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살맛나는집’ 문준성 대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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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5   |  발행일 2016-08-05 제40면   |  수정 2016-08-05
“한우새우살 100g 4만5천원…비싼 만큼 제값하는 숯불갈비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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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성 오너셰프가 등심 중 가장 비싸게 팔고 있는 말발굽 모양의 새우살을 직접 적출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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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성 셰프가 직접 개발한 무연 불판과 집연 후드. 직화구이의 효율을 위해 두 번 구운 참숯백탄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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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부터 시계방향으로 생갈비·갈비살·등심·꽃등심·안창살·새우살·토시살.

예순을 앞둔 주인 사내. 유럽풍의 미소를 지닌 그는 숯불갈빗집 주인한테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패셔너블한 포스를 갖고 있다.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더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이지만 그는 숯불갈비에 배수진을 쳤다.

대구시 수성구 중동 농협중앙회 대구지역본부 근처 숯불갈비 전문 ‘살맛나는집’의 오너셰프 문준성(58). 그의 포부는 대충 이렇다. 엄청 비싸지만 제대로 된 ‘숯불갈비의 원전(原典)’을 보여주자는 것.

그의 마스코트인 카키색 뿔테 선글라스. 가게에서 제일 주목받는 일종의 인테리어다. ‘안경수집광’인 그에게 안경은 자기 이미지를 지켜주는 일종의 부적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오너셰프는 자기만의 멋과 자존감을 지녀야 된다. 요리는 물론 단골을 단숨에 사로잡는 강렬한 이미지, 더불어 친절 유전자까지 겸비해야 된다.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그중 하나만 무너져도 롱런하기 힘들다.

◆ 4만5천원짜리 등심 새우살

100g 1인분에 4만5천원짜리, 등심 중 황금부위로 불리는 ‘새우살’을 맛보기 위해 이 집을 찾았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라, 여느 숯불갈빗집이면 어김없이 풍기는 비릿한 고기 냄새가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보송보송 잘 말린 타월 같은 질감이랄까, 기름기가 바닥과 벽체에 스며들지 않아서인지 실내 분위기도 별로 눅진거리지 않는다.


등심에 숨겨진 보배로 한우 궁극의 맛
소 한마리서 1㎏만 나오는 희소 부위
부드러우면서 쫄깃·탱글·향긋한 味
서울서 맛보려면 100g 12만원은 줘야

서울 특급호텔서 부위별 고기 맛본 후
대구 미식가 위한 특수육 전문점 오픈
1년 육가공업체서 도축∼해체 익히고
기름내 잡는 무연불판·집연기도 개발
숯 역시 두 번 구운 참숯백탄만 사용해



손님이 다 볼 수 있게 도마를 주방 앞 홀에 내놓았다. 오너셰프가 오픈 장소에서 고기를 장만한다는 것. 손님과 주인 간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전날 입고된 등심 한 덩어리를 능수능란하게 참치처럼 해부하기 시작한다.

여느 집이라면 무 썰듯 등심을 직각으로 자를 것 같은데 그는 좀 달랐다. “등심을 깍둑썰기 식으로 베어내면 등심 속 여러 가지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차적으로 양지를 걷어냈다. 이 부위는 메뉴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골을 위한 떡갈비용으로 사용한다. 9㎏짜리 등심 한 덩어리도 분류해서 일반등심·꽃등심·새우살로 적출해낸다. 등심육을 등급화시킨 것이다. 그가 등심의 중심부에 있는 말발굽처럼 생긴 새우살을 양손으로 덜어내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그는 어떤 곳에서 사육된 한우인가를 중시한다. 일단 해발이 높은 곳에서 자란 걸 찾는데 영주, 예천, 봉화, 상주 등 고지대에서 자란 걸 원한다.

여느 집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집연시설인 닥터가 보이지 않는다. 10여년 전에 직접 무연 불판과 집연기를 고안해 주문제작했다. 더 쾌적한 환경 때문이다. 손님들의 옷에 기름 냄새가 배지 않게 하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좋은 고기라도 숯이 안 좋고 불판이 저급하고 손님이 고기를 태워먹으면 한우 맛은 저가 수입육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참숯을 찾아나섰다. 여느 뒷고깃집은 ㎏당 몇 백 원짜리 수입 열탄에 의존한다. 그보다 좀 나은 데는 한 번만 구운 ‘검탄’을 사용한다. 검탄은 완전한 참숯이 아니다. 숯 안에 유해 가스가 스며들어 있어 연소될 때 딱~ 딱~ 숯이 갈라지고 파편까지 튄다. 그걸 모두 제거한 두 번 구운 ‘참숯백탄’을 사용한다. 대구 근교의 숯가마, 강원도 횡성 등지에서 구입해 온다.

◆ 부위별 맛을 보다

맨 먼저 ‘토시살’을 구워냈다. 토시살은 간을 보호하는 ‘내장육’으로 분류된다. 한 면당 딱 30초만 익혔다. 1분 만에 굽기 끝. 사장의 설명대로 고기가 거의 타지 않고 연기도 발생하지 않았다. 범상치 않은 포스의 집연기 후드는 펌프용 호스처럼 고기 타는 연기를 석쇠 10㎝ 위에서 무진동 버전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소금도 찍지 않고 그대로 씹으면서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듯이 음미해봤다. 내장육이라서 그런지 육질이 한없이 미끄러진다. 육즙은 해초 진물을 씹는 것 같다. 다소 물커덩거렸다.

다음은 ‘꽃등심’ 차례. 토시살보다 육즙이 더 많고 쫄깃했다. 고기의 섬유질이 어금니 위에서 살랑살랑 춤추는 것 같았다.

토시살처럼 내장육으로 분류되는 ‘안창살’은 ‘갈비 안쪽에 붙어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갈비 한 짝당 500~600g 적출된다. 육즙은 꽃등심보다 더 풍부했고 향이 무척 진하다.

‘갈비살(일명 늑간살)’은 육질과 육즙이 가장 적절하게 안배돼 있다. 느끼하지도 질기지도 않았다. 이래서 다들 갈비살을 찾는 모양이다. 하지만 서울 쪽으로 가면 갈비살보다 등심이 더 인기가 좋다. 그는 살맛나는집도 갈비살보다 등심 전문점이라고 강조한다. ‘등심’은 하박하박하면서도 아삭거림이 있다. 육즙이 받쳐주지 못하면 퍽퍽해진다. 이 집은 백탄이 퍽퍽함을 충분히 커버해준다.

‘생갈비’ 차례가 됐다. 눈을 감고 혀를 굴려 본다. 육질보다 향기가 더 압도한다. 그동안 여느 숯불갈빗집에서 거의 느낄 수 없던 내음이었다. 땅콩향과 누룩향이 감지됐다.

이제 마지막 한 부위만 남았다. 짜잔~ ‘새우살’. 그는 이 부위가 한우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일 거라고 자랑했다. “등심에 숨겨진 사각지대 고기를 제대로 도려낼 줄 알아야 발견할 수 있는 특급육”이라고 말했다.

새우살은 소 한 마리에서 1㎏ 정도 추출된다. 워낙 고급이라서 서울에선 100g에 12만원을 받기도 하는데 여기선 4만5천원. 싼 것만 밝히는 사람에겐 영원히 인연이 닿지 않는 부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표면을 살펴보았다. 고기의 한 쪽 면이 오돌뼈로 살짝 막처럼 덮여 있었다. 이 막이 부드러운 씹힘성에 탄력을 부여한다. 먼저 먹은 고기 기억을 잊기 위해 입을 헹군 뒤 새우살을 살금살금 입 안으로 넣었다. 생갈비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새우살을 씹는 순간 감동의 순위가 단숨에 바뀌었다. 뭐랄까, ‘아이스크림육’ 같았다. 향긋함과 육질의 탱글함, 꿀처럼 흘러내리는 육즙이 이슬비처럼 온몸으로 파고든다. 쫄깃·향긋·탱글·구수한 맛이 동시다발적으로 ‘미뢰’를 자극한다. 시각화된 맛이랄까. 얼마 전 맛본 1인분 10만원을 웃도는 고베 와규가 갑자기 생각났다. 고급 참치 오도로(뱃살육)처럼 기름지기만 했던 그 아쉬움을 새우살이 단번에 날려준다.

◆ 365일 식당을 지킨다

그는 서울 특급호텔 식당가에서 고기를 부위별로 음미할 수 있게 구워주는 걸 보고 대구에서도 최고의 맛을 찾는 미식가를 위한 특수육 전문점을 차리고 싶었다. 2003년 숱한 직업을 전전한 끝에 꿈의 식당을 차렸다. 예천의 궁벽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하층민의 삶을 전전한다. 섬유공장 직공에서부터 봉제사, 재단사, 도자기 영업사원 등을 거쳐 살맛나는집에 이른다. 상호도 중요하다 싶어 작명가에게 의뢰했다. ‘고기 맛이 너무 좋아 세상 사는 맛이 난다’는 중의적 상호를 잡게 된다.

그는 365일 웃는다. 지난 시절 많이 울어봤기 때문이란다. 이제 이해되지 않는 게 없단다. 그래서 단골에게 더 친절할 수 있단다. 그는 손님은 왕이 아니라 ‘신(神)’이라 믿는다. 그는 업장을 절대 비우지 않는다. 대다수 단골은 “사장이 알아서 고기를 내오라”고 주문한다. 그에게 모든 걸 일임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게 가장 보람되고 가장 부담스럽다. 어떤 단골이 어떤 부위를 즐기는지 머리에 다 꿰고 있다.

초창기에는 믿었던 육부장한테 번번이 속임을 당했다. 마지막 육부장이 한 수 가르쳐줬다. ‘육가공의 모든 걸 직접 배워라’라고 조언했다. 대구의 모 육가공회사에 취직해 도축에서 해체까지에 얽힌 비밀을 대충 익혔다. 남들이 10여년 해야 될 걸 그는 특유의 감각으로 1년도 안 돼 배울 수 있었다.

느끼함을 제거할 수 있는 우거짓국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거지의 부드러움을 위해 여러 번 삶고 씻기를 반복했다. 육수도 단품 요리 하듯 빚었다. 된장의 구수함과 우거지의 질감, 고추의 맵기를 안배했다. 흔하디 흔한 상추·파절임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덜 매운 양파, 명이장아찌, 짜고 매운 걸 누그러뜨린 서울식 백김치로 배치했다. 이 밖에 들깨를 올린 우엉정과, 연어채소말이 등이 고기를 ‘호위무사’처럼 둘러싼다. 자세히 보니 그의 표정도 점점 한우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수성구 중동 47-16 (053)766-959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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