

예전에는 혼자 1인3역을 해야 됐다. 직접 고기를 잡아와 장만하고 끓이고 서빙까지 해결했다. 요즘은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유통업자의 고기도 받고 철이 되면 섬진강 순창 구역, 낙동강 예천 구역, 금강휴게소 건너편, 황간 원류봉 계곡, 대원·무월저수지와 운문댐 밑도 찾는다.

그는 누구보다 저수지와 강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한반도 기후온난화로 인해 금어기가 빨라져야 되는데 당국은 현장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걸 지적한다.

◆ 어떻게 비린내를 잡지?

비린내 잡는 건 매운탕 업자의 최대과제.

집집마다 비법이 있다. 그는 일단 돌에 푸른 이끼가 감돌기 시작한 하천의 고기는 잡지 않는다. 그런 걸 잡으면 엄청 비린내가 나고 살점에서 석유냄새까지 난다고 했다. 그는 끓일 때 뚜껑을 닫아놓으면 비린내가 제대로 제압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드시 열어놓고 끓인다.

또한 된장과 고추장의 절묘한 배합도 맛의 최대 승부처.

“일단 매운탕은 고추장이 주인공이고 된장은 조연이다. 고추장을 두 숟가락 넣는다면 된장은 반 숟가락 비율이면 충분하다. 된장은 구수하고 고추장은 얼큰칼칼한 맛인데, 된장은 국물맛을 육중하게 만들고 고추장은 맑고 담백하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다. 알아서 믹싱해야 된다. 초보는 그 감각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는 정량주의가 아니고 ‘눈대중주의’를 존중한다. 직감이 제일 정확하단다. 매운탕은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해야 하고 찜은 구수한 맛이 생명. 그래서 찜에는 들깻가루를 넣는다. 단맛도 삶은 양파즙을 활용한다. 도리뱅뱅이튀김용 피라미는 역시 금강에서 잡은 게 최고란다. 피라미튀김은 덜 익으면 물렁물렁하고 너무 튀기면 타버려 딱딱해진다. 탱글거리는 파삭거림. 촉촉한 쿠키와 건빵의 중간 지점 탄성을 유지해야 된다. 그건 레시피가 아니라 연륜이자 감각이란다. 잡어맛은 역시 10~12월이 짱이란다. 가을에는 메기가 진미다. 붕어는 살 속에 박혀 있는 고약한 Y자 잔뼈를 제거하기 위해 칼집을 많이 넣는다. 붕어는 역시 30㎝ 남짓, 잉어는 45㎝ 남짓이 가장 맛있단다. 실력파는 역시 육수에 의존하지 않고 좋은 재료에 맹물만 사용해야 참맛을 알 수 있단다. 수제비와 고춧가루에 너무 의존하면 결국 국물맛을 텁텁하게 만든다고 했다. 진정한 매운탕 맛은 식어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란 사실도 덧붙였다. 수성구 들안로 47 (053)768-2104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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