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제철음식을 찾아서 - 봄 주꾸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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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01   |  발행일 2016-04-01 제42면   |  수정 2016-04-01
머리에 잘 익은 밥알 같은 알이 꽉…“차지게 씹히는 맛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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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와 비슷하지만 낙지보다 더 힘이 센 봄 주꾸미. 제철을 맞아 서천, 대천, 무창포 등 서해 곳곳에서 주꾸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금 이 철의 주꾸미 머리 속은 알로 꽉 차있어 샤부샤부로 먹으면 더 진미를 느낄 수 있다.

미식가는 ‘제철 식재료 캘린더’를 작성한다. 그는 지금 이 무렵, 어떤 농수산물을 먹어야 되는지를 안다. ‘10리(4㎞) 안에서 생산되는 로컬 제철음식’을 농협에서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음식이라 한다. 생육환경 탓인지 자꾸 제철이 실종되는 것 같다.

제철 만난 농수산물은 포스와 때깔부터 다르다. 늦가을 제철 사과의 생동감 넘치는 과즙을 생각하시라. 창고에서 해를 넘긴 푸석푸석 하박하박한 사과는 절대 따라올 수 없다. 제철식재료는 사실 별다른 조리술이 필요치 않다. 그냥 날것 그대로가 딱이다. 제철 식재료는 ‘생얼’이 제격. 식재료가 시들면 악덕 식당주는 요상한 양념·향신료로 짙은 메이크업을 한다. 저급 식재료를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는 일종의 사기. 그건 조리가 아니고 조립(組立)이다. 요즘 그런 음식이 식당마다 흘러넘친다. 힐링·웰빙의 출발은 제철음식을 찾는 데서부터.


5∼6월 산란기前 3∼5월 서해産 별미
소라껍데기 이용 주낙 씨알 굵고 싱싱
가을에도 잡히지만 알 없어 맛 떨어져

오는 8일까지 ‘서천 동백주꾸미축제’
무분별한 어획에 씨 말라…88% 수입
대구신주꾸미 샤부샤부로 ‘五味’ 경험



봄 도다리 시즌이 다 끝나간다. 이젠 ‘봄 주꾸미’ 시즌이다. 시즌은 3~5월. 주꾸미는 동·서·남해에서 다 잡힌다. 하지만 동·남해 주꾸미는 서해산(충남 서산~보령)에 맥을 못 춘다.

막강한 서해 주꾸미, 이놈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사건이 1976년에 발생한다. 그해 1월 신안군 지도면 도덕도의 한 어부가 희한한 일로 고려청자 접시를 확보하게 된다. 주꾸미가 청자를 물고 물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 주꾸미 때문에 그해 10월11일부터 대대적인 신안 해저유물 발굴이 시작된다. 주꾸미 이야기를 할 때면 꼭 그 청자접시가 감초처럼 등장한다.

주꾸미도 지역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전라·충남에서는 ‘쭈깨미’, 경남에서는 ‘쭈게미’라고도 불린다. 흔히 ‘쭈꾸미’로 불리지만 주꾸미가 정확한 이름이다. 몸통에 8개의 팔이 달려 있는 것은 낙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크기가 70㎝ 정도 되는 낙지에 비해 몸길이가 약 20㎝로 작은 편에 속한다. 한 팔이 긴 낙지와 달리 주꾸미의 8개 팔은 거의 같은 길이다.

주꾸미는 지역에 따라 잡는 시기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서남해에서는 더운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9월 무렵이면 주꾸미를 잡기 시작해 가을철이 한철이고 마량포구, 무창포 등 서해 중부에서는 2월 하순~5월 하순 주로 조업을 한다.

잡는 방법은 ‘주꾸미주낙’과 ‘낭장망’ 두 가지가 있다. 주꾸미주낙은 소라껍데기를 이용하며, 낭장망은 그물을 이용한다. 낭장망을 이용하여 잡은 주꾸미는 씨알이 잘고 싱싱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득량만과 곰소만 같은 부안 지역에서는 주꾸미주낙을 이용한다. 이를 ‘소라빵’이라고 부른다.

주꾸미주낙은 몸줄에 60여㎝ 간격으로 소라(피뿔고동)나 피조개의 껍데기를 달아서 만든다. 이 껍데기들을 ‘주꾸미단지’라고 하는데 주꾸미단지는 조업철에 따라 가을단지와 봄단지로 나뉜다. 가을단지는 높이가 8㎝, 길이는 4㎝ 남짓이다. 고흥반도 서쪽 득량만 일대처럼 가을철에 조업을 하는 지역은 크기가 작은 가을단지를 이용하지만 곰소 일대처럼 봄철에 조업하는 지역은 크기가 큰 봄단지를 이용한다.

주꾸미는 수심 10m 정도 연안의 바위틈에 서식하며 야행성이다. 산란기는 5∼6월이다. 바다 밑의 오목한 틈이 있는 곳에 포도 모양의 알을 낳는다. 1년생인 주꾸미는 알을 낳고 나면 연어처럼 죽는다. 산란기를 앞두고 머리 안에 알이 꽉 들어찬다. 삶으면 꼭 밀감 알갱이, 찐쌀처럼 보인다. 가을에도 잡히지만 알이 없기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 국내산 주꾸미는 갈색과 회색을 띠는 반면 냉동 수입된 주꾸미는 누런 색깔을 띠며 빨판 크기도 큰 편. 특히 봄철 주꾸미의 알은 밥알을 뭉쳐놓은 것과 비슷해 ‘주꾸미 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주꾸미와 함께 동백꽃을 떠올린다. 주꾸미는 보통 충남 서천군 동백정의 동백꽃이 필 무렵에 알을 품는데 이때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최대 최고의 주꾸미축제는 올해 17회(3월26일~4월8일)를 맞는 충남 서천군 마량포구·홍원항에서 열리는 서천 동백주꾸미축제다. 대천과 무창포 등 충남 서해안은 3월말부터 4월초 일제히 ‘주꾸미 축제촌’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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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수산 유대식 사장(왼쪽)이 대구신주꾸미 김윤동 사장과 ‘주꾸미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주꾸미 금어기 논쟁

일반인은 현재 해양수산부가 주꾸미에 대해 금어기를 정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충남 서해안권 어민들은 매년 3~5월 소라빵 조업을 통해 산란기를 맞은 주꾸미를 잡아 생업을 해왔다. 그런데 2009년 가을 보령 오천 앞바다에서부터 주꾸미 선상낚시 붐이 일어난다. 봄 주꾸미를 잡는 어민과 가을 주꾸미를 잡는 낚시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보다 못한 어민들은 2012년 충남도청과 해수부에 가을 낚시인 때문에 성장기의 주꾸미씨가 마르는 바람에 봄 주꾸미 조업이 치명상을 입었다면서 금어기를 정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5월1일~8월31일을 금어기로 하는 입법예고를 했다. 그런데 그 예고가 다시 5월16일~9월20일로 조정된다. 낚시인들이 다시 반발한다. 서해안 주꾸미 낚시는 8~10월이 적기라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이들은 모든 어종의 금어기는 산란기에 맞춰지는데 주꾸미는 왜 성장기인 가을을 금어기로 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산란기인 3~6월을 금어기로 정해야 된다고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충남의 경우 낚시어선만 1천54척, 소라빵 소형어선은 1천여척. 갈수록 낚시주꾸미가 강세를 보인다. 가을이 되면 충남 보령에서만 매일 낚시 어선 500여척이 바다로 나간다.

◆ 주꾸미 원산지 표시대상 아니다?

주꾸미는 낙지와 꼴뚜기의 중간 정도 크기다. 주꾸미불고깃집에 나오는 새끼 주꾸미는 대개 수입된 것. 7~8년 전부터 주꾸미 요릿집이 급증하면서 수입량도 대거 늘어났다. 해수부에 따르면 2014년 국내에서 생산된 주꾸미의 양은 2천525t, 수입된 양은 2만989t으로 8배 이상이다.

어획량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낚시객. 가을철 한창 성장할 시기에 낚시객이 몰려 치어까지 낚아올리기 때문이다. 봄철 서해안을 따라 열리는 축제에 맞춰 무리한 조업을 하는 것도 문제다.

제철을 맞은 국산 주꾸미를 구하기 쉽지 않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서는 베트남이나 태국 등 다양한 국가로부터 수입 주꾸미 취급 물량을 늘려가고 있다. 롯데마트가 지난 3년간(2013~2015년) 주꾸미 매출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전체 주꾸미 매출 중 수입 비중은 85%였으며 국내산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결국 충남도 등이 2019년까지 연안 해역 1천300㏊에 주꾸미 산란·보육장을 조성한다.

문제는 이 주꾸미는 음식점에선 원산지 표시 의무 대상이 아니란 사실이다. 음식점 수산물 원산지 표시 대상은 낙지 등 9개 품목뿐. 국내산 가격의 절반인 냉동 수입 주꾸미를 국산으로 속여 팔아도 사실상 음식점을 단속할 수 없다. 국내서 팔리는 주꾸미의 88%가 중국, 베트남 등에서 수입되는데 음식점에서 먹는 주꾸미의 국적은 알 수 없는 상황.

◆ 대구의 주꾸미 전문점

‘낭만’ ‘참한상’ ‘아라’ ‘청담’ 등등은 3년 전부터 대구에서 힘을 발휘하는 ‘체인형 주꾸미불고기점’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제철 주꾸미 맛을 못 본다. 너무 비싸 서해산 주꾸미를 사용하기 어렵다. 원활한 물량공급 때문에 대구에선 주꾸미 전문점을 하기 어렵다.

대구에서 주꾸미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한 건 10년 전. 남구 봉덕동 대천주꾸미였다. 이후 황금동 대구신주꾸미, 범물동 미정식당, 대명동 무안회타운, 성서 신흥주꾸미, 독도주꾸미 등 9개가 생겨났다. 지금은 4개(대구신주꾸미·독도주꾸미·무안회타운·미정식당)만 남았다.

수성구 황금네거리 근처 한국관 맞은편에 있는 ‘대구신주꾸미’. 7년 역사를 갖고 있다. 서해안 대천에서 4시간 걸려 주꾸미가 도착한다. 30년 역사의 어패류 유통전문 대도수산 유대식 사장이 유통을 책임진다.

주꾸미에 올인한 김윤동 사장(51). 그는 튀김, 직화, 숯불 등은 물론 고량주로 불쇼도 벌여가면서 새로운 주꾸미 메뉴를 실험했다. 결론은 주꾸미 샤부샤부였다.

샤부샤부엔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제철 서해안을 맛본다. 그 이상의 맛을 기대해선 안 된다. 그 이상은 양념맛임에 분명하다. 머리를 잘라 잘 익은 주꾸미밥을 씹어봤다. 정말 밥맛이다.

8℃로 유지되는 수족관. 거기에 주꾸미가 까다롭게 산다. 3일 이상 못 산다. 산 것만 갖고 샤부샤부를 한다. 죽으면 곧바로 손님에게 얘기하고 서비스로 낸다. 가장 담백한 맛을 위해 마리당 6천원 이상인 100g짜리를 쓴다. 주꾸미는 푹 삶으면 지옥. 슬쩍 익혀야 한다. 주꾸미 먹물을 겁내는 사람도 있는데 보기와 달리 먹물도 천연 조미료다. 익으면서 특유의 페로몬 냄새를 뿜어낸다. 중간에 감자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는다. 육수가 계속 졸아든다. 다 먹는 동안 모두 5번 맛이 달라졌다. 이 때문에 기본 육수는 맹물에 가깝게 한다. 불 조절도 관건. 샤부샤부를 주문할 때 매니저에게 불을 부탁해라. 무턱대고 끓이면 주꾸미 샤부샤부 먹을 자격이 없다. 주꾸미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시세인데 7마리짜리 샤부샤부 가격은 5만6천원. 수성구 청수로 118. (053)766-856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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