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달성군 <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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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6   |  발행일 2017-05-26 제41면   |  수정 2017-05-26
물 따라 길 따라 옛 손맛 건강밥상…“토마토와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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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닭요리의 신지평을 연 ‘솔잎조림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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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은 잉어·붕어매운탕 시대를 압도한 ‘논메기매운탕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진은 옥포 돌고래식당 매운탕.

한때 ‘공단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달성군. 대구도 그렇지만 달성군은 더더욱 먹을 게 없다는 평가였다. 그건 잘못된 시각이었다. 현재 전국구 버전으로 치닫고 있는 이런저런 먹거리가 꽃을 피운다. ‘기능성 닭요리’로 유명한 아낙네 3명도 아름다운 경쟁을 한다. 매머드 닭백숙 명가로 성장한 ‘큰나무집’의 조갑연씨, 옻닭백숙 전문점인 ‘토담집’의 최영란씨, 솔잎조림닭을 개발한 ‘돈마을’의 윤영숙씨. 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창면에 모여 산다. 전국적 명성을 가진 발효와 전통농법 전문가도 여럿 있다. 천연식초 신드롬을 일으킨 가창면의 구관모씨, 비슬산 자락 밑에서 달성명주 ‘하향주’를 빚고 있는 박환희씨, 전국에서 가장 좋은 미질을 자랑하는 유가찹쌀 재배전문가인 곽동준씨,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자락에서 전통기법으로 ‘다슬기 진액’을 제조하는 김삼정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대구 육개장과 따로국밥 사이를 파고드는 ‘현풍박소선할매곰탕’과 타운을 형성한 현풍시장 내 ‘소구레국밥촌’. 그 스펙트럼의 연장에 서 있는 논메기매운탕의 메카로 급성장한 다사읍 부곡리의 ‘논메기매운탕촌’. 가창찐빵은 2000년 태동한 ‘뉴밀레니엄 찐빵’으로 전국적 선풍을 일으켰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출하되는 참외는‘옥포 참외’다. 연근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동구 반야월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비싼 연근은 하빈면 봉촌리 연근이다. 2013년부터 달성군 하빈면에서 서남해안권에서만 재배되는 것으로 알려진 무화과가 출하된다. 현재 우당농원 등 7농가가 ‘하빈무화과연구회’를 결성했다. 2008년 전국에선 처음으로 ‘토마토와인’이 개발됐고 3년 전부터 토마토축제를 열며 ‘토마토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금호·낙동강이 둘러싼 ‘매운탕의 고장’
60년대 화원유원지 등 강변서 역사 시작
90년대 초부터는 논메기매운탕도 인기

식당 옆서 농사 지은 밀로 빚은 칼국수
옻닭백숙·솔잎조림 등 기능성 닭요리
이름 대면 고개 끄덕여지는 식당 즐비


◆민물매운탕의 추억

달성군은 금호강과 낙동강에 둘러싸여 있어 꾼들 사이에선 ‘매운탕의 고장’으로 불렸다. 6·25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대구권 금호강·낙동강변에 청천·동촌·강창·강정·화원·옥포 매운탕촌이 우후죽순 들어선다. 1978년 화원동산이 생겨나면서 화원유원지 매운탕촌에는 화성·제일·시민·중앙·오복·국일·성주·아궁이·버들·명성식당 등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금호강이 낙동강과 합수되면서 만든 강창·강정 매운탕촌도 강세였다. 이후 강창에서 가장 유명해진 ‘대구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참모들과 두 차례 찾아 회식했다.

지금 강창 매운탕촌은 1990년대 페놀사태 등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맞은편 강정 매운탕촌이 힘을 받는다. 백씨 할매가 작고하면서 대구관 명맥은 1971년 세워진 강창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강정(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강정정수장 근처)의 ‘경산식당’으로 편입된다. 거기 금호강 뱃사공이었던 한동호씨. 그가 바로 대구관 백씨 할매의 고종사촌 동생이고 그의 다섯째 며느리 우명자씨가 경산식당을 지킨다.

또한 옥포 용연사 초입 옥연지 매운탕촌도 유명했다. 도서방, 옥포식당, 돌고래 등 한창때는 10여 개 업소가 운집했다. 현재는 옥포식당과 돌고래만 남았다.

달성군은 ‘논메기매운탕의 고향’. 특히 달성군 다사읍 부곡1리 일명 ‘샛터마을’은 그 신화의 발상지다. 1990년대 초 거기서 ‘손중헌논메기매운탕’이 대박을 친다. 이로 인해 죽곡리·문산리·성주대교 가도가 졸지에 ‘논메기탕 벨트’로 짜인다. 이와 함께 작고한 경남 함양군 출신 이귀달 할매가 만든 ‘서재할매매운탕’도 논메기 전성시대를 리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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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건진국수 스타일의 ‘동곡할매칼국수’.
◆ 할매칼국수의 전통

달성의 대표 칼국수로 등극한 ‘동곡원조손칼국수식당’과 가창면 삼산리 ‘우리밀원조할매칼국수’. 이 둘도 숱한 사연을 갖고 있다. 반들거리는 현대식 칼국수와 거리가 있는 ‘토속칼국수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1970년 하빈면 동곡리 동곡막걸리 맞은편에서 칼국수 인생을 시작한 강신조 할매. 장바닥에서 ‘안동 건진국수 스타일’의 칼국수를 팔았다. 지금은 타계한 대구백화점 옆 ‘경주할매칼국수’의 황금연 할매, 명덕네거리 근처 ‘할매집’의 송주연 할매와 함께 ‘대구 3대 칼국수 할매’로 불렸다. 지금은 시어머니로부터 기술을 전수한 며느리 석종옥씨(64)가 진두지휘한다. 국수 못지않게 ‘면수(麵水)’가 압권이다. 메밀차에 숭늉차, 거기에 쌀뜨물을 조금 가미한 맛이다. 김월자씨가 꾸려가는 우리밀원조칼국수.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에 ‘착한식당’으로 뽑혀 단숨에 스타칼국수로 승격됐다. 식당 옆에서 직접 밀농사를 짓는 게 특징이다. 뚝배기 같은 용기, 흙벽의 기운이 감도는 투박한 면발이 특징.

◆ 우록리 흑염소 거리

1999년 가창면 우록리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전국 첫 ‘전국염소싸움대회’였다. 이때 30여 개 업소가 똘똘 뭉쳤다. 그 덕분인지 우록리는 한때 ‘전국 최고의 염소마을’로 소문난다. 아직도 전성기를 암시하듯 동네 입구에 ‘흑염소마을’이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가창 2번 버스 종점, 우록마을회관 옆에 자리한 ‘고향흑염소가든’. 우록리에 남은 마지막 염소식당이다. 식당 옆 우리에서 직접 염소를 키우고 있다. 염소싸움대회 이야기를 듣고 싶어 우록리 염소 부부로 불리는 김용관·임형옥 부부를 찾아갔다. 아내가 식당 옆 사육장에서 놀고 있는 흑염소 30여 마리를 구경시켜주었다. 암컷과 수컷은 분리시킨다. 함께 넣어두면 수컷이 암컷을 너무 괴롭혀 고기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록리 최초 염소식당은 ‘복숭아밭집식당’이다. 당시 복숭아집 할매가 소일거리로 염소를 몇 마리 키웠다. 여름철이면 친척이나 별미를 찾는 미식가들이 할매한테 염소를 잡아 요리를 해달라고 특별주문을 하기 시작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할매는 본격적으로 염소 전문식당으로 키워나간다. 당시 할매는 우미산 자락에서 특히 많이 생산되는 평편한 구들장돌 위에 고기를 구웠다. 이어 화담장, 무림장 등 염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우후죽순 들어선다.

◆ 다끼파를 아시나요

1960년대만 해도 화원유원지에선 파시장이 열렸다. 그 파가 바로 따로국밥(대구 육개장) 맛의 원천인 ‘다끼파’다. 다끼파는 낙동강 하구의 대표적 대파였던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의 ‘명지파’와 쌍벽을 이루었다. 생산은 고령 쪽에서 되지만 유통된 건 건너편 화원읍 성산리 화원유원지 백사장이었다. 60년대 동절기엔 파를 싣기 위해 몰려들었던 달구지, 리어카 등으로 진풍경을 펼쳤다. 따로국밥의 맛이 특별한 건 바로 이 다끼파 때문이다. 다끼파는 뿌리 중심의 파였다. 다끼파의 산지는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다. 사문진교는 호촌리와 달성권 화원읍 성산리를 이어준다. 호촌리와 성산리는 둘이 아니었다. 나룻배에 의해 한 몸으로 묶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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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와인
하지만 1970년대 초 경지정리 과정에 다끼파의 호시절도 끝나버린다. 호촌리는 일명 ‘다끼’로 불렸다. 출하기가 되면 밭주인들 모두 크고 작은 저울을 들고 다녔다. ‘(저울로) 파를 달기’ 할 때의 ‘달기’가 다끼로 음운이 변이됐고 그게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대표적 종묘회사 중에도 ‘다키이(瀧井)’가 있다. 다키이는 자기가 개발한 파를 1910년쯤 한국으로 수출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이 파는 원래 한국 토종인데 일본의 육종학자가 몰래 그 파의 씨앗을 받아 일본 본토에서 육종해서 한국에 되팔았다는 설도 있다. 한국 역시 파의 종주국은 아니다.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유입된 ‘조선파’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잎만 먹는 ‘잎파’, 전체를 다 먹는 ‘쪽파’ 두 종밖에 없었다. 대파는 일제강점기 초반에 형성된다. 다끼파는 요즘 파처럼 길지 않았다. 1년에 두 번 팔러 나갔는데 2~3월엔 푸른 잎만 잘라 팔고 육개장용 올파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팔았는데 길이는 한 자쯤 된다. 굵기는 어른 엄지손가락 정도. 다끼파의 뿌리 부분은 자줏빛이 감돌았다.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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