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기공연구가’ 서보혁 경북대 전기공학과 교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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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30 08:12  |  수정 2017-08-30 08:13  |  발행일 2017-08-30 제29면
명상·기공으로 사람들 ‘氣’ 살리는 전기공학자
20170830
8월말 35년간 재임한 경북대를 퇴임하는 서보혁 전기공학과 교수. “인생 2막은 생활기공과 함께할 계획”이라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흔히 ‘기분(氣分)이 좋다 또는 나쁘다’라고 하잖아요. 기가 몸 전체에 골고루 분산되면 기분이 좋은 거고, 균형이 깨지면 기분이 나빠져요. 기절(氣絶)이란 기가 끊어지는 것이지요.”

서보혁 경북대 전기공학과 교수(65·대구시 달서구 월성동)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공연구가다. 그는 이달 말 35년간 몸담았던 경북대를 정년퇴임한다. 그가 기공연구를 시작한 건 서울대 전기공학과 재학시절부터다.

“혼자 명상과 호흡수련을 해오다 소설 ‘丹’을 읽고 더 깊이 빠졌죠. 한때는 예지력을 갖기 위해 몰두했는데 미래를 예견하는 게 두려워 그만두고 재미삼아 하기로 했습니다. 전기공학자로서 기감(氣感·일종의 육감)이 가지고 있는 온도, 습도 등을 과학적으로 계측하려고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경혈마사지사 등 자격증 다수
지난해까지 8년동안 재능기부
이달말 정년 황조근정훈장 수상
부친은 목민 서상교 독립지사



생활기공연구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서 교수는 기공수련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운동처방사, 공인체육교정사, 경혈마사지사, 카이로프랙틱사, 활기도사범 자격증을 따 2008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8년간 무료 재능기부 활동을 해 왔다.

“대구 중구청 건강가정지원센터가 ‘몸으로 전하는 가족사랑’이란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암수술 받은 가족이나 퇴행성 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명상치유, 기공치유를 했지요. 프로그램이 종료된 이후에도 호응이 높아 대구의 한 병원 힐링센터에서 ‘가족힐링’으로 계속했어요. 건강을 되찾은 분들이 감사패를 만들어줬는데 보람을 느꼈습니다. 병은 생활습관, 음식섭취, 스트레스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기공치유와 병행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서 교수가 기공에만 몰두한 건 아니다. 그는 경북대 재직 중이던 1991년 현 경북대정보전산원의 전신인 전자계산소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사이버대의 전신인 한국가상대학연합 기획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대한전기학회의 종신회원이다. 1999년엔 경북대 교수회 직선 부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소장파 교수 시절부터 시국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덕분에 ‘블랙리스트 교수’로 찍혔단다. 서울대 조교와 해군장교 경력을 합하면 국가를 위해 봉직한 기간이 40년 이상인 덕분에 이번 퇴임식 때 정부로부터 황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이번 훈장은 사실 2대째 서훈이다. 반골기질도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광복절기념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서 있던 목민(木民) 서상교 독립지사(94·건국훈장 독립장)다. 모친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소정 이휘 여사로 영천의 마지막 성리학자로 불렸던 낭산 이후의 손녀다.

서 지사는 대구 동산언덕 99칸 한옥에서 태어난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인 서건수 역시 3·8대구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파리장서에 서명한 독립지사다. 서 지사는 일제강점기 대구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 재학시절(1942) 앞산 안일사에서 이상호, 김상길 등과 함께 반일단체인 태극단(T·K·D)을 조직해 식민통치에 저항하다 이듬해 5월 일경에 채포돼 7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석방됐다.

“아버지께선 6·25전쟁 후 인천의 한 제철회사에 다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경기도 안양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초·중학교 시절 가난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웠어요. 학교에 도시락도 못 싸갈 형편이었죠. 다행히 63년 아버지께서 서훈을 받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해도 아버지께선 당시 귀했던 한글큰사전과 세계대백과사전 전질을 다 사왔어요. 저와 동생들은 그걸 보고 공부를 했습니다.”

서 교수를 포함한 2남3녀는 다 결혼을 해 잘 살고 있다. 서 교수는 이들 부부(10명) 가운데 박사가 6명, 판사가 2명, 교수가 2명이라고 귀띔했다.

서 교수는 “퇴직을 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고 싶어요. 기공은 계속 할 건데 제자를 구하기 어렵네요. 아버지나 선대에 비해선 전 별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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