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블루오션 개척자들 - 차효훈 낙샌(NAKSAN) 대표

  • 이춘호
  • |
  • 입력 2017-07-07   |  발행일 2017-07-07 제41면   |  수정 2017-07-07
샌드위치에 날개를 달다
20170707
호주 멜버른의 명물 제플슈츠를 한국식으로 처음 벤치마킹한 낙샌의 차효훈 대표. 그는 낙하산, 샌드위치용 빵, 내부 인테리어까지 직접 디자인하면서 새로운 시장개척의 꿈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20170707
낙샌의 인기 메뉴인 진짜불고기·트리플치즈·새우크림샌드위치(왼쪽부터).
20170707
대구 동성로의 한 건물 5층에 자리잡은 ‘낙샌’. 원내는 테라스를 통해 주문자를 향해 내려오고 있는 낙하산 샌드위치.

지난달 23일 밤 9시 대구 동성로 중앙파출소에서 대구백화점 중간의 한 빌딩 앞. 20여명의 젊은이가 모두 고개를 치켜들고 빌딩 5층 테라스 창문을 응시 중이다.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보던 한 남자는 부부젤라(요란한 소리를 내는 트럼펫 모양의 플라스틱 악기)를 길게 분 뒤 샌드위치 포장백을 매단 낙하산을 아래로 휙 내던졌다. 낙하산은 3초 정도 공중에서 빙글빙글 원무를 그렸다. 밑에선 탄성이 연발됐다. 그 궤적을 설레는 맘으로 지켜보던 주문자 김홍락씨(27·대구 동구 신천동)는 예상 낙하지점에 정확하게 다가가서 애인과 함께 낙하산을 낚아챈다. 둘은 맛보다는 재미에 푹 젖어 있었다.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이런 ‘펀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흡족해했다. 지켜보던 이들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행인들도 희한한 광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다들 낙하산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한 직원이 자판기를 통해 자동주문하는 방법을 소상히 알려준다. 자판기에 돈을 넣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면 그 주문 내용은 5층 주방으로 막바로 전송된다. 내용지가 출력되면 5분여간의 즉석 조리에 들어간다. 빌딩 5층에 자그마한 간판이 붙어 있었다. ‘낙샌’. 지난 5월16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동성로 중심부에 등장한 ‘낙하산샌드위치’의 준말이다. 오픈하는 날, 낙샌을 알 리 없는 행인을 위해 인형을 달아 날렸다. 그걸 받으면 음료수도 공짜로 주었다.

◆멜버른의 명물 제플슈츠

현재 대구의 1급 마케터도 두 부류로 나뉠 것 같다. 낙샌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낙샌은 호주 멜버른의 명물 낙하산샌드위치 레스토랑인 ‘제플슈츠(Jefflechutes)’를 한국 사정에 맞게 벤치마킹한 것. 제플슈츠는 샌드위치의 호주식 명칭인 ‘제플(Jeffle)’과 ‘낙하산(Parachute)’의 합성어다. 상호만으로도 익살스러움이 느껴진다. 제플슈츠는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형태가 아니다. 테이블이나 의자는 고사하고 가구나 인테리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고객이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창구조차 없다. 낙하물이 떨어지는 바닥에는 고객들이 인식하기 좋게 X자 표시가 돼 있다. 낙하물을 받은 고객은 골목길과 대로변에 앉아 편하게 먹거나 인근 공원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서 본 濠 ‘제플슈츠’ 영상
‘낙하산 샌드위치’ 보곤 “이거다” 확신
핵심상권이지만 임차료 싼 고층 물색
5월 국내 최초로 벤치마킹 동성로 오픈

거리 자판기서 주문·결제→5층 주방 전송
5분 뒤 낙하산 매단 샌드위치가 아래로
차돌박이 등 좋은 재료와 받는 재미 쏠쏠



접근성이 핵심인 샌드위치 가게는 1층에 위치하는 게 불문율. 하지만 이 가게는 7층이라는 악조건을 기회로 활용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랜트, 맥도날드, 파킨슨 등 3명의 사업가는 멜버른 도심에서 샌드위치 사업을 구상한다. 그런데 천정부지의 건물 임차료가 문제였다. 1층은 워낙 고가라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7층 매장을 찜한다. 문제는 손님이 그 높은 곳까지 올라와 줄 것 같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낙하산이다. 낙하산에 달린 상품 못지않게 그걸 받아보는 과정이 워낙 독창적이고 재밌어 금세 전세계로 입소문이 난 것이다. 이 샌드위치는 개업과 동시에 SNS 소문망을 탔다. 많은 마케터가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활용 중이다.

◆낙샌 마케터 차효훈

기자도 연초까지만 해도 제플슈츠를 몰랐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동성로에 식사하러 나왔다가 우연찮게 낙샌을 목격했다. 낙샌이란 ‘한국식 제플슈츠’를 론칭한 차세대 마케터인 차효훈 사장. 그를 지난 4일 낙샌 매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은둔형 스타일이라 언론에 노출되는 걸 무척 꺼렸다.

“유튜브나 다른 방송을 통해 제플슈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국내에 480만명쯤 된다고 믿습니다. 저도 최근 온라인을 통해 제플슈츠를 알게 됐는데 갑자기 감전된 듯 ‘이거다’ 싶었죠. 다들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저는 생각나면 저지르는 스타일입니다. 결국 그 아이디어를 국내에서 맨 처음 실천한 사람이 된 거죠. 돈이 되든 안 되든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고 봅니다. 생각한 걸 남보다 빨리 실천했고 그 색다른 아이디어에 적잖은 소비자가 맞장구쳐주는 대목에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개업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에 이미 4개의 굵직한 방송에 노출됐다.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도 한 방송을 통해 낙샌의 샌드위치 맛에 엄지척을 해줬다.

30대 중반의 차 사장. 그는 또래보다 더 격심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살아왔다. 속된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학창시절에는 툭하면 결석이고 툭하면 싸움이었다. 아버지와 형은 공무원이었다. 다들 그의 맘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사업의 생리를 현실과 부딪혀가면서 알아냈다.

◆별별 직종 전전

학창시절은 온통 ‘호작질’ 투성이였다. 그는 천재들은 원래 공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걸 위안으로 삼았다. 대학 가서 실컷 놀자 싶어 대구공전 식품영양학과에 간다. 역시 이론 공부는 자기 분과가 아니란 걸 절감한다. 급기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골프캐디에 도전한다. 7만원만 들고 부모 몰래 강원도로 간다. 경기도권 골프장에 이어 다시 안동에 있는 떼제베골프장으로 간다. 거기는 팔도의 골퍼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일부 서울권 감각파 캐디 중에는 문신을 한 이들이 있었다. 문신에 빠져든다. 2009년 즈음이었다. 문신은 문화아이콘 중 하나였다.

그는 문신을 어떻게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궁리한다. 시장조사를 해봤다. 대구에는 아직 유행되지 않았고 발전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문신사업을 위해 지긋지긋했던 고향, 대구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2010~2013년 지역에 문신 사업가로 나름 입지를 다진다.

2014년 중구 염매시장 내에서 ‘염매생선구이’를 시작한다. 이어 삼겹살 전문점에 도전한다. 1년 정도 상권을 분석했다. 목이 좋은 데는 권리금, 임차료, 보증금, 월세 등 모두 강세였다. 반대로 생각해봤다. 핵심 상권인데도 돈이 별로 없어도 입점할 수 있는 사각지대를 찾아다녔다. 그때 제플슈츠를 봤다. 호주처럼 비용이 덜 드는 고층 사무실을 구하러 다녔다. 그때 후배 김성국씨와 손을 잡았다. 동성로 1층과 4층의 임차료는 무려 10~30배 차이가 났다.

◆꽃무늬남방과 자작 낙하산

현재 4명의 직원과 함께 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의 인상적인 꽃무늬 남방도 서울 동대문시장, 인터넷 등을 뒤져 직접 구했다. 그는 이 가게 분위기를 발리섬 여행지에 온 것처럼 꾸미고 싶었다. 낙샌모자도 통일시켰다. 매니저 김바다(21)는 맥도날드에서 잔뼈가 굵었다. 채소 손질과 빵을 다루는 스킬이 그보다 나았다. 낙샌 상호와 이미지 등도 특허출원했다. 하늘색 톤에 흰색 글자로 ‘샌드위치에 날개를 달다’란 카피도 직접 고안했다.

공을 들인 대목은 높이와 샌드위치 무게에 맞는 낙하산 제작이었다. 일단 서문시장 비닐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서문시장 비닐공장에 가서 그가 원하는 재질의 줄도 골랐다. 줄은 면이 아니라 나일론이어야만 했다. 비닐은 너무 두꺼워도 안되고 얇아도 안됐다. 횟집 식탁을 덮는 얇은 비닐을 사용해보니 잘 내려가지만 잘 찢어졌다. 적당한 두께를 골라내기 위해 동분서주. 수소문한 끝에 경기도에 있는 한 젊은 비닐공장 사장과 인연을 맺는다. 낙하산 지름은 90㎝가 맞았다. 사각 비닐의 네 모서리를 다 자르면 8각이 된다. 60㎝의 줄을 8개 마련했다. 낙하산 원가만 1천원이었다.

진짜불고기, 하와이안비프스테이크, 트리플치즈, 핫스파이스치킨, 새우크림, 수제햄버거 등 6종 샌드위치를 메뉴로 정했다. 샌드위치는 무조건 재료가 좋아야만 했다. 자기만의 불고기샌드위치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햄버거용 수제패티가 맘에 들지 않았다. 다른 곳은 패티에다가 불고기 양념만 뿌리는데 그는 돼지 후지 대신 기름기가 많은 차돌박이를 사용했다. 다들 좋아라 했다. 보통 샌드위치용 빵은 좀 딱딱하고 질긴 편이다. 한 수제빵집과 계약을 했다. 그는 빵의 질감이 폭신한 걸 원했다. 당일 재료는 당일 모두 소진시키는 걸 원칙으로 했다.

그의 요즘 생각은 이렇다.

“남이 걸었던 길을 걸으면 남밖에 못 되죠. 다른 길을 걸어야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망함의 미학. 승부사적 기질을 가져야 해요.”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