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안영감’ 안재성의 소고깃국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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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5   |  발행일 2016-02-05 제42면   |  수정 2016-02-05
250인분 무쇠가마솥에서 펄펄…“끓는 소리만 들어도 ‘국의 속마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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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양지머리와 무, 뿌리파를 중심으로 2시간여 소고깃국을 끓이는 안영감 내외. 맛은 비법이 아니고, 좋은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데서 형성된다고 믿기 때문에 자식의 얼굴 보듯 가마솥 국에 올인한다.

그 사내(안재성·55)의 별명은 ‘안영감’. 그런데 만나보니 50대 사내다. 아내 김은영씨(51)는 남편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꼼꼼한 남자일 거다”고 평가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냥 빙그레 웃는다. 기질상 소고깃국 끓이는 일은 천직이었다.

부부는 낮에는 달서구 상인동 ‘달비골 안영감집 국밥’,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는 범물동 진밭골 초입 ‘안영감 식육식당’에 머문다. 안영감은 식육점은 물론 거기서 나온 고기로 숯불구이도 팔고 소고깃국과 곰탕까지 만들어 판다. 소고기와 관련해 A부터 Z까지를 모두 다루는 셈.

경남 합천군 초계면 출신인 그는 30여년 전에 대구로 온다.

대학에서 기계학을 전공한 그는 훗날 자신이 소고깃국을 끓이는 요리사가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졸업 후 빙그레아이스크림 납품 차를 몰았다. 그런데 왠지 그 일이 자기한테는 맞지 않았다. 점심 때는 허름한 돼지국밥집, 따로국밥, 선지해장국 등을 즐겨 먹었다. ‘종이커피’를 마시면서 주방에서 열심히 국을 끓이고 있는 식당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30년前 식육점하던 누나의 사업 제안
발골기술 익히며 소의 29개 부위 터득
11년前 아내와 범물동에 식육식당 오픈
식당옆 식육점 운영 부위별 최고맛 선사

2년前 상인동선 대구式 소고깃국 전문점
참기름 넣어 육즙내 따로국밥과 차별화
양지·사태·무·대파만으로 최고 깊은 맛
10일 만에 한번 끓이는 곰탕까지 섭렵


안씨의 누나는 1985년 달서구 송현시장 내에서 식육점을 꾸려갔다. 5년 뒤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으로 옮겨 동신식육점을 오픈한다. 그무렵 그는 소고기를 파는 가게가 서울에선 ‘정육점, 대구에선 ‘식육점’으로 불린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누나가 남동생에게 식육점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난생처음 사바키용 ‘발골도(拔骨刀)’란 걸 잡게 된다.

그가 일반인은 접근할 수 있는 도축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의 도축은 30여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크게 생축 반입, 계류 및 검사, 유도로로 들어온 소를 도축하고 이어 피를 빼고 두족을 절단하고 예박(털을 벗김)하고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적출합니다. 이어 세척하고 영하 20℃로 예냉해 계량한 뒤 등급을 판정받고 발골 전문 기술자에 의해 4등분 도체 직후 육가공돼 출하되죠. 그런데 일반인은 지육·정육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지육은 도축 후 껍질을 벗기고 머리 부분, 꼬리, 사지 끝을 절단하고 내장을 꺼낸 상태, 정육은 지육에서 뼈, 근육, 여분의 지방을 제거한 거죠.”

그는 3~4개월 지육과 동고동락했다. 살과 근육, 지방과 뼈의 구조를 머리에 모두 암기를 했다. 특히 등심 부위를 빼내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고기가 들어오면 발골 전문가가 1시간 이상 칼질을 하는데 그것도 고도의 기술이라 여겼는지 그가 훔쳐보면 평소 하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발골했다. 그렇게 해서 일반인이 알고 있는 29개 소 부위별 모양을 어렵사리 익힐 수 있었다.

“하루 두 마리의 지육과 씨름하고 나면 제 몸은 피범벅이 됩니다. 밤에는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려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그는 식육점보다 식육식당이 체질에 더 맞을 것 같았다. 아내와 상의해 2004년 수성구 범물동에 안영감 식육식당을 차린다.

◆ 품질은 최고로 가격은 최저로

당시 시내 곳곳에 숯불구이 전문점이 포진해 있었다. 특별한 구석이 없으면 승산이 없었다. 일단 한우에 대한 기본 지식은 갖고 있고, 다음은 맛 경쟁보다 가격 경쟁이라 봤다. 한우 1등급 투플(1++), 그건 1인분에 2만원대 아니면 먹기 힘들었다. 그걸 최대한 1만원 초반대로 낮추었다. 고기는 대구 도심 신흥축산의 124번 중개인, 고령축산의 77번 중개인으로부터 공급받았다. 식당 옆은 들어온 도체를 정육으로 해체하는 식육점이다. 고기를 굽는 도구도 석쇠와 곱돌 두 종류를 사용했다. 직화구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돌판에 간접적으로 굽힌 걸 더 선호하는 이도 있었다. 한쪽은 석쇠구이, 한쪽은 돌판구이 공간이었다. 식육식당을 제대로 하려면 고기별 맛과 적당한 요리 형태가 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부부가 부위별 맛과 적당한 요리에 대한 지식을 정리해준다.

“서울은 등심이 강하고 대구는 갈빗살이 강하죠. 불고기용으로는 지방이 적으면서 고기결이 약간은 거친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답니다. 단백질이 많고 맛을 낼 수 있는 부위인 목심이나 앞다리와 우둔 그리고 설도가 불고기용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이나 탕으로 요리를 할 때에는 진한 육수가 잘 우러나오는 양지나 갈비 그리고 앞다리가 적합하죠. 산적과 장조림을 만들 때에는 기름기가 적은 앞다리 살과 우둔 그리고 설도가 적당해요. 숯불구이는 갈비가 제일이죠.”

◆ 안영감 소고깃국에 도전하다

범물동 식육식당에서 현재 스타일과 다른 육개장을 끓였다. 고사리도 넣고 고기도 결대로 찢어냈다. 그런데 단골에게 별로 어필되지 않았다. 솔직히 소고기로 끓인 해물탕 같았다. 제대로 끓이고 싶어 2년 전 상인동에 소고깃국 전문점을 냈다. 일단 최상급 양지머리, 사태살과 무와 대파, 양념장만으로 가장 심플하면서도 가장 깊은 맛의 대구식 소고깃국에 도전했다. 백철솥으로는 특유의 맛을 내기 힘들다 싶어 250인분 무쇠가마솥을 마련했다.

안 아프면 오전 10시에 나와 1시간30분 남짓 국을 끓인다. 여느 따로국밥은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하지만 그는 정육에 참기름을 넣어 거기서 스며나오는 육즙, 그리고 무와 파에서 추출되는 달면서도 깔끔한 맛을 역이용한다. 무와 파의 양도 조절해야 된다. 파는 단 성분이 감도는 감미로운 맛을 내는데 너무 익어버리면 국맛이 달달해 식감을 버린다. 그걸 방지하는 식재료가 무다. 무는 파보다 상대적으로 덜 넣는다. 무를 넣고 10분 뒤 파를 집어넣어야 맛의 균형이 딱 맞아들어간다. 국을 오래 끓이면서 동·하절기별 채소의 맛 차이도 알게 됐다. 파의 경우 겨울에는 뿌리 부위, 봄에는 잎 부위에 무게 중심이 실린다. 하지만 하절기에는 무와 대파가 동절기만큼 깊은 맛을 못 내기 때문에 그때마다 고기의 양을 더 증가시켜 묽어지는 국물맛에 중량감을 주어야 한다. 들어가는 물의 양이 조금만 줄어들면 졸아들어 너무 익어버린 맛이 입맛을 불쾌하게 한다. 불의 강약을 조절해야 되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의 강도도 염두에 두어야 된다.

또한 국그릇도 맛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국을 담는 그릇이 빨리 식으면 식감은 금세 추락해버린다. 손님이 다 먹을 동안 육수 온도가 따끈해야 된다. 그래서 놋그릇에 국을 담는다.

특히 수면 위에 떠돌아다니는 국기름은 예전과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다 제거해야 된다. 소고기의 육질이 비록 좋다고 해도 너무 많이 끓이면 물 먹은 가죽처럼 질기다.

이젠 국물이 끓는 소리만 들으면 국의 속마음이 보인다고 한다. 방심은 금물. 비록 오늘 국맛이 상종가라도 자칫 한눈을 팔면 하한가로 마구 추락한다. 한번 실망한 사람은 발길을 냉정하게 돌린다. 그래서 그는 소고깃국은 체인점이 원칙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10여년 만에 소고깃국의 맛을 일정수준으로 세팅시킨 뒤 곰탕에 도전했다. 곰탕은 10일 만에 한번 끓인다. 이때 양질의 사골을 13개 정도 넣고 한 번에 6~8시간 세 차례에 걸쳐 육수를 뽑아내 섞어 사용한다. 사골 속에 숨어 있는 핏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데 보통 2일 정도 물에 담가둔다. 곰탕 육수의 구수한 기운을 발산시키기 위해 족발도 10개 정도 함께 넣어 고아낸다. 최고의 맛은 아무래도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단다. (053)639-491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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