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현풍장 名物’ 수구레 따로국밥, 이두연 십이리할매국밥집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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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15   |  발행일 2016-04-15 제42면   |  수정 2016-04-15
얼큰한 수구레 국물에 꼬들한 식감…70여년 불 앞 지킨 姑婦의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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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 대형마트와 홈쇼핑의 틈바구니에 들국화처럼 피어난 현풍장의 명물 수구레국밥. 국밥과 찌개, 탕과 국의 장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십이리할매국밥 이두연 사장의 표정도 어느새 수구레 버전으로 변해버렸다.

모처럼 전통시장으로 길을 향했다.

현풍백년도깨비시장(5·10일)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 전쯤 새롭게 지어진 상가 1층에 도열해 있는 수구레국밥촌. 간판을 일일이 수첩에 적어본다. 현대식당, 장세미소구레할매집, 창녕소구레국밥, 부현소구레국밥, 현가네어탕, 시장국밥, 으뜸이네, 은하곰탕, 현풍식당, 이방아지매수구레국밥, 시장보신탕, 진주식당, 성일식육식당, 십이리할매국밥, 지영이네국밥, 제일식당, 시장꿀꿀이집 등. 저 국밥집이 없는 현풍장을 생각해보라. 맥이 빠질 것이다. 3년 전부터 10여개 수구레 관련 국밥집은 5일장과 상관없이 매일 문을 연다.

소가죽과 갈빗살 사이 지방질로 별미
마리당 2㎏…좀 질기고 씹을수록 고소
60·70년대 미제군화로 끓였단 野談도
최근엔 국밥부터 무침·볶음까지 주목

현풍 국밥촌 3년 前부터 연중무휴 영업
媤母 김두임 이은 35년차 이두연 사장
선지 등 재료 장만부터 全 과정 온정성

◆소구레와 수구레

여기 오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하나. 소구레와 수구레. 어느 게 표준어일까? 일흔 고개를 살고 있는 할매 사장들은 모두 수구레는 맛이 안 난단다. 소구레, 해야 국밥이 제대로 맛을 낸다고 본다. 짜장면과 자장면이 차이랄 수 있겠다.

표준어는 ‘수구레’, 현풍지역에선 ‘소구레’로 통한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갈빗살 부위 사이에 있는 지방질. 장터 사람들은 ‘소 껍데기 안의 껍데기’라 부른다. 양지머리와 같이 쫄깃쫄깃하다. 고기 값이 비싸던 시절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수구레로 단백질을 보충하기도 했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수구레는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웃지 못할 ‘수구레 야담’이 있다.

1960~70년대에는 서울역 앞에 큰 솥을 걸어 놓고 설렁탕을 끓여 팔았다. 그 설렁탕에 들어 있던 고기가 미제 군화로 만든 수구레다. 당시 미군이 신던 군화는 순 쇠가죽으로만 만든 것이라서 몇 번 푹 삶으면 염색물이 빠지고 그럴듯한 고기가 됐다. 또 포장마차에서 파는 매콤한 수구레볶음도 샐러리맨 사이에 인기였다.

수구레는 한식 중에서 가장 ‘씹힘성의 미학’이 강하다. 씹을수록 고소하다는 점. 막상 입에 넣을 땐 비계 같은데 꼬들꼬들함과 부드러움이 비계와는 확연히 다른 살코기의 질감도 있다. 고기 같은 지방이랄까.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비계, 해파리, 물메기, 아귀 껍질을 씹는 느낌이 든다.

소 한 마리에서 수구레는 2㎏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수구레는 약간 질긴 데다 손질하기가 다소 힘들어 처음에는 버려지다시피 한 부위였다. 그래서 요즘은 수구레라는 음식을 파는 곳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청도, 창녕 등 대구와 맞물린 일부 경상도 남부권에서 아직 건재하고 있다. 원래 경상도 국밥 마니아는 맵고 얼큰하고 화끈하고 씹힘성이 있는 질깃한 특미를 좋아한다. 수구레가 딱이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막창과 곱창을 술안주로 만든 대구의 식도락가 취향도 바로 경상도 남부권의 별미 유전자와 맞물려 있다.

현풍장의 수구레 식당들은 국물에 밥이 따라 나오는 수구레국밥과 밥 대신에 삶은 국수를 말아먹는 수구레국수가 기본메뉴. 손님들의 주문에 따라 수구레 무침이나 볶음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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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레국밥의 재료들

◆십이리국밥할매를 만나다

오전 11시 수구레국밥촌 입구.

10여개 업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다들 자기가 원조라 한다. 원조를 찾는 게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어느 집이 원조인가를 너무 따지지 않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참고로 수구레국밥촌은 1970년쯤 장세미 할머니가 맨 처음 전을 깔았다고 한다. 지금은 같은 상호를 이어받은 노순연 사장이 명맥을 잇고 있다. 현풍장 수구레국밥의 첫 단추로 불리는 ‘십이리할매국밥집’을 찾았다.

가게로 들어서니 35년 전부터 국밥집을 꾸려가고 있는 이두연 사장(65)이 해바라기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맞는다. 이를 어쩌랴! 그녀의 등이 성치 않다. 얼굴은 봄날인데 등은 북풍한설 이는 한겨울이다. 수구레가 한 여인의 등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사장이 빙그레 웃으면 푸념을 깐다.

“소구레가 내 등을 이렇게 소나무처럼 굽게 만들었지. 내 등이 굽어서 내 자식이 반듯하게 클 수 있었던 거라.”

장터 할매는 왜 하나같이 시인보다 더 시인 같은가. 저렇게 쉬운 표현으로 나그네를 감동시키니.

이 국밥집은 원래 그녀의 시어머니인 올해 아흔여덟살의 김두임 할머니가 천직이라 여기면서 끌고 왔다. 김두임 할머니는 국밥집 바로 지척에 살고 있다. 아직도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그녀의 몸집은 마른 대추처럼 쪼그라들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한다. 수구레에 웃고 수구레에 울던 한 할매의 고단한, 아니 보람차고 거룩하기까지 한 평생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이 집 가계를 보니 ‘수구레 가문’이다. 이 사장이 창녕군 대합면 십이리로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는 창녕에서 가장 유명한 수구레국밥집을 꾸려가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십이리 장터 안에 있던 국밥집을 둘째 며느리한테 물려준다.

수구레국밥은 운명적인 구석이 있다. 멀쩡한 사람도 십수 년을 넘기면 등이 남아나질 못한다. 다들 휙휙 굽는다. 둘째 며느리도 허리가 너무 아파 가업을 이을 수 없었다. 결국 가장 강한 허리를 타고난 넷째 며느리인 이 사장이 26세 때 장터로 나온 시어머니의 가업을 잇게 된다.

◆수구레국밥 끓이기의 어려움

수구레는 5일마다 근처 도축장에서 보통 35~40관(1관은 3.75㎏)을 갖고 온다. 수구레의 물컹거리는 느낌을 부분적으로 상쇄시키는 게 선지다.

맛의 기본은 일단 선지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녀가 선지의 맛을 내는 방법을 소상하게 설명해준다.

펄펄 끓는 물에 한 밥그릇 분량을 집어넣는다. ‘물피’라서 주걱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걱을 사용해 휘휘 저으면 탱글탱글한 선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씌운다. 마치 참문어를 뜨거운 물에서 꽃모양으로 가닥을 잡아주듯 선지도 직접 양 손을 사용해 성형해준다. 마치 갓난아기를 목욕시켜주듯 정성스럽게 선지를 만져주어야 제대로 모양이 잡힌다. 김이 나면 잠시 불을 끈다. 그렇게 30분 정도 기다린다. 아직 선지의 속은 생피 상태라 이후 속속들이 다 익혀주어야 한다. 다시 불을 올리고 손으로 저어주고 김이 나면 뚜껑을 덮고 서서히 식히면 쫄깃쫄깃한 선지가 완성된다.

다음은 수구레 장만하기.

이 과정도 도자기 빚는 과정을 방불케 한다. 선지 만들기에 비하면 수구레 다듬는 절차는 더 조리사를 지키게 한다.

수구레는 질기고 잡내도 심해 제대로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탕 과정에 수구레를 잘 삶아야 하는데 너무 큰 솥에 삶으면 고기가 퍼져 맛을 버리게 된다. 50인분짜리 백철솥을 사용해 다듬는다. 찬물에 고기를 집어넣는다. 불을 켠다. 김이 나면 한번 뒤적거려 준다. 또 김이 나면 끄집어 낸다. 그것으로 ‘빨래 끝’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찬물로 빨래 치대듯 박박 씻어줘야 한다. 그렇게 안 씻어주면 잡내가 앙금처럼 남아 식감을 급감시킨다. 힘들어도 씻고 또 씻어줘야 한다. 그게 힘들면 전업을 해야 한다. 전통 수구레국밥을 고수하려면 이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은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잔털을 일일이 뽑아준다. 그러면서 1시간여 많게는 9번 수구레를 치대준다. 손질이 끝난 수구레는 채반에 올려 물기를 빼준다.

국을 끓이는 과정은 재료를 제대로 장만하는 데 비해 수월하다. 초탕 솥과 재탕 솥 두 개를 번갈아 이용하면서 국을 끓인다. 솥 하나만으로 끓이면 국이 너무 짓물러 맛이 없어진다. 초탕에서는 70% 정도만 익히고 나머지 30%는 주문이 들어오면 확 끓여낸다.

일차적으로 선지를 넣고 그 다음 수구레를 넣고 이어 파, 마늘, 양념류를 대충 넣고 초탕을 장만한다. 이때 선지를 바닥으로 가라앉게 하고 수구레는 위로 올린다. 그래야 너무 익고 덜 익는 걸 막을 수 있다. 수구레국밥, 부디 역사가 되시길!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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