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일 대구시립극단 42회 정기공연 ‘리어왕’에 참여하는 배우 오영수씨. |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의 주인공인 영국의 노왕 리어는 배우에게 만만치 않은 역할이다. 모든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로, 밀도있는 연기가 요구된다. 22~23일 ‘리어왕’을 무대에 올리는 대구시립극단은 리어 역에 배우 오영수씨(72)를 선택했다.
지난 11일 오후 대구시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건강해보였다. 오씨는 70대의 나이에도 거의 매년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현역’이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지난 6월에도 연극 ‘천덕구씨가 사는 법’으로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1968년 극단 광장을 시작으로 극단 자유, 국립극단 단원을 거쳐 ‘피고 지고 피고 지고’ ‘그대를 사랑합니다’ ‘템페스트’ ‘갈매기’ 등의 연극과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동승’ ‘퇴마록’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에게 리어는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대전 예술의전당 초청으로 리어를 연기한 적이 있다. “리어왕은 변함이 없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60대고, 지금은 70대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리어를 만나는 게 다릅니다. 조금 더 여유로워졌죠.”
이번 공연에는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가 객원 연출로 참여하면서 직접 번역을 했다. 오씨는 “이번 공연은 극을 풀어내지 않고 관념적이고 사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전에서 했을 때는 사실적으로 풀어나가는 차이가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너무 풀어내도 맛이 나지 않고, 어느 정도 풀어내야 전달이 되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리어는 배우가 연기 인생에서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는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극중 리어의 나이가 80대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씨는 “리어가 안고 있는 인생을 다 포괄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배우가 소화하긴 어렵다”며 “리어의 의식의 흐름, 인생을 관망하는 태도가 나이가 들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60대 때보다 리어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50년 가까이 배우로 살아 왔는데 지겹지는 않았을까.
그가 멘토로 생각하는 배우는 고(故) 장민호 선생이다. 장민호 선생은 85세까지 연극 무대에 섰다. “다른 직업이라면 현직에서 물러날 나이지만 연극배우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연극을 꼭 해야 하는가’라는 회의도 있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런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제 개인으로는 가치있게 생각합니다.”
오씨는 대구시립극단과의 공연을 의미있게 생각했다. 중앙 연극판과 지역 연극계가 연극을 함께 공유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이번 공연에 참여했다. “시립극단이기 때문에 단원들도 생각이 조금 닫혀 있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보니 연극정신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도 지역에 안주하지 말고 생각을 넓혔으면 좋겠어요.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연극판과도 교류하고 자유분방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최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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