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커피 이야기- 추억의 대구다방 <상>

  • 이춘호
  • |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41면   |  수정 2017-12-15
대한민국 믹스커피의 기준은 대구 다방커피
20171215
지난 10일 성료된 영남일보 주최 ‘제1회 대구커피&베이커리 축제’의 수성못 행사장 모습과 대구다방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커피스토리하우스 전경.
20171215
방천시장 내 길영카페에 가면 만날 수 있는 1980년대식 사이펀커피.

영남일보가 주최한 ‘제1회 대구 커피&베이커리 축제’. 4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냈다. 이 축제로 인해 다소나마 ‘대구가 커피도시’라는 구체적인 ‘실마리’ 같은 걸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각자도생하던 개미군단급 대구 커피맨들. 이번 축제로 인해 그들 사이에도 하나의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더욱 쓴소리와 조언을 많이 주었다.

처음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브랜드를 대거 참여시킬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궤도를 수정했다. 숨어 있는 향토 토종 로스터를 전면으로 배치하는데 화력을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커피레드’의 서재일, 방천시장에 있는 ‘로스터리’의 이선기, 경북대 근처에 있는 ‘피터스커피’의 강병호 로스터 등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시민은 물론 참가업체들도 커피만의 행사에서 벗어나 커피 옆에 베이커리를 묶은 걸 강점으로 보았다. 베이커리뿐이겠는가. 커피 옆에 붙일 수 있는 ‘꺼리’는 수두룩하다. 생두를 수입하는 사람, 볶는 사람, 볶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 커피 용품 수집가, 커피 믹싱 음료 전문가, 커피잔 디자이너, 커피숍 실내인테리어 전문가, 커피학 박사, 커피 관련 팟캐스트, 커피패션, 커피를 응용한 수제맥주, 커피와 연결한 프라이드커피치킨, 커피빵, 대구의 커피역사를 원스톱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커피인문학버스. 커피해설사 양성, 그 시절 음악다방 DJ들이 꾸려가는 추억의 음악다방. 또한 전국적 저력을 갖고 있는 대구의 차문화와의 공감대(커피와 차의 혼성모방전)도 얼마든지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1회 대구 커피&베이커리 축제 성황
개중 압권은 종로 사랑방인 ‘미도다방’
약차와 입가심 과자로도 옛 추억 불러

우리나라 커피 대명사로 통하는 믹스
1970년대 동서식품이 출시한 첫 제품
커피·프림·설탕 함량 토대는 대구 다방
80년대 박청강씨가 물꼬 튼 커피숍시대
‘사이펀’식 추출 거쳐 지금은 핸드 드립



첫회라서 그런지 대구시가 더 신경을 쏟은 것 같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승수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행사장을 둘러보며 문제점을 체크했다. 그리고 식품관리과 직원들도 꽤 쌀쌀한 날씨에도 운영본부를 끝까지 지켰다.

◆추억의 음악다방 속으로

이번에 가장 압권은 대구 실버세대의 마지막 사랑방다방으로 불리는 중구 종로의 ‘미도다방’이었다. 젊은 취향의 참가업체 속에서 미도다방은 뭐랄까, 아련한 옛추억의 그림자 같은 감흥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정인숙 대표는 아침 일찍 올림머리에 한복을 잘 차려입고 자기 다방의 명물 메뉴인 약차와 추억의 크림웨하스를 입가심 과자로 건넸다. 미도를 응원하기 위해 정 대표의 팬클럽 어르신도 많이 다녀갔다.

미도다방 부스 바로 옆에는 추억의 대구음악다방 자료관이 있었다. 고종황제의 커피에서부터 1970~80년대 전국 최강의 음악다방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글과 자료 사진이 7080세대 관람객을 아련하기만 한 젊은 시절로 데려가주었다. 20대는 어쩜 자기 부모세대의 핫플레이스를 간접체험하면서 인증샷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트렌디한 커피스토리를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더욱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선 대구커피의 뒤안길을 자수를 놓듯 하나씩 정리해 알려주고 시민과 공유하는 커피담론문화가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믹스의 원류인 대구 다방커피

커피가 보편 음료가 된 것은 1970년부터. 물론 원두커피 스타일은 아니다. 몇 단계의 커피를 거쳐 지금의 진검 커피가 탄생하게 된다. 동서식품은 1970년 국내 최초로 ‘맥스웰하우스’란 인스턴트커피로 커피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하지만 68년 동서와 함께 등장한 미주산업이 유통시킨 드럼통커피 ‘MJC’는 동서보다 더 포스가 강했다. 당시 각종 다방에선 다들 이 커피를 받아 사용했다. 미주는 메이저급, 동서는 마이너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미주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82년 ‘맥심’까지 추가한 동서가 한국 커피시장의 대명사로 군림한다. 이 동서의 최대 상품이 바로 76년쯤 출시된 커피믹스이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기술개발팀이 대구 여러 다방의 달달커피 함량을 분석했고 그걸 토대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대구의 다방커피는 한국의 입맛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77년 롯데산업이 일본 샤프사에서 커피자판기 400대를 도입해 국내에 풀었다. 78년 커피자판기 1천100대가 전국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됐는데 하루 평균 15만여 컵이 판매됐다는 기록이 있다. 78년 말 전국의 다방은 1만752곳에 달했다. 새로운 감각의 차세대 다방이 등장한다. 79년 서울 대학로 샘터사 건물에 전국 첫 체인커피격인 ‘난다랑’이 문을 연다. 87년 커피 수입자유화로 원두수입이 본격화된다. 88년 12월 서울 압구정파출소 앞에 문을 연 ‘자뎅’을 시작으로 마침내 국내에서도 원두커피 전문점 시대가 열리고 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진을 친다.

60년대는 ‘시골다방’, 70~80년대는 ‘음악다방’, 90년대부터는 ‘커피숍 시대’.

그시절 다방은 참 묘한 공간이었다. 그 어떤 문화적 오브제도 다 품어낼 수 있었다. 다방은 갤러리였다가 간담회장이었다가 레스토랑, 커피숍, 바, 식당, 주점, 고고장으로도 변신했다. 장사치까지 들끓었다. 장물 시계를 파는 아저씨들은 물론 사주관상을 봐주는 이들도 찾아들었다. 중매공간이기도 했다. 일반·휴게·유흥음식점 같은 공간이라서 관할 당국과 항상 불법·변태영업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커피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커피도 요즘 원두커피와 차원이 달랐다. 그냥 무늬만 커피였다. 상당수 전통차는 물론 우유, 사이다, 약차, 계란 노른자 띄운 쌍화차, 샌드위치까지 팔았다. 그리고 농염한 상술을 앞세운 마담, ‘레지(Register의 일본어)’의 환심을 사려고 큰맘 먹고 시켰던 ‘찐(위스키 잔술)’까지도 메뉴에 포함됐다. 유흥업소 같은 다방이다.

이들은 음악다방, 커피숍 문화와도 거리가 멀었다. 당시 저렴한 비닐의자와 비로드천으로 만든 의자는 하나같이 무뚝뚝했고 디자인 감각도 빵점이었다. 각이 져 있었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등받이 부분에는 상호와 전화번호가 찍힌 흰색 덧천이 씌워져 있었다. 지금은 기겁하겠지만 그때 다방은 강추 흡연 공간이었다. 뽀얀 담배연기가 다방을 가득 집어삼켰다. 성냥과 재떨이는 항상 세트로 붙어다녔다. 10원짜리 동전만 집어넣으면 일일 운세를 볼 수 있는 통도 있었다.

처음엔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다방도 마담의 품격, 분위기와 메뉴구성, 커피의 급수 등에 따라 여러 형태로 분파된다. 얼추 네 종류 정도로 나뉜다. 일단 변두리 다방은 지극히 음습한 공간이었다. 티켓다방 같았다. 거기엔 어김없이 쌍화차가 주메뉴였고 커피는 뜸했다. 짓궂은 단골은 늘 여종업원의 허벅지를 노렸다. 물론 커피 한 잔은 필수. 하지만 그런 다방은 동성로권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동성로 다방은 대다수 커피가 주역으로 나오고 이와 함께 뮤직박스와 전속DJ가 필수품이었다. 그런데 음악감상실 스타일의 다방은 커피보다 분말로 나온 가루주스도 만만찮은 강세를 보였다.

◆사이펀커피의 추억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시내엔 나름 한 커피 한다는 커피숍 개념의 다방이 생겨난다. 지금과 비교하면 참 촌스러웠지만 당시로는 파격적인 데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게 명작, 왕비, 전원, 보리수, 가전, 늘봄, 가배, 레떼, 예전, 아세아, 은좌, 미주, 반쥴 같은 곳이었다.

이 중 대구다방시대를 커피숍시대로 물꼬를 터준 사람은 단연 박청강씨(75). 대구다방문화의 산증인이다. 속초 출신인 그녀는 얼마전까지 꾸려가던 중앙파출소 옆 화방골목 중간에 있는 ‘풀하우스’를 잠시 세를 놓고 쉬고 있다. 그녀는 77년부터 ‘보리수’, 그 다음은 ‘전원’, 그 다음은 당시 대학생 등에게 가장 앞서가는 다방으로 인정받았던 ‘늘봄1, 2’까지 연이어 성공시켰다. 늘봄1은 동아백화점 건너편, 늘봄2는 대구백화점에서 대백 별관 쪽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있었다. 빼어난 인테리어는 여느 다방 사장의 시선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어놓았다. 특히 박씨의 매너는 특이하고 이국적이었다. 마치 방금 뉴욕에서 날아온 듯한 서양식 매너로 다방에서 쌍화차타령을 못 하게 만든 지역 다방문화 품격화의 주역이다. 늘봄은 영신상회로부터 MJC 통커피를 받아 사용했다. 물론 요즘 같은 원두커피는 아니었다. 늘 ‘사이펀(Syphon)식’으로 커피를 추출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 같았다. 그땐 그게 획기적이었다. 주판을 주눅들게 한 전자계산기 같은 물건이었다. 사이펀 장치는 유리로 된 실험기기처럼 보였다. 알코올램프의 열기를 이용해 수증기압으로 물을 올려 역삼투압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70년대로선 획기적 커피추출기였다. 이건 일반 레지가 핸들링하기 힘들었다. 배우든지 아니면 기술자를 고용해야만 했다. 80년대로 넘어오면 대구다방은 어느새 사이펀이 있는 다방과 없는 다방으로 구분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사이펀커피는 골동품이 되었다.

어렵게 지금도 그 추억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81년 동성로 목마다방 DJ를 시작으로 다운타운 DJ로 잔뼈가 굵은 도길영씨(58). 그는 방천시장 김광석길에 차린 ‘길영’이란 LP음악카페를 통해 추억의 사이펀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