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宅 안 ‘곳간카페’…마음속 더위까지 싹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33면   |  수정 2017-08-11
[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경남 함양
20170811
극도의 땡볕과 극도의 대청마루 그늘이 팽팽하게 맞선 음력 오뉴월 함양 일두고택의 사랑채 전경. 역발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 고택 곳간카페에는 현대와 교감하겠다는 선비가의 순발력 있는 배려가 스며들어 있다.

음력 오뉴월 염천하. 절정으로 치닫는 햇볕. 음양의 이치가 그렇듯 자연 그늘도 덩달아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무렵 절정의 그늘은 어디 가야 만날 수 있을까. 고가의 대청마루만 한 데도 없을 것 같다.

지난 3일 폭염을 뚫고 일두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 오담고택 등 한옥 60여채가 모여있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로 향했다. 지리산 북쪽 자락에 깔린 광막한 녹음. 이 계절에는 그 무르익은 녹음이 너무 두꺼워 다소 위압적이다. 쉼표처럼 도열한 백일홍 무더기에 잠시 무거워진 시선을 걸어본다.

60여채로 이룬 지곡면 개평한옥마을
심장부엔 정여창의 생가인 일두고택

447년 옛 공간 한쪽에 있는 듯 없는 듯
班家의 감주맛에 절로 미소 돋는 카페


경남 함양(咸陽). 요즘 주목받는 관광상품 두 종이 있다. 하나는 ‘선비’, 또 하나는 ‘산삼’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없다지만 ‘한국 정자문화의 백미’로 불리는 화림동 계곡라인에 서면 그 말이 틀린 것 같다. 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으로 연결된 총 6㎞의 선비문화탐방로를 숙독하고 일두고택을 성찰하면 현대판 선비의 신지평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함양은 맘은 물론 몸도 챙겨주겠단다. 현대인의 몸은 갈수록 사지로 내몰린다. 이 대목에서 함양이 죽염을 내민다. 한국 죽염산업의 종가격인 ‘인산죽염’. 함양을 본거지로 30여년 성장해 왔다. 1992년 작고한 한의사 인산 김일훈의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김윤세씨. 그가 인산가 회장으로 함양읍 죽림리 일대를 축으로 인산죽염 항노화 특화농공단지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선비·산삼·죽염이 삼위일체로 붙어다녀도 될 것 같다.

개평한옥마을의 심장부나 마찬가지인 일두 정여창(1450~1504)의 고택.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을 했다. 살인적 지열이 난동질친다. 하지만 한옥촌으로 진입하고나자 알 수 없는 기운이 날 깨운다. 선비의 기운 때문일까.

안동과 함께 함양은 누가 뭐랄 수 없는 ‘유향(儒鄕)’. 일두 때문에 함양은 우리 유학사에서 좌안동과 짝을 이뤄 ‘우함양’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두, ‘한 마리 좀벌레’란 뜻이다. 북송 중기 유학자인 정이천이 스스로를 ‘천지간 일두’라 언급한 것에 감명받아 일두를 평생 자호(自號)로 정해버린다. 그가 원한 건 입신양명이 아니다. 군자를 위한 ‘지행일치(知行一致)’였다. 영남사림파의 종조 김종직의 수제자 중 한 명으로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돼 ‘장형 100대, 유배 9년’ 형벌을 받았다. 유배지 함경도 종성에서 생을 마감했고 저작물도 이때 거의 소멸된다.

함양군청 맞은편에 정자 하나가 있다. ‘학사루(學士樓)’다. 김종직은 함양군수 시절 전임 군수였던 훈구파 거두 유자광의 시가 그 누각에 걸려 있는 걸 봤다. 불쾌하게 여겨 떼버렸다. 이 사실을 안 유자광. 독을 품고 훗날 무오사화를 촉발시킨다. 무오사화는 연산군 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 때문에 일어났다. 조의제문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한 글. 일두가 죽자 1570년 후손들이 현재 자리에 일두고택을 짓는다. 1984년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6호가 된다. 17동 99칸 규모였지만 현재는 문간채, 사랑채 등 12동 72칸이 남아 있다.

유학자의 품격에 따라 고택의 급수도 정해지는 법. 특히 고택은 알록달록하면 ‘천격(賤格)’. 고아(高雅)하고 유현(幽玄)하고 그러면서도 기품이 느껴져야 한다. 일두의 고택은 어디로 둘러봐도 너저분한 수식어가 없다. 단도직입적이다. 일두 스타일이다.

마을 입구 ‘일두 정여창 홍보관’ 옆에 있는 정려문을 지나 사랑채로 향했다. 낭인시절 흥선대원군이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나게 큰 네 글자, ‘충존절의(忠存節義)’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하지만 그 글귀보다 돌과 나무로 산처럼 꾸민 석가산(石假山)에 심겨진 황룡 같은 낙랑장송과 바로 옆 우람하면서도 꼿꼿한 전나무를 동시에 차경(借景)할 수 있는 누마루 탁청재(濯靑齋)의 현판 글씨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서체가 꼭 소나무 옹이 같다.

양해를 구하고 탁청재로 올라갔다. 말문을 닫게 만드는 공간이다. 삼면이 밖으로 다 뚫려 있다. 마당은 펄펄 끓는 가마솥, 마루는 동굴 안인 듯 서늘했다. 볕과 그늘 사이에 족히 10℃ 이상의 온도차가 형성된 것 같다. 개울물 같은 바람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순간 밀려드는 커피향이 졸음을 깨운다. 고택에 웬 커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봤다. ‘곳간카페’가 보였다.

한눈팔면 잘 모르고 스쳐갈 수 있는 공간. 웃음을 돋게 만드는 곳간카페였다. 간판도 상호도 없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색 카페인데 반가의 겸양지덕이 살포시 묻어 있다. 아메리카노는 물론 감주, 오미자주스 등 전통음청류 등도 판다. 생각해 보니 무척 조심스럽게 오픈했을 것 같다. ‘그래도 일두고택인데, 어찌 대놓고 상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고뇌를 간직한 것 같다. 안동의 농암종택처럼 이곳도 고택스테이를 운영한다.

테이크아웃잔에 담겨져 나온 감주 한 잔을 4천원 주고 마셨다. 뭔가 달랐다. 당분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반가의 감주맛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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