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달성‘작가와 주막’ 인흥탁배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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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7   |  발행일 2018-04-27 제41면   |  수정 2018-04-27
별별 막걸리 세상, 달지 않은 추억의 하우스막걸리
70년대 당 넣지 않아 약간 쓰고 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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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지 않은 막걸리의 신지평을 열자고 다짐하는 ‘작가와 주막’의 관계자들. 왼쪽부터 술빵을 만드는 탁정구씨, 진로발효 주정공장 공장장을 지낸 이문호씨, 임종 대표가 인흥탁배기의 건승을 빌면서 건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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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주막’ 바로 옆에 있는 술을 만드는 조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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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대표가 갤러리형 커피숍으로 문을 연 ‘작가와 커피’ 바로 옆에 오픈한 인흥탁배기 전용 술집인 ‘작가와 주막’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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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흥탁배기 디저트빵이라 할 수 있는 ‘술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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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술국으로 불리는 ‘갱시기’.

◆하우스막걸리 시대 개막

1995년 국내 주류계에 ‘빅뱅’이 있었다. 집에서도 술 빚는 게 허용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그건 불법이었다. 2002년 ‘하우스맥주시대’가 열렸지만 이상하게 막걸리는 예외였다. 여기저기서 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2015년 12월 ‘소규모주류제조면허’가 입법예고되었고 지난해부터 집에서도 막걸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비로소 ‘하우스막걸리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재 전국에는 무려 1천여 종의 별별 막걸리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막걸리로 알려진 충북 단양군 대강막걸리.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잇는 조합형 주막인 ‘바보주막’의 봉하막걸리도 전국구로 발돋움했다. 급기야 막걸리 페스티벌까지 론칭됐다. 경기도 가평 자라섬 전국막걸리페스티벌, 하남 부침개막걸리페스티벌 등이 그것이다. 허시명, 박록담 같은 전통주 전문가는 쿡방 스타 백종원·황교익만큼 막걸리특수를 호령하고 있다.

‘막걸리(莫乞里)’. 일명 ‘탁백이(濁白伊)’로도 불린다. 술꾼들에겐 ‘왕대포’로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물 타지 않고 걸러낸 ‘탁주’와 물을 타서 희석시켜 싱겁게 마시는 탁주인 ‘막걸리’를 구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현재는 막걸리가 탁주류를 대표하는 술이 되면서 막걸리와 탁주 간의 명칭이 혼용된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2010년 ‘전통식품규격집’ 개정판부터 막걸리와 탁주를 같은 용어로 개정한다.

◆지역의 유명 공장표 막걸리

대구권은 ‘불로막걸리’가 대표주자. 이건 1970년 전국 막걸리공장 통폐합에 의해 탄생된 동구 불로동 ‘대구탁주합동’에서 생산된다. 현재 56개사가 회원사로 있다. 방천시장 김광석길에선 불로막걸리 못지않게 두 종류의 경북 막걸리가 더 인기다. 바로 상주 은자골생탁배기와 청도 동곡막걸리. 상주시 은척면 성주봉 자락에서 생산되는 은자골생탁배기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관한 2016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생막걸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29년부터 2대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빚어왔다는 청도 동곡막걸리. 영락없는 1970년대 시골 ‘술도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동곡양조는 인근 운문면과 매전면, 금천면 일대의 7개 막걸리 양조장을 흡수 합병하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매년 삼짇날이면 동곡막걸리 공양을 받을 정도로 호사를 누린다. 90년대 접어들어 쌀로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면서 쌀 30%에 밀가루 70%를 섞은 지금의 막걸리를 만들어낸다. 양조장을 찾은 손님에게는 특별안주로 왕소금을 내놓고 있다.

◆달지 않은 옛날 탁배기& 인흥탁배기

요즘 달성군이 ‘막걸리특구’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달성에는 좋은 샘이 많다. 화원읍 본리리 남평문씨 세거지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고려정(高麗井)이 아직까지 건재해 화제다. 가창면 광덕사 약수는 1년 무휴 개방되는 대림생수와 같이 시민과 함께하는 샘물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가창댐, 가창면 냉천리에 있는 한천(寒泉·냉천), 옻 알레르기에 즉효가 있다고 소문이 난 옥분리 옻샘 등이 산재해 있다. 지금은 사라진 가창막걸리도 불로막걸리 이전엔 한 시절을 풍미했다.

국내 첫 피아노가 들어온 화원 사문진 나루터 전속 막걸리는 2014년부터 현풍양조장이 생산하는 ‘비슬막걸리’로, 달성군 대표 막걸리로 부상했다. 이밖에 일반업소에서 만든 숨겨진 농주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가창면 대일리 ‘감투봉주막(세명식당)’ 신정민 주모는 묵은지돼지국밥에 딱인 옥수수막걸리를 잘 빚는다. 가창면 삼산리 ‘우리밀원조할매칼국수’도 심심찮게 옛 방식대로 근처 논에서 수확한 국산 밀로 막걸리를 담근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막걸리는 너무 달다. 화학조미료·청량음료 시대와 호흡하기 위해 8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막걸리는 너나없이 ‘단술’이 되어버렸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젖산, 산도를 조절하는 구연산, 감미료 구실을 하는 아스파탐 등이 첨가돼 있다. 70년대초만 해도 우리의 막걸리는 당을 넣지 않아 약간 쓰고 신맛이 감돌았다. 감미롭지 않고 깔끔했다.

달지 않은 막걸리는 먹을 수 없을까. 최근 당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물과 쌀, 누룩만으로 만든 추억의 하우스막걸리가 달성군에서 탄생했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남평문씨 세거지 근처에 있는 ‘작가와 주막’(대표 임종)이란 동네 막걸리집에서 직접 만든 ‘인흥탁배기’. 막걸리 대신 더 정감어린 탁배기를 사용했다. ‘인흥(仁興)’은 본리리의 별칭인데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선사가 유가사에 있다가 군위 인각사로 가기 전 잠시 머물렀던 사찰 ‘인흥사’에서 유래한다.

‘작가와 커피’에 이어 작가와 주막이란 가게를 낸 임 대표. 홍익대 조소과 출신의 재원으로 지역에선 꽤 유명한 빈티지아티스트인 그는 요즘 달성군과 손을 잡고 가게 앞 인흥천 교량 주변에 캐릭터 조형물을 세워주고 있다. 여기는 마비정을 찾는 이에게는 굿포토존이다.

그는 국내 막걸리 당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에 불만을 갖고 달지 않은 막걸리를 만들고 싶었다. 문제는 조주 기술자를 찾는 것. 경기도 안산 진로발효 주정공장 공장장을 역임한 이문호씨, 그리고 지역에서 하우스맥주운동을 펼치는 대경맥주 문준기 대표와 손을 잡았다. 로컬 막걸리답게 안주도 모두 마을의 특산물로 만든다. 화원읍에서 생산된 쌀과 본리리 미나리조합에서 가져온 미나리, 그리고 근처 마비정에서 직접 만든 용문 촌두부를 갖고 상을 차린다.

이씨는 틈만 나면 대구로 내려와 막걸리를 만들어 놓고 올라간다. “국내 막걸리가 달게 변하고 있어 염려스럽습니다. 전통 막걸리는 전혀 달지 않은데 말이죠. 아무튼 임 대표가 처음 먹는 이에겐 다소 부담스러울지 모를 당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탁배기를 만들고 싶어 해서 성심껏 돕고 있습니다.”

70년대 당 넣지 않아 약간 쓰고 신맛
80년대 젖산·감미료 첨가‘단술’변화

임종 대표, 옛날 탁배기 조주
조주 기술자 이문호·문준기씨와 투합
물·누룩·쌀만으로 만든 쓰고 깊은 맛
마을특산물 미나리·촌두부 안주 차림
옛날표 갱시기·촉촉한 식감 술빵 별미


술을 만들려고 하면 고두밥만 있어선 안 된다. 여기에 누룩과 효모가 필요하다. 누룩은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시켜준다. 그 포도당을 먹이로 먹은 뒤 알코올발효를 하는 놈이 바로 이스트로 불리는 ‘효모(酵母)’. 현재 효모 균주는 농촌진흥청 등에서 판매를 하고 있다. 원래 누룩만으로는 술을 제대로 만들기 힘들다. 가정용 막걸리는 거의 누룩과 고두밥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자칫 여러 잡균 때문에 쉽게 산폐(쉬어버리는 것)되는 게 문제다.

홀 바로 옆에 술을 만드는 조주실을 마련했다. 150ℓ 6개, 200ℓ 2개 등 모두 8개의 스테인리스스틸 발효숙성고가 있다. 밑술 만들기, 본발효 등 총 11일이 걸려야 인흥탁배기가 완성된다. 누룩과 효모의 절묘한 배분, 그리고 최고의 위생이 강점. 인흥탁배기는 물·소금·동치미무 이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반가의 ‘동치미’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14일 오픈한 날도 남평문씨 세거지 어르신 몇분이 가장 빠른 반응을 보였다. 다들 “막걸리도 제정신을 차려야 된다”면서 인흥탁배기의 성공을 기원했다. 길을 가다 들른 한 젊은 부부가 “맛이 너무 쓴 것 같다”고 하자 임 대표는 “이게 원래 우리 조상들이 먹던 맛”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자 그 부부는 “역시 우리 것은 쓴 것”이라며 아버지에게 선물한다면서 탁배기를 테이크아웃 해가기도 한다.

커피와 막걸리. 두 가게는 미술관과 박물관처럼 정겹게 붙어 있다. 자리에 앉아 탁배기를 기다렸다. 근처 마비정 주민인 주모 김은숙씨(37). 가끔 달성군 문화해설사로도 활동하는 김 주모는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두 주먹을 불끈 거머쥐면서 파이팅을 외친다. 탁자, 호리병, 술잔에 적힌 글씨는 지역 서예가 율산 리홍재의 작품이다. 주모의 남편 탁정구씨는 율산의 제자. 율산은 그 제자를 돕기 위해 연습하다 버린 한지까지 선물했다. 그 한지는 임 대표의 손에 의해 인테리어 벽지로 활용됐다.

한 모금 마셨다. 완전히 새로운 맛이다. 쓰지만 맛은 깊다. 거북할 정도로 단 기존 막걸리와 완전히 구별되는 무심한 맛. 도수는 7도.

봄바람이 그 술향기를 더욱 심원하게 빚어낸다. 술이 몇 순배 돌 즈음, 김 주모가 별미일 것 같은 술국을 갖고 나온다. 그녀가 평소 집에서 잘 해 먹는 김치밥국, 그래 ‘갱시기’다. 더도 덜도 아닌 ‘옛날표 갱시기’. 다들 칭찬 일색이다. 적당히 시어버린 묵은지, 그리고 점점이 씹히는 떡국, 적당한 간의 멸치 육수. 조만간 탁배기보다 이 갱시기가 더 유명해질 것 같은 예감도 든다.

일어서려고 하니 다시 인흥표 술빵을 내민다. 예전 고향 어머니가 삼베 보자기에서 곧잘 해주던 막걸리 들어간 그 술빵이다. 부모가 방앗간을 경영했던 남편 탁씨가 옛날 생각을 하면서 그걸 만들게 됐단다. 대단한 부부다. 시중 보리떡과 비슷한데 보릿가루와 밀가루 비율을 잘 조절해 푸석하지 않고 먹는 내내 촉촉한 식감이 오뉴월 그늘처럼 일렁거렸다. 막걸리 디저트 빵으로도 합격. 깰 때까지 트림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만큼 봄은 자꾸 암녹색(暗綠色)으로 건너간다. 한되 1만2천원. 달성군 화원읍 인흥길 266-6. (053)631-8293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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