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詩 끓이는 국밥집’ 세명식당 신정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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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9   |  발행일 2016-02-19 제42면   |  수정 2016-02-19
“주인장 詩心만큼 손맛도 일품”…돼지국밥에 곰삭은 묵은지로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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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민 사장이 끓이는 한 그릇의 돼지국밥은 상품이 아니고 ‘작품’이다. 누구한테 전수한 게 아니고 숱한 ‘퇴고’(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한 편의 시 같은 돼지국밥. 이걸 먹기 위해 찾는 이웃 단골의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다양한 시상을 잡아내는 것, 그게 그녀의 가장 큰 위안인 동시에 보람이다.

돼지국밥과 시인. 좀 생뚱맞은 궁합 같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울릴 구석도 보인다. 부산의 대표적 시인 중 한 명인 최영철. 그가 1997년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에 발표한 ‘야성은 빛나다’란 시에서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라고 돼지국밥을 노래했다.

돼지국밥집의 주제는 국밥보다 국을 만드는 아줌마가 아닐까. 돼지국밥은 눈물, 아니 웃음 같다가 일순 한숨으로 변주된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여러 수호신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돼지국밥집 아줌마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수가 틀리면 일거에 상대를 육두문자로 제압하는 카리스마. 넉넉한 몸집에 달덩이처럼 둥두렷한 얼굴이 압권이다. 아무나 돼지국밥집을 열 수 없다. 대구에 여러 돼지국밥 아줌마가 있지만 기자는 이 아줌마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잃어가고 망각하고 있는 조선의 정(情), 품앗이 정신을 비교적 원형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은 양복 입고 ‘에헴~’ 하고 폼 잡고 오는 사람은 대우받지 못한다. 반듯한 사람보다 좀 헐렁한 사람이 더 어울린다.


15년 전에 가창 대일리 식당 열고
매일 詩 쓰는 마음으로 국밥 끓여
서지월·석용진 등 예술가들 단골

육수내기부터 全 과정 혼자 터득
“요리는 덧셈 아니라 뺄셈이 급소”
머릿고기만 사용…조미료도 없애


◆ 시를 쓰는 돼지국밥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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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식당’ 신정민 사장.

‘세명식당’이다.

팔조령 가는 국도변에 허름하게 앉아 있다. 가창면 대일리 가창초등학교 네거리 대일1리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다. 일명 ‘감투봉식당’. 감투봉은 대일리를 굽어보는 산 이름.

신정민 여사장(61)은 시인 지망생이다. 국 끓이는 일 자체가 그녀의 ‘시작(詩作)’ 활동이다. 한쪽 벽에 그녀가 얼마 전 지은 ‘회초리 소리’란 자작시가 액자로 걸려 있다.



‘옛날 엄마한테 회초리로 맞는 소리/ 그 소리처럼 앙칼진 소리 밤새 잠 못 들게 한다/ 따뜻한 이부자리 속에서 듣는 내 몸 휘감는 매서운 바람소리/ 두고 온 엄마 잊기나 할까 봐/ 뒷문 밖 앙상한 나뭇가지 깨어나 부딪히는 소리/ 엄마는 차가운 땅속 깊은 잠 들었는데/ 아직도 나를 꾸짖는 소리’



꾸짖는 엄마의 맘으로 매일 돼지국밥을 끓인다.

얼마 전 식당 근처에 있는 서지월 시인의 집이 홀라당 전소됐다. 지역 문인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보냈다. 그 화재 때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이 바로 그녀다. 이 식당은 새벽 늦게 잠들고 오후 2시가 넘어야 부스스 잠을 깨는 겨울곰 같은 서 시인의 전용 식당. 그녀의 시 곁에 그의 시 ‘인생을 묻는 그대에게’란 시가 놓여 있다. 서 시인은 그녀의 가창초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이 집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예술가가 있다. 서예가 일사 석용진이다. 일사는 15년 전 식당이 문을 열 때부터 단골이었다. 팔조령 너머 청도 집과 시내 작업실을 오갈 때 애용했다. 옛 국도가 확장될 때 세명식당이 길 건너편으로 이전한다. 일사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이전한 이 식당을 찾는 데 1년이 걸렸다. 일사는 아줌마와의 인연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몇 작품을 벽에 걸어주었다. 자연스럽게 일사의 ‘국밥갤러리’ 하나가 그렇게 태어난다.

◆ 한때 유명 돼지갈빗집 주인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대일리로 이사 온다. 학창시절 문학적 재능이 있어 이런저런 백일장에 나갔다. 훗날 돼지국밥집 주인이 될 줄은 몰랐다. 충청도 남편을 만나 대구서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30년 전 남구 대봉동 세명정형외과 옆에서 ‘보은숯불갈비집’을 연다. 기본 손맛은 있어 저지른 식당이다. 요리는 주방장, 자신은 카운터와 홀 관리 담당. 남편 등 모두 1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남편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렇게 고분고분한 남편은 아니었다.

자연히 일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오전 9시부터 12시간 식당에 서 있었다. 발이 퉁퉁 부었다. 문학소녀여서 그랬던지 돈은 벌어도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다. 그냥 벌어서 직원과 나눠 가질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오후 2시 어름이면 근처 힘든 노인들이 찾아온다. 자투리 잡고기를 넣어 돼지찌개를 맛있게 끓여 나눠주었다. 이정무 전 국회의원, 남구청 직원 등도 단골이었다.

식당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였다. 외환위기 때 맘씨 좋은 남편이 보증을 섰다. 식당은 졸지에 절벽으로 내몰린다. 돼지갈빗집은 그간 순풍에 돛단배처럼 잘 흘러갔는데 일시에 청천벽력을 만난다. 3년 만에 식당을 정리했다. 빚을 떠안고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대일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녀는 역시 여장부.

우울한 맘도 없었다. “가창 올 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없어도 행복하더라’. 재산을 싹 털고 나니 되레 ‘없는 게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모르긴 해도 시심(詩心)이 그녀를 다독거렸을 것이다. 일과 후 화장을 지울 때나 커피 한 잔 먹을 때 문득 떠오른 좋은 시상을 장부 귀퉁이에 부리나케 몇 줄 적어놓기도 했다. 누가 ‘뭘 적어요’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웃어넘겼다. 그게 다 그녀의 시 근육을 연마하는 과정이었다.

대일리로 와서 맨 처음 한 건 분식집이다. 우동·라면·김밥 정도만 파는 간판 없는 분식집이었다. 빠듯했다. 다시 뭘 갖고 입에 풀칠을 할까 고민했다. 그때 동네 오라버니가 국밥집을 적극 추천했다.

◆ 혼자 터득한 돼지국밥 끓이기

만만한 게 돼지국밥이지만 막상 끓이려고 하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막막했다. 레시피를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부딪혀보자. 찬물에 사골을 넣고 무턱대고 종일 끓였다. 육수가 완성됐다 싶으면 한 입맛 하는 오라버니를 불러 테스트를 받았다. 찬물보다 뜨거운 물에 사골을 넣고 끓여야 잡내가 안 난다는 사실을 터득한다.

다음은 육수의 농도 잡기. 너무 묽어도, 너무 진해도 안된다. 괜찮다 싶은 한약재, 소주, 잡내 제거하는 첨가제 등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넣었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었다. 요리는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 급소였다. 물과 사골, 그리고 불만 있으면 되지, 다른 첨가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었다.

고맙게도 한 후배가 육수 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들쭉날쭉이었다. 한우 사골과 달리 돼지뼈는 재탕·삼탕 하면 짠내가 나서 맛을 버리게 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뼛속 골분도 초탕에서 거의 사라집니다. 사골을 여러 번 고아내면 육수가 더 좋은 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초보자가 실수하는 대목도 바로 여기죠.”

수돗물이 아니다. 산에서 가둬 사용하는 지하수라서 육수가 더 믿음직하다.

성품처럼 주방에는 화학조미료통이 없다. 다른 고기는 사용하지 않고 머릿고기만 사용한다. 지방이 적으면서도 육질이 좋아서 그랬다. 동절기보다 하절기가 육수 맛을 관리하기 힘들단다.

2~3년 묵은지. 이게 매우 강렬한 조미료 구실을 한다. 국을 먹을 때 잘게 채 썰어 놓은 이걸 조금씩 넣어가면서 달라지는 육수의 농도를 만끽해 본다.

“예전 장터에 가면 양념이 부족해서 묵은지를 쫑쫑 썰어 넣고 또 소면을 조금씩 넣어주잖아요. 그게 생각나 응용을 해봤습니다.”

조미료가 없다 보니 손님과 맛 때문에 시비도 잦았다. 묵은지를 넣어 먹어보라고 해도 손님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조미료가 없는 대신 육수도 좀 더 진하게, 정구지(부추)도 더 푸짐하게 넣었다. 4년 정도 지나면서 단골들도 세명만의 맛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서정률(작고), 송창준, 서영식, 서영욱, 서칠교, 배태원…. 이웃 사내들이 줄을 잇는다. 제주도에서는 만만하면 삼촌이라고 하듯 그녀는 그들을 ‘화상’이라 부른다. 욕을 해도 상관없는 사이다.

커피와 약차 마시러 오는 화상, 갓 수확한 농작물 주러 오는 화상, 김장김치 갖고 오는 화상, 부부싸움 속풀이하느라 찾는 화상, 심심해서 하품하러 오는 화상들…. 가끔 대구의 자전거족과 비슬산 둘레길족도 찾는다. 그녀는 화상들의 집안 속사정을 그 가족보다 더 소상히 안다.

그녀는 국밥 아줌마가 아닌 것 같다. ‘대일리 명예이장’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가창면 대일리 가창로 126길. 매주 일요일 휴무. (053)767-6788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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