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工神으로 가는 비밀노트] 수능 문과계열 1등 대륜고 졸업 송시복

  • 이효설,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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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2 08:09  |  수정 2018-02-12 09:23  |  발행일 2018-02-12 제18면
435등서 점프…수능 3문제 놓치고 서울대 합격
“기초가 없어 무턱대고 교과서부터 베껴썼어요”
엄마의 통장 잔고 0원 확인 후 공부 결심
고교 못가면 취업 어렵고, 취업 못하면 돈 못벌어
한국사 특정파트 50번 필사…中3때 360명 중 76등
20180212
2018학년도 대입에서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합격한 송시복군이 지난 7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꼴찌와 1등을 모두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공부가 특히 그렇다. 꼴찌 언저리에 쭉 머물다 어느날 공부를 시작하는 일도 힘들거니와 최정상까지 간다는 것은 노력을 해도 안될 때가 허다하다.

최근 대륜고를 졸업한 송시복 학생, 그는 두 가지를 경험했다. 고교에 들어온 후 치른 첫 시험에서 508명 중 435등을 했다. 중학교 때 알파벳을 겨우 뗐다는(?) 그가 몇 달 바짝 공부해 얻은 결과였다.

3년후, 송군은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과계열 1등을 했다. 원점수 290점(국어·수학·탐구). 3문제 틀렸다. 서울대 국어교육과(기회균등전형)에 당당히 합격했다.

엄마의 통장 잔고 0원 확인 후 공부 결심
고교 못가면 취업 어렵고, 취업 못하면 돈 못벌어
한국사 특정파트 50번 필사…中3때 360명 중 76등
죽어라 공부했지만 고교 첫 시험서 다시 하위권
과외 받고 학원다니는 친구들 생각하니 한숨만…
포기하려다 쌓인 문제집이 아까워 다시 펜 잡아


만점받은 국어, 골치아픈 비문학 집중 공략
비문학 지문만 싹 모아 모의고사 문제집 만들어
문단 주요내용 적고, 지문 읽고, 전체 주제 적고…
4단계 방식 숙달되면 글의 소재·주제·내용 선명
지문 어려워도 주눅들지 않아…추론문제도 쉬워
수학은 고난도 문제 엮어 일주일에 5문제씩 풀이


▶처음부터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중학교 때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나쁜 짓도 많이 했고요. 부모님이 학교 근처에서 김밥가게를 했는데 형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제가 용돈 달라고 졸랐더니 엄마가 통장을 보여주셨는데 잔고가 ‘0’원이었어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2 겨울방학 때 새벽 택배 상하차와 고깃집 불판 갈기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어요.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못 가면 취업 못 하고, 취업 못 하면 돈 못 버니까.”

공부에 대한 기초가 없는 송군은 말 그대로 무식하게(?) 공부했다. 암기과목부터 손댔다. 이면지에 교과서를 무턱대고 필사한 것. 한국사는 특정 파트를 50번씩 베껴썼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중3 2학기 때 성적이 많이 올라갔다. 360명 중 76등.

▶성취감이 컸을 것 같다.

“그때까지 누구한테 칭찬을 거의 못 들었던 것 같아요. 성적이 확 올랐지만 자존감은 낮았어요. 그런데 중3 때 담임이셨던 김소현 선생님이 진학 상담 시간에 ‘시복아, 네가 바로 누구보다 인문계 고교에 진학해야 할 학생이다’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저한테 관심을 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 나도 더 잘할 수 있겠구나’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륜고에 진학한 후 치른 첫 시험에서 국·영·수 4등급, 탐구 6등급을 받았다. 친구들한테 “그렇게 죽어라 공부하더니 이 성적이냐”고 놀림을 받았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선행학습은 기본이고 값비싼 과외를 하고 유명한 입시박람회를 찾아다니는 친구들을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나, 공부 안할래! 다 포기할 거야!”라고 엄포 아닌 엄포를 놓고 방문을 닫았다. 하지만 공부방에 들어가니 그동안 공부했던 문제집들이 책상 한편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포기하려니 저 문제집들이, 공부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이제 공부비법을 좀 들려달라. 국어 만점을 받았는데 비결이 뭔가?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고교 들어와 독서할 시간이 없었어요. 거의 못 읽었어요. 수능 국어는 심도있게 이해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잖아요.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비문학이 특히 약했어요. 과학 지문 같은 거 정말 머리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골치 아픈 비문학 지문들만 싹 모아서 모의고사 문제집을 만들었어요. 이것들만 죽어라 팠는데요. 공부하는 방법은 크게 4단계입니다. 먼저, 문단별로 주요 내용을 적고요. 그다음 전체 지문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지문의 전체 주제를 적고요. 마지막으로 글의 구조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마인드맵도 괜찮고요.”

▶이런 방식의 장점은 무엇인가.

“이 방식에 숙달되면 나중에 모의고사 칠 때 지문을 한 번 쭉 읽으면 바로 글의 구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되죠. 글의 소재와 주제, 내용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것도 장점이고요. 가장 큰 장점은 시험에서 어떤 어려운 지문이 나와도 최소한 주눅들지 않죠. 지문 분석할 때는 정말 꼼꼼히 해야 해요. 국어 문제가 45개인데 그중 15개 정도가 비문학이잖아요. 아무리 어렵다 해도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말만 이해하면 문제 읽고 지문 보면 찾아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추론 문제가 2개 정도 나오는데 이것만 빼면 쉽게 해결돼요.”

▶추론문제 같은 고난도 문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나요.

“시험칠 때 요령이 중요해요. 어렵다고 계속 시간 끌지 말고 일단 넘어가요. 한 번 다 푸는데 한 50분 잡고, 남은 30분 동안 추론문제 같은 어려운 문제와 씨름을 하는데요. 이렇게 하면 도저히 못 풀 것 같다고 느꼈던 것도 풀릴 때가 많아요.”

송군의 수학 공부법은 어떨까. 역시 고난도 문제를 엮어 집중 공부했다. 역대 수능 수학 21번과 30번 문제를 한꺼번에 모아 문제집처럼 만들었다. 일주일에 5문제씩 해결해 나갔다. 어떨 때는 못 푸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해설지를 안봤다. 해설지를 보고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넘어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정말 안 좋은 방법이라고도 했다.

모르는 문제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같은 문제를 교사에게도 물었다. 여러 가지 풀이법을 익히자, 한동안 못 풀었던 문제가 어느날 풀렸다.”

▶꿈이 무엇인지.

“교사가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사요. 저는 꼴찌도 일등도 해봤으니까요. 그 누구보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아요.”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사진=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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